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관악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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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5 no image 오류 특히 기억오류 수정에 관하여
[레벨:20]정아브라함
57 2023-09-30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진술을 들을 때 그 진술이 얼마나 진실한 것일까 생각하곤 합니다. 이에 관한 글이 있어 올려 드립니다. 오피니언 김영훈의 과학 산책 누구나 조금씩은 틀린다 중앙일보 입력 2023.09.28 00:12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2023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 『트러스트』는 대공황 시기 공매도로 거대한 부를 이룬 한 투자자와 그 아내에 관한 액자소설로 시작한다. 안타까운 아내의 죽음과 이어지는 우울한 삶으로 소설이 끝나나 싶은 순간, 새롭게 등장한 화자의 자서전이 다시 시작된다.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이야기인데, 동시대를 살아간 다른 이름의 투자자의 삶이 좀 더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이 자서전이 미완성으로 끝나고 바로 세 번째와 네 번째 화자의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데, 짐작하셨겠지만 이 네 이야기는 모두 같은 사람에 대한 것으로서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 작 영화 ‘라쇼몽(羅生門)’과 흡사한 구조다.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의 1959년 작 『설산비호』에서는 더 나아가 두 개의 연관된 사건에 관한 여러 사람의 조금씩 왜곡된 진술이 이어지고 이들을 다 듣고 나서야 진실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의 기억은 오염되고 왜곡되어 동일한 사건에 대해 다른 진술이 나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저장된 정보를 읽어내거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전달할 때도 매 순간 오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오랜 세월 안전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해 오류 수정(error correction) 방법들을 연구해왔다. 잘 알려진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진술이 10%의 오류를 포함할 수 있다면, 독립적인 세 명의 진술을 듣고 다수의 의견을 취할 경우 오류 가능성이 3% 이하로 떨어진다. 다섯명의 진술을 모을 수 있다면 오류 가능성을 1% 이하로 낮출 수 있다. 음악을 들을 때나 영상을 시청하고 물건을 살 때마다 오류 수정은 쉬지 않고 이루어진다. 오류 수정을 일상화해야 잘못된 판단을 피할 수 있다.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주장을 폭넓게 청취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으로 나아가는 동서고금의 지혜인 듯하다.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1234 [대학신문 펌글] 샤로수길을 깨끗케 하는 서울대생 [1]
[레벨:20]서진우
77 2023-09-21
전체메뉴 버튼 검색 버튼 instagram facebook youtube 기획 캠퍼스 사회 학술·책 문화 사진 영상 오피니언 로그인 메뉴닫기기획 캠퍼스 사회 학술·책 문화 사진 영상 오피니언 보도사진 PC버전 보기매체소개 기사제보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서울대학교 18동 3층 대학신문사전화 02-880-5214~5 팩스 02-872-9511, 9559 현재위치 홈 사회 취재 보도 샤로수길 뒤덮은 낯뜨거운 전단지… 학생들, 줍고 또 줍고기자명 김미리 취재부 차장 입력 2023.09.10 12:58 댓글 2 바로가기 복사하기 본문 글씨 줄이기 본문 글씨 키우기 지난 6일(수) 오후 7시, 샤로수길에 청소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든 사람들이 모였다. 최근 샤로수길을 뒤덮은 신종 유흥업소 ‘셔츠룸’ 전단지를 줍기 위해서다. 거리에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전단지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언제부터 샤로수길에 이런 불법 전단지가 쌓였는지는 불명확하지만, 학내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가 이뤄진 것은 일주일 전부터다. 이에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고 그 일환으로 전단 줍기 캠페인도 열린 것이다. ▲바닥에 잔뜩 쌓여 있는 불법 전단지들. 이날 참가자들이 모두 모인 저녁의 기온은 28도. 땀이 뻘뻘 나는 날씨였음에도 샤로수길을 깨끗이 하기 위해 10명이 자원했다. 이들 대부분은 서울대 학생이었지만 대학생 자녀를 둔 주부도 있었다. 그들이 발 벗고 나선 이유는 명확했다. 샤로수길이 서울대와 가까운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근처 중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등하교하는 길이기에 더욱 셔츠룸 전단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두 명씩 조를 짜서 골목을 누비며 전단지를 주웠다. 이들은 1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활동하며 “잘 줍는 요령도 터득했을 정도”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본래 예정된 활동 시간은 30분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추가로 30분 동안 전단지를 주운 뒤에야 해산할 수 있었다. 활동을 마치려 할 즈음 오토바이를 탄 배포자가 또 나타나 전단지를 뿌리고 지나가서다. 자녀의 추천으로 캠페인에 참여했다는 배수주 씨(주부·50)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오토바이 속도가 유난히 빠르다”라며 “골목이 좁고 사람이 많은 샤로수길 특성상 보행자들에게 위험할 것 같다”라고 걱정했다. 서권찬 씨(지구환경과학부·20)는 “뿌려진 전단지를 수거하고 나니 샤로수길이 원래 깨끗한 거리였다는 것이 새삼 체감된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른바 ‘샤로수길 전단 줍기 캠페인’을 처음 추진한 사람은 이민호 씨(경영학과·17)다. 그는 서울대 근처 맛집을 탐방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스누푸파’의 운영진이다. 이민호 씨는 “맛집을 찾으러 샤로수길을 자주 방문하는데, 셔츠룸 전단지로 더러워진 거리를 보며 안타까웠다”라며 캠페인 시작 계기를 밝혔다. 그는 지난 4일 샤로수길 전단 줍기 캠페인을 위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고, 1.5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스누푸파 계정을 활용해 이를 홍보했다. 덕분에 지난 5일 기준 약 100명가량이 해당 오픈채팅방에 들어왔다. 현재까지 총 2차례의 공식 캠페인이 진행됐는데, 이외에도 채팅방에서 뜻이 맞는 몇몇이 자율적으로 모여 따로 전단지를 줍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현재 학내에 셔츠룸 전단지 사태를 해결하자는 여론이 거세다. 해당 문제의 공론화는 주로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이뤄졌는데, 관련 게시글은 작년 6월부터 있었다. 신민섭 씨(산업공학과·17)는 “샤로수길에서 불법 전단지를 보는 게 너무 당연해져서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한두 달 내에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것이 낙성대 주민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주민센터 측은 “평일 오전 9시 샤로수길을 매일 청소하지만, 워낙 밤낮으로 전단지가 뿌려지기에 거리 경관이 좀처럼 나아지지를 않는다”라고 했다. 관악구청도 불법 전단지 단속에 나서고 있으나, 배포자의 오토바이 번호판이 가려져 있는 등의 이유로 사실상 단속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전단지의 전화번호도 대포폰이라 업체를 적발하기 쉽지 않다”라고 전했다. 학생들은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서명운동에까지 나섰다. 일명 ‘샤로수길 셔츠룸 사태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은 이정빈 씨(노어노문학과·22)로부터 시작됐다. 약 2주 전 전단지로 뒤덮인 샤로수길에 갔다가 큰 불쾌감을 느낀 이 씨는 에브리타임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호응이 크자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지난 7일 오전 9시 기준 서명운동에 참여한 학생은 482명이다. 이정빈 씨는 “서명운동이 완료되면 관악구청 등의 행정 부처에 송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민호 씨 역시 전단 줍기 캠페인을 각종 언론에 제보할 생각이다. 두 사람의 목표는 샤로수길 셔츠룸 사태의 화제성을 키워 더욱 적극적인 공권력의 대응을 촉구하는 것으로, 이와 관련해 총학생회에도 연대를 요청했다. 이에 총학생회 역시 관악구의원과 소통하며 셔츠룸 사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편 셔츠룸 전단지가 난립하는 곳은 샤로수길만이 아니다. 강남구, 서초구, 마포구 등지에서도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학생들은 국가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권성준 씨(아동가족학과·22)는 “개인이 모여 수거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더 큰 영향력이 있는 공적 조치가 시행됐으면 한다”라고 제언했다. 이민호 씨는 “해외에서는 배포자의 벌금을 높이거나 전단 청소 지원비를 많이 주는 등의 해결책을 시행하고 있다”라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황민준 씨(식물생산과학부·23)와 이민호 씨가 전단지를 줍고 있다. 사진: 박선영 기자 leena1208@snu.ac.kr 김미리 취재부 차장 다른기사 보기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이메일(으)로 기사보내기 다른 공유 찾기 기사스크랩하기 2개의 댓글회원로그인작성자 비밀번호댓글 내용입력 0 / 400등록댓글 정렬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BEST댓글 천수○ (비회원) 2023-09-10 15:39:15 IP (124.194.X.X)삭제멋져요!답글 작성 0 0 한준○ (ha**) 2023-09-10 15:25:39 IP (125.133.X.X)전단 줍기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런 불법 광고물에 눈살이 찌푸려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확실히 제도적 대응이 필요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답글 작성 0 0 인기기사1 너무도 사랑했던, 또 고마웠던 서울대학교 2 새 단장 하는 서울대 건물들 3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기품을 갖춰라 4 [사진] 서울대 어떻게 가나요? "뉴진스의 하입보이요" 5 뛰어난 인재들이여, 어려운 일에 도전하라! 최신뉴스스낵영상[책 보는 샤람들] 서울대 졸업생 대표가 추천하는 책은 무엇일까? 보도2023학년도 2차 교개협 열려 보도막차 끊겨도 계속된 하반기 정기 전학대회 보도흡연자·비흡연자 모두 울상인데… 흡연구역 지정에 미온적인 본부 보도학내 공유 공간, 이제는 예약하샤 하나로 예약하‘샤’요! 퀵메뉴로그인 매체소개 PC버전© 대학신문.
1233 no image 공황장애 치료
[레벨:20]정아브라함
45 2023-09-05
‘가슴이 콩닥콩닥’ 심장·폐질환 오인할 수 있는 ‘공황장애’ 증상과 치료법은? 송치훈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입력 2023-09-05 09:49업데이트 2023-09-05 10:01 읽기모드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직장인 A 씨는 최근 갑자기 극도의 불안이 찾아와 ‘마치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을 겪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이상이 없자 그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그 결과 불안장애의 일종인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공황장애는 갑자기 극도의 불안과 이로 인한 공포를 느끼는 질환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불안이 수분에서 수십 분간 지속되다가 가라앉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된다. 공황발작이 오면 심계항진, 발한, 떨림, 후들거림, 숨 가쁨, 답답함, 흉통, 메스꺼움, 어지러움, 멍함, 공포, 감각 이상 등 증상이 나타난다. 가슴이 뛰고 숨이 막히는 증상 등으로 심장질환이나 폐질환으로 오인할 수 있다. 공황장애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현철 교수 “공황장애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제대로 된 진단 없이 스스로 공황장애라고 진단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증상이 비슷한 다른 질환일 수도 있으므로,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병원에 가서 상담 후 적절한 진단 및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공황장애는 주로 임상적인 면담을 통해 진단한다. 증상이 심장질환이나 폐질환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처음에는 신체적인 질환으로 인한 증상은 아닌지 검사를 진행한다. 사진=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의학과 윤현철 교수 사진=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의학과 윤현철 교수 다행히 공황장애는 약물 치료 시 효과가 좋은 편이다. 약물치료는 보통 항우울제로 알려진 SSRI 등 약물이 효과가 좋은 편이지만,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편이어서 초반에는 항불안제 등 효과가 빠른 약물과 같이 사용하는 편이다. 그 밖에 증상이 나타났을 때 몸의 여러 근육을 긴장시켰다가 이완시키는 ‘이완요법’ 등을 사용할 수 있다. 공황장애 환자는 공황발작이 일어났던 상황을 과도하게 회피하게 되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때 치료를 유지하면서 담당 전문의와 상의 하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또, 공황장애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알려진 스트레스, 술, 과도한 카페인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약물치료로 공황장애가 호전되기 시작하면, 임의로 약물을 중단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경우 제대로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되므로 약물 복용에 대한 의사결정 시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 교수는 “공황장애는 스스로 ‘죽지 않는 병’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신체검사를 통해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계속해서 주지하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신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또, 공황발작이 시작되었을 때 신체 반응을 줄이기 위해 편안한 마음을 갖고 이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sch53@donga.com
1232 no image 성경과 인생
[레벨:20]정아브라함
50 2023-08-01
조선일보 전문가칼럼 [윤희영의 News English] 70년 전 그날 성경의 기적 윤희영 에디터 입력 2023.08.01. 03:00 10 일러스트=최정진 6·25전쟁 정전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던 지난 27일, 미국 앨라배마주(州) 헌츠빌의 방송국 WAAY-TV는 한 참전 용사 이야기를 특집으로 방송했다(feature a veteran’s story). 제목은 ‘한국에서의 성경 기적(A biblical miracle in Korea).’ 현재 헌츠빌에 살고 있는 허먼 힐름스(90)씨는 6·25전쟁에 참전했을 당시 스무살이었다. 계급은 육군 상병(army corporal), 분대장(squad leader)이었다. 정전을 한 달여 앞둔 1953년 6월 10일, 최전선에서 교전을 벌이던(fight on a front line) 중 죽을 고비를 맞았다(have a brush of death). 부상병을 도우려고 다가가는(approach to help a wounded soldier) 순간, 북한군의 기관총 세례가 쏟아졌다(rain down on him). 갑자기(all of a sudden) 엄청나게 뜨거운 부지깽이 두 개가 몸을 꿰뚫는 듯했다. 그 압력이 그를 뒤로 쓰러뜨려 언덕 아래쪽으로 나뒹굴었다(knock him down backwards down the hill).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질렀다(yell out involuntarily). “나 맞았어(I’m hit), 나 맞았어!” 누군가 뛰어 내려오는(come running down) 소리가 들렸다. 그는 지금도 기억한다. 4명의 한국인 카튜사(KATUSA·Korean Augmentation Troops to the United States Army) 병사들이었다. 같은 소대 소속인(belong to the same platoon) 그들은 그를 들것에 싣고(load him on a stretcher) 한달음에 약 1.6㎞ 후방으로 후송했다. 덕분에 이동외과병원으로 옮겨진(be transferred to a mobile surgical hospital) 그는 서울로 후송됐다가(be evacuated to Seoul) 일본 오사카 미군기지로 가게 됐다. 군의관(army surgeon)이 신부님 한 분과 함께 들어왔다. 신부님 손에는 성서가 들려 있었다. 그가 “제게도 똑 같은 것이 있는데요”라고 하자 신부님은 “이것이 당신 것입니다”라고 했다. 군의관이 그 성서를 그의 가슴에 갖다 대며(hold it to his chest) 말했다. “이 성서가 자네 목숨을 살렸네(save your life). 총알이 그대로 관통했으면 대동맥을 끊어서(cut the main artery) 살아남지 못했을 것일세. 정말 운이 좋았네(be very fortunate).” 독실한 가톨릭 신자(devout catholic)였던 힐름스 상병은 항상 오른쪽 가슴 주머니(right chest pocket)에 성경이나 다름없는 기도서 미사경본(經本·missal)을 넣고 다니며 매일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총알이 표지는 뚫었지만(penetrate the cover) 경본 중간에 멈춰선 것이었다. 그야말로 위기일발(a near miss), 기적이었다. 힐름스씨는 지금까지도(to this day) 그 기도서와 총알을 그 상태 그대로 간직하고(keep them intact) 있다. 총알을 빼내고(dislodge the bullet) 싶지 않다고 했다. “하느님께서 거기에 그렇게 넣어 놓으신 뜻이 있을 테니 훼손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70년째 매일 아침 그 성서와 총알을 앞에 두고 6·25전쟁 그날을 떠올리며 감사 기도를 올린다(offer a prayer of thanks). [영문 참고자료 사이트]
1231 no image 문학 읽지 않는다면 꿈은 어떻게 꾸는가
[레벨:20]정아브라함
57 2023-06-14
“문학 읽지 않는다면 꿈은 어떻게 꾸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3.06.14 00:02 지면보기 홍지유 기자 구독 인도 소년 ‘파이’의 모험을 그린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의 저자 얀 마텔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하기 위해 첫 내한했다. [뉴시스] 인도 소년 ‘파이’의 모험을 그린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의 저자 얀 마텔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하기 위해 첫 내한했다. [뉴시스] “인공지능 시대에도 문학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특히 국가를 이끄는 사람이나 기업 총수처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문학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배워야 합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파이 이야기』(영어 원제 라이프 오브 파이)의 저자 얀 마텔(60)은 13일 서울 중구 캐나다 대사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1년 캐나다에서 첫 출간된 『파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50개국에서 1200만부가 팔렸다. 인도 소년 ‘파이 파텔’과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태평양 표류기다. 캐나다 작가인 마텔은 2002년 『파이 이야기』가 부커상을 받고,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2013년 크게 흥행하면서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다. 14일 개막하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초청돼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그는 “인도 여행을 하며 힌두교를 접했다. 유일신 신앙인 기독교와 달리 수천, 수만의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힌두교에서 소설의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힌두교 신화에는 많은 동물이 등장한다. 어쩌면 인간은 신과 동물 사이에 있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파이 이야기』는 결국 종교와 동물을 바탕으로 신이라는 존재를 상상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마텔은 내년 초 새 장편 『선 오브 노바디(son of nobody)』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고대 파피루스를 연구하는한 젊은 고고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마텔은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고 영감을 받아 쓰게 된 책”이라며 “어리석음과 탐욕 때문에 전쟁에 휘말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현대인에게도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리아드』에서는 왕족이나 귀족만 발언하는데 내 책은 평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4일 도서전 개막식에 참석해 강연한다. 18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올해 도서전의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다. 인공지능(AI)을 주제로 하는 강연과 북 콘서트 등 170여 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마텔의 강연 주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시 인간 본질을 되돌아보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텔은 스티븐 하퍼 캐나다 전 총리와 관련된 일화로도 유명하다. 2007년 한 문화 행사에 참석했다가 당시 총리였던 하퍼가 무관심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총리에게 4년간 문학 작품을 추천하는 편지 101통을 보냈다고 한다. 이 편지는 『얀 마텔 101통의 문학 편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마텔은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픽션을 통해 상상력과 공감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캐나다의 지배계층인 중년 백인 남자들은 20대 이후로 문학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문학을 읽지 않는다면 비전과 꿈을 어디에서 얻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1230 no image 촬스 대관식
[레벨:20]정아브라함
37 2023-05-21
[김한수의 오마이갓] 찰스3세 대관식 모델은 솔로몬 대관식? 2시간 예식 중 3분간 가림막 치고 ‘기름 부음’ 의식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3.05.17. 00:00 1 6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열린 찰스 3세 대관식에서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왕관을 찰스 3세 국왕에서 씌워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6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열린 찰스 3세 대관식에서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왕관을 찰스 3세 국왕에서 씌워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김한수의 오마이갓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0904 “찰스 3세 대관식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국은 기독교가 쇠퇴한 정도를 넘어 거의 반(反)기독교 문화가 압도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대관식에서는 민수기, 시편, 잠언, 누가복음, 갈라디아서, 골로새서 등 성경 말씀이 계속 나오고 기도와 아멘이 이어지더군요. 왕정 폐지론이 끊이지 않는 영국에서 역설적으로 전세계에 기독교 문화를 중계한 것 같아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난 6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찰스 3세 대관식 중계를 시청한 원우현 장로님(고려대 명예교수)은 얼마 전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 장로님은 “그런 점이 신선해 1시간 넘는 대관식 중계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원 장로님 말씀처럼 이번 찰스 3세 대관식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구약과 신약 성경 말씀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구약시대 사울-다윗-솔로몬 시절의 대관식처럼 ‘기름 부음(성유 의식)’까지 실제로 행해진 예식이었습니다. 대관식은 특히 영국 성공회 예식으로 치러졌기에 개신교 예배보다는 천주교의 미사에 가깝게 절차 하나하나가 엄숙하고 장중하게 치러져 거의 2시간 동안 진행됐습니다. 찰스 3세 대관식 중 '성유 의식'. 3면을 가림판으로 막은 가운데 진행됐다. /BBC 화면 캡처 찰스 3세 대관식 중 '성유 의식'. 3면을 가림판으로 막은 가운데 진행됐다. /BBC 화면 캡처 대관식 순서가 보도되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기름 부음(성유 의식)’을 보고 싶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사무엘 선지자 때 처음 왕정(王政)이 시작되지요.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왕관을 씌워줍니다. 대관식 장면에 대한 묘사는 구약 사무엘서, 열왕기, 시편 등에 나오지요. 머리에 기름을 붓고, 왕관을 씌우고, 나팔을 불어 새 왕이 등극했음을 알리면 백성들은 만세를 부르지요. 새 왕은 칼은 차고 왕좌에 앉아 율법책(성경)과 홀(笏)을 들지요. 그 중 성경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도 등장하고, 나팔(팡파르)이나 칼 등은 왕의 대관식이라면 충분히 등장할 법한 물건이지만 성유 의식은 구약 시대에서부터 이어오는 특별한 상징적인 장면이기 때문에 성유 의식을 보고 싶었습니다. 찰스 3세 대관식에서 쓰인 성유를 담은 병. 이번 대관식에서 쓰인 기름은 예루살렘 올리브산에서 채취한 올리브 기름으로 동물성 향을 배제했다고 한다. /BBC 화면 캡처 찰스 3세 대관식에서 쓰인 성유를 담은 병. 이번 대관식에서 쓰인 기름은 예루살렘 올리브산에서 채취한 올리브 기름으로 동물성 향을 배제했다고 한다. /BBC 화면 캡처 성경에서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특별한 존재를 가리킵니다. ‘메시아’가 바로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고 그리스어로는 ‘크리스토스(그리스도)’지요.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는 이는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대관식에서는 왕의 머리에 실제로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지요. 열왕기엔 솔로몬 왕의 대관식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제사장 사독이 성막 가운데에서 기름 담은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뿔나팔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니라.” 지난 6일 열렸던 찰스 3세의 대관식도 가장 중요한 뼈대만 추리면 ‘기름을 붓고 나팔을 불고 만세를 외쳤다’가 되겠지요. 바로 그 ‘기름 붓는’ 장면을 실제로 볼 수 있을까 했던 기대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대관식 이전부터 ‘성유 의식’은 비공개로 진행할 것으로 예고됐습니다. 70년 전인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때도 비공개였다고 합니다. 저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떻게 비공개로 성유 의식을 할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간단하더군요. 위병들이 가림판 3장을 들고 나와 3면을 가려 청중과 TV카메라에 안 보이도록 하더군요. 가림판 안에서 켄터베리 대주교가 찰스 3세의 머리와 가슴, 손에 성유를 발라준 후에야 가림판은 철거됐습니다. 가림판 안으로 들어서기 전 찰스 3세는 망토와 화려한 예복을 벗고 가벼운 흰색 셔츠 차림이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비밀스럽고 내밀하게 기름 부음을 받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성유 의식은 약 3분여 진행되더군요. 이날 2시간에 걸친 예식 중에 찰스 3세의 모습이 대중의 시선에서 가려진 것은 이때뿐이었습니다. 찰스3세 대관식의 성유 의식 진행 과정. 가림판을 든 위병들이 입장하고(위), 찰스 3세와 켄터베리 대주교가 가림막 안에서 성유 의식을 진행하고(가운데), 가림판을 치우자 꿇어앉은 찰스3세가 보인다(아래). /BBC 화면 캡처 찰스3세 대관식의 성유 의식 진행 과정. 가림판을 든 위병들이 입장하고(위), 찰스 3세와 켄터베리 대주교가 가림막 안에서 성유 의식을 진행하고(가운데), 가림판을 치우자 꿇어앉은 찰스3세가 보인다(아래). /BBC 화면 캡처 영국 버밍엄대에서 신학박사를 받고 성공회대 총장을 지낸 대한성공회 양권석 신부님께 대관식과 기름 부음에 대해 여쭸습니다. 양 신부님은 ‘기름 부음’에 대해 “종교개혁 이후 교황의 권위에서 벗어난 유럽 각국은 ‘우리가 이스라엘이 되겠다’는 의식이 강했다”며 “대관식에서 성유 의식을 하는 것은 구약 시대에 성별(聖別·거룩하게 분별함)을 통해 이스라엘 왕을 세우듯이 새로운 왕을 세운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자기 나라가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 되겠다는 의미로 국민 결속과 통합의 모티브로 ‘기름 부음’ 의식을 행했다는 것이지요. 양 신부님은 또 ‘기름 부음’에 대해서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기름은 치료제, 정화제로 쓰였기 때문에 불결한 것을 없애고 성화(聖化)시킨다는 의미”라며 “기름 부음 전통은 현재 천주교, 성공회, 정교회에서 사제·주교 서품식과 견진성사 때에 행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름 부음’ 외에 대관식에서 눈에 띈 점은 성공회만의 예식이 아니라 다양한 기독교 교파와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였습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 총회장이 예식 초반에 성경을 왕에게 보여주며 “이 세상이 주는 것들 중 여기 신성한 지혜가 있습니다. 이것이 국왕의 법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생생한 오라클(신탁)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찰스 3세는 선서에서 자신이 ‘개신교 신자’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면서도 “모든 믿음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에서는 없었던 구절이라고 합니다. 양 신부님은 “찰스 3세는 어머니 생전에서부터 이처럼 신앙의 자유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왔으며, 이번 대관식에서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예식 중간 부분엔 수낵 영국 총리가 골로새서를 봉독했습니다. 인도계인 수낵 총리는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성경이 아닌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에 손을 얹고 선서한 힌두교도라고 합니다. 그밖에도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검을 든 여인 등 대관식에서 여성이 주요 역할을 맡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지요. 전체적으로 대관식을 종교와 사회 통합의 장으로 삼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찰스3세 대관식에서 골로새서를 봉독하는 수낵 영국 총리. /BBC화면 캡처 찰스3세 대관식에서 골로새서를 봉독하는 수낵 영국 총리. /BBC화면 캡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도착한 찰스 3세가 소년의 환영 인사에 대해 “섬김을 받지 않고 섬기겠다”고 한 대답은 마태복음 20장 28절의 예수님 말씀이지요. 이처럼 전체적으로 대관식의 키워드는 ‘섬김’과 ‘겸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요. 이런 노력 덕분인지 이번 대관식에 대해 격렬한 반대는 덜했던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종교에 무관심했던 영국인들조차 70년만에 이뤄진 이번 대관식을 통해 성공회 신앙, 의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양권석 신부님은 “영국인들은 성당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금새 모이곤 하는 등 성공회를 생활의 일부로 여기지만 미사에 참석하는 인원은 소수”라며 “대관식 이후 영국 언론에 ‘대관식을 집전한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누구인가’ 등의 기사가 실리는 것을 보면 관심이 생긴 것 같다”고 전해주었습니다. 그 관심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종교 의식(ritual)은 힘이 센 것 같습니다. 김한수의 오마이갓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0904 #김한수의 오마이갓 #뉴스레터
1229 no image 김형석 교수님 에세이
[레벨:20]정아브라함
21 2023-05-13
김형석의 100년 산책] 지금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그 꿈’ 셋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8·15 전날 꿈에 본 일본인 시신 - 큰 태양이 동쪽으로 저물기도 1950년 첫날에 본 공산군 행진 - 소련 스탈린의 초상화도 보여 1960년 4월 10일의 적막한 세상 - 붉은 피 흘리는 예수님 나타나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사람에 따라 생활 습관이 다르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꿈을 많이 꾸는 편인 것 같다. 그 가운데 각별하게 꾼 꿈이 셋 있다. 모두 나와 국가와 연결된 꿈이어서 평생 잊을 수 없다. 때때로 그 뜻을 되새겨 보곤 한다. 그 하나는 8·15광복 전날 밤과 새벽에 꾼 꿈이다. 내가 평양 서남쪽 진남포 바닷가에 갔는데 중학생 때부터 나를 키워 준 마우리 선교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넓은 바닷가였는데 커다란 창고 두 채만 남아 있었다. 선교사의 안내로 두 창고를 살펴보았다. 일본인들의 시신이 높은 창고 지붕에까지 닿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두 번째 창고에는 대학 동창이었던 일본 친구의 시신도 있었다. 바닷물 때문이었는지, 모든 시체가 부풀어 있었다. 다시 잠들었는데 이번에는 쟁반같이 큰 태양이 서쪽이 아니고 동쪽 산 위로 서서히 낙하해 지고 있었다. 나는 한없이 넓은 옥토 한 편에서 소에 연장을 메우고 밭을 갈고 있었다. ‘해는 저물고 저렇게 넓은 광야를 어떻게 다 갈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깨어났다. 25세 때부터 평생 지켜온 교육자 자리 그런 꿈이 계기가 되었을까. 나는 스물다섯 나이에 교육계에서 평생을 보내는 인생을 선택했다. 나이가 들수록 갈아야 할 밭이 넓어지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5년 뒤, 두 번째 꿈이다. 1950년 정월 초하룻날 밤이다. 내가 서울집 안에 잠들어 있었는데 가까운 문 앞에서 이상한 진동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놀라서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내 오른쪽 앞과 왼쪽 뒤로 중무장한 군인들이 행진하고 있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왼편 북쪽을 바라다보았다. 행진하는 군대 멀리 뒤에는 소련 스탈린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공산군이었다. 무장한 군인들은 한국 사람이기보다는 국적을 알 수 없는 군대 같았다. 그해 6월 25일이다. 전쟁 소식이 서울 시내를 뒤덮었다. 주말에 휴가를 나왔던 군인들은 부대로 돌아가고, 용산에 신축된 육군회관 낙성식에 초대를 받아 잔치에 참여하고 있던 지휘관들은 서둘러 전선으로 복귀하라는 지시가 내렸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근무하던 중앙학교 심형필 교장에게 제안했다. 이번 전투는 전쟁이고 서울이 점령당할지 모르니까 은행에 적금한 학교 재정을 되찾아 교직원에게 3개월치 봉급을 선불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심 교장은 내 뜻을 받아들여 재단이사장인 인촌 김성수의 승낙을 받았다. 그 덕택으로 우리 학교 교직원들은 3개월의 어려운 기간을 편히 넘길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계기로 서른 살 새내기 교사였던 내가 인촌의 뜻에 따라 젊은 교감이 되고 많은 가르침과 사랑을 받았다. 다시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부는 전국적인 부정선거 투표를 감행했다. 애국심을 갖고 투표에 임했던 사람들이 더 침묵할 수가 없었다. 마산의 고등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데모를 시작했다. 대구에서도 젊은 학생들이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는 항의 데모에 동참했다. 그때 나는 연세대에서 6년 차를 맞고 있었다. 가시관 쓴 예수 보고 깜짝 놀라 4월 10일 밤 꿈이었다. 내가 서울시청 앞에서 광화문 쪽을 혼자 걷고 있었다. 밤과 낮을 구별할 수 없고 역사의 시계는 멈춘 듯이 만물이 잠들어 있었다. 태양 볕도 달빛도 아닌 미명의 빛이 온 세상을 감싸고, 인적이 사라진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광화문까지 갔더니, 사거리 한가운데에 구형으로 된 땅이 꺼져 있었다. 내려다보았다. 십자가에서 방금 내려놓은 것 같은 예수의 시신이 머리 방향을 동쪽으로 안치되어 있었다. 오른쪽 옆구리 창으로 찔린 자국 자리에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가시관을 그대로 쓴 자세였다. 너무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 4월 11일에는 마산에서 두 번째 데모가 일어났다. 18일에는 고려대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데모를 끝내고 돌아가다가 자유당이 사주한 깡패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거리에 쓰러지기도 했다. 날이 밝으면서 서울을 선두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행진이 벌어졌다. 나는 연세대생들과 함께 신촌에서 시청 앞과 광화문 쪽으로 행진하는 데모대에 참가하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질 때까지 서울역에서 시청 앞, 광화문을 거쳐 경무대 앞까지 데모 군중으로 메워졌고 함성은 그치지 않았다. 그때부터 총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부상당한 학생들이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데모는 밤늦게까지 계속되다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을 기대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218명의 학생과 데모대원이 희생되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지도자라면 국민과 아픔 나눠야 나도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한때는 이승만에 대한 원한도 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마음은 더 아팠을 것이다. 조국을 위해 생애를 바쳤던 그의 마음이야 얼마나 아팠겠는가. 이승만 주변 범죄자들의 엄벌을 바라는 마음도 컸다. 그렇다고 민족적 아픔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아픈 마음을 같이 하는 국민에게 있다. 그 아픔을 모르는 지도자나 공직자를 배제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과 아픔을 함께하는 지도자들과 아픈 마음을 내일의 희망으로 바꾸는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중앙일보(2023.05.12)-
1228 no image 이기적 유전자 시대는 끝났다, 2022년 노블교수와 도킨수 교수 대담 [1]
[레벨:20]인은혜
68 2023-03-26
1227 사자왕국의 정권교체
[레벨:20]정아브라함
39 2023-03-24
사자왕국의 정권교체[서광원의 자연과 삶]〈69〉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입력 2023-03-23 03:00업데이트 2023-03-23 03:0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얼마 전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사자 왕국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이곳 왕국들 중 하나를 다스렸던 ‘라이언 킹’이자 ‘대표 모델’ 역할을 해왔던 스니그베가 세상을 떠났다. 밥 주니어로도 불린 이 사자는 사람을 꺼리지 않았던 데다 멋지게 생겨 카메라 세례를 수도 없이 받은 덕분에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장식했던 ‘스타’였다. 우리는 사자라고 하면 으레 멋진 모습을 기대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은 사자들이 많은데, 스니그베는 한눈에 봐도 멋진 갈기를 휘날리는 ‘라이언 킹’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이 초원의 제왕과 함께 왕좌를 지키던 동생 트리그베 역시 경쟁자들에 의해 세상을 달리했다. 뉴스는 이 형제의 7년 ‘통치’가 무너지면서 왕좌의 주인공이 바뀌었다고 간략하게 전했는데, 사실 이들의 ‘정권 교체’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세렝게티 보전관리인인 프레디 시미라의 말대로 경쟁자들의 “계획된 공격”에 의해 일정한 순서대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보통 결혼하면 여성들이 다른 집으로 가는 편이지만 사자들은 반대다. 수컷들이 자신이 태어난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으로 가 일가를 이룬다. 근친교배를 피하기 위해서인데, 대체로 태어난 지 2년쯤 지나면 독립한다. 이들을 방랑 사자라고 하는데, 이렇게 2∼4년 정도를 살아가다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됐다 싶으면 그동안 봐두었던 영역의 ‘킹’에게 도전한다. 도전전(戰)은 곧바로 시작되지 않는다. 혹시 상대가 ‘언터처블’일 수도 있기에 전초전을 통해 가능성을 탐색해야 한다. 한참 떨어진 곳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포효를 하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근처 초원이 흔들릴 정도로 으르렁거리면 상대도 이에 질세라 더 센 포효로 응답한다. ‘기다려라. 내가 갈 테니’ ‘자신 있으면 와 보든가. 큰코다치고 싶으면’ 이런 메시지들을 서로 교환한다. 조용한 밤이면 이런 소리가 몇 km나 퍼져 나갈 정도라, 포효전이 벌어지는 초원은 텅 비다시피 한다. 하긴 누가 이 살벌한 곳을 얼씬거리겠는가. 이런 기세 싸움을 통해 상대를 파악한 도전자는 괜찮겠다 싶으면 ‘맞짱 뜨기’에 나서는데, 이기면 왕좌에 오르지만 지면 다시 방랑자 신세가 되어야 하기에 대결은 격해질 수밖에 없다. 왕국을 사수해야 하는 쪽 역시 지면 끝이니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긴다고 해도 심각한 부상을 당할 수도 있기에 결과는 언제나 예측 불허이고. 7년이나 왕국을 다스렸던 스니그베는 대결이 벌어지자 별다른 저항 없이 운명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통치 기간이 보통 4, 5년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장수한 건데, 결말을 예감했던 모양이다. 이런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작은 관목 숲 같은 곳으로 들어가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사자들도 있다. 어쨌든 또 한 ‘킹’의 시대가 갔다.
1226 no image 재미있는 글
[레벨:20]정아브라함
28 2023-03-01
공공장소와 사적인 일에 관한 예리한 분석입니다. [이경훈의 도시건축 만보] 양치의 공간학 입력 : 2023-03-01 04:05 트위터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구글로 퍼가기 인쇄하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공항 입국장은 떠날 때 못지않은 설렘이 있다. 열흘 남짓 해외여행이었지만 고국은 다시 새롭고 반갑다. 맞이하는 관리들의 표정도 예전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친절하다. 아마도 공간이 이십 년 전 김포나 8시간 전에 떠나온 칙칙한 외국 공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고 화사하기 때문일 거로 생각했다. 역시 공간은 사람의 감정도 행동도 규정한다. 우아한 공간은 우아한 행태와 태도를 만든다. 버스를 타기 전 미리 들른 화장실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제복 입은 공항 직원 서넛이 양치하고 있었다. 요란하게 거품을 튀며 헛구역질 소리까지 곁들인 장면은 한국 보건교육의 승리라 할 만했다. 하지만 밤샘 비행 후 몽롱한 머릿속에서는 오랜 의문이 떠올랐다. 양치는 공적인 행위인가? 용변처럼 칸막이 뒤에서 사적으로 행해야 하는 일인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입을 헹구거나 여성이 화장을 고치는 정도로 조심한다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인가? 건축은 사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사적인 공간은 상대적이며 유동적이다.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과정은 나의 나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외국에 비해 사적이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들어서며 다시 나의 도시로 들어오게 되면 상대적으로 사적이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며 한 겹 더 사적인 공간을 만난다. 아파트 현관, 엘리베이터를 거쳐 집안에 들어서서 점점 더 사적인 영역으로 진입한다. 거실 또한 다른 가족들과 공유하는 상대적으로 공적인 공간이므로 완벽한 프라이버시는 방에 들어설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를 건축학에서는 공간의 위계라고 말한다. 즉, 건축은 점진적으로 사적인 공간을 향하며 급격한 변화는 공간의 배열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 도시학자 줄리안 바이나트 교수는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의 차이는 소유주가 공공인가 사적인가 구별이 아니며, 개인의 권리와 의무 관계가 달라지는 공간적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각각 단계별로 개인의 복장, 언어, 행동양식이 달라진다. 물론 사회적·문화적 배경에 따라 그 기준은 달라지기도 한다. 그 기준에서 벗어날 때 혼란스럽거나 무례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공공장소에서 휴대전화의 사용 같은 것이다. 공공공간에서 정적을 깨며 사적인 대화를 큰소리로 나누는 것은 암묵적으로 합의된 권리와 의무에 균열을 가져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공간적으로는 찜질방이 대표적이다. 분명 대중이 함께 이용하는 공공장소지만 안방에서나 일어날 법한 매우 사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코를 골며 잠이 들거나 편한 자세로 TV를 보기도 한다. 심지어는 지나친 애정행각을 삼가 달라는 호소문이 붙어 있을 정도다. 이를 외신들이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다. 찜질방에 가는 것은 쇼핑몰에서 목욕하는 것과 비교할 정도로 공·사 공간의 혼란이 있다는 것이다. 찜질방의 쇠퇴는 팬데믹 영향이 크겠지만 공간적 자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특유의 ‘방’ 문화도 공적·사적인 공간에 대한 위계를 전복하기도 한다. 식당의 방이 대표적이다. 공공장소라 할 수 있는 식당에서 급격하게 사적인 공간 ‘방’으로 전환하는 장치다. 도시 생활은 사적인 일들을 공공장소에서 하게 되는 변화를 의미한다. 거실에서 홀로 시청하던 운동 경기를 익명의 이웃과 같이 보는 스포츠 바가 좋은 예다. 멀쩡한 집을 떠나 카페에서 공부하는 이들도 있다. 각 공간의 공공성 또는 사적인 정도에 따라 행동을 달리해야 하는 도시 특유의 행동양식, 즉 매너가 탄생한다. 그리고 유명한 영화 대사처럼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 곧 개강이다. 학과 특성상 밤샘 작업이 다반사여서 출근길 복도에서는 양치하며 걷다가 어설프게 인사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마땅치 않다. 고작 양치 하나 가지고 공간의 위계나 프라이버시, 매너를 따지는 꼰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얼버무리며 격려해야 한다. “그래! 밤새 수고했다.”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우리 장막 형제자매님들은 사적인 공간을 거의 포기하는 위대한 결단을 한 분들입니다.
1225 no image [대학신문] “낙태는 인간의 권리다”를 읽고
[레벨:20]서진우
43 2022-11-26
저는 학부 때부터 대학신문을 즐겨 읽었습니다. 기성신문과 달리 싸우는 이야기가 적고 탐구정신에 기초한 기사가 많습니다. 어떤 기사는 이 기사를 쓴 학생과 캠퍼스에서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도 캠퍼스에 오르면 대학신문을 챙겨 들고 내려오는 편입니다. 최근 기사를 읽고 메일로 의견을 보냈는데 독자의견으로 게재되어 공유합니다. 제가 읽은 기사(취재수첩, 본 기사):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198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220 독자의견 링크: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398 『대학신문』2056호에는 보수적인 돕스 대 잭슨 판결과 이에 대한 사람들의 용기 있는 반발, 그들이 겪는 어려움, 낙태를 금지하는 텍사스 주의 사람들이 낙태를 허용하는 캘리포니아주로 몰리면서 나타나는 문제 상황들이 생생하게 소개됐다. 또 판결의 근거가 된 헌법 해석의 원칙인 원의주의와 그에 대한 비판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대학신문』의 주장은 “낙태를 허용해야 하며, 그것이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인 것 같다. 하지만 너무 단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인간 존중은 없는 것일까? 가장 기본적으로는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는 입장이 있다. 0~13주는 생물학적으로 아직 인간으로 보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인간인지 여부를 생물학적 지식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낙태한 여성의 트라우마나 죄책감 문제도 생각해 볼 수있다. 사회가 여성의 낙태권을 존중한다고 해도 여전히 어떤 개인은 낙태 후 수치심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이 경우 낙태를 하지 않고도 개인으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입양과 같은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 여성에게 더 좋은 길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임신과 낙태에 대한 부담감(비용)은 성관계를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낙태를 권리로 격상시키면 상대적으로 이 비용이 낮아질 것이다. 이것이 사회에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기득권과 폭력에 대한 저항과 해방 정신은 『대학신문』이 갖고 있는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 진영의 목소리도 듣고 진정성을 발견해 실었더라면, 기사에 긴장이 생기고 그로부터 더 깊은 탐구로의 동력이 생겼으리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낙태를 인간의 권리로 선언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낙태 금지법이 낙태 문제를 임신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낙태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까지를 포함해 사회의 책임을 더 강조하는 방향이 열린 결론이 될 수 있었다. “낙태를 정말로 금지할 수 있으려면?”, 이런 제목의 접근은 어땠을까?
1224 no image 칠선계곡 파일 [1]
[레벨:20]정아브라함
73 2022-08-01
1223 no image 독서의 중요성
[레벨:20]정아브라함
60 2022-05-13
다음글은 독서의 중요성에 관한 김형석 교수님의 글입니다. 김형석의 100년 산책 "과장밖에 못할 신입사원뿐" 70년대 삼성맨들이 준 충격 중앙일보 입력 2022.05.13 00:36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1970년대는 한국경제 도약의 시기였다. 기업들이 연수원을 갖고 사원교육에 열중했다. 기업체의 중견직원들과 대졸 신입사원을 위한 교육이 그렇게 왕성한 때는 없을 정도였다. 나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강의에 도움을 주었다. 한 번은 삼성그룹 대졸 신입사원을 위한 시간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나에게 고전의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되는 책 10권을 읽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없었다. 5권도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독서를 하지 않으면 과장까지는 시키는 일만 하면 되니까 괜찮겠지만, 그 이상의 직책을 맡게 되면 자기빈곤을 느끼게 될 텐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걱정했다. 기업체 임직원 특강에 종종 나가 “지도자 되려면 인문학 소양 필수” 미국 대학에선 독서가 필수과제 책 읽지 않고 선진국 될 수 없어 200년 뒤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한글문화 활짝 핀 문화강국 소망 그런데 10년 전부터는 삼성그룹에서 인문학 출신의 졸업생을 우선적으로 뽑기 시작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업과 사회를 위한 정신적 가치가 기술적 기능보다 더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업체 중진들을 위한 시간에 강의를 하는 때가 있다. 지도자의 기본 조건은 사회적 가치관과 윤리관이며 가치판단과 역사의식이 필요하다는 공감 때문이다. 정치는 물론 사회 모든 분야에서 공통된 가치관과 세계관이 인정받아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인문학적 사유와 휴머니즘의 소양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각 분야 지도자의 독서는 필수조건이다. 좀 더 높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그렇다. 만일 세계적으로 문화적 태양과 같은 정신계의 빛과 따뜻함이 없다면 인류는 얼마나 어두운 세상에 처했겠는가. 그런데 역사를 더듬어 보면 문화의 정신적 태양 책임을 담당한 국가는 다섯 나라뿐이다. 역사적 순서로는 영국, 프랑스, 독일이 그 위치를 차지했다. 그 다음은 러시아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공산국가가 되면서 사상이 통제되고, 인문학이 사라지면서 그 후계국이 되지 못하고 미국이 대신하게 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문화국의 대열에 참여했다. 지금 세계는 이 다섯 나라의 문화 혜택으로 정신적 태양의 혜택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사상의 자유 없는 중국의 한계 그런데 이 다섯 나라의 특성이 무엇이었는가. 국민의 절대 다수가 100년 이상 독서한 나라들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은 영국보다 선진국이었다. 그러나 독서를 못했기 때문에 문화적 후진국이 되었다. 중남미와 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이 독서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정신적 후진국으로 머물러 있다. 인도, 중동국가들은 오랜 세월 문화국으로 성장하기 힘들 것 같다. 그들의 종교적 폐쇄성 때문에 사상적 자유와 인문학적 자질이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와 가까운 중국도 그렇다. 옛날에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사상적 지도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을 밟지 못했고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 사상의 자유와 인문학이 버림받고 있다. 나도 중국의 4대 대학 부근의 서점에 들러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대학생들이 읽을 철학, 역사, 문학 중심의 서적이 보이지 않았다. 중국사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대만이나 일본으로 가야 하는 현실로 바뀌었다. 우리가 그리스 사상과 철학을 위해서는 독일이나 영국으로 유학 가는 현상과 비슷해졌다. 독서의 불모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되었는가. 나와 비슷한 세대의 젊은이들이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독서의 습관을 받아 들였다. 인문학 분야는 대학 강의보다 독서가 필수적이다. 독서를 배제한 인문학은 동토에 씨를 뿌리는 것 같이 무의미하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지역을 유학한 학자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독서를 의무화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대학에 입학한 후 일 년 반 정도는 인문학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독서는 필수과제로 되어 있다. 인간다운 삶과 지도자의 기본자질을 위해서다. 한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3~4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모든 선진국가의 지도자들은 그런 독서의 정신적 기반 위에 전공 분야의 학문을 쌓아가는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을 밟지 못하고 전공기술 학과에 진입하기 때문에 휴머니즘적 전통과 사회생활의 기본가치를 갖추기 힘들어 졌다. 그런 기초적인 과제를 충족시켜 주는 방법이 바로 독서다. 철학, 역사, 문학 등의 기본소양을 갖추지 못한 지도자는 스스로의 인간적 결함을 극복하지 못한다. 대학의 인문학적 성장도 그렇다. 고전에 관한 독서가 없이 정신적 지도력을 함양한다는 것은 지성인의 본분을 모르는 처사다. 지금이라도 늦었다고 생각지 말고 모든 지도층 인사들과 대학에서 독서를 생활화한다면 그것이 무엇보다 앞서는 애국의 길이다. 고전 공부 없이 전공만 배워서야 더 중대한 국가 민족적 의무도 뒤따른다. 150년 쯤 후에 동양에서는 어떤 문화국이 세계를 대표하게 되겠는가. 일본과 중국은 가능해질 것이다. 중국은 세계적 인구와 고대문화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어느 국가가 문화적 혜택을 국제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까. 한글문화가 제3의 위상을 차지하게 될지가 문제다. 문자로 표현되지 않는 예술분야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한글문화는 대학의 인문학 발전과 국민의 독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글문화의 세계화는 절체절명의 국가적 과제다. 외국의 책들이 우리말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우리 저서들이 외국어로 번역되어 읽히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노벨문학상 그 자체이기보다 그런 수준의 한글문화 육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200년 쯤 후에는 문화국이 세계의 중책과 주도 세력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런 안목에서 본다면 많은 대학 인구를 차지하는 한국대학은 물론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독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 민족 국가의 생명력과 희망을 우리들 스스로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책 읽는 국민이 세계를 정신적으로 이끌어 가게 된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1222 애플 로고의 연원
[레벨:20]정아브라함
48 2022-05-06
다음 글을 읽으시면 애풀사의 한입 베어진 사과 로고의 연원을 알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26) 적을 꿰뚫어보고 인류를 구한 천재 과학자…사후 70년 지나서야 세상은 그를 알아봤다 입력 : 2022.05.05 21:52 수정 : 2022.05.06 10:16 공유하기 북마크 글자크기 변경 인쇄하기 블레츨리 파크의 추억(2) - 튜링의 꿈과 좌절,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무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독일군의 암호 ‘에니그마’ 해독해 2차 대전 종식 앞당긴 앨런 튜링 ‘튜링 머신·튜링 테스트’ 등 컴퓨터 원형·인공지능 개념도 태동시켜 우리가 흔히 ‘영국’으로 부르는 유럽 섬나라의 정식 명칭은 ‘대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영국을 지도에서 찾아보면 두 개의 큰 섬이 나오는데 동쪽의 큰 섬인 대브리튼(Great Britain)의 잉글랜드(England)·스코틀랜드(Scotland)·웨일스(Wales)와 서쪽의 작은 섬인 아일랜드 북동에 자리한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가 연합하여 만든 왕국이다. ‘영국’이라는 말은 그 가운데 인구수와 영향력이 제일 큰 잉글랜드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연합왕국 전체를 가리키기 때문에 네 개 구성국이 따로 출전하는 국제 축구 경기에서 ‘잉글랜드’를 ‘영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케임브리지에서 출발해 블레츨리 파크로 보너빌을 타고 가는 나의 눈앞에는 역시 낮은 구릉이 주욱 이어진 전형적인 잉글랜드 지형이 펼쳐져 있었지만, ‘50년 만의 폭서’라고 하는 날씨에 푸른 잔디는 온데간데없이 노랗게 탄 풀로 덮여 흡사 미국 서부 뉴멕시코의 사막을 보는 듯한 묘한 풍경이었다. 정말 더위와 가뭄이 얼마나 심했는지, 물이 말라버린 저수지 바닥에서 약 1600년 전 지어진 고대 로마제국의 마을들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흔한 저수지의 물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세계사를 뒤흔들었던 대제국의 흔적이 밭밑에 널려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뜨겁고 메마른 바람을 맞으며 마침내 도착한 블레츨리 파크.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암호를 풀기 위해 만들어진 연구시설로서 수도 런던과 영국의 최고 대학인 케임브리지·옥스퍼드를 잇는 삼각형의 가운데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는 여러 과학자·수학자 외에도 퍼즐을 잘 푸는 이들을 찾는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온 사람들이 모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봉사하였고, 지금은 그 역사를 기념하는 박물관으로서 우리 같은 과학과 역사의 애호가들을 맞아준다. 이곳의 업적 가운데 제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바로 ‘수수께끼’라는 뜻을 가진 독일 해군의 에니그마(Enigma) 기계를 해독한 일이었다. 잠수함이나 야전에서 갖고 다니며 쓸 수 있는 소형 타자기처럼 생긴 에니그마는 여러 개의 톱니바퀴와 배선반 연결 조합을 통해 한 글자를 다른 글자로 변환해주는데, 이 톱니바퀴와 배선반의 조합이 매일 OTP(One-Time Pad)에 기반해 바뀌기 때문에(OTP를 모르겠으면 지난달 퓨처라마 필독!) 이 암호가 풀리기 전까지 독일 해군이 대서양에서 연합군 상선들을 쉬지 않고 격침하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에니그마 실물, 앨런 튜링의 책상, 블레츨리 파크 풍경(왼쪽 사진부터 시계 방향). 박주용 제공 에니그마를 해독한 사람들 가운데 제일 유명한 것이 앨런 튜링(Alan Turing·1912~1954)이다. 2014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의 주인공 인물이기도 한 튜링의 이 업적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영국 정부에서 발간한 공식 정보전 역사서에서 2차 대전 종식이 2년 정도 빨라졌으며 약 1400만명이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할 정도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튜링은 이것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과학 업적을 몇 가지 더 남겼다. 그 가운데 제일 대표적으로는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 기초가 되어준 ‘튜링 머신(Turing machine)’이라는 일종의 자동 계산기계가 있고,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Can machines think)?”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사람과 같은 지능을 지닌 ‘인공지능’ 기계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킨 일이 있다. 특히 그가 제안한 ‘튜링 테스트’라는 개념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인공지능의 본질과 성능을 논의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유용한 개념이다. 튜링 테스트는 다음과 같은 ‘따라하기 놀이(imitation game)’의 개념에 기반해 있다. 이 놀이에서는 A, B, C 세 명의 사람이 각방에 들어앉아 있다. 남자인 A와 여자인 B는 C와 서로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 C는 이러한 소통을 통해 A와 B의 성별을 맞혀야 하는데, A와 B의 목적은 C로 하여금 자기가 여자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즉 “A가 여자 위장 연기를 매우 잘하여 C로 하여금 진짜 여자인 B와 구별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C의 입장에서는 A를 진짜 여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튜링은 ‘기계가 인간과 같다’는 표현의 의미를 추론해내게 된다. 즉 이 놀이에서 A를 인공지능으로, B를 사람으로 설정한 뒤 C로 하여금 A를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기계 A는 사람과 같은 존재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 속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오리처럼 생겼고, 오리처럼 헤엄치고, 오리처럼 꽥꽥거리면 오리일 거야(If it looks like a duck, swims like a duck, and quacks like a duck, then it probably is a duck)”라는 18세기 속담을 알 수도 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이걸 ‘오리 테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튜링 테스트는 그보다 역사가 조금 더 긴 오리 테스트의 첨단기술 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파시스트에 대적한 연합군의 2차 대전 승리, 현대 컴퓨터의 원형 발명, 그리고 인공지능의 태동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이름을 걸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튜링이지만 블레츨리 파크에서 그가 일하던 책상은 여느 사무실과 다를 바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겉보기에 저렇게도 평범한 사람이 저런 큰일들을 여러 가지 해냈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하게까지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업적 기밀로 묻히고 동성애 혐의로 화학적 거세 당해…연구직도 박탈 우울증에 독사과 먹고 목숨 끊어…70년이 지나서야 ‘사면’ 인간은 왜 언어를 두고도 눈과 귀를 닫는지…비트겐슈타인은 알까 그러나 인류에 거대한 선물들을 안겨준 튜링은 살아생전에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는 못했다. 독일군에게 이기고 돌아온 참전용사들이 그들을 영웅이라고 불러주는 이웃들에게 둘러싸여 밤을 새워(아마도) 맥주와 에일을 파인트로 들이마시며 쉼 없이 무용담을 풀어내고 있었을 시간에 존재가 국가기밀로 분류된 블레츨리 파크의 영웅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1000만명이 넘는 목숨을 살려냈으면서도 “누구는 죽어갔는데 너는 운 좋게 본토에 남아서 편하게 전쟁을 피한 것이냐”는 비아냥을 듣는다고 해도 아무 말을 못하는 겁쟁이로 치부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가 전쟁의 포화에 휩쓸려 있었을 몇 년 뒤인 1952년에 튜링은 집에 든 강도를 신고했다가 당시 법으로 금지되었던 동성연인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감옥에 가지 않는 조건으로 암호학과 계산학 연구를 금지당하고 강제로 약물을 투여받는 수모를 당하게 된 튜링을 돕기 위해 블레츨리 파크의 동료들은 그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킨 영웅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지만 또다시 좌절당하였고, 자신이 탄생시킨 인공지능의 꿈을 더 이상 좇을 수 없었던 튜링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1954년 마침내 청산가리에 젖은 사과를 베어먹은 뒤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아담과 하와가 먹은 선악과가 전통적으로 사과로 묘사되고, 뉴턴(튜링의 대학 동문)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에서 보듯이 사과는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지혜와 각성을 상징하는 영험한 과일이다. 이것을 몰랐을 리 없는 튜링이 마지막 행위로 사과를 베어먹었다는 것은 지식의 탐구를 못하게 강제한 세상을 향한 과학자의 마지막 항의였다고 생각된다. 다행히 지금 우리는 최고의 컴퓨터 과학자들에게 ‘튜링상’을 수여하고, 한 입 베어먹은 사과 로고가 새겨진 컴퓨터와 일상의 매 순간을 함께하고 있고, 잉글랜드 중앙은행(Bank of England)에서 발행하는 50파운드 지폐에 튜링의 얼굴이 그려진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조금씩은 정의를 찾았다고 할까. 그러나 그가 사회에 해를 끼친 ‘범죄자’ 꼬리를 영국 여왕의 사면을 통해 뗄 수 있었던 것은 불과 2013년의 일이었다. 튜링은 사람들의 경멸 속에 죽음으로 몰린 뒤 70년 동안, 또 튜링에게 감명받은 애플사가 Apple Ⅱ+라는 컴퓨터로 개인 컴퓨터 시대를 열어젖힌 1979년 이후로도 34년 동안 차가운 사회의 눈에는 한낱 전과자였을 뿐이다. 작금의 어떤 나라 권력자들이 인류와 문명 진보를 위해 튜링이 한 일의 1000분의 1, 1만분의 1도 하지 못한 주제에 자신들 죄는 아예 묻지도 못하게 하는 데 골몰해 있는 세태를 보고 있자면 튜링과 같은 천재성도 권력을 갖지 못한 죄를 어찌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말로만 들어오던 블레츨리 파크를 방문하여 승리의 역사의 흔적을 직접 목격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면 응당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겠지만, 튜링의 인생은 세상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합당한지 알지 못하는 그릇된 사람들의 존재를 곱씹도록 하였고 나는 끝내 입속에서 쓴맛을 씻어버리지 못하였다. 에니그마의 해독으로 적군의 마음속을 꿰뚫어볼 수 있게 해주고, 사람의 형상을 가진 기계를 만들어내는 신 같은 능력의 문턱까지 데려다 놓아주기까지 했으면서도 마음이 닫히고 생각이 짧은 국민들의 눈과 마음에 그의 진정한 가치는 드러나지 못하였다. 사실 마음과 마음을 잇는 소통의 문제는 사회적 동물인 인류가 존재하던 내내 스스로에게, 또 서로에게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다. 특히 다른 동물이 갖고 있지 않은 아주 정교한 소통의 도구인 ‘언어’를 갖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쉬이 마음의 벽을 거두어내지 못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언어. 사람 사이에 깊은 소통을 가능하게도 하지만 때로는 목숨까지 빼앗는 치명적 오해를 낳기도 하고, 두고두고 가슴에 간직해야 할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눈와 귀를 영원히 닫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추한 오물로 떠돌며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는 것. 이러한 ‘언어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자문하다가 길을 돌려 케임브리지 서쪽의 ‘어센션 교구 묘지(Ascension Parish Burial Ground)’로 향했다. 그곳엔 언어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1889~1951)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무덤 안에 누워 있는 그에게 대답을 얻으려고 한 무모한 시도의 결과에 대해서는 훗날 다시 이야기해보고 싶다. 065 119 097 105 116 032 116 104 101 032 100 101 097 102 101 110 105 110 103 032 115 105 108 101 110 099 101 044 032 109 121 032 102 114 105 101 110 100 115 046(Await the deafening silence, my friends·친구들, 귀가 터져나갈 듯한 침묵을 두고보시게). ▶박주용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트워크와 복잡계 물리학에 기반한 융합 데이터 과학 전문가로서 노트르담대학교, 하버드 의과대학 데이너-파버 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예술과 과학의 창의성을 연구하고 있으며, AI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카이스트 포스트AI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고안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시간이 생긴다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1221 미적분의 역할 [2]
[레벨:20]정아브라함
45 2022-04-22
오래전 사업을 하여 돈을 번 어떤 고등학교 친구가 돈 버는데는 미적분이 필요없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만 알면 된다고 하였던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동의하였으나 항상 미적분은 언제 써먹나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문과였고 당시 문과수학은 미적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어느 신문기사에 미적분이 언제 필요한가에 대하여 기사를 읽고 저와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까 하여 이 기사를 올립니다. 참고 하세요 미적분의 쓸모는 어디까지일까?[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2022-04-22 03:00업데이트 2022-04-22 03:17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누구나 “이거다!” 하는 때가 있다. 소설가는 한 인간의 서사를 들을 때, 시인은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은유가 떠오를 때, 사진가는 빛이 만드는 공간을 볼 때, 정치인은 역사적 소명을 마주할 때가 바로 그때일 것이다. 물리학자인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 형님의 책상을 보게 되었다. 책상 위엔 종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종이 위엔 지우개로 지워 가며 연필로 푼 미적분 문제들로 가득했다. 친구의 형은 한 회사의 사장이었다. 퇴근하고 미적분을 푸는 게 취미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퇴근하고 밤늦게 책상에 앉아 어려운 미적분 문제를 푸는 게 취미라니. 그 친구의 형을 직접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그날 이후 나도 그런 멋진 사람이 되길 꿈꿨고,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 멋짐을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가치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삶은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 있다. 나 자신도,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도 움직인다. 이런 변화엔 물리적 규칙성이 있다. 매일 아침 해가 뜨고, 태양과 지구는 자신만의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계절을 만들어낸다. 그렇다. 우리는 수학적 규칙을 따르는 질서정연한 태양계에 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수학이 바로 미적분학이다. 미적분을 발견한 뉴턴은 이를 토대로 해서 우주의 작동 원리를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설명했다. 만약 미적분학이라는 수학이 없었다면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얼마 전 블랙홀을 연구하던 제자가 학교에 와서 후배들과 함께 세미나를 했다. 그는 블랙홀 연구로 박사학위를 따고 난 다음 유명 포털 회사에 취직한 상태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용해 블랙홀을 연구하다가 세상의 온갖 데이터를 연구하는 데이터 과학자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인공지능(AI) 컴퓨터 시스템을 응용해 데이터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블랙홀 연구에 사용하는 수학적 방법과 포털 사이트의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는 수학적 방법은 유사하다. 데이터 과학자들은 블랙홀을 설명하는 운동 방정식을 이용해 포털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한 후 원하는 정보를 얻어낸다. 물리학이 실험과 이론을 수학으로 연결시켰다면, 데이터 과학은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코딩 언어와 정보를 수학으로 연결시킨다. 공통점은 수학이라는 언어다. 다루는 문제가 복잡하고 클수록, 복잡한 문제를 잘게 쪼개서 단순하게 바꾸는 미적분학은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큰 위력을 과시한다. 모든 것이 전산화되고 자동화되면서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을 없애주는 플랫폼 메타버스, 인간의 지능의 한계를 없애주는 인공지능, 중앙집권화를 없애주는 블록체인 등 우리가 아는 세상의 개념이 이진법의 세상으로 빅뱅처럼 확장되고 있다. 내 인생을 바꾼 미적분학은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변화를 이끄는 중이다. <iframe id="ifr_8599477978" frameborder="0" allowtransparency="true" hspace="0" marginwidth="0" marginheight="0" scrolling="no" vspace="0" width="728" height="90" src="https://ads.acrosspf.com/opf/zest.ad?mn=22&ml=224023&slot=33817&passback=&host=www.donga.com&m=pc&k=&r=8599477978&shp=0&prtcl=https%3A&adid=" style="margin: 0px; padding: 0px; width: 728px !important;"></iframe> 제자가 연구실에서 바라봤던 블랙홀과 포털이라는 세상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궁금하다.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다.
1220 내 추억의 골목 [1]
[레벨:20]정아브라함
38 2022-04-22
경향신문에 효제동 골목 기사가 났습니다. 아래 기사 맨 처음 사진이 제가 서울법대에 합격하여 다녔던 골목입니다. 보문동 외가친척집에 살면서 당시 3번 만원버스를 타고 종로 6가에서 내려 길을 건너 들어선 골목입니다. 이 골목길을 곧장 올라가면 그 끝에 서울법대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종로센터에 가면 이 골목길을 가끔 가서 향수에 젖습니다. 1967년 일이니 53년 전 일입니다. 기사 문장도 아름답네요. 특히 꽃가게 설명은 정감있습니다. [골목 내시경]효제동 골목 인쇄 | 목록 | 복사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ㆍ김상옥 열사의 숭고함이 깃든 골목 서울 사대문 안에는 100년 넘은 초등학교가 몇곳 있다. 그야말로 우리 교육사와 발자취를 같이한 곳들인데 그중 하나가 서울효제초등학교다. 서울효제초등학교는 1895년 11월 15일 관립 양사동소학교로 문을 열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아쉽게도 효제동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의 행정구역으로 지은 이름인데, 사람들의 반발을 피해 유교의 충절 이념인 부모에 대한 효와 형제간의 우애를 뜻하는 효제(孝弟)를 따왔다고 했다. 효제동과 맞닿은 동네가 충신동이니 효제충신(孝弟忠信)이란 옛 시대의 가치가 이름에 박혀 있다. 서울 종로구 효제동은 오래된 역사만큼 관록 있는 음식점과 점포들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조용한 골목길 효제동 골목길은 서울효제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종로6가 일대 뒷길을 이리저리 얽고 있다. 동쪽으로는 동대문에 닿고 북쪽은 이화동과 대학로에 이르며 서쪽은 종로5가에 닿는 넓은 영역이다. 골목길은 시대의 변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데, 100년도 훨씬 전에 초등학교가 들어설 정도로 활발한 주거지였다. 지금 그 흔적은 먼지 한톨도 남아 있지 않아 골목길엔 사람 사는 흔적이란 볼 수 없다. 단지 동대문과 맞닿은 특성상 원단 창고와 사무실이 가장 많이 눈에 띄고, 예전 대학천 도서 도매상들이 여럿 있던 흔적으로 아직 떼지 못한 서점 간판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종로6가 한의원과 한약상들이 골목 안에도 띄엄띄엄 있었으나 그것도 시절의 흐름상 철거 중이다. 골목을 걷다 보면 흔하게 ‘창고 임대, 원단 창고 환영’이라 붙인 안내문을 자주 보게 된다. 이마저 얼마나 그 쓰임이 오래갈까 모를 일이다. 효제동 골목의 막바지 부분엔 이 계절에 활황인 샛길 골목시장이 있다. 종로꽃시장. 본디 종로5가에서 6가 일대 인도에 흩어져 있던 것을 가로정비 차원에서 이곳으로 옮겨 꽃시장을 조성했다. 충신시장에서 종로6가까지 이어진 그렇게 길지 않은 시장이지만 야생화부터 유실수에 분재, 화분과 원예 관련 상품 일체가 이곳에 있다. 시내 한복판 꽃만 파는 시장이 있는 것도 유난한 일이고, 이곳의 꽃들은 나름 고르고 선별된 것이라 계절마다 유행하는 꽃 종목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종로통 상점 손님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주로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이곳을 찾는다. 서울 효제초등학교 뒷길은 이곳에서 순국한 김상옥 열사를 기리기 위해 김상옥로로 명명됐다. 화분을 고르는 손님은 “자식이야 내 맘대로 못하지만 화초는 물 주면 꽃피고, 이리저리 옮기고 다듬어도 투정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아마 꽃시장을 찾는 이들 대부분이 갖는 속내의 한편일 수도 있겠다 싶다. “꽃 한포기에 1000원이면 살 수 있다. 만원 한장이면 몇달은 꽃잔치를 할 수 있으니 취미 중 경제적인 편에 속한다”는 상인의 이야기에 손님은 “화분에 영양제에, 어쩌다 귀한 꽃 보면 욕심이 나고 그렇다. 시장 한바퀴 돌아 원없이 사려면 돈 몇푼으로는 턱도 없다”고 대꾸한다. 어떤 부부는 화분 하나를 앞에 두고 싸우기에 바쁘다. 남편은 꽃이 어둡다 하고, 아내는 잔소리가 넘친다고 대꾸한다. 다시는 함께 안 온다는 게 아내의 결론이다. 꽃도 운명이 있어 어떤 건 내놓기 무섭게 팔려나가고 며칠이 지나도 찾는 이 없어 한쪽으로 밀려난 화분도 보인다. 꽃답던 시절을 덧없이 흘려버렸기 때문일까. 꽃을 향한 노인들의 애정은 깊다. 저마다 생긴 대로 아껴지거나 버려지는 건 사람과 꽃의 공통된 숙명 아닌가. 꽃시장은 충신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에 활기를 준다. 휑하던 골목은 사람의 발길로 분주해지지만, 주민이 살지 않는 도심지 골목 대부분의 모습처럼 해 떨어진 후의 황량은 피하지 못한다. 꽃시장에서 골목을 잇댄 충신시장은 한때 효제동과 충신동 주민들이 장을 보던 터전이지만 이제는 이름만 남은 시장이 됐다. 시장엔 보통 장마당과는 다른 풍경이 보인다. 사람도, 장바닥에서 보통 볼 수 있는 물건들도 없다. 떡집 한곳과 이런저런 잡화상 한두곳, 설비공사를 하는 점포, 망각과 소외의 먼지가 골목을 온통 뒤덮고 있다. “사람이 살아야지 장을 봐먹지. 우리도 조금 걸어서 창신시장에 가거나 저 한길 끝에 있는 채소가게에서 물건을 산다”고 골목길 화분을 손보던 노인이 말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영광은 끝장이다. 종로꽃시장은 꽃을 아끼는 이들의 명소다. 효제동 골목 한편에는 민요와 장구를 연주하는 주점도 있다. 곳곳엔 이름난 식당도 노인의 말대로 꽃시장 입구 큰길가에는 채소와 과일을 파는 커다란 가게가 있고, 조금 떨어진 길가에도 비슷한 점포가 있다. 손님이 많은 모양으로 과일이며 채소는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도 적당하다. 고구마를 권하던 상인은 “주민이 없어 보여도 숨은 듯이 사람이 산다. 가내공장 하는 이들이 공장 겸 집 삼아 살고 있고, 가게 장사하는 이들도 그런 식으로 꽤 산다. 손님은 꽃시장 오는 이들과 동네 주민이 반반 정도 될 것 같다”고 한다. 구멍가게도 사라지고 골목시장도 변변찮으면 지워지는 게 시대의 양상이다. 오래된 골목이라 곳곳에 오래도록 장사하는 이름난 식당도 눈에 띈다. 테이블 대여섯개 되는 작은 가게에서 수십년간 가락국수와 메밀국수를 팔아온 식당. 종로5가 육회 전문식당들이 이름나기 전부터 육회와 갈비구이로 명성을 날렸던 정육식당 등이 효제동의 유명세를 높였다. 입맛 까칠한 단골 노인들 사이에서 명성을 잃지 않으려면 남다른 무엇이 숨어 있어야 한다. 효제동 골목 대부분은 원단창고들이 차지하고 있다. 뒷골목엔 요즘 보기 힘든 가게들이 눈에 띈다. 간판엔 ‘민요 장구 전문’을 큼지막하게 써두고 골목으로 향한 창엔 나이든 여인이 밖을 살핀다. 해가 지면 온갖 색깔의 전구가 깜박이고, 그 야릇한 외관만으로도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짐작할 수 있다. 손님이 아님을 알아챈 여인은 손님 많냐는 질문에 심드렁히 “요즘 사람들은 풍류를 몰라서 안 온다. 예전 손님들은 막 시조도 한가락 읊고 했는데, 이제 저승 가서나 그 이들을 만날까 싶다”고 답했다. 술 한상을 시키면 장구가락에 맞춰 민요도 부르고 한다는데 시대의 요청대로 노래방 기계까지 들여놓았는데도 이제 손님 보기가 하릴없이 귀하다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골목길엔 여기저기 비슷한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다. 여기뿐 아니라 길 건너 백년시장 옆은 골목 하나를 온통 이런 술집들이 점령하고 있다. 햇빛이 들지 않아도 음지식물은 제 살길을 찾아 번창한다. 풍류를 아는 가객으로 경기민요 한가락에 시조 한수 정도는 읊을 수 있는 이들은 가볼 만한 곳이겠으나 그저 멋없이 소란한 취객들은 환영치 않는다니 유념해야 할 바이다. 한때 효제동 건너 옛 기독교방송국 앞은 의정부에서 오던 시외버스의 종점이었다. 또 다른 길 건너편은 서울 동쪽, 지금의 하남시가 된 신장에서 오던 버스들이 섰다. 서울 북쪽과 동쪽 상인들은 이곳에서 내려 효제동에서 한약재나 책 등을 떼가고 종로6가 선진상가와 광장시장, 평화시장, 동대문시장 등지에서 장을 봤으니 골목이 붐비고 가게들이 흥청거리던 때가 분명 있었다. 지금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자면 아무도 기억 못 할 바이나, 그때 번영의 환상에 발이 묶인 이들도 있어 뒤만 돌아보고 떠나지 못하는 모습도 보이는 듯싶다. 충신시장은 이름만 남아 시장의 기능이 사라졌다. 김상옥 열사의 고향 효제초등학교 뒤편으로 난 길의 이름은 김상옥로이다. 일제 순사 400여명을 상대로 권총 두자루로 수시간 총격전을 벌였던 전설 속 의열단 김상옥 열사(1889~1923)를 기리기 위함이다. 효제동은 김상옥 열사의 고향이고 효제초등학교가 열사의 모교다. 김상옥 열사의 독립운동 활약상은 여러모로 영화 <암살>(2015)의 모티브가 됐다고 하는데, 수백명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10발의 총알을 맞고도 총을 쏘며 담을 뛰어넘던 마지막 전장이 효제동 일대다. 숙연한 일이다. 그의 동지였던 조소앙은 <김상옥 열사 투쟁사> 서문에서 “일개 군졸의 아들로 소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춥고 배고픔이 뼈에 사무치는데도 애국심을 길러 자기의 사랑하는 신혼 처와 부모 형제의 평화롭고 안전한 포근한 보금자리를 제 손으로 뒤집어엎고 화약의 열성을 지고 불구덩이로 침입하여 조국의 장엄한 존재를 위하여 민족의 탁월한 권위를 찾아오기에 바빠하는 김상옥 열사가 있었더라”고 썼다. 그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의 절박한 처지를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열사는 3·1운동 이후 독립의 길을 무장투쟁에서 찾고 일제 사이토 총독을 처단하기 위해 길을 찾았다. 거사 실패 이후 상하이 임시정부로 망명해 다시 총독 암살을 모색한다.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폭파하고 그림자조차 찾지 못하게 도망을 다녔다. 은신 중에 밀고로 발각됐음에도 종로경찰서 형사부장을 사살하고 빠져나간다. 1923년 1월 22일 열사는 효제동을 덮친 기마대와 무장 순사 400여명과 장엄히 맞섰다. 은신처를 덮친 경찰부장을 총살하고도 권총 2자루에 의지한 채 무려 3시간 반을 싸웠다고 한다. 가내공장과 상가 사람들이 주민 대부분이다. 열사가 임시정부를 떠나면서 남겼다는 유언은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한다면 내세에서 만납시다. 나는 자결해 뜻을 지킬지언정 포로가 되지 않겠소”였는데 결국 마지막 남은 총알 1발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자결했다. 그 마지막 전장은 허물어져 지금 효자동 골목길의 일부가 됐다. 그러니 그를 생각하면 효제동 골목길을 걷는 일이 장엄하지 않을 수 없다. 김상옥 열사의 동상은 인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서 있는데, 상하이에서 거사를 위해 찍은 마지막 사진의 모습과 같다. 조국을 빼앗길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두 손이 부끄러워 보일 수 없다며 뒷짐을 지고 사진을 찍었다는, 깊은 뜻도 숙연하다. 어떤 길에나 미미함에서부터 위대함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겹쳐 있다. 골목을 걷는 건 그 역사 위를 걷는 일이다. 위대함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삶의 미미한 것들도 골목길을 통해 깨어난다. 충신시장의 황량함에서 시절의 무상함을 볼 수 있고, 꽃시장 골목길에서 현실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 김상옥로에 서서 그가 다졌던 민족에 대한 믿음과 충성을 만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육회 한 접시에 행복한 한 끼니를 즐길 수 있는 길이 효제동 골목이다. 이곳의 이름이 어떤 연유로 지어졌든 상관없이 효도하고 우애를 가지며 민족을 믿고 할 바를 다할 수 있다면 좋을 일이다. 효제동 골목에서 누군가 끝까지 장렬했던 사람을 기억한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1219 말이 씨가 된다. [1]
[레벨:20]정아브라함
75 2022-03-12
얼마전 이요셉 목자님이 새벽기도 때 민수기 말씀 메시지에서 한 말입니다. 민수기 14:2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불평하였는데 이 불평이 씨가 되어 민수기 14:36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요셉 목자님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도 들으시지만 우리의 불평도 다 듣고 있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중앙일보에 이와 관련있다고 보이는 다음에 보시는 바와 같이 재미있는 기사가 있어 올려드립니다. 끝에 나와요 [스포츠 오디세이] 80년대 ‘돌주먹’ 박종팔 관장 1980년대는 한국 복싱의 전성기였다. 그 중에서도 박종팔(64)은 ‘동양 선수는 체격과 체력의 열세 때문에 중량급은 어렵다’는 통설을 뒤집으며 WBA(세계복싱협회)와 IBF(국제복싱연맹) 슈퍼미들급 세계챔피언을 지냈다. 뛰어난 테크닉과 강력한 펀치를 겸비한 박종팔은 52전 46승(39KO) 5패 1무의 화끈한 전적을 남겼다. 불암산 자락 전원주택에서 부인 이정희씨와 함께 살고 있는 박종팔 관장은 미니 링과 샌드백을 설치해 놓고 찾아오는 후배에게 ‘돌주먹 비법’을 전수한다. 정준희 기자 불암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경기도 남양주시 전원주택에서 챔피언은 부인과 함께 평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미니 링과 샌드백을 설치해 권투를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한 수 지도’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지치고 의욕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박종팔 관장은 정신이 번쩍 드는 ‘말 펀치’를 날렸다. KO 펀치는 힘 아닌 타이밍에서 나와 관장님의 돌주먹은 어디서 나옵니까? “사람들은 권투를 힘으로 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신인 땐 그렇게 알았는데 힘으로 때려도 상대가 안 떨어져요. 그래서 연구를 많이 했죠. 상대를 눕히려면 들어오는 걸 받아쳐야 해요. 그래야 내가 힘도 안 들고. 그게 타이밍인데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권투인이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순간적으로 내는 펀치가 반 박자 빨라야 한다는 거죠.” 주무기인 몸통 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권투 펀치는 잽·스트레이트·어퍼·훅 네 가지 뿐입니다. 각각의 펀치에 대해 열 가지 이상의 폼을 자기 걸로 만들어 놓고 변형을 해야 합니다. 상대 폼만 딱 보면 턱이 약한지 복부가 약한지를 알 수 있어요. 턱이 약하다면 복부를 좀 때려놔야 가드가 내려가서 안면에 틈이 생깁니다. 복부가 약한 상대라면 안면을 많이 공격하면 복부가 비게 되죠.” 다섯 번 졌는데 네 번을 KO패 했어요. 맷집이 약했나요? “진 게임은 다 중량 실패로 스스로 무너졌더라고요. 상대를 아래로 보고 ‘에이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시간을 허비했고 중량 조절에 실패하면서 무너진 거죠. 저는 보통 12kg 감량하고 경기에 나섰어요. 한국 타이틀매치는 한 달 여유가 있고, 동양 타이틀은 두 달, 세계 타이틀은 3개월 준비할 수 있거든요. 젊었을 때 옆으로 좀 새다 보면 날짜가 금방 와 버려요.” KO로 이긴 경기에서도 다운 당한 적이 많았죠?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중 감량을 잘 했다면 맞고 떨어져도(다운이 돼도) 바로 회복이 됩니다. 그런데 무리하게 체중을 뺐다든가 하면 회복이 안 돼요. 매에 장사는 없어요. 맞으면 떨어지게 돼 있고, 반대로 상대를 잘 때리면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KO 시킬 수 있어요.” 당대 중량급 최강 마빈 헤글러(미국)와 붙었다면? “내가 WBA 슈퍼미들급 1위였을 때 헤글러의 다음 상대로 뉴욕까지 초청을 받아서 갔어요. 그런데 동양의 무명 복서여서 흥행이 안 될까 봐 대전을 취소한 거죠. 헤글러가 왼손잡이인데 내가 왼손잡이랑 하면 잘 해요. 한번 해볼 만한 게임이었을 텐데 그게 가장 아쉽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센 상대한테는 죽기 살기로 붙는 근성이 있거든요.” 백인철과의 프로 마지막 경기는 처절한 난타전 끝에 KO패 했는데요. “결과적으로 그게 마지막 시합이 됐어요. 인철이가 잘 나갔던 선수지만 내가 보기엔 한수 아래여서 소홀하게 생각했지요. 한번 맞고 떨어져 봐야 정신을 차리는 게 사람이죠(웃음). 사실 제 나이가 매스컴에 나오는 것보다 좀 많아요. 권투선수로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서 미련 없이 글러브를 벗었죠.” 헤글러와 붙었으면 멋진 경기 했을 것 1987년 5월 3일 열린 IBF 슈퍼미들급 7차 방어전에서 도전자 린델 홈즈의 턱에 강력한 훅을 꽂아넣는 박종팔. [중앙포토] 박종팔은 화끈한 KO 승부로 인기가 높았다. 80년대 중반 세계 타이틀매치에 5000만원이 넘는 대전료를 받았다. 서울 변두리 땅값이 평당 1만원 하던 시절, 그는 돈을 받는 족족 땅을 샀다. 은퇴하고 계산해 보니 29군데 땅 시가만 90억원이 넘었다. 그 돈을 그는 친구·선후배에게 떼이고 사기당하면서 몽땅 날렸다. 신용불량자가 됐고, 우울증이 왔고, 부인을 폐암으로 먼저 보냈다. 떨어져 죽을 바위를 찾아 수락산을 헤매던 그는 부인이 된 이정희씨를 만나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엄청난 인기에다 돈도 많이 버셨죠? “나는 동양 타이틀매치 할 때부터 개런티가 다른 선수보다 높았어요. 거기다 회사에서 봉급 외에 훈련비를 별도로 주죠. 동양 타이틀 10차 방어전 이후부터는 시합이 잡히면 땅 먼저 계약하고 올 정도였어요. 처음 산 게 충남 당진의 땅 1만 평인데 당시 3000만원인가 줬을 겁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면 얼마일까요? 말하면 뭐해. 속 터져불지. 하하.” 어쩌다 그 많던 돈이 도망가 버렸을까요? “한번 잘못되다 보니까 브레이크가 안 듣습디다. 어떤 선배한테 1억 투자해서 안 되면 그만둬야 하는데 ‘3억만 더 투자해라. 6개월 안에 5억 만들어 줄게’ 그러면 그 말 홀라당 믿고 땅 팔아서 날려버리는 식이었죠. 운동 하면서 내 주위에는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본 사람도 하다못해 음료수라도 사 주지, 밥 사주고 봉투 주지. 사회가 나를 위해서 있는 거 같았죠. 근데 내 돈 갖고 간 사람치고 잘 되는 놈 하나도 못 봤어요.” 그러다가 부인을 만나셨네요. “인생 역전이죠. 지인이 선 보라 했을 때 ‘죽을 생각만 하고 있는데 선을 봐서 뭐해’ 싶다가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 만나나 보자’ 해서 만났죠. 근데 희한하게 엄마 같은 포근함이 들고 ‘저 사람이면 날 붙들어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박 관장은 군부대나 학교 등에서 특강 요청을 자주 받는다. 주제는 ‘인생에 한 방은 없다’. “권투에는 역전 KO승, 즉 한 방이 있지만 인생에는 한 방이 없어요. 인생은 3라운드라고 생각해요. 난 1라운드에서 부와 명예를 다 가졌고, 2라운드에서 탈탈 털렸어요. 그래도 3라운드가 있잖아요. 나쁜 생각 않고 남 등치지 않고 열심히 살다 보면 꼭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겁니다. 3라운드 승자가 진짜 인생 승자지요. 허허허.” 스포츠 오디세이 다른 기사이전 상대 얕봐 무리한 감량 탓 KO패, 인생엔 역전 한 방 없다 중앙UCN 유튜브 채널 “벨트 못 따면 죽어서 돌아오겠다” 절친 김득구 말이 씨가 돼 김득구 박종팔 관장은 ‘비운의 복서’ 고(故) 김득구(사진)와 절친이었다. 둘 다 ‘권투로 인생 역전을 하겠다’는 꿈 하나만 갖고 시골서 올라와 서울 동아체육관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펀치를 연마했다. 1982년 11월 13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WBA 라이트급 타이틀매치에서 챔피언 레이 맨시니(미국)와 맞선 김득구는 14회 맨시니의 강력한 펀치를 맞고 KO 당했고,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박 관장은 “득구는 어떡하든지 권투로 일어서 보겠다는 집념이 대단했어요. 미쳤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쇼맨십과 리더십이 강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팔방미인이었죠”라고 회상했다. 김득구는 “벨트 못 따면 죽어서 돌아오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도전자와 챔피언 중 하나는 죽을 거라며 성냥갑 관을 만들어 미국에도 갖고 갔다고 한다. 박 관장은 “득구에게 ‘벨트 못 따면 죽어서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왜 지켰냐’고 묻고 싶어요. 사람이 부정적인 말을 하면 꼭 그대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힘들어 죽겠다’는 말보다 ‘괜찮아. 할 수 있어’라는 긍정의 말을 많이 하세요”라고 말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UCN 부사장 jerry@joongang.co.kr
1218 덴젤 워싱턴 연설 [1]
[레벨:20]정아브라함
63 2021-12-22
덴젤 워싱턴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그가 대학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들려준 연설을 인용하여 어떤 사람이 쓴 글입니다. 덴절 워싱턴의 미 졸업식장 연설중앙일보입력 2021.12.22 00:24 지면보기지면 정보 채병건 기자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디렉터 채병건 국제외교안보 디렉터 덴절 워싱턴(67)은 할리우드 스타다. 지금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핫’한 배우는 아니지만 얼굴과 이름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10년 전인 2011년 5월 16일 펜실베이니아대 졸업식장을 찾아 연설을 했다. 20분 분량의 연설 곳곳에서 청중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덴절 워싱턴은 그러면서 자신의 메시지까지 담아 내놨다. 다음은 그중 하나다. “당신이 실패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겁니다. 제 아내가 이런 멋진 말을 해줬는데요. 당신이 결코 가져본 적 없는 것을 얻으려면, 결코 해본 적 없는 일을 해야 합니다. (If you don’t fail, you’re not even trying. My wife told me this great expression. To get something you never had, you have to do something you never did)” 10년 전 메시지, 지금 더욱 절실 “실패 없었다면 시도도 안 한 것” “넘어져도 앞으로 넘어져라” 당부 현실 바꾸려면 행동으로 나서야 졸업식 연설은 사회로 진출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내놓은 조언이자 경험담이다. 덴절 워싱턴이 펜실베이니아대 졸업생들에게 했던 이 연설의 메시지는 ‘앞으로 넘어져라(fall forward)’였다. 세상을 향해 뛰어드는 불안한 청춘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한때 한국에선 좌절한 젊은이들을 향해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위로하는 힐링이 유행했다. 힐링에 연예인들까지 가세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보통의 젊은이들에게 벽은 더 높아졌고 현실은 더욱 힘들어졌다. 할리우드 배우 덴절 워싱턴. [AP=연합뉴스] 이런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게 10년 전 덴절 워싱턴의 연설이다. 그는 사회로 나가는 청춘들을 위로하는 대신 행동을 요구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 실패하게 돼 있다”며 “(넘어져도) 앞으로 넘어지라”고 말했다. 연설 하나를 듣고서 누군가를 호평하거나 미화하는 건 순진한 접근법이다. 글솜씨가 있는 대필 작가가 덴절 워싱턴의 구술을 듣고 연설문을 대신 썼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연설에 미국 사회에서 비주류인 흑인, 유색인종이 겪는 한계라는 배경 화면을 입히면 의미가 달라진다. 미국에선 여전히 피부색이 사회경제적 좌표를 추정하는 레퍼런스 중 하나다. 미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미국의 실업률은 5.2%인데, 이중 흑인 실업률은 8.4%다. 백인 실업률(4.6%)은 전체 평균보다 낮다. 사회에 진출하는 20대 초반(20∼24세)으로 좁힐 경우 전체 실업률이 8.8%인데, 이 연령대의 흑인 젊은이들 실업률은 14.3%다. 같은 연령대의 백인 실업률은 7.4%다. 미 인구조사국(USCB)의 인종별 가구 구성 조사(2021년)에 따르면 백인에선 부부가 모두 있는 가구는 58%, 편모 가구가 6%였다. 반면 흑인에게선 부부가 모두 있는 가구는 33%로 줄고, 편모 가구는 19%로 늘었다. 미국에선 기대수명도 인종 별로 차이가 있다. 2020년 기준 기대수명은 77.3세인데 흑인은 이보다 낮은 71.8세다. (국가주요통계시스템 7월 보고서) 또 흑인 남성의 기대수명 68세는 북한 남성의 2018년 기대수명 68.4세(세계은행 추정치)보다 낮다. 미국에서 이런 통계를 무수히 찾을 수 있다. 서소문 포럼 다른 기사이전 [서소문 포럼] 이명박근혜와 문재명 이같은 제약을 극복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이들에게 미국 사회는 ‘이생망’이나 다름없다. 덴절 워싱턴은 한 인터뷰에서 “내가 (어릴 적) 어울렸던 친구들의 형량을 모두 합치면 한 40년 정도는 될 것이다. 거리가 그들을 놔두지 않았다”고 했다. 미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미국인 10만명당 358명 꼴로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성별로 보면 남성의 경우 인구 10만명당 678명이 수감돼 있다. 그런데 흑인 남성의 경우 인구 10만명당 1890명으로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흑인 남성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수감돼 있다는 건 이들이 범죄 환경에 더 많이 노출돼 있거나, 같은 범죄에도 이들이 더 가혹한 대우를 받거나, 아니면 둘 다 일 수 있다. 나는 이런 현실에서 덴절 워싱턴이 찾은 해법이 “결코 가져본 적 없는 것을 얻으려면, 결코 해본 적 없는 일을 해야 한다”였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청춘은 위로받아야 하지만 위로만으론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위로를 통해 힘을 얻었다면 행동에 옮겨야 현실에 변화가 올 수 있다. 또 지금의 현실은 내 잘못이 아니며 기성세대의 책임이지만, 현실을 바꾸려면 결국 내가 행동해야 한다. 내 삶의 주체는 나이고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할 수 없어서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에게 감히 권하고 싶은 건 “결코 가져본 적 없는 것을 얻으려면, 결코 해본 적 없는 일을 하라”는 미 흑인 배우의 졸업식 연설이다.
1217 no image 유익한 기사 [1]
[레벨:20]정아브라함
57 2021-10-27
군대간 내 아들 휴가 나와 가장 듣기 싫은 말 압도적 1위는이상규 기자 입력 : 2021.10.27 10:32:20 수정 : 2021.10.27 11:15:34 1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장병들이 휴가 때 부모님과 친구들로부터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요즘 군대 편해졌다"로 조사됐다. 국방홍보원 국방일보가 선보이는 소통·공감 콘텐츠 '병영차트' 10월 설문 주제는 '휴가'였다. 27일 국방홍보원에 따르면 조사는 지난 9월 23일부터 이달 15일까지 대국민 국군 소통서비스 애플리케이션 '더캠프'에서 주관식 설문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번 설문에는 총 852명의 장병이 참여했으며 휴가 때 '가장 듣고 싶은 말'과 '가장 듣기 싫은 말' '가고 싶은 장소' 등에 대한 의견을 남겼다. 먼저 '휴가 때 부모님 또는 친구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이라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 중 38.7%에 해당하는 330명의 장병들이 "고생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답변해 가장 많았다. 2위는 "보고 싶었어"(7.7%), 3위는 "반가워"(7%)가 차지했다. 이 밖에 "멋있어졌다" "뭐 먹고 싶어" "사랑한다" "언제 전역해" "용돈 줄까" 순이었다.<iframe frameborder="0" src="https://1c45527f72fdfc940af00387d61bb818.safeframe.googlesyndication.com/safeframe/1-0-38/html/container.html" id="google_ads_iframe_/7450/MK_Website/mk_news/society_0" title="3rd party ad content" name="" scrolling="no" marginwidth="0" marginheight="0" width="250" height="250" data-is-safeframe="true" sandbox="allow-forms allow-popups allow-popups-to-escape-sandbox allow-same-origin allow-scripts allow-top-navigation-by-user-activation" data-google-container-id="1" data-load-complete="true"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width: 0px; border-style: initial; vertical-align: bottom;"></iframe> 반면 듣기 싫은 말로는 "요즘 군대 편해졌다"가 1위로 꼽혔다. 전체 응답자 중 16%가 이처럼 답했다. "복귀 언제야" "벌써 나왔어" "또 나왔어"가 뒤를 따랐다. 이 밖에 휴가 나가면 가고 싶은 장소로는 집이 가장 많았고 바다, 휴양지, 제주도가 뒤를 이었다. [이상규 매경닷컴 기자]
1216 no image 하버드 대학의 타락
[레벨:20]정아브라함
98 2021-08-31
다음 글을 보면 하버드대학이 어떻게 타락해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청교도 목사 교육기관으로 세운 하버드대... 새 교목실장은 ‘무신론자’ 이철민 선임기자 입력 2021.08.31 12:57 1630년대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에 정착한 영국 청교도들은 교회의 장래를 놓고 고민이 있었다. 정착지의 청교도 교회들을 이끌어갈 미래의 목사들을 어떻게 양성할 것이냐였다. 그 해답이 존 하버드 목사가 기부한 책과 자금으로 1636년 설립된 하버드 칼리지였다. 이후 종합대학으로 발전했지만, 1880년대까지 하버드대의 신조(motto)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와 ‘교회의 그리스도를 위하여’이란 뜻의 라틴어가 번갈아 쓰였다. 지난주부터 하버드대의 새 교목실장으로 일하는 무신론 목회자 그레그 엡스타인/링크드인 그런 하버드대의 새 교목실장(Chief Chaplain)에 44세의 유대계 출신 무신론자가 지난 주 선출됐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신(神) 없는 선(Good Without God)’이란 책의 저자이기도 한 그레그 엡스타인은 2005년부터 하버드대와 인근 MIT대에서 무신론 커뮤니티를 이끌며 학생들에게 “신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 주목하라”고 가르쳐왔다. 그래서 종종 “세속적, 가치 중심적 철학인 인문주의 운동의 대부(代父)”로 소개된다. 엡스타인은 NYT에 “갈수록 많은 사람이 특정 종교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고 도덕적인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고 도움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iframe class="ip-engine" height="100%" width="100%" frameborder="0" marginheight="0" marginwidth="0" hspace="0" vspace="0" scrolling="no" style="box-sizing: border-box; z-index: 1; opacity: 1; object-fit: cover; will-change: opacity; transition: opacity 1s cubic-bezier(0.4, 0, 1, 1) 0s; position: relative; margin-top: 0px; visibility: visible;"></iframe> 흥미롭게도, 기독교‧천주교‧불교‧힌두교 등 하버드대에서 다양한 종교 커뮤니티를 이끄는 40여 명의 성직자가 만장일치로 무신론자인 엡스타인을 교목실장으로 선출했다. ‘교목실장’이란 직책도 대학 내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를 고려할 때 ‘사제(司祭)실장’ ‘종교실장’에 가깝다. 이 대학의 크리스천사이언스 교목인 매깃 해머스트롬은 NYT에 “보수적인 대학에선 ‘도대체 뭔 짓을 하는 거냐?’라고 하겠지만, 하버드대 같은 환경에선 그가 적격”이라며 “엡스타인은 서로 다른 신앙 사이에 소통 채널을 계속 유지해왔다”고 말했다. 무신론자 엡스타인이 하버드대 교목실장으로 선출된 것은 미국사회에서 기독교 색채가 점차 옅어지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에 따르면, 자신을 크리스천(개신교‧가톨릭)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007년 78%에서 2019년에는 65%로 줄었다. 반면에, ‘어느 종교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16%에서 26%로 올라갔다. 2019년도 하버드대 졸업예정자 중에서도 기독교와 가톨릭 신자는 17%와 17.1%에 그쳤고, 불가지론자 21.3%, 무신론자 16.6%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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