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관악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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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5 no image 목자님들의 도움을 구합니다~ - 새내기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
[레벨:0]조지혜
75 2006-01-21
안녕하세요. 3부 김흥식입니다. 3부 게시판에 올렸던 내용을 그대로 여기에 옮깁니다. (조지혜 목자님의 ID를 빌립니다. ^^;) -------------------------------------------------------------------------------------- 이번 2월 8일 '대학생활 "한 걸음" 앞서가기' 에서 영상편지팀 준비팀에 속하게 된 김흥식입니다. 영상편지 제작에 대해서 목자님들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준비할 '영상편지'는, 전체 모임의 opening 역할을 하면서, 곧바로 이어지는 2편의 강연에서는 다 담지 못하는 후배들을 위한 선배들의 조언을 찍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1주일간 많은 선배님들(!)을 만나서,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많은 조언과 에피소드들을 카메라에 담아야 합니다. 무작정 아무 목자님들께 다가가서 협조(!)를 부탁드릴 때, 새내기들에 대한 넘치는 사랑과 목자의 심정으로(!!!) 해 주고 싶은 조언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면 정말 좋겠지만,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목자님들께서 그렇지 않을 때가 많고, 게다가 무거운 입이 뜨거운 심정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일단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서, 인터뷰 전에 목자님들께 준비시켜드릴 몇가지 질문을 미리 준비하고자 합니다. 일단 재학생 목자님들께는, *. 새내기들에게 전하는 한 마디, 새내기들에게 주는 환영 인사 *. 신입생때나 대학생활 전체에 걸쳐서 기억에 남는 일들 (의미가 있는 감동적인 일들, 또는 어리버리한 신입생 시절 겪었던 어이없는 에피소드 등 자유롭게) *. 자신의 대학생활을 돌아볼 때 떠오르는 한 단어는? *. 06 신입생을 받는 심정 (03학번이 이제 4학년이네요?) (이 질문들은 사실 전 연령대에 걸쳐서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 졸업하셔서 사회 생활에 뛰어드신 목자님들께는, *.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전공 소개, 이 전공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이건 대학원에 다니시는분들께만) *. 대학 생활에서 꼭 해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수양회 참석'말고 ^^;;) *. 대학 생활이 자기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무엇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는지? *. 앞으로의 자기 인생에서 어떤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계신가요? 영상편지팀이 잠시 모여서 짜낸 질문은 이 정도입니다. 더욱 창의적이고 재치있고, 재미있는 내용들이 나올만한 질문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데, 목자님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영상편지팀이 생각해낸 '천편일률적이고 구태의연하며(!)' '나올 수 있는 대답이 뻔할 수밖에 없는(!!)' 질문들 외에 보다 재치 있고 양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대답을 유도할 수 있는 창의적인 질문들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답글로 많은 조언을 주시면, 영상물 제작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모임의 첫 시작을 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목자님들의 도움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
1134 no image 새내기 초청행사를 마치고.. [3]
[레벨:0]조지혜
68 2006-02-10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2월 8일 행사를 무사히 마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내기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일까.. 처음 수요회 기도모임에서 목자님들로부터 이런 고민이 나왔는데, 그 생각을 이렇게 실천으로 옮길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관악 3,5부 형제자매님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때 과연 이 행사가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새내기들이 얼마나 올 수 있을까.. 참으로 막연했습니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일이라 정말 아무 것도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관악 3,5부 형제자매님들이 함께 하는 이 일에 하나님이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그러니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흐르면서 .. 저는 많이 흔들렸습니다. 시간과 열정을 쏟아서 준비하고는 있지만 결국 아무 열매없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복음 역사가 열매맺지 못할것이라는 안타까움이기 보다는 내 자신이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제가 얼마나 하나님 보다 자신을 중심에 두는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Turning 시키셔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역사에 쓰임받은 하인들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래.. 역사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쓰시도록 나는 최선을 다해서 환경을 예비하자.. 하인들처럼.. 나도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자!' 이렇게 마음 먹으니까 눌려있던 심령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일 때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주시고, 헌신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밤이 새도록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쏟아서 헌신하시는 3,5부 형제자매님들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님 안에서 변화된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분 한분에게서 정말 아름다운 향기가 났습니다^^ 이런 분들과 함께 섬길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저에게는 은혜였습니다. 같은 팀 동역자들이 새 양들을 데리고 올 때.. 동역자들 안에 설레임과 순수한 사랑과 목자의 심정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감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기도의 단을 제대로 쌓지 못했지만 시간과 몸과 마음을 드려 기도의 단을 쌓아주신 목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행사를 기초로 성령의 역사를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1133 no image 하나님을 위한 예배 [2]
[레벨:0]조지혜
84 2006-05-09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박철순: 예배인도자, 어노인팅 미니스트리 대표)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찬양으로 가슴 벅찬 예배(Exploring Worship /두란노)”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밥 소르기(Bob Sorge)의 예배 세미나에 기회가 되어 참석하게 되었다. 밥 소르기 목사는 자신이 쓴 몇 권의 책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삶을 신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1992년 성대에 궤양이 생겨서 수술을 받던 중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건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시기였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찬양과 경배를 통해 열방을 섬기기위해 그의 삶을 부르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목소리를 잃어버려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는 이전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찬양 집회 때 목이 상했고 치료받던 중에 하나님께서 그의 목소리를 가져간 것이었다. 처음에 이 일이 생기면서 그는 이렇게 하나님께 질문했다고 한다. “주님 제 노래가 잘못되었습니까? 왜 저의 노래를 거두어 가셨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만을 더 알기 원했는데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에게 주님께서 평안으로 찾아오셨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전보다 더 깊은 만남 가운데 자신을 부르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함, 부드러운 마음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우는 것을 몰랐는데 지금은 밤낮 웁니다.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갈망합니다.” 라고 그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거했다. 이야기 나누던 중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겠다고 했는데 그때 회중석에서 즉각적으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때 밥 소르기가 한 한마디의 말이 내 머리와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이 음악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건반에 앉아 ‘주께 가오니’의 후렴 부분으로부터 연주가 시작됐다. 주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 이끄소서 독수리 날개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영광의 주님 찬양하세’, ‘할렐루야’, ‘목마른 사슴’의 후렴인 주님만이 나의 힘이 이어졌다. 위의 곡들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곡들이었고 가사가 없이 연주로 들려졌을 뿐이었지만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어느 때보다 더 내 안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연주를 통해 그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동안 나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 드려졌던 수많은 예배 안에서 잃어버렸던 보물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이 모임을 통해 난 내 삶에서 잊지 말아야할 가장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1132 amazing grace 파일
[레벨:0]조지혜
75 2006-08-01
1131 no image 안부인사^^
[레벨:0]조지혜
69 2007-02-16
1130 no image [동영상]2014 부활댄싱 연습
[레벨:19]조은민
83 2014-04-13
1129 no image 삶과 죽음을 노래한 시인.... 칼릴 지브란 [3]
[레벨:1]조스터드
92 2006-09-06
안녕하세요.. 잠시 쉬어 가시라고 레바논에서 부족하나마 글 하나 올립니다.. 레바논을 위한 기도 감사합니다... 내게 피리와 노래를 주소서.. 불멸은 노래 속에 있으니, 우리가 죽은 후에도 슬픈 곡조는 여전히 울릴 겁니다. 내게 피리와 노래를 주소서.. 아픔과 치유는 저만치 던져 버리세요... 인생은 물위에 씌어진 글자에 불과하니까요... 백향목 숲이 가까이 있는 브샤레 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천재 작가요 화가요 명상가인 칼릴 지브란... 삶과 죽음과 사랑과 좌절과 애국을 노래한 시인...우리에겐 "예언자" 라는 작품을 통해 더 잘 알려져 있다.. 우리 인생은 무엇인가... 성경에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하였다.. 지브란은 그의 시에서 물위에 씌여진 글자들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렇게 시인은 우리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한편, 우리 선조들의 고전에도 이런 문구가 있다 - 천지는 여관이오 인생은 과객이라 광음이 물과 같아 인생백년 주마 같도다. 그렇다. 우리 인생은 그저 아침 안개처럼, 물위에 그려진 문양처럼, 여관에 머무는 과객처럼, 그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생이 참 덧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에겐 죽음 저편에 영원한 본향이 기다리고 있다.. 이땅에서의 수고를 뒤로 하고 편히 쉴 수 있는, 주님과 마주앉아 영원토록 회포를 풀며 교제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가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순례길은 힘들지 않다. 외롭지 않다. 덧없지도 않다.. 자, 동무들... 오늘도 힘차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어 보세... 연약해진 손도 다시 세워 보세.. 내게 피리와 찬양을 주소서.. 불멸은 찬양 속에 있으니, 내가 죽은 후에도 기쁜 찬송은 여전히 울릴 겁니다......
1128 no image 축하합니다. [2]
조계현
104 2007-10-21
1127 no image 결혼식 축사 실수담 [6]
[레벨:17]정철헌
111 2013-12-27
1126 no image 사랑·신앙만이 바꿉니다 [2]
[레벨:17]정철헌
83 2015-09-14
양을 섬기는 일에도 적용이 되는 것 같아 나눕니다. ㅎ [얼굴] 비행 아이들요? 사랑·신앙만이 바꿉니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판사기사입력 2015.08.29 오전 12:18 342777 가-가+ 천종호 판사는 “우리 사회가 보호소년들의 아픔엔 공감하면서도 정작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건 부담스러워하죠. 심지어 교회도요”라고 말했다. 출판사 우리학교 제공 부산가정법원 천종호(50) 판사는 청소년 관련 기관과 단체, 법조계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이다. ‘호통 판사’ ‘호통 대장’ 등의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재판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비행청소년들은 ‘바보’ ‘천10호’ ‘선생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천10호’는 소년원법에 의한 소년원 송치 처분 기간 ‘10호 처분’을 말하는데 그 기간이 2년으로 최고형이나 다름없다. 한데 천 판사가 10호 처분을 자주 내려 ‘천10호’라고 무서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고 나면 소년들의 처지에 눈물을 흘리고, 그들이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민활동가’처럼 뛴다. 세 자녀를 둔 평범한 아버지 마음에서다. 그의 친구 곽경택(영화감독)은 “천종호는 많은 돈도, 감춰진 허세도, 대단한 출세욕도 없는 그냥 맑고 강직한 판사”라고 밝혔다. 천 판사를 지난 24일 부산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조심스러웠다. 오히려 ‘신앙인’(부산 금정평안교회 피택장로)이라는 이유로 폐가 될까 해서다. 그의 집무실에 이런 액자가 걸려 있었다. ‘정의가 강물처럼 공의가 하수처럼’. -‘천10호’ 별명이 불편하지 않습니까. “소년재판을 통해 최종적으로 내려지는 결정을 ‘소년보호처분’이라고 합니다. 1개월은 8호, 6개월은 9호, 2년은 10호죠. 따라서 10호 처분은 매우 무거운 경우입니다. 9호 처분보다 10호 처분이 오히려 소년들에게 유익할 때도 있습니다. 검정고시 합격을 위해 또는 기술자격증 취득을 위해서죠. 소년들을 위해서라면 9호 처분을 할 수 있을 때도 10호 처분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원망도 듣겠습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던 녀석들에게 충격으로 다가들겠죠. 그렇게 학교(소년원)에 보내진 녀석들에게 ‘처음엔 판사님 원망 많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배울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습니다.” 그는 실제 지난 6년간 사법형 그룹홈 설립에 나서 창원 등 경상도 지역 14곳에 청소년회복센터를 열었다. 또 비행소년 전문 상담교육기관 ‘경남아동청소년상담교육센터’, 정규학교 과정 ‘국제금융고 창원분교’ 등도 설립했다. “처음엔 판사님 원망 많이 했다” -호통은 왜 치십니까. 통상 법정 분위기와 많이 다를 텐데요. “사건당 할애되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해요. 3∼4분 정도니까요.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 소년과 보호자에게 조그만 깨우침이라도 주려면 호통칠 수밖에 없습니다. 퍼포먼스 효과라고 할까요. 방청객들은 ‘호통치료’라고 합니다. 호통받은 소년들 중에 ‘마치 아버지한테 사랑의 질책을 당한 것 같아 속이 후련했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어른들에게 강하게 지적 받지 않아 여기까지 온 거죠.” -격언과 시낭송, 편지 등도 활용하시죠. “갈등이나 분노 상황에서 공격적인 행동을 일삼던 종수(가명)라는 아이의 심리에서 종수와 종수 어머니에게 각기 일본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의 ‘약해지지 마’와 ‘아들에게’를 낭독하게 했습니다.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힘에 겨운 일 생기면 엄마를 떠올리렴…’ 등과 같은 내용이죠. 적대감 뭉치의 아이가 한결 부드러워지죠. 법정에서 부둥켜안고 웁니다. 편지는 더하죠.” -소년법정은 성인 법정과 차원을 달리하죠. “아들 몸에 조폭 문신을 보고 자책감에 혼절한 어머니, 암 투병 중에도 나와 자식을 제발 돌려달라고 하는 어머니, 자식이 구금되어 있는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눈물로 보내다가 ‘집으로 데려가라’는 판사 말에 긴장이 풀려 쓰러져 119구급차에 실려 가는 어머니, 가출 후 원조교제로 생계를 이어가던 딸을 구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소년원에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부모, 가슴 밑바닥서부터 터져 나오는 통곡을 주체 못해 꺽꺽 우는 아버지…. 말로 다 할 수 없죠.” 매년 10만여명 소년범죄 발생 천 판사는 소년범죄가 살인·성폭행 등 흉포하고 잔인화돼 간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를 두고 사회에서는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쏠리고 있다. 그는 엄벌과 관용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소년범죄는 경미한 학교폭력범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을 위한 재교육이나 재비행 저지를 위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 마련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소년범 현황이 어떻습니까. “매년 10만명 정도의 소년범이 발생합니다. 그중 중범죄로 소년교도소나 소년원에서 생활하는 5000여명을 제외한 9만5000여명이 사회로 돌려보내집니다. 그러면 재범 방지가 관건이겠죠. 한데 국가가 제공하는 장치는 보호관찰제도밖에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2013년 기준 재범률이 41.63%입니다. 비행소년 문제는 선거권과 직접 관련이 없다보니 국회 등 사회가 무관심합니다.” -가정해체가 소년범 발생의 주된 요인인 것 같더군요. “소년범 48%가 결손가정 아이들입니다. 또 결손가정은 빈곤문제를 안고 있는데 전체의 70%는 결손·빈곤에 따른 악순환이죠. 그들을 격리하기보다 준(準)가정과 같은 그룹홈 등을 통해 ‘사회적 지위 상승의 희망’을 주어야죠. 아이들에겐 어떤 형태든 ‘사랑의 가정’이 필요합니다. 사법적 그룹홈을 그래서 시작한거고요.” -법률적 판단만 하셔도 될 텐데 굳이 힘든 일을…. “2010년 창원지방법원 소년부를 맡게 되면서 가정의 해체로 인한 소년비행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제 어린 시절과 같은 환경에 놓인 아이들이죠. 문제는 우리 사회가 보호소년들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그들에게 정작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건 부담스러워하죠. 심지어 교회도요.” -천 판사님은 법조인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롤모델이시더군요. ‘정의가 강물처럼 공의가 하수같이’라는 ‘말씀’에서 여러 가지가 느껴집니다. “저는 도시빈민의 아들입니다. 7남매가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육성회비를 못내 교실서 쫓겨났고, 수학여행은 꿈도 못 꿨죠.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세 끼조차 제대로 해결 못한다는 수치심이 컸습니다.” 수돗물로 배 채우던 천 판사 소년기 -교회 가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함께 놀던 친구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전도팀을 따라 죄다 교회(현 아미동 아름다운교회) 간 거죠. 뒤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고신 측 교회라 엄격했어요. 중·고등부 회장 등을 하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부산·경남지역서 유명한 무척산기도원으로 수련회도 가고요. 7남매나 되니 집에선 공부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 숙제만 하고 바로 자버리죠. 그리고 새벽같이 일어나 교회 가서 새벽기도 하고 공부했습니다. 교회는 장의자에 누울 수도 있고… 하하. 그러니 공부 못하면 안 되잖아요.” -주일을 지키기 위해 수학여행을 안 가신건 아니죠. “친구들에게 주일성수 때문이라고 둘러댔죠. 실제는 수학여행비를 못 내서였고요. 수학여행 못 간 친구가 10명 정도 됐는데 대부분 주일 낀 여행 일정 때문에 안 간 거였어요.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 자녀였던 거죠. 그 친구들에게 ‘나도 그렇다’라고 해야 했죠.” -과외는커녕 부교재 살 돈도 없는데 공부에 재능이 있었나 봅니다. “아뇨. 똑똑한 건 아닙니다. 제가 좀 숫기가 없어 ‘삐뚤어 나갈 능력’도 없었어요. 공부와 교회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 셈이죠. 가난은 그 무렵에도 계속돼 입시원서도 못 살 형편이었죠. 재수는 언감생심이고요. 대입을 자포자기한 상태가 됐습니다.” -천사가 나타났다면서요. 소년원 특강을 마친 천 판사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인 조호진 제공 “대학 원서접수 마감 날 아미동에서 터덜터덜 걸어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 쪽까지 내려왔는데 학교 친구를 만났어요. 원서접수 마감시간 다 됐는데 뭐하냐고요. 내 처지에 무슨 대학이냐고 했죠. 친구가 ‘야 무슨 소리야 서둘러’ 하며 원서를 사줬어요. 당시는 서점에서 원서를 팔았잖아요. 부산 사람이면 다 아는 문우당이었죠. 그리고 모교인 부산남고에 들러 지원서를 작성해 부산대에 가니 접수마감 30분 전이었습니다. 그가 박명규(세무사)라는 친구였죠. 재작년 창원에서 열린 제 책 출판기념회에서 그 친구를 소개하며 ‘하나님이 보내준 천사’라고 얘기했더니 ‘내가 그랬냐?’ 하더군요. 청소년 특강이라도 있으면 이 사례를 얘기해요. ‘여러분의 배려가 누군가에게 삶의 전환점을 마련한다’고요.” -가난을 피해 군대 가시고, 전역 후에도 희망이 없었죠. “가난은 삶의 의지를 꺾는 무서운 질병이죠. 부모와 형제들, 교회 식구들, 이웃들 아니면 내가 버틸 수 있었을까 되돌아보곤 합니다. 내 인생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들입니다. 이들 덕에 5전 6기 만에, 스물아홉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니까요.” -합격 후 ‘가난한 여자친구’를 버리지 않으셨더군요. “사시 준비하며 사귄 대학 동창인 아내(도인자·교사) 역시 저처럼 가난한 집 딸이었어요. 사시 합격 후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데요. 이러다 아내에게 상처가 되겠다 싶어서 바로 결혼했습니다.” “교회가 아니었으면 나 없었을 것” -부인보다 ‘꼿꼿했던 신앙생활’이 역전됐다면서요. “하하. 제가 고신파 교회를 다녀서 좀 엄격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한데 나중에 역전됐어요. 저는 판사 생활 20년만 하고 나와 변호사 개업을 하려고 했어요. 제 형제자매 누구도 대학 나온 이가 없어요. 돈을 벌어 돕고 싶었죠. 그러려면 붙임성도 있어야겠기에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도 큰 교회 다녀야 하나 생각했죠. 30대 초부터 그런 거죠. 그런 저를 위해 아내가 기도했어요. ‘당신이 이러려고 판사된 거 아니잖나’고 하더군요. 아내와 장모님 기도 아니었음 정신 못 차렸을 겁니다. 2006년 무렵 술 끊었어요.” -올봄 펴낸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등 두 권의 저서 인세 등을 비행청소년을 위해 다 쓰셨더군요. 특강비 등도 예외 없고요. 형제들이 섭섭해 하지 않을까요. “우리 대개가 소시민으로 살지 않습니까. 제 형제들도 그렇습니다. 제가 하는 일 이해해주는 형제들입니다. 많지는 않아도 늘 나눠 쓰려는 형제들이고요. 부와 권력과 명예를 동시에 추구하면 안 됩니다. 저는 공의에 대한 판단을 신탁받은 사람일 뿐입니다.” -최근 교회 초청 비행소년문제 특강을 통해 청소년지원센터 승합차 운영 문제 등을 해결해 주셨죠. “제 힘이겠습니까. 교인들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신 거죠. 서울 온누리교회 마리아형제팀 초청으로 휴가를 내서 올라가 특강을 했어요. 3000여명이 참석해주셨죠. 14군데 센터 중 3곳의 승합차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정치인이 되시면 국회 등이 무관심한 ‘비행소년 전용 공동생활가정’ 입법 등이 수월하실 텐데 정치할 의향은 없으십니까. “전혀요. 무슨 말씀인지는 압니다만 법조인이 법복 벗었다고 부와 권력에까지 욕심내면 안 되죠. 성서적이지도 않고요. 저는 비행소년을 비롯해 법조인이 되려는 후대들에게 모범이 되는 법조인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후기. 천 판사에게 폐가 안 되리라 믿고 그의 마지막 한마디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요? 사랑과 신앙이 아니면 변화가 안 됩니다.” 천종호 부산 아미동 산동네 출신. 부산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97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부산고등법원, 창원지방법원 등을 거쳐 현재 부산가정법원 소년부 부장판사. 2010년 비행으로 내몰린 아이들 재판을 맡으면서 매년 발생하는 10만명의 비행소년 선도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비행소년지원센터인 사법적그룹홈 14곳을 출범시켰다. 저서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가 있다. 부산 금정평안교회 피택장로. 부산=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출처: http://m.news.naver.com/hotissue/read.nhn?sid1=102&cid=304908&iid=1096690&oid=005&aid=0000813302
1125 no image 톨스토이가 전한 인생의 10가지 교훈 [2]
[레벨:17]정철헌
69 2015-10-06
1124 no image 에이즈와 동성애에 대한 강의
[레벨:17]정철헌
69 2016-01-12
1123 no image PPT준비와 발표에 도움될 만한 정보 파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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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2017-10-23
1122 no image 졸업연주 영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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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2017-11-18
1121 故 고토 겐지 씨가 생전 인터뷰서 전한 ‘간증’
[레벨:17]정철헌
39 2015-02-10
“선택 직면할 때 말씀 믿고 결단… 분쟁 지역 관심 가져 달라” IS에 의해 참수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 기독 언론인 고토 겐지 씨의 신앙과 사연이 알려지면서,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그는 시리아로 출국을 하루 앞둔 지난해 5월 27일, 일본 크리스천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취재하다가 목숨을 잃어버리거나, 누구에게 도 간호를 받지 못하고 죽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국에서 아버지 되신 주 예수님이 맞아주시면 외롭지 않겠다’는 다소 소극적인 생각으로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었다”면서 “우리가 매일 살아 있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간증했다. 세례를 받은 이후 고토 씨는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다고 한다. 아직 취재에 미숙했던 그가 당시 매우 혼란스럽던 체첸공화국으로 홀로 향했 다. 체첸행 비행기 옆에는 스페인에서 온 기자들이 있었다. 고토 씨는 어디에 묵을 것인지, 통역은 어떻게 할 것인지 아무 것도 정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그들은 처음 만난 젊은 일본인 언론인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었다. 당시 고토 씨는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체첸에서 취재를 하기는커녕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을 그 때도 느꼈다”고 했다. 고토 씨는 “시리아 및 분쟁 지역에서 취재 중 중요한 선택에 직면할 때가 있다. ‘어느 길로 가면 안전하게 목표를 수행할 수 있을까’ 고민한 다. 그럴 때면 항상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마 4:7)’는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선택을 해야 할 때 ‘나는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지 않 은가’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하나님 아버지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믿고 결단한다”고 했다. 고토 씨가 취재를 갈 때마다 놓지 않고 들고 다니는 성경이 있다. 그는 수십 년 전 A교회 목사에게 받은 이 성경을 늘 소중하게 보고 있었다 . 이 성경에는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시 54:4)’는 말씀이 적혀 있다. 겐지 씨는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일을 하고 있다. 비참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많은 현장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반드시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내전 중인 지역에) 관심을 계속 가져줬으면 좋겠다. 시리아에서 일어나는 일은 ‘먼 나라에서 일어난 것’이거나 ‘우리 일본인(혹은 한 국인)과는 관계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시리아 사람들이 제가 카메라를 돌렸을 때 이야기를 해 주었을까? 그것 은 그들이 이 영상을 통해서 일본(혹은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며 수많은 강연을 통해 강조하기 도 했다. 일본 크리스천투데이는 “지금 고토 씨의 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 슬픔에 빠진 가족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셔서 위로 와 평안을 주시기를 기도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국제 언론인으로 활약해 온 고토 겐지 씨는 영상제작회사를 거쳐 1996년 통신사 ‘인디펜던트 프레스’를 설립했다. 이후 세계 각국의 분쟁 지역, 빈곤과 에이즈 문제 등을 위주로 취재해 왔다. 그가 전한 현장 소식은 NHK, 아사히 신문, TBS 등의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크리스천투데이 / 강혜진
1120 no image 종교적이고 명상적인 현대음악 작곡가의 음악 [2]
[레벨:17]정철헌
32 2018-05-01
1119 no image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 [1]
[레벨:17]정철헌
80 2019-10-21
조선일보 기사인데, 한번 생각해 볼 만한 글이라고 생각되어 공유합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이어령 마지막 인터뷰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 입력 2019.10.19 07:00 | 수정 2019.10.19 14:20 "죽는 것은 돌아가는 것… 내가 받은 모든 게 선물이었다" "죽음 알기 위해 거꾸로… 유언같은 ‘탄생' 써내려가" "촛불 꺼지기 전 한번 환하게 타올라, 그것은 신의 은총" "나중 된 자 먼저 돼, 죽음 앞에서 당당했던 딸 좇아" "괴테처럼… 인간과 학문 전체를 보는 제너럴리스트로" 이어령 전 장관(87세). 생의 마지막 시간을 치열하게 쓰고 있다. /사진=김지호 기자 "이번 만남이 아마 내 마지막 인터뷰가 될 거예요." 이어령 선생이 비 내리는 창밖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주에 보기로 했던 약속이 컨디션이 안 좋아 일주일 연기된 터. 안색이 좋아 보이신다고 하자 "피에로는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운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품위 있게 빗어넘긴 백발, 여전히 호기심의 우물이 찰랑대는 검은 눈동자, 터틀넥과 모직 슈트가 잘 어울리는 기개 넘치는 한 어른을 보며 나는 벅참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살아생전, 이어령의 회갑연에서 두 장의 그림을 그려주었다. TV 상자 안의 말(馬) 그림과 TV 상자 안의 입술(말言이 터지는 통로) 그림이었다. 말(言)이라는 무기를 들고, 말(馬)달리는 자가 이어령이었다. 그가 쏟아낸 말은 과거를 달릴 때나 미래를 달릴 때나 주저가 없었다. 스킵(skip)과 시프트(shift), 축지법과 공중부양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서, 선생과 앉아 인터뷰하던 서재는 늘 ‘매트릭스’나 ‘인터스텔라’ 같은 SF 영화의 세트처럼 느껴졌다. 오늘 마주 앉은 방엔 책 한 권, 서가 한 칸 없이 고적했다. 기품이 넘치는 이태리산 적갈색 책상과 의자 한 벌. 한 면을 가득 채운 녹색 벽엔 선생과 교류했으나 먼저 세상을 뜬 세계의 지성들이 보내온 편지와 사진, 기사로 채워져 있었다. 루이제 린저, 이오네스코, 누보리얼리즘의 창시자 피에르 레스타니, 노벨문학상 작가 프랑수아 모리악 등등. 선생은 한 명 한 명 짚어가며 먼저 간 친구들과의 인연을 즐겁게 회상했다. 한국의 지성의 큰 산맥이었던 이어령. 22살에 문단 원로들의 권위의식에 비수를 꽂는 선전포고문 ‘우상의 파괴’로 유명 인사가 이후, 65년간 때로는 번뜩이는 광야의 언어로 때로는 천둥 같은 인식의 스파크로 시야의 조망을 터주었던 언어의 거인. 벼랑 끝에서도 늘 우물 찾는 기쁨을 목격하게 해준 우리 시대의 어른. 십수 년 전 이미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라는 아름다운 말을 선창한 분임에도, 당신이 제일 잘한 일은 문화부 장관 시절 ‘노견(路肩)’을 ‘갓길’로 바꾼 것이라고 했다. 오늘 선생 앞에 앉아 있으니, 갑자기 아득하여 88올림픽 개막식에서 그가 연출했던 잠실벌의 굴렁쇠 소년이 생각났다. 햇빛 내리쬐는 광장에 쓰였던 한 줄 정적의 시. 가을비가 대지를 적시는 오늘, 나는 그에게서, ‘죽음'이라는 한 편의 시를 듣게 될 터였다. 그는 항암치료를 마다한 채로 마지막 기력을 다해 책을 쓰고, 강연하고, 죽음까지 기록할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다. 머지 않아 ‘탄생'이라는 책이 나오는데, 이 인터뷰로 가까운 이들에게 "그동안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사진 촬영을 할 땐 "씽킹맨(Thinking Man)은 웃지 않는다"고 겁을 주더니, 인터뷰 내내 "쫄지 마!"라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죽음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 줄 오늘 처음 알았다. 그의 말 속에서 과거의 탄생과 미래의 죽음이 만났고, 그렇게 그의 주례로 ‘아름다워진’ 현재가 탄생했다./사진=김지호 기자 -건강해 보이십니다. "나같은 환자들은 하루에도 듣는 코멘트가 여러 가지야. "수척해 보여요." "건강해지셨네." 시시각각 변하거든. 알고 보면 가까운 사람도 사실 남에겐 관심이 없어요. 허허. 왜 머리 깎고 수염 기르면 사람들이 놀랄 것 같지? 웬걸. 몰라요. 남은 내 생각만큼 나를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도 ‘남이 어떻게 볼까?' 그 기준으로 자기 가치를 연기하고 사니 허망한 거지. 허허." 남겨진 생의 시간이 유한하여, 나는 선생께서 하는 말은 무엇이든 듣고 싶었다. 토씨 하나, 한숨 한 자락이라도 놓치기 싫어 "예전처럼 자유롭게 대화하자"고 부탁드렸다. -혼자 기다리며 녹색 벽에서 선생께서 젊은 시절에 신문에 쓰신 ‘모리악의 기침 소리'를 보았습니다. "(미소지으며)내가 프랑스에서 모리악 선생을 만나고 쓴 거지. 그때 그분이 여든이 좀 넘었을 때야. 생각해보면 지금 나보다 젊었는데 아파트 계단을 못 올라가셨어요. 내가 등에 업히라고 했더니 화를 내요. 나는 시체가 아니라고(웃음). 서양 문화는 부축은 받아도, 업히는 건 수치로 여겨요. 한국은 다르지. 상호성이야.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봐도 처음 만난 아들과 아버지가 업고 업혀서 냇물을 건너잖아. 사위가 장모를 업고 사장이 사원을 업어줘요. 다들 어릴 적 엄마 등에 업힌 기억이 있거든." -업어준다는 건 존재의 무게를 다 받아준다는 건데… 서양인에겐 익숙지 않은 경험이군요. "그들은 아이를 요람에서 키우니까. 태어나자마자 존재를 분리하지요. 땅에 놓으면 쥐들이 공격해서 아이를 천장에 매달아 두기도 했어요. 우리나라는 무조건 포대기로 싸서 둘러업잖아. 어미 등에 붙어 커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천성이 착해요(웃음). 서양은 분리가 트라우마가 돼서 독립적인 만큼 공격적이거든. 한국의 전통 육아는 얼마나 슬기로워요. 오줌똥도 쉬쉬~, 끙아끙아~ 하면서 어린애 말로 다 유도를 했거든." -요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번 뵐 때 ‘마지막 파는 우물은 죽음’이라고 하셨는데요. "죽음을 앞두면 죽는 얘기를 써야잖아? 나는 반대를 써요. 왜냐? 죽음은 체험할 수가 없으니까. 사형수도 예외가 없어요. 죽음 근처까지만 가지. 죽음을 모르니 말한 사람이 없어요. 임사체험도 살아 돌아온 얘기죠. 살아 있으면 죽음이 아니거든. 가령 이런 거예요. 어느 날 물고기가 물었어. "엄마, 바다라고 하는 건 뭐야?" "글쎄, 바다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 그걸 본 물고기들은 모두 사라졌다는구나." 물고기가 바다를 나오면 죽어요. 그 순간 자기가 살던 바다를 보지요. 내가 사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상태, 그게 죽음이에요. 하지만 죽음이 무엇인가를 전해줄 수는 없는 거라. 그래서 나는 다른 데서 힌트를 찾았어요." 1982년, 이어령은 일본인을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고 명명하며, 섬나라 사람들에게 정체성의 경종을 울렸다. 그 책은 일본에서 출간 5개월 만에 12만 부가 판매되었다./사진=김지호 기자 -어디서 힌트를 찾으셨나요? "죽을 때 뭐라고 해요? 돌아가신다고 하죠. 그 말이 기가 막혀요. 나온 곳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죽음의 장소는 탄생의 그곳이라는 거죠. 생명의 출발점. 다행인 건 어떻게 태어나는가는 죽음과 달리 관찰이 가능해요. 2~3억 마리의 정자의 레이스를 통해서 내가 왔어요. 수능 시험보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거지(웃음). 그런데 그 전에 엄마와 아빠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또 그 전의 조부모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계속 거슬러 가면 36억 년 전 진핵 세포가 생겼던 순간까지 가요. 나는 그렇게 탄생을 파고들어요." -죽음을 느끼면서 태어남 이전을 복기한다? 엄청난 속도의 플래시백인데요. 뇌에서 빅뱅이 일어났겠습니다. "허허. 그렇지요. 모험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먼 과거에 있어요. 진화론자의 의견에 비추어보면 내 존재는 36억 년 원시의 바닷가에서 시작됐어요. 어찌 보면 과학은 환상적인 시야. 내가 과거 물고기였을까, 양수가 바닷물의 성분과 비슷하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태아 형성 과정을 보면 아가미도 물갈퀴 자국도 선명하게 보이거든. 그렇게 계산하면 내 나이는 사실 36억 플러스 여든일곱 살이야. 엄청난 시간을 산 거죠. 죽음에 가까이 가고서 나는 깨달았어요. 죽음을 알려고 하지 말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과거로 가서 미래를 본다는 설명이 이상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는 이어령이다. 평생 창조적 역발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선물처럼 안겨준 사람. -선생은 오래전에 이미 ‘디지로그가 온다'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을 예언하셨어요. 미지의 죽음을 탄생의 신비로 푸니, 이번엔 또 뭐가 보이던가요? "난 옛날부터 참 궁금했어요. 왜 외갓집에만 가면 가슴이 뛸까? 왜 외갓집 감나무는 열린 감조차 더 달고 시원할까(웃음)? 그게 미토콘드리아는 외가의 혈통으로만 이어져서 그래요. 거슬러 가면 저 멀리 아프리카의 어깨 벌어진 외할머니한테서 내가 왔는지도 몰라. 허허. 이렇게 한발 한발 가면서 느껴지는 게 신의 존재예요. 최초의 빅뱅은 천지창조였구나…" 과학을 잘 모르면 무신론자가 되지만, 과학을 깊이 알면 신의 질서를 만난다고 했다. 죽음이 아닌 탄생을 연구하면서 선생은 점점 더 자신만만해졌다. 말하는 중간에 ‘쫄지 마'라는 악센트를 농담처럼 박아넣었다. "탄생을 연구하면 무섭지가 않아. 지적으로도 그래요. 아리스토텔레스 나와보라, 그래. 너는 생명을 알고 썼냐? 나는 이제 안다, 이거지(웃음)." 웅장한 지성./사진=김지호 기자 -그런데 요즘엔 탄생 자체를 비극으로 보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내 의지로 세상에 나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래서 안 태어나는 게 행복했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났으니 빨리 사라지는 게 낫겠다, 이렇게 반출생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건 무의미해. 제일 쉬운 게 부정이에요. 긍정이 어렵죠. 나야말로 젊을 때 저항의 문학이다, 우상의 파괴다, 해서 부수고 무너뜨리는 데 힘을 썼어요. 그런데 지금 죽음 앞에서 생명을 생각하고 텅 빈 우주를 관찰하면, 다 부정해도 현재 내가 살아 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어요. 숨을 쉬고 구름을 본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그 놀라움의 힘으로 또 무엇을 보셨나요? "생명은 입이에요. 태내에서도 생명은 모든 신경이 입으로 쏠려 있어요. 태어난 후엔 그 입으로 있는 힘껏 젖을 빨지요. 그 입술을 비벼 첫 소리를 내요. "므, 브…" 가벼운 입술 소리 ㅁ으로 ‘엄마, 물’을, 무거운 입술소리 ㅂ으로 ‘아빠, 불’을 뱉어요. 물은 맑고 불은 밝잖아. 그런데 그 ㅁ과 ㅂ이 기가 막힌 대응을 이루는 게 바로 우리 한글이에요. water와 fire로는 상상도 못할 과학이야. 놀랍죠." 어떤 주제든 언어로 시작해서 언어로 끝난다는 게 더 놀라웠다. -프로이트도 구강기를 정신분석의 첫 단계로 중요하게 보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프로이트는 뱃속 세계를 몰랐어요. 태어난 후부터 트라우마를 적용했는데, 기실 태아 때 더 많은 트라우마가 생긴다는 걸 그는 몰랐지.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사람의 후손 중 많은 사람이 폐소 공포증을 앓았어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유전은 내 조상의 정확한 이력서예요. 동양의 탄생학과 서양의 유전학은 동시에 말하고 있어요. 뱃속에서의 10개월이 성격, 기질, 신체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고. 스승이 10년 가르친 게 뱃속에서 가르친 10개월만 못하다잖아. 그래서 지혜로운 한국인은 태중의 아이를 이미 한 살로 보는 거예요." 그 사실을 프로이트가, 칸트가, 헤겔이 알았겠느냐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가슴뼈가 커지는 화통한 웃음에 공기 틈이 시원하게 벌어졌다. "그러니까 ‘쫄지 마!' 허허. 알고 보면 프로이트는 돌팔이였어요. ‘우상의 추락’이라는 책에도 있잖아. 다만 인간의 에고를 구조적으로 봤다는 데 의의를 두는 거죠. 인격은 다층적이라 의학뿐 아니라 인문학자의 상상력으로도 봐야 해요." 그는 필연적으로 생명이 넘치는 인간이었으나, 죽음과도 불화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어령이라는 말(馬)이, 이어령이 하는 말(語)이 생사의 최전선을 달려주어 고맙다./사진=김지호 기자 -철학자 김형석 선생은 인격의 핵심은 성실성이라고 했지요. 선생은 인격의 핵심을 뭐라고 보십니까? "하하. 핵심은 인격과 신격은 다르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흉내 내기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려고 했던 괴테가 그 인간다움으로 구제를 받았어요. 나는 유다가 베드로보다 예수님을 더 잘 이해했을 거라고 봐요.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유다는 교회가 아니라 피의 바다를 남겼어요. 그런데 인간의 인격은 유다에 가까워서 더욱 신격을 욕망해요. 그래서 고통스럽죠. 내 마음의 빅뱅을 그 누가 알겠어요? 한 소녀가 "이 남자와 헤어질까요?"라고 물으면 아인슈타인이 뭐라고 할까? 그는 물리적 상대성 이론의 대가지만,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몰라요. 각자의 마음은, 두뇌는 지구에서 하나예요. 기술로 찍어낸 벽돌이 아니거든. 내 몸의 지문도 마음의 지문도 세상에 하나뿐이지. 하나님의 유일한 도장이야. 내 마음의 지문에는 신의 지문이 남아있어요." -요즘 들어 신에 대해 더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에 대해 말할 지식도 자격도 없는 자들이지요.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베드로나 유다나 똑같아. 오래 관찰하면 알아요. 신은 생명을 평등하게 만들었어요. 능력과 환경이 같아서 평등한 게 아니야. 다 다르고 유일하다는 게 평등이지요. 햇빛만 받아 울창한 나무든 그늘 속에서 야윈 나무든 다 제 몫의 임무가 있는 유일한 생명이에요. 그 유니크함이 놀라운 평등이지요. 또 하나. 살아있는 것은 공평하게 다 죽잖아." -왠지 선생의 유니크함은 탄생부터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내 유니크함의 80%는 어머니가 주셨어요. 내가 돌상에서 돌잡이로 책을 잡은 걸, 어머니는 두고두고 기뻐하셨어. 그때는 쌀이나 돈을 잡아야 좋아했는데, 어머니는 달랐죠. "우리 애는 돌상에서 책을 잡고 붓을 잡았다"고 내내 자랑을 하셨어요. 내가 앓아누워도 어머니는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셨어요.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나는 책을 읽고 상상력을 키우는 인간이 됐어요." -언어적 상상력은 어린 시절에 길러진 것인지요? "그랬어요. 형님이 놓고 간 책, 대학생이 보던 한자투성이 세계문학 전집을 읽었어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상상으로 단어를 익혔어. 사전도 없었죠. 내 언어 조직의 세포가 그때 활성화된 거라. ‘눈이 내릴 때 루바시카 입었다’는 문장을 만나면 전후 문맥으로 그 겉옷을 상상해 보는 거야. 동화만 읽었으면 어림도 없었겠죠. 라틴어 고전도 그렇게 읽었어요. 나는 지금도 외국 여행을 가면 대실망이야. 어릴 때 소설을 읽으며 파리, 런던, 러시아를 다 상상으로 여행했어요. 내가 실제 만난 에펠탑은 내가 언어로 상상한 것보다 훨씬 작고 초라했지. 어릴 때 어려운 책을 읽으면 상상의 언어 능력이 발화돼요. 지금도 나는 모든 문제를 어원으로 접근해요." “처음부터 내 목숨은 빌린 거였어요. 바깥에서 저 멀리서 36억년의 시간이 쌓여 온 거죠.”/사진=김지호 기자 어원은 화석과 같아서 그 자신, 고고학자처럼 언어라는 화석 조각을 찾아 거대한 공룡을 그린다고 했다. 모든 게 어린 시절 독서의 힘이었다고. -글도 그렇지만 평생 말을 하면서 살아오셨어요. 지성에 막힘이 없고, 재미까지 있는 이야기꾼으로 사랑받으셨습니다. 선생의 뇌 구조가 궁금합니다. 질문이 어떤 방식으로 입력되고 흘러나오는지요? "하하. 나는 좌뇌 우뇌를 다 써요. 나의 최전선은 말이고 생의 의미야. 말이 나오면 언어의 전선이 형성되거든. 그 말에 관심을 갖고 검색을 하다 보면 수억 개의 정보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고를 수 있어요. 그런데 내가 존경하는 시인 이상은 좀 달랐어요. 이 사람은 수학적 언어를 썼어. 수학적 머리와 문학적 머리가 다 트였던 사람이야. 그래도 쫄지 마(웃음). 이상은 일찍 죽었잖아." -신기합니다. 어떤 천재는 단명하고 어떤 천재는 장수하는 걸까요? "오래 살면 생각이 계속 달라져요. 내가 존경하는 이들은 다 일찍 죽었지. 이상도, 랭보도, 예수도. 단명한 이들의 공통점은 번뜩인다는 것. 둔한 게 없어요. 면도날로 소를 잡았지. 소를 잡으려면 도끼를 써야 하는데, 이상은 날카로운 면도날로 단번에 그었어요. 반면 괴테는 80살까지 살았어요. 도끼날 같았지. 도끼로 우주를 찍어 내린 사람이었어요. 형태학, 광산학까지 했잖아. 천재는 악마적 요소가 있어요. ‘파우스트'를 봐요. 파우스트는 신학을 했던 성스러운 사람이었어요. 사색적인 그가 한계에 부딪혀 자살하려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만, 결국 신은 그를 구원해요. 나는 서른이 지나고 모델이 없었는데, 그때 잡은 게 괴테였어. 괴테는 바이마르의 재상을 지냈죠. 그런데 나도 문화부 장관을 했잖아. 바이마르 인구보다 한국 인구가 더 많으니, 나는 괴테한테 쫄지 않아요(웃음)." -선생이 한 말, 쓴 글, 해오신 일은 그 영역이 너무 방대해서 입이 벌어질 때가 많습니다. "괴테도 유니버설맨이었어요(웃음). 동과 서를 알았고 성과 속을 알았고, 인공지능인 호몬클루스까지 상상으로 썼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랬죠. 코끼리의 전체를 보려면 그들처럼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해요. 코만 만지고 코끼리를 봤다고 하면 엉터리야. 그렇게 인간과 학문의 전체를 보려고 했던 르네상스맨이 다빈치와 괴테였어요. 그런데 제너럴리스트들은 종종 욕을 먹어. ‘전공이 뭐냐’는 거죠. 허허." -전공의 구분이 없으셨지요. 언어학자이면서 언론인, 비평가이면서 소설가, 시인, 행정가, 크리에이터로 살아오셨어요. 최종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우물 파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단지 물을 얻기 위해 우물을 파지는 않았어요. 미지에 대한 목마름, 도전이었어요. 여기를 파면 물이 나올까? 안 나올까? 호기심이 강했지. 우물을 파고 마시는 순간 다른 우물을 찾아 떠났어요. 한 자리에서 소금 기둥이 되지 않으려고. 이제 그 마지막 우물인 죽음에 도달한 것이고." -죽음의 상태에 관한 공부도 하셨습니까? "했지요. 인간에게도 퇴화한 날개가 있어(웃음)." -무슨 말이지요? "새는 날짐승이잖아. 그런데 무거운 새는 못 날아요. 그때는 날개가 덮개가 되죠(웃음). 인간도 몸이 불으면 못 날아. 늙고 병들면 머리가 빠지고 이빨이 빠지고 어깨에 힘이 빠져요. 비극이지. 그런데 마이너스 셈법으로 몸이 가벼워지면 날아요. 고통을 통과해서 맑고 가벼워진 영혼은 위로 떠요. 덩컨 맥두걸이라는 학자가 실험했어요. 죽은 후 위로 떠오르는 영혼의 무게를 쟀더니 21g이었죠. 그러니 죽어갈수록 더 보태지 말고 불순물은 빼야 해요. 21g의 무게로 훨훨 날아야지요." -평생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동양에선 덧없는 것을 꿈(夢)이라 하고 서양은 판타지를 꿈(dream)이라 하죠. 나는 평생 빨리 깨고 싶은 악몽을 꿨어요.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빠져 외길을 걷는 꿈, 어릴 때 복도에서 신발을 잃고 울던 꿈, 맨발로 갈 수 없던 공포, 뛰려면 발은 안 떨어지고, 도망가보면 아무도 없는 험한 산길이었지요. 자기 삶의 어두운 면이 비치는 게 꿈이에요. 깨면 식은땀을 흘리고 다행이다 했어요. 현실에서 눈뜨고 꾸는 내 꿈은 오직 하나였어요. 문학적 상상력, 미지를 향한 호기심…" -요즘엔 어떤 꿈을 꾸십니까? "빅뱅처럼 모든 게 폭발하는 그런 꿈을 꿔요. 너무 눈이 부셔서 볼 수 없는 어둠. 혹은 터널 끝에 보이는 점 같은 빛. 그러나 역시 8할은 악몽이에요. 죽음이 내 곁에 누워있다 간 느낌... 시계를 보면 4시 44분 44초일 때도 있어요(웃음). 동트기 전에, 밤도 아니고 새벽도 아닌 시간이죠. 그 시간이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에요. 섬뜩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혼자라는 거였어요. 누구도 그 길에 동행하지 못하니까요. 다행히 그때 또 새롭게 깨달아지는 것이 있어요. 젊은 날 인식이 팽팽할 땐 몰랐던 것."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87년간 행복한 선물을 참 많이 받으셨지요? "그랬죠. 산소도, 바다도, 별도, 꽃도… 공짜로 받아 큰 부를 누렸지요. 요즘엔 생일케이크가 왜 그리 그리 예뻐 보이는지 몰라. 그걸 사 가는 사람은 다 아름답게 보여(웃음). "초 열 개 주세요." "좋은 거로 주세요." 그 순간이 얼마나 고귀해. 내가 말하는 생명 자본도 어려운 게 아니에요. 자기가 먹을 빵을 생일 케이크로 바꿔주는 거죠. 생일 케이크가 그렇잖아. 내가 사주면 또 남이 사주거든. 그게 기프트지. 그러려면 공감이 중요해요. 공의가 아니라, 공감이 먼저예요." -공의보다 공감이라는 말이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상품 경제 시대에서 멀리 왔어요. AI시대엔 생산량이 이미 오버야. 물질이 자본이던 시대는 물 건너갔어요. 공감이 가장 큰 자본이지요. BTS를 보러 왜 서양인들이 텐트 치고 노숙을 하겠어요? 아름다운 소리를 좇아온 거죠. 그게 물건 장사한 건가? 마음 장사한 거예요.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즐거움, 공감이 사람을 불러모은 거지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는지요? "딱 한 가지야.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그리스 사람들은 진실의 반대가 허위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했어요. 요즘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서 그래요. 자기가 한 일을 망각의 포장으로 덮으니 어리석어요. 부디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지금의 한국 사회는 밀물의 시대에서 썰물의 시대로 가는 시기라고./사진=김지호 기자 -지금의 한국 사회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미래를 낙관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밀물의 시대에서 썰물의 시대로 가고 있어요. 이 시대가 좋든 싫든, 한국인은 지금 대단히 자유롭고 풍요하게 살고 있지요. 만조라고 할까요. 그런데 역사는 썰물과 밀물을 반복해요. 세계는 지금 전부 썰물 때지만, 썰물이라고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갯벌이 생기니까요." 썰물 후에 갯벌이 생긴다는 말이 파도처럼 가슴을 적셨다. 두려울 것이 무엇일까. 이어령 선생은 7년 전 2남 1녀 중 맏딸 이민아 목사를 암으로 먼저 보냈다. 미국에서 판사 생활을 했던 딸은 목사 안수를 받았고, 위암 발병 이후, 수술하지 않고 시한부를 택해 열정적으로 쓰고 강연하며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요즘 따님 생각을 더 많이 하시겠습니다. 암 선고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더 생산적으로 시간을 쓰는 까닭도 따님과 관련이 있는지요? "(미소지으며)우습지만 성경에는 나중 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이 있어요. 내 딸이 그랬어요. 그 애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 벌벌 떨지 않았어요. "지금 나가면 3개월, 치료받으면 6개월" 선고를 듣고도 태연하니까, 도리어 의사가 놀라서 김이 빠졌어요. 민아가 4살 때였어요. 아내가 임신해서 내가 아이를 데리고 대천해수욕장 앞 호텔에 묵은 적이 있어요. 아이를 재우고 다른 방에 가서 문학청년들과 신나게 떠들었지. 그때 민아가 자다 깨서 컴컴한 바다에 나가 울면서 아빠를 찾은 거야. 어린 애가 겁에 질려서...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우리 애는 기억도 안 난다지만(웃음). 그랬던 아이가 혼자 미국에 가서 무척 고생을 했어요. 3년 만에 법대 나오고 외롭게 애 키울 때, 그날 그 바닷가에서처럼 "아버지!"하고 목이 쉬도록 울 때, 그때 나의 대역을 누군가 해줬어요. 그분이 하나님이야. 내가 못 해준 걸 신이 해줬으니 내가 갚아야겠다. 이혼하고도 편지 한 장 안 쓰던 쿨한 애가, "아빠가 예수님 믿는 게 소원"이라면 내가 믿어볼 만 하겠다, 그렇게 시작했어요. 딸이 아버지를 따라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딸의 뒤를 좇고 있어요(웃음)." 따님인 고(故)이민아 목사의 대학 졸업식 사진. -언제 신의 은총을 느낍니까? "아프다가도 아주 건강하게 느껴지는 아침이 있어요. 내 딸도 그랬죠. "아빠, 나 다 나았어요"라고. 우리 애는 죽기 전에 정말 충만한 시간을 보냈어요. 1년간 한국에서 내 곁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죠. 암에 걸리고 큰 선물을 받았어요. 죽음에 맞서지 않고 행복하게 시간을 썼어요. 내가 보내준 밸런타인데이 꽃다발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호텔 방에서 "아빠, 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라며 전화가 왔어요. 육체가 소멸하기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했고, 기도 드리고 쓰러져서 5~6시간 있다가 운명했어요. 어떤 환자라도 그런 순간이 와요. 촛불이 꺼질 때 한번 환하게 타오르듯이. 신은 전능하지만, 병을 완치해주거나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게 해주진 않아요. 다만 하나님도 인간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면 가엾게 여겨 잠시 그 자비로운 손으로 만져줄 때가 있어요. 배 아플 때 어머니 손은 약손이라고 만져주면 반짝 낫는 것 같잖아. 그리고 이따금 차가운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지요. 그때 나는 신께 기도해요."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옛날엔 나는 약하니 욥 같은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했지요. 지금은…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는 안 해요. 역사적으로도 부활의 기적은 오로지 예수 한 분뿐이니까. 나의 기도는 이것이에요. "어느 날 문득 눈뜨지 않게 해주소서." 내가 갈피를 넘기던 책, 내가 쓰던 차가운 컴퓨터… 그 일상에 둘러싸여 눈을 감고 싶어요." 그 전까지는 죽음의 의미, 생명의 기프트를 마지막까지 알고자 한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사형수도 형장으로 가면서 물웅덩이를 폴짝 피해 가요. 생명이 그래요. 흉악범도 죽을 때는 착하게 죽어요. 역설적으로 죽음이 구원이에요." 그러니 죽을 때까지 최악은 없다고. 노력하면 양파 껍질 벗겨지듯 삶에서 받은 축복이 새살을 드러낸다고. 빅뱅이 있을 때 내가 태어났고, 그 최초의 빛의 찌꺼기가 나라는 사실은 ‘수사'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라고. 여러분도 손놓고 죽지 말고,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끝까지 알고 맞으라고. "종교가 있든 없든, 죽음의 과정에서 신의 기프트를 알고 죽는 사람과 모르고 죽는 사람은 천지 차이예요." “겨울이 오고 있구나… 그것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사진=김지호 기자 한마디 한마디, 목구멍에서 빛을 길어 올려 토해내는 것 같았다. 녹색 칠판 앞에 앉아 선생이 마지막으로 판 우물물을 거저 받아 마시자니, 감사가 샘처럼 벅차올라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저는 나이 들면 과거를 반복해서 사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지성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선생의 말씀을 들으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지혜의 전성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소지으며)창을 열면 차가워진 산소가 내 폐 속 깊숙이 들어와요. 이 한 호흡 속에 얼마나 큰 은총이 있는지 나는 느낍니다. 지성의 종착점은 영성이에요. 지성은 자기가 한 것이지만, 영성은 오로지 받았다는 깨달음이에요. 죽음의 형상이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로 올지, 온갖 튜브를 휘감은 침상의 환자로 올지 나는 몰라요.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침대에서 깨어 눈 맞추던 식구,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한국말이 얼마나 <iframe src="http://adex.ednplus.com/xc/h/Fz55As4F?rurl=" width="250" height="250" frameborder="0" scrolling="no" topmargin="0" leftmargin="0" marginwidth="0" marginheight="0"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width: 0px; border-style: none;"></iframe>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마지막에 ‘END’ 마크 대신 꽃봉오리를 하나 꽂아놓을 거라고 했다. 피어있는 꽃은 시들지만, 꽃봉오리라면 영화의 시작처럼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을테니. "끝이란 없어요. 이어서 또 다른 영화를 트는 극장이 있을 뿐이지요(웃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18/2019101803023.html
1118 no image 지역균형 면접 파일
[레벨:15]정종현
24 2011-12-01
안녕하세요. 이번 주 토요일에 지역균형 면접시험을 봅니다. 오는 학생은 전체 1400명 정도 되고, 2배수가 옵니다. 많은 학생이 옵니다. 그리고 면접을 보러 오는 학생들이 마음이 가난해서 같이 말을 걸기도 쉽고, 말도 잘 들어줍니다. 물론 소원 있는 사람은 어느 때도 피싱하면 좋지만 말입니다. 피싱하면서 필요한 것이 저번에 민수기 양식을 먹으면서 배운 여호수아의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나안 정탐 뒤에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첫째로 심히 아름다운 일이고, 둘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능히 우리를 들이시리라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낙심하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여호수아를 칭찬하셨습니다. 피싱을 하고 양을 섬기는 것도 이 두가지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심히 아름다운 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능히 쉽게 이루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번 피싱때 믿음을 더해주셔서 피싱을 축복해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전조는 8시나 8:30까지, 오후조는 1시나 1:30까지 대기실에 입실하나 과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인문대, 자연대는 면접을 8:30~12:30, 1:30-5:30에 봅니다. 인문대의 학부모 대기실은 신양 1층입니다. 공대 면접시간은 10분입니다. 면접대기실의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단대 대기실(동) 오전, 오후 입실시간 ---------------------------------------------------------------------------- 인문대 1, 3, 5, 6, 7, 14 8:30, 1:30 사회과학대 16 8:20, 1:20 자연대 129, 56, 19, 500, 504, 25-1 8:30, 1:30 경영대 58 공대 39 8:00, 1:00 농생대 200 8:30, 1:30 사범대 10, 11, 13 8:00, 1:00 생과대 222 8:30, 1:30
1117 no image 저번주 Sam Lee 목자님 선교보고 메시지 script [6]
[레벨:15]정종현
101 2009-11-05
1116 no image 학생연합예배에 다녀온 소감 [3]
[레벨:15]정종현
87 2010-11-28
진우 목자님과 혜란 목자님과 저와 승대가 이번 학생연합예배에 다녀왔는데, 은혜받은 점을 나누고자 합니다. 전국에서 학생이 모였습니다. 저희는 11시 정시에 도착했지만 이미 가득 차 있어서 맨 뒤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사람이 더 와서 맨 앞에 의자를 더 놓으니 저희는 맨 앞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의 강의를 듣던 중에 아브라함에 대한 점이 은혜로웠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악하면서 성공하거나 선하면서 무능하게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제3의 길은 아브라함처럼 선하면서 유능하게 사는 것이고, 이것은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질문을 받는 시간에 우리는 계획을 세워야 하고, 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10년이 지난 뒤에 어떻게 하고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므로 우리가 세운 계획을 다 무너뜨리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은혜있었던 부분이, 한 선교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시니어 목자님들이 잘 못 한다고 폴 홍 선교사님께 한 시간 동안 불평을 하였습니다. 폴 선교사님은 더 불평할 게 있냐고 물어보시니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폴 선교사님은 10년 뒤에도 이렇게 불평만 할 거냐고, 10년 뒤에 시니어 목자님이 되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으셨습니다. 불평하신 목자님이 생각해 보시니 자기도 그렇게 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불평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좀더 성숙한 목자님이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남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 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선히 여기실 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전에 폴 홍 선교사님의 강의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시작되었을 때에 선교사님께서 승대와 진우 목자님과 저를 안아주셔서 놀랐습니다. 점심 먹고 쉬는 중에는 악수를 하시고 짧게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오후에는 이스펄전 목자님의 불을 내린 엘리야에 대한 말씀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를 죽이는 중에서도 아합 왕 앞에서 당당하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훈련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훈련은 까마귀가 날아오는 음식을 받아 먹으면서 숨어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실적인 문제를 통해서 훈련하십니다. 그는 이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참된 하나님이시고 동물을 포함해서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또한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 집에 머물렀는데, 사르밧은 시돈 땅이라서 자신을 죽이려는 바알 선지자들의 중심지였습니다. 엘리야의 믿음을 더 깊이 알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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