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관악5부

관악5부에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94 [사진] 9월10일 에이브 팀모임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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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2005-09-11
93 [사진] 양누가 엘리사벳 선교사님 포틀랜드 파송 파일
[레벨:20]서정수
229 2005-09-03
92 [사진02] 에이브 팀스피릿 훈련 사진입니다. 파일 [1]
[레벨:20]서정수
260 2005-08-30
2005 에이브 팀 스피릿 훈련을 허락하시고, 모든 분들의 마음에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리산을 오르며 누렸던 벅찬 감격으로, 한걸음 한걸음 예수님을 깊이 배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사진을 찍어주신 김미선 목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진이 퍼렇게 뜬 것이 아닙니다. 미선 목자님의 독특감 미감이니, 파아란 세상에 마음껏 빠져보시길..-.-;; 세로로 찍은 사진이 많으니 F11 키를 누르시면 화면이 넓어집니다. 가자~!! 지리산 아자아자 ^0^ 가는길 너무나 꿀맛같았던 계곡 물입니다. 찍지마~~ 칼바위에서 미선목자님,현희,나래 자매님~ 칼바위 앞에서 형제팀~ 망바위 위에서, 병욱형제님 수건 압권.. ^^ 중간 점심시간 산장에서..입맛을 다시는 해영자매님 기중형제님~ 맛있었죠 ^^ 정상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단체사진~ 어디야..정상이 어디야.. ㅡㅡ;; 개선문에서 잠시 쉬어가기 힘들어도 브이는 하고 가자!! ^^; 현희자매님. 이야~~ 너무 즐거워 보이져? 카메라 뒤에서는...다들 ㅡㅡ;; 멋진 소나무 배경과 함께..정상과 점점 근접해 가고 있음. 야호~!!그러나..... 영길목자님..거기 정상 아니거든요 정상 가까이서~~ 자매팀 단체. 바람이 기가막히게 시원했습니다 ^--^ 다왔다~~ 정복의 기쁨을 누리는 병욱 형제님 드디어 정복했다~ 천왕봉~!! 맘껏 바람을 맞으며.. (포즈가 제각각입니다..자연스러운 연출ㅋㅋ) 정상퍼레이드~ 현정,그레이스 목자님 영길,우석 목자님 스테디 목자님과 원익 형제님 금철 목자님, 형주 형제님 독보적인 자리에서(?) 찍은 기중 형제님 여기가 천왕봉이에용 ^.^ 윤진,해영 자매님~ 바람을 제대로 맞고 있음 현희 자매님 자두 먹다가.. 잽싸게 일어나서 사진 찍는.. 정상의 기쁨을 맛보아요~!! ^0^ 그러나.... 어느새 해가 져버렸다... 흑암가운데 통화하는 이 여유~ 흑암중에 한발 한발 내딛는 우린 용감했다. 나래자매님 앞에 마이크 아닙니다..지팡이에요 ㅋㅋ 병욱형제님, 아직도 통화중?? 친히 생명의 불빛이 되어준 금철목자님~~ 감사합니다 ^-^ 자랑스러운 꼴찌팀~~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저녁 8시 30분경.. 산이라 무척 어두웠습니다. 진땀 흘리고 먹는 밥이란~형제팀은 밝았지만 옆에 자매팀은 거의 초토화 분위기였죠.. ^^; 다음날 콘도에서 아침식사 전.. 우석 목자님, 두목같애요~ 콘도 앞에서 윤진자매님~ 제주도 같져? 아니...어제 그 죽을것 같았던 분들 맞아?? 언제 이렇게.. ㅡㅡ;; 달아 공원에서 에이브팀 형제자매님들~ 모여라~ 우리 두란노 요회 군단.. 이렇게 대식구가 간줄 몰랐습니다. ^^" 모이고 보니..심히 많더군요 아버지와 딸?? 푸근한 다윗요회입니다~ 이사람들은?? 소속을 파악하기 힘들져? 무소속 요회입니다~ ㅋㅋㅋ 원익 형제님~ 찔러라!! 하늘을.. 베스트 코믹포즈 상록수 요회~ 두분 잘 어울려요~~^0^ 베스트 커플(?) 호세 요회~ 훈련에 동참한 모든 자매들~~ 여기서도 빠지지 않는 장막팀~ 장막 형제자매 모이세요~ ^^ 세피아 효과입니다.. 노을진것 처럼 멋지져 ^--^ 전멋있는데..70년대 사진 같다는 ㅡㅡ;; 콘도 근처 해변가에서~ 물에 빠지기 전~~ 현희자매님과 미선 치열한 공놀이 한판 승부~ 에이브형제팀대 목자팀~!! 공주세요~!! 못죠~!! 금철목자님과 병욱형제님의 순간포착~ 결과는 에이브팀이 대패를 했다는군요~ 그러나...후문에 의하면 목자님들의 엄청난 반칙 플레이가 있었다는.. ㅡ..ㅡ 그럼..자매들은 무엇을 했는가..동동동~~ 저희는 배탔어요~~ ^^ 근데........이게 무슨 배져??? 배타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스티로폼의 배입니다. 재미있게 동동탔는데.. 우석목자님과 원익 형제님의 배 전폭시키기에 압도당하여 모두 빠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반칙플레이의 증거.. 에이브팀이 공만 잡았다 하면 저런 물세례를 날렸다 하죠..앞이 안보이도록. ㅋㅋ 에이브팀을 위하여~!! 전날의 혹독한 훈련과 물놀이로 즐겁게 마무리한 시간이었습니다~ 물에다 빠져서 뒷감당이 좀... 삽겹살을 구워먹은 자리.. 원없이 고기를 맛있게 구워먹었습니다~~ ^-^ 믿음의 사람, 성령의 열매~ 에이브팀을 위하여~!!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91 [사진01] 에이브 팀스피릿 훈련 사진입니다.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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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2005-08-30
2005 에이브 팀 스피릿 훈련을 허락하시고, 모든 분들의 마음에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리산을 오르며 누렸던 벅찬 감격으로, 한걸음 한걸음 예수님을 깊이 배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사진을 찍어주신 최해영 자매님, 박 스테디 목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F11 을 누르시면 보시기에 편합니다. 나 찍어봐~!! 또 찍어봐~!! 의외로 사진을 좋아하시는 현정 사모님~ 출발하기 전입니다. 표정이 밝고 가볍죠^^ 칼바위앞에서 자매들 가파르다...그래도 웃으며 힘차게 걷는 우리들 ^^ 헤헤.. 힘들어요~~ ^^ 발그레진 나래자매님~ 여기는 망바위~~경치가 아주 멋졌다죠~ 무서워서 못올라간것이..아쉬웠던 바위. 망바위에 올라가서, 우석목자님, 해영자매님, 기중 형제님~ 에이브팀 자매~~ ^^ 나래,해영 자매님 카메라 3개 총 검토 분석 결과..독사진 가장 많이 나온..ㅋㅋ 기중형제님 중턱에서 스마일~~ 단체사진 어디가 끝이야~!! 영길목자님 표정 압권입니다 ^0^ 이사람들이 이렇게 걷진 않았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 이렇게 됐어요~ 카메라의 힘이란... 힘들져? ^^ 최선을 다해 올라가는 해영, 현희 자매님 하.하.하~!! 이제 얼마 안남았대~~!! 가뿐하게 날라다니시던 원익형제님..모자에 빛 받았어요 ^^ 어떻게 내려가죠?? 잘 내려가~~~ ^^; 무슨 대화중이시진~~ 지리산 정복~!!! 금철목자님, 구름과 함께..한폭의 그림같군요 ㅋㅋㅋㅋ 한참 웃었습니다. 병욱 형제님 수건 잘어울려요 ^^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셨던..너무나 감사한 가이드 아저씨 ^--^ 여기가 어데요... 심오한 표정의 두 자매~ 넘버원~~ 지연,윤진,해영 자매님들~ 달아공원에서 감사,해영 자매님 여기는 차안~~ 각양각색의 포즈가 많았으나 심의를 거쳐 골랐습니다. ^^ 둘의 장난은 그치지 않는다.. 죽~~~ 물놀이를 한바탕 끝내고, 이제 모두 끝~~ 삼겹살 먹으로 가용~~ ^0^ 콘도 앞에 있는 산책로, 해영 자매님~ 재밌나요~ 나래자매님 자전거 맛뵈기~ 일찍 일어난 형제팀들 아침에 산책하고~ 밥도 하고,상추도 씻고, ㅎㅎ 미소가 훈훈합니다. 영길, 금철 목자님 ^^ 병욱 형제님, 영길 목자님 달아공원에서 에이브팀 형제자매 단체사진 핫..포즈를 잡기전에 찍은 모양이군요.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 기중 형제님~ 아까 요회 퍼레이드 할때 없더니..여깄었군요, 아기 독수리들~ 독수리요회는 우리가 지킨다~!! ^^ 자연과 하나가 되어~~ ^^ 아니..이렇게 포즈가 제각각일수가~~ 자매팀들 ^^ 유난히 푸근해(?)보이시는 영길목자님과 우석 목자님 ^--------^ 내년 팀스피릿 훈련 추천합니다~~!!
90 no image [음성] 세계선교보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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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05-08-19
89 no image [사진] 세계선교보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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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2005-08-17
88 no image [선교보고] 변다니엘 선교사님(관악3부) MSU 파송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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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2005-08-17
87 no image [사진] 유다윗 선교사님 독일 쾰른 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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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2005-08-17
86 no image [선교보고] 메리 최 세인트루이스 선교사님 선교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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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2005-08-07
85 no image [사진] 에이브팀 첫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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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2005-08-07
84 no image [사진] 파송- 유제임스 선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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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2005-08-05
83 no image [사진] 유 제임스 선교사님 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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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2005-07-31
82 no image [사진]여름수양회감사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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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2005-07-28
81 no image [사진03] 여름수양회 사진 Part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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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 2005-07-27
80 no image [사진02] 여름수양회 사진 Part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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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2005-07-25
79 no image [사진01] 여름수양회 사진 Part1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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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2005-07-25
78 no image [선교보고] 그레이스박 선교사님 잠비아 선교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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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2005-06-26
77 no image [선교보고] 홍 안나 & 그레이스 & 한나 볼티모어 선교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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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2005-06-19
76 [사진] 정앤드류 브루나이 선교사님 파송. 파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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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2005-06-19
75 no image [선교보고] 정 앤드류 브루나이 선교사님.
[레벨:20]서정수
189 2005-06-12
선교보고 음성파일 브루나이 선교보고 다운로드 (여기를 클릭) ===================================================================== 인생소감과 브루나이 선교보고(정앤드류)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요절 :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1. 슬프고 어둡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저는 1970년 강원도 영월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들은 큰 포목상을 하셨고 살림은 부유한 편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즈음에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계획하였던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형편이 어려워졌고 집을 두 채나 가지고 세를 주던 데서 세를 얻어 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아버지의 외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새어머니와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새어머니의 잔소리와 아버지의 야단이 무서웠지만 동생을 데리고 두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한 번은 새어머니께 야단을 맞고 너무 서러워 학교도 가지 않고 어머니를 찾아가서 엉엉 울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때 아버지 어머니의 이혼사실을 엿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별거상태였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다시 합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혼사실을 듣는 순간 눈 앞이 캄캄해지면서 이제 내 인생도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저의 가정 형편을 아무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행여 누가 알고 소문을 내어서 비웃음거리가 될 것 같은 두려움으로 항상 마음을 조렸습니다. 가정 환경조사서를 학교에 제출할때마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이 항상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한 번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가정형편과 저의 답답함을 이야기했다가 혹시 다른 사람에게 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후회를 많이 하였습니다. 새어머니와 살게 되면서 제 마음은 어머니처럼 의지가 될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저는 친구의 소개로 교회를 처음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곳이었지만 교회의 경건하면서도 밝고 따뜻함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와야 할 곳에 왔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처음 들었던 말씀이 아버지는 농부시고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시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마다 찍어서 불에 던지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인생을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편 저는 새어머니와 살게 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브로큰의 가정환경으로 구겨진 내 인생 펼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제 꿈은 이상형의 자매를 만나 스위트 홈을 이루고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은 이런 저의 꿈을 이뤄주리라 기대하였습니다. 대학에만 가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리라 생각하고 모든 소망을 대학진학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재수까지 하면서 도전하였지만 결국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후기로 인하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깨어진 가정, 깨어진 꿈을 생각하며 술에 취해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제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었고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였습니다. 대학에 실패했다는 생각으로 방황할 때 인사동에서 대순진리회 삯군 목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뭔가에 홀려서 입도를 하게 되었고 제 인생 깊은 수렁에 빠질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하나님은 UBF 목자님을 보내어주시고 성경공부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한 말씀 한 말씀이 갈급한 제 영혼에 꿀처럼 달았습니다. 저는 썸머스쿨에 다니며 댄싱을 하며 여름수양회를 준비하였습니다. 이런 저에게 예수님은 89년 천마산 여름수양회에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말씀을 통해서 저를 인격적으로 만나 주셨습니다. 저는 실패와 절망가운데 있던 베드로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저를 사랑하셨고 저를 만나주시기 위해 오래 동안 저를 인내하고 감당해 주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브로큰 가정으로 인한 저의 슬픔과 어둠을 다 씻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래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황하던 저에게 인생의 방향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사랑에 기초해서 예수님의 양 무리를 먹이는 삶을 일생 살고자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는 학생시절, 모교인 인하대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성대에 머물며 역사를 동역하고 섬겼습니다. 졸업 후에는 사도팀으로 풀타임 훈련을 받으며 역사를 섬겼습니다. 제 나이 스물에 예수님을 만나고 제 20대를 예수님을 배우며 살게 된 것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저는 위대한 인생을 살고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저의 가정배경과 능력 없는 제 자신을 볼 때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배우면서 진정 위대한 인생이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예수님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우며 구속역사에 쓰임 받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위대한 삶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 펴줄 곳은 인류대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저는 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배우면서 브로큰 가정 배경으로 인해 슬프고 운명적이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저를 사랑하사 저의 운명적인 것들을 하나님의 섭리로 바꾸시고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부르셔서 쓰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94년 7월 하나님은 육군장교로 군복무를 감당하게 하시고 저의 믿음 없음과 소심함을 훈련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어 업무를 소신 있게 감당하지 못하고 늘 두려움과 긴장가운데 있었습니다. 저는 진중에 있는 교회에 가서 홀로 하나님을 부르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핑계로 믿음의 중심을 지키지 못하고 선후배 장교들과 어울리며 허랑방탕하게 되었습니다. 97년 10월 제대를 앞두고 동기들은 열심히 수십 통의 회사 원서를 써서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회사 원서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격 미달인 죄인을 다시 풀타임 목자요 선교후보로 받아주셨습니다. 장교로 군복무하여 제대후 센타에서 빗자루 잡고 의자와 책상을 옮기는 일조차 어색해 하는 저를 하나님은 성탄연합예배를 위한 댄싱역사에 동참하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종로에서 안암골까지 자전거로 왕래하면서 열심히 댄싱을 준비했습니다. 댄싱을 지도하는 안암센타의 후배목자님들 통해서 자존심이 깨어지며 군대물과 장교물을 빼고 어찌하든지 다시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투쟁하였습니다. 그랬을때 하나님께서 댄싱 경배프로그램을 크게 축복해 주셨고 제 개인적으로도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떤 목자님은 발레 전공자가 추는 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2. 브루나이 선교보고 97년 말에 불어닥친 IMF로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몇몇 해외공관을 폐쇄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잠비아대사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잠비아 대사관에 근무하며 김느헤미야선교사님 가정의 동역자로 잠비아 역사를 섬기던 박안나 선교사는 본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박안나 선교사는 함께 근무하던 직원의 도움으로 브루나이 대사관에 자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곳으로 다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98년 7월 하나님은 자격없는 자를 아름답고 내면성있는 박안나 선교사와 브루나이 선교가정을 이루어주시고 한 번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브루나이로 박안나 선교사는 98년7월에 저는 99년 6월에 파송하여 주셨습니다. 브루나이는 600년 역사를 가진 인구 30만의 조그마한 회교 왕국입니다. 동남아시아 보르네오 섬의 북서쪽에 남중국해와 접해 있습니다. 인종은 말레이족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중국인 인도인 그리고 소수 원주민들이 있습니다. 국교는 회교이며 헌법에 의하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영국식민지로 있을 당시 설립되었던 미션스쿨과 중국인 교회가 안팎으로 핍박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선교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고 특히 무슬림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면 감옥에 가게 됩니다. 왕실과 정부는 이슬람 종교를 이용하여 기득권을 잃지 않고자 점점 더 종교 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주류판매가 금지되어 있고 유흥업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일한 4년제 대학으로 학생 수 3천명 정도의 브루나이 국립대가 있습니다. 저는 브루나이에 와서 이렇게 작은 회교나라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나를 잘 못 보내신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캠퍼스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제가 캠퍼스에 들어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저는 본국에서부터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입학지원서를 학교에 보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하였으므로 당연히 입학할 줄 알고 여유를 부리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알아본즉 저와 같은 전례가 없어서 받아줄 수 없다는 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내년에 다시 지원하겠다고 하자 학교 입학 담당 최고 책임자는 그래봤자 소용없는 짓이라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동역자의 눈물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희는 이를 통해 저희의 안일한 자세,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사람들이라고 은근히 무시하는 교만한 마음을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저희는 날마다 말씀을 붙들고 캠퍼스를 심방하여 하나님께서 캠퍼스 선교를 기뻐하시면 저를 꼭 캠퍼스에 들여보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때 다시 도전할 믿음이 생기고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브루나이는 해마다 회교금식월인 라마단이 끝나면 하리라야라는 명절을 치르는데 이때는 open house를 하여 누구든지 자기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줍니다. 저희는 이 명절기간에 홍삼차 선물박스를 들고 교육부 차관, 브루나이 국립대 부총장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여서 제가 브루나이 국립대에서 공부하고 싶으니 입학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드렸습니다. 정안나 선교사가 근무하는 한국대사관의 대사님도 이런 저의 사정을 알고 저를 돕고자 대학부총장에게 거듭 부탁을 하였습니다. 저는 필요한 서류를 가지고 부총장 사무실로 개인적으로 찾아가 만나게 되었고 저에게 “그래봤자 소용없다”고 말했던 그 입학담당관의 면전에서 입학하게 해 주라는 부총장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2000년 8월 여리고 성과 같았던 대학에 입성하게 되었고 브루나이 전통 모자를 쓰고 입학식을 치르며 브루나이 국립대 한국학생 1호가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freshman이 되어 보자기 같은 것을 뒤집어 쓴 사람들 틈에서 공부할 때 마치 꿈을 꾸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였고 한 학기가 지났을 때 저는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평균 10살이나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 공부하는 것이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였고 알아주지도 않는 대학에서 장래성도 없이 공부해서 헛수고나 하지 않을까 계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매학기가 끝나고 다시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반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만약 쉽게 대학에 들어 왔다면 아마 첫 학기가 끝나고 포기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을 체험하고 어렵게 들어온 대학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가 공부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믿음을 계속 붙들었고, 묵묵히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공부를 할 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으로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대로 했다면 박사도 마쳤을 나이였고 일반회사에서는 과장 정도의 직책을 가졌을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학부공부를 이제 다시 시작하는 것을 본 교민들은 동역자만 고생시키면서 팔자 좋게 무위도식하는 사람으로 저를 무시하였습니다. 제가 1학년 1학기를 마칠 무렵 첫째 아이가 태어났고 3학년을 시작할 때 둘째 아이가, 학업을 모두 마치고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작년에 셋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정안나 선교사는 대사관에 다니므로 제가 주로 아이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저는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을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씻기고 책 읽어주고 놀아줘야 했습니다. 아이들 돌보는 것이 그렇게 힘든 중노동인지 몰랐습니다. 아이들 없는 곳에서 한 이틀 잠이나 실컷 잤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집에서 육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아이 하나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여 쉽게 감정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자신을 생각할 때 깊이 절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내 30대가 흘러가는구나, 내 인생은 이제 없구나’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저를 훈련하시고 연단하시며 하나님의 쓰실 만한 사람으로 빚고 계심을 생각할 때 감사합니다. 속교만이 깊은 죄인을 사람들에게 무시 받아 마음을 낮추시고 섬기로 오신 예수님을 배우도록 하심을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통해 제 자신이 얼마나 감정과 혈기로 하나님 앞에 쓸모없는 병든 자인가 발견케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겪는 이 과정들 자체가 제가 예수님을 배우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제가 실제로 많은 시간 공부할 수 없었고 과제물도 시간에 쫓겨 제출할 때가 많았지만 3년 연속 1등 학비 보조금을 받게 하시며 졸업시에는 과내 유일한 크리스챤으로서 1등 으로 졸업하며 실버메달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또 우크라이나 사람으로서 함수해석학 분야에 많은 논문을 쓴 좋은 교수를 지도교수로 만나도록 하시고 좋은 논문주제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졸업후 지난 몇 개월간 대학원 과정 입학 레터를 학교측으로부터 기다리면서 다시 다른 길로 가고픈 생각을 하였습니다. 비즈니스를 해서 돈도 만져보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고 싶었습니다. 특히 한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하는 현지 여행사들로부터 사업제의를 받게 되었고 잘하면 쉽게 돈을 벌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동역자는 이런 저를 말리고 말리다가 경험삼아 해보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행사와 호텔, 골프장등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사업을 타진해 보았으나 눈에 보이는 결과는 없이 시간만 흘러갔고 결국 자기 이속만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예상치 않았던 반응에 사업이라는 것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제 본연의 것인 학문으로 마음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하나님은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여행박람회에 참석하고자 하는 한 여행사의 무료 항공권을 제의 받게 하시고 한국에 와서 마음을 다시 정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학문을 하는 것임을 믿고 흔들림이 없이 이 길을 끝까지 믿음으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는 매주 주일 예배이후 캠퍼스에 가서 캠퍼스 내에 있는 회교사원을 마주보며 캠퍼스에 기도를 심습니다. 몸을 활발히 움직여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언어를 정복하는데 더 집중을 해야 합니다. 회교학생들은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특히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더욱 마음을 닫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예수님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반박하는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음식도 매우 까다롭게 가리고 따지기 때문에 식사에 초대해도 잘 먹으려 하지를 않습니다. 가깝게 사귀고 교제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현재 친구로서 관계성을 맺고 있는 회교 학생들은 있지만 이들과 영적인 교제를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저희 스스로가 영적으로 깨어있고 살기 위해서 현지 중국인 학생들이라도 찾아서 1:1을 해야겠다는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정안나 선교사는 현재 남편과의 문제로 심령이 갈급한 한 한국인 애기 엄마를 매주 1:1공부로 돕고 있고 중국인인 애나자매님과 1:1관계성을 맺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브루나이 국립대를 졸업하고 중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와디 형제님, 현재 학생인 용인밍형제님과 1:1관계성을 맺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브루나이는 인구 30만의 경기도 절반 면적의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저희 마음을 넓혀 주시고 브루나이뿐만 아니라 장차 동말레이시아의 사라왁과 사바도 개척하고자 하는 비젼을 주셨습니다. 보르네오섬에 위치한 동말레이시아의 사라왁주와 사바주는 인구가 약 삼사백만 정도 되며 많은 대학들이 있습니다. 브루나이와 동일한 회교국이지만 어느 정도 기독교의 영향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선교하기에 보다 자유롭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주신 사라왁과 사바의 비젼을 생각할 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벅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안정된 직장과 생활을 브루나이 가운데 주실지라도 하나님의 때에 다시 개척자로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어느 곳이든지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일생 말레이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12 말레이 제자를 세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마디: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기도제목 1. 2008년까지 박사학위 받고 브루나이 국립대에 남을 수 있기를 2. 2008년까지 한 사람 제자 세워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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