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관악5부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235 Team spirit 1일 정리보고. 파일 [7]
[레벨:16]한승대
67 2011-08-24
정리보고 1일, 제주도를 같이 가다. (개인적인감상입니다 오해가 있을수 있읍니다.) 11명이 사람들이 봉고를 타고 목포를 가게 되었읍니다. 센타에서 출발기도를 한 것은 4시 30분 무렵이었읍니다. 제주도에서의 프로그램들을 생각해볼때에 지금 자놓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 잠을 자고자 하였읍니다. 그러나 제 바로 옆에 계시던 영길목자님의 순수함은 절를 잠 못 이루게 하였읍니다. 제 뒤에 있던 세웅형은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깨어 계셨읍니다. 우리는 늦게 출발하였기 때문에 늦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나 봅니다. 영길목자님은 이런 우리를 대표하여 더 빨리 가라고 금철목자님께 말씀해 주셨고, 금철목자님은 넉넉하게 목포항에 도착하게 해 주셨읍니다. 목포항에서 우리는 먹을래 싸갈래 김밥을 맛있게도 먹어치웠읍니다. 저는 태용형의 칫솔을 빌려 이를 닦았읍니다. 홍렬형은 "바다다~"하며 소년같은 미소를 지으며 호화여객선 스타크루즈호에 그 첫발을 내딛으셨읍니다. 저는 타이타닉호의 축소판 같은 스타크루즈호에 감탄사를 연발하였읍니다. 우리네는 이십명 정도가 같이쓰는 3등석 객실에 둥글게 둘러앉아 하나됨에 관한 말씀을 공부하였읍니다. 말씀은 빌립보서 2장 1절에서 11절 말씀이었읍니다. 저는 말씀 공부중에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있는 세웅형의 다리털을 잡아당기며 말씀에 집중하도록 깨웠지만, 곧 배멀미로 인해 세웅형과 똑같은 행위를 하였읍니다. 세웅형은 그때 깨어 웃으며 제 다리털을 잡아당기어 저는 면목이 없었읍니다. 배멀미 덕분에 저는 말씀에 별롲 비중하지 모사였지만, 2장 3절 말씀을 통해 남에게 관심없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읍니다. 저는 여러가지 유전병으로 남에 대하여 피상적인 열등감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남의 장점은 무엇인지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제 단점과 장점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읍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찾음으로 남에게 관심을 가지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은 죄인의 정체성을 분명이 해야겠다는, 반쯤은 주제와 동떨어진 한마디를 남기고 저는 말씀공부를 끝내었읍니다. 우리네는 식당에서, 한솥도시락을 맛이 있게 먹었읍니다. 스타크루즈호에서 우리는 손가락 하나를 치켜새우며 "원스피릿!"을 많이도 외쳤던 것 같읍니다. 제주도에 내려서는 세웅형의 강추로 '신비의 도로'를 가보기도 하였고, 또한 한라산 등반의 몸풀기로 올레길코스를 따라 4시간 정도를 걷기도 하였읍니다. 올레길은 길을 안내 해주는 표지판이 없어, 올레리본이라는 파란색과 주황색으로 이루어진 끈과, 도로에 새겨진 화살표로 그 방향을 가늠합니다. 그러한데 우리는 올레길 걷기를 시작한지 30분만에 그것들을 놓치었읍니다. 사실 저는 우리가 가는 큰길이 아닌 다른 오솔길에서, 올레리본이 나부끼는 것을 보았고 후에 그 길이 옳은길로 판명되었지만 저는 그 사실을 늦게 말하여 아무도 되돌아가지 않았읍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정해진 길을 따라가기 보다는 "큰길로 가면 된다"정신으로 제일 큰 도로를 타고 걷게 되었읍니다. 땅에 화살표의 흔적은 있었지만 이길로 가지 말라는듯 검은 라카로 지워져 있었읍니다. 저는 천로역정에서 담을 뛰어 넘어오는 사람들이 생각이 났고 불안하였읍니다, 또한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길을 걷는것이 재미있기도 하였읍니다. 결국 45분 정도를 걸은 후에 옳은 길로 들어서기는 하였읍니다. 우리는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자 걷는 속도대로 선발대, 후발대,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중간사람들 3부류로 나뉘어 걸어 갔읍니다. 올레길에서 우리는 [저는 산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읍니다.] 말똥산 (말똥이 100m간격으로 쌓여있었음, 말을 10마리 넘게 보았음)을 등반하고, 반쪽계란산(산모양이 계란 반쪽)을 보았읍니다. 저녁은 저와 종현목자님이 삽겹살과 된장국을 하였고, 보석과도 같은 신 선생님이 제주도 한치를 10마리 잡아서 회쳐주셨읍니다. 한치는 살아있는 상태였고, 맛은 썩은우유처럼 고소하였읍니다. 맛이 상당히 신기하고 좋았읍니다. ===== 댓글에 회 관련 이야기가 나와서 맛을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모습은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 관리자..
1234 no image 도서이용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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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016-11-26
1233 no image 행복한 결혼에 대하여 [1]
[레벨:16]한베드로
89 2014-10-15
아래 글은 제가 읽고 퍼온 글인데, 믿음의 결혼이 행복한 결혼입니다. 억만장자 오나시스(1906~1975)의 후회 이 세상에 돈이 문제입니까? 어떤 것이 생애의 행복일까요?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의 행로를 살펴 보세요. 억만장자 오나시스는 무대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에게 반해서 '마리아 칼라스와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생각하다가 칼라스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8년이 되기 전에 주부로서 너무 모자라고 권태가 생겨서 이혼하고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과 다시 결혼했습니다. 재클린과 결혼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오나시스는 "내가 실수를 했다."고 하며 고민하다가 "파혼할 길이 없을까?" 하고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러나 재클린이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여 이혼도 못합니다. 재클린이 한 달에 24억 원이나 되는 돈을 펑펑 쓰니 오나시스는 화가 나서 혈압이 올라갑니다. 그 아들마저 비행기 사고로 죽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도 얼마못살고 죽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69세입니다) 끝까지 이혼에 합의 않던 재클린은 엄청난 오나시스의 유산을 거의 차지 했지요.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쓰레기로 던지고 간다." 하며 오나시스는 죽습니다. 천사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칼라스와 살아도, 최고의 여자 재클린과 살아도 후회뿐입니다. 그들은 사회적 명성은 높았을지 몰라도 한 남자를 행복하게하는 데에는 크게 미흡했습니다. 우리는 오나시스의 체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인 명성도 좋지만 그저 가정 살림 잘하고 따뜻이 가족 돌볼 줄 아는 알뜰, 살뜰한 주부가 최고가 아닐른지요?
1232 no image 책을 또 찾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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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2014-11-22
1231 no image 책을 찾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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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2014-11-08
1230 no image 메가처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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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2015-03-19
한국 교회 팽창주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신광은 목사·칼럼니스트 강만원… '한국의 메가처치' 비판 저서 내 "신자도 목사도 굶주린 듯 더 큰 교회 추구""성서에 바탕 둔 원형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17일 마주 앉은 ‘메가처치를 넘어서’의 저자 신광은(위) 목사와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의 저자 강만원(아래)씨는 대안적 교회상에 대한 생각은 달랐지만 신의 광대함과 교회의 거대함을 혼동하는 현재 모습이 “말기적 상황” “임계점을 넘어선 일탈”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 한국 개신교회의 성장세는 독보적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개척 50여년 만에 재적 교인 76만명을 기록한 세계 최대 교회가 됐다. 세계 50대 메가처치(Mega-church) 중 24곳이 한국에 있다. 성장에 관한 세계적 모델로 자리매김해 왔건만, 국내에선 환호는커녕 갈수록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된다. 이 괴리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소장신학자인 신광은 목사는 ‘메가처치를 넘어서’(포이에마)에서 메가처치를 “단지 큰 교회가 아니라, 충분한 규모를 이루고도 굶주린 듯 성장을 추구하는 병든 교회”로 정의하고 한국 교회 팽창주의의 원인과 부작용을 분석했다. 국내 1~4세대 메가처치의 실례와 그 욕망의 뿌리를 조목조목 다뤄 이 현상을 고민하려는 이들이 교재로 삼을만하다. 개신교 인터넷 언론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강만원씨는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창해)를 통해 교회가 외형주의와 목사우상화에 사로잡혔다고 일갈한다. 17일 기독교의 역사와 성경의 문체론적 분석을 통해 한국의 메가처치를 비판한 두 저자를 함께 만나 고민과 대안을 들었다. -메가처치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가. 신광은 목사= “출석신자 2,000명 이상인 곳이 전체교회의 1.7%다. 문제는 98.3%의 비메가처치 중 메가처치를 지향하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다. 잠재적 메가처치들이 부단히 성장하려 닦달하며 정글이 돼간다. 성도들은 자신의 도덕성과 관계없이 급류에 휘말리듯, 내 교회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속에 자기중심적이 되어간다. 신자들을 서로 빼오고, 사람들은 좋은 설교, 주일학교를 찾아 대교회에 몰린다. 신자는 신자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이기심을 키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더 이기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강만원씨= “20군데까지도 다니며 교회를 고른다. 설교가 좋은가, 목사가 이름있나, 음향ㆍ영상이 좋나, 건물이 크고 쾌적한지. 선택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주로 심적자극, 교회의 크기가 선택 기준이 된다. 사람 많은 교회에 가서야 ‘여기가 제일 은혜 있어’그런다.” -부작용은 무엇인가. 신=“교회가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준 예수의 모습과 점점 멀어진다. 맨 정신으로 신앙을 하며 교회에서 버틸 수 없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런 분들은 한결같이 나갈 교회가 없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한 세대 후 공동화가 나타난다.” 강=“외형을 택하고 본질, 즉 신앙을 버리게 된다. 사랑의 교회가 서초동에 수천억 원짜리 건물을 짓는데, 바로 옆에선 가난에 고통 받던 세 모녀가 동반자살했다. 새 건물 입장예배에서 ‘주님이 다 하셨다’고 한 오정현 목사의 말에 분노가 일었다. 왜곡이다. 예수는 이웃을 외면하고 성전을 지으라고 한 적이 없다.” -건축에 왜 집착할까. 강= “신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에 대한 확신 없이, 큰 건물을 눈으로 보고 싶어한다. ‘이렇게 큰 교회는 우연히 지어지지 않으며 이런 은혜를 받은 곳이라면 내게도 축복ㆍ구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 “80년대 이후 교회들이 건물로 신도를 선점했다. 건축을 성장동력으로 삼은 것이다. 일단 크게 짓고 성도들에게 빈 자리를 채우라고 독려했다. 경쟁적으로 건축에 계속 투자했다. 모든 교회에 대한 모든 교회의 투쟁 상태다.” -목회자들도 규모를 키우는 역할을 했나. 신=“메가처치 현상을 이끄는 주된 인식이 규모를 신성의 증거로 보는 것이다. ‘3년 만에 3,000명을 모으다니 그 목사님은 대단해’라며 신성을 부여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어마어마한 성장 앞에서도 사람들은 초자연적 신성을 느낀다. 이런 성장은 조용기 목사와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메가처치 담임목사에게 교회의 모든 자원이 집중된다. 성장유익이 목사에게 돌아오니 교회는 계속 성장을 추구한다. 그게 싫은 사람은 입다물고 떠나는 수밖에 없다.” 강=“카리스마나 리더십을 발휘할 순 있어도 신앙이 결여된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다. 집중된 권한을 누리며 변질된 신학을 강변하기도 한다. 성추행 혐의 전병욱 목사도 80명 규모 교회를 2만명 규모로 키워내지 않았나.” -메가처치가 교단과 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신= “몇 군데만 연합하면 한국 교회, 심지어 사회의 주요의제를 선점할 수 있다. 신학교도 메가처치가 교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면 골치 아파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도 영향력이 막강하고 보수ㆍ우경화에 힘을 보태는 실정이다. 교단도 손을 못 댄다.” 강= “메가처치가 돈줄이니 당연하다. 비신도들은 자꾸 그런 모습을 통해 개신교를 평가한다. 겸손 희생 낮아짐 섬김 등을 찾아보기 힘드니 전체가 비판 받는다.” -대안은 없을까? 신=“상황인식 자체가 대안이다. 그간 마음대로 건물 짓고, 재정 쓰는 자유의 무한확대 속에 교회가 컸다. 자기의지로 이 무한자유를 제한하겠다는 결단을 해야 공교회성, 공동체성이 회복된다. 그런 뜻을 담은 반(反)메가처치 신학 선언을 제안한다. 꾸준히 교회의 지향을 고민해야 한다.” 강=“철저하게 성서에 바탕을 둔 성서적 원형교회(아르케 처치)로 돌아가야 한다. 교황의 교회, 목사의 교회도 아닌, 목사와 평신도의 계급ㆍ차별이 없는 형제들의 교회에서 계명을 실천하는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
1229 no image "쿠오바디스" 쿠오바디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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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2015-10-17
1228 no image 부활의 확실성 [7]
[레벨:16]한베드로
146 2017-04-08
전에 정아브라함 목자님께서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읽어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판사를 하셨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의 증언이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수 있다고 말씀(제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말씀하신 내용을 정확하게 옮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취지로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을 하셨는데 아래 글을 읽으면서 다시 아브라함 목자님이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습니다. 놀라서 할 말을 잃은 교수부활이 단순한 전설이라고 생각했으나 모리슨처럼 생각을 바꾼 이들 중에는 세계 최고의 법학자인 사이몬 그린리프 박사도 있습니다. 그린리프는 하버드 법대를 키워낸 인물입니다. 그는 3권으로 된 법학의 걸작이자 “법 관련 서적 중에서 단연 독보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증거의 법칙에 대한 논문(A Treatise on the Law of Evidence)을 쓰기도 했습니다. 현대 미국의 재판제도는 아직도 그린리프가 구성한 증거의 규칙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린리프 교수는 하버드 재직 시절 학생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단순한 전설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신론자인 그는 기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 중 3명이 그의 증거의 규칙을 부활에 적용해 보라는 반론을 던졌습니다. 수없이 재촉을 받은 후에야 그린리프 교수는 학생들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증거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자신의 명석한 두뇌를 사용한 그는 부활이 거짓임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린리프 교수가 역사 기록을 깊이 파고 들어갈수록 예수가 실제로 무덤에서 살아 나갔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강력함에 할 말을 잃을 뿐이었습니다. 그린리프의 회의론은 인간의 역사를 뒤바꾼 사건에 의해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는 예수가 죽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련의 극적인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으며, 그 중에서도 제자들의 행동이 변한 점은 가장 혼란스러웠습니다. 한두명도 아니고, 제자들 모두가 예수의 부활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증거의 규칙을 사실에 적용한 그린리프 교수는 결국 결론을 내렸습니다. 놀랍게도 입장을 뒤바꾼 교수는 예수의 부활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직후 일어난 사건들을 말해 주는 가장 좋은 설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명석한 법학자이자 이전까지 무신론자였던 그에게도 부활한 예수를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부활에 대한 자신들의 신념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린리프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전도사의 증언 (The Testimony of the Evangelists)에서 자신의 마음을 바꾸게 만든 증거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린리프 교수는 책의 결론에서 부활에 대한 진실을 찾는 이라면 공정한 자세로 증거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는 그러한 증거에 너무나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편견이 없고 법정에서처럼 정직하게 증거를 검토한 사람이라면 자신과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부활했다는 결론입니다.
1227 no image 봉천동 단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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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2010-12-07
1226 no image 메이플라워호와 네덜란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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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2017-11-29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갔는데, 이분들이 미국에 가기에 앞서 먼저 네덜란드에서 10여 년 이상 머물렀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도 네덜란드에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심심할 때 읽으시라고 올립니다. 1. 영국을 떠난 이유 및 네덜란드 정착 과정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국교만이 인정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1607년 후반 당시로서는 상당한 관용이 허용된 네덜란드로 이주하기로 결정합니다. 처음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해서 몇 년 동안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100명의 청교도(당시에는 Scrooby Congregation으로 알려져 있었음)들은 레이덴(Leiden)시에 거주 허가를 요청합니다. 당시 레이덴은 직물, 양조 등 제조업의 중심지로서 네덜란드어를 거의 할 수 없었던 청교도들이 일자리를 얻기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에 종사하는데 높은 수준의 기술이나 네덜란드어 능력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레이덴에서 자리를 비교적 잘 잡을 수 있었고, 당시 청교도들을 이끌던 사람은 John Robinson 목사와 Willam Brewster라는 사업가였습니다. 여기서 청교도들의 규모는 300명 정도로 증가하게 됩니다. Brewster는 레이덴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고 또 Brewer라는 사람과 함께 출판사를 만들어 종교서적들을 영국에 수출합니다. 한편 Robinson은 1615년 레이덴대에서 박사과정에 등록하는데 이를 통해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당시 박사과정 이수자는 도시의 방벽을 밤에 순찰(Night Watch : 렘브란트의 그림이 생각납니다)해야 하는 의무, 이 방벽 유지에 참여해야하는 의무를 면제받았을 뿐만 아니라 포도주와 맥주 구입 시 면세 혜택을 받았습니다. 다만 다른 청교도들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Robinson 과 다른 세 사람이 레이덴 내 베드로교회 근처에 있는 부동산에 투자하여 21채의 집을 지어 그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2. 신앙적 정체성의 위기 (다시 떠나야 할 이유) 위에서 청교도들이 레이덴에 비교적 자리를 잘 잡게 되었다고는 하였으나, 점차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청교도들은 네덜란드의 관용을 고맙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 대다수가 원래 시골 출신이었고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기 때문에 소위 괜찮은 직업을 얻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또 네덜란드어를 제대로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1617년 경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장시간에 걸쳐 해야 했던 막노동으로 그들은 힘들어했고 또 어떤 이들은 향수병에 시달리다가 영국으로 돌아가 버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다가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네덜란드는 문화적으로 도덕적으로 너무 자유롭고 방탕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영국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일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그들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네덜란드 사람으로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청교도 부모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자녀들이 그들의 신앙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또 영국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점차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네덜란드 문화에 흡수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아이들 중 몇몇은 성년이 되면서 일자리나 다른 기회를 찾기 위해 모임을 떠나버립니다. Bradford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들은 사악한 본을 따라서 방종하고 위험한 길로 내던져지고 있다.” 모임이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80년 전쟁의 여파를 걱정하던 청교도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박해받지 않고 또 죄악의 유혹이 없는 장소를 찾기로 하는데, 이들은 그런 장소로 남아메리카의 북동부 지역을 고려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뉴잉글랜드 지역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80년 전쟁 :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1568-1648년간 진행된 전쟁 한편, Brewster가 계속해서 영국 왕정을 비난하는 책자를 마구 찍어서 영국에 보내다 보니 영국의 제임스왕은 사람을 보내 Brewster를 체포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는 체포되지 않았고 다만 그의 출판기계는 압수되고 또 그의 동업자였던 Brewer는 체포되어 14년형을 언도받습니다. 어쨌든 Brewster는 메이플라워호에 탑승하는데, 이 메이플라워호의 항해에 모든 청교도가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초 가장 젊고 강한 사람들이 선택되었던 것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들이 자리를 잡고 난 후에 다시 출발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항해에는 수십 명의 청교도들만이 참여했으며, 이들 외에 메이플라워호에 탔던 사람들은 영국에서 온 숙련된 선원들과 새로운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원하던 다양한 일꾼들이었습니다. 3. 남은 사람들 Robinson은 레이덴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청교도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모임을 인도하는데 최선을 다했으나 경제 및 문화적인 어려움들로 인해 고생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병들어 대서양을 건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1625년 그가 죽은 후에 여전히 레이덴에 머무르고 있던 청교도들 중 다수가 뉴잉글랜드로 떠나갑니다. 또한 계속 레이덴에 남은 청교도들 중 일부는 네덜란드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에 참여합니다. 이로부터 수십 년 내에 레이덴에서의 청교도 모임은 소멸합니다. 그러나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미국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깁니다. 이들의 후손들로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부시 대통령 부자, 오바마 대통령(물론 외가쪽이지요) 등이 있습니다.
1225 no image 안녕하세요..^^ [3]
[레벨:20]하여진
194 2004-04-09
1224 no image 전공수업 듣는 교실 검색하는 방법 [5]
[레벨:20]하여진
189 2005-04-18
http://snuhaksa.snu.ac.kr/ssg/Ssgindex.jsp전에 한 목자님께서 저희 과 선배 전공수업듣는 교실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알려드렸는데.. 인터넷으로 수강편람검색하면 어떤 과든 쉽게 알 수 있거든요.. 모르시는 분 계시는 것 같아서 올립니다. http://snuhaksa.snu.ac.kr/ssg/Ssgindex.jsp 1. 위 주소로 들어가셔서 (portal.snu.ac.kr 들어가셔도 오른쪽에 수강편람이 떠 있구요~ snu.ac.kr 가셔서 수강편람 검색하셔도 바로뜨는 걸루 알고 있어요) 2. 교양-전공-교직-일반 인덱스 중에서 전공을 클릭하시구요 3. '학과' 란아래 '선택'을 클릭하셔서 해당학과를 선택하시구요 4. '조회'를 (오른쪽 위) 클릭하시면 1학년부터 4학년 전공이 다뜹니다. (강의실이랑 시간두요) 5. (이건 다 아실 것 같지만 참고로..) 교과구분에서 전선은 전공선택이니까 안들을수도 있는데 전필은 전공선택이니까 졸업하기 전에 꼭 들어야 한는 거구요.. 꼭 해당학년의 전공수업을 듣는 것은 아니구요.. 주로 높은 학년이 아래학년 것 듣는 경우도 제법 있구요.. 1학년은 저희과 같은 경우는 2학년때 전공분리하려면 1학년 전공과목을 다 들어야 하기 때문에 1학년은 수강편람에 있는 과목을 다 듣습니다.. 6. '교시'(수업듣는 시간)은 1은 9시 시작, 2는 10시시작, 3은 11시 시작...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구요. 예를 들어 5,6,7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1시부터 3시45분 수업이란 뜻이구요 1-1.5는 1(9시)에 시작해서 1.5시간 수업한다는 이야기..(정확히는 9시-10시15분) 입니다.
1223 no image 조지뮬러의 일기 [2]
[레벨:20]하여진
87 2006-07-11
<조지뮬러의 일기> 5월7일 : 내가 매일 하는 일 중 으뜸가는 일은 주님과 교제하는 일이다. 나의 주된 관심사는 내가 얼마나 많이 주님께 봉사할 수 있는가가 아니고, 나의 내적 자아가 어떻게 하면 좀더 많은 영적인 영양공급을 받을 수 있는 가 하는 것이다. 나는 믿지 않는 사람들 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하고, 성도들의 믿음을 북돋아줄 수 있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도 있고, 또한 나 자신의 다른 면으로 주님의 자녀로서 일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주안에서 기뻐하지 않고, 나날이 나의 내적 자아가 영 적인 영양 공급과 힘을 얻지 못한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이 사역을 그릇된 정신으로 이끌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해야 했던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이었다. 그것 을 통해서 나의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때로 는 경고와 채찍질도 받게 되는 것이다. 대개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 어나면 제일 먼저 기도를 시작한다. 그러나 정신집중이 안 될 때는 흔히 15분에서 1시간 정도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노력 하곤 했었다. 더 이상 나에게는 이런 문제는 없다. 나는 나의 아버 지이자 친구이신(내가 그럴 자격은 없지만) 주님께 귀중한 말씀을 통해 나에게 보여주신 것들에 대해서 말씀드린다. 나는 가끔씩 신앙 생활의 초창기에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 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에 대해 놀라곤 했다. 외적인 자아가 먹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듯이 내적 자아 또한 그렇다. 물 이 수도관을 통과하듯이 우리 마음속을 통과만 하는 것처럼 단순 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데에 그쳐서는 안된다. 우리가 읽는 성경 구절을 묵상하고 또한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새겨넣어야 하는 것 이다. .... 한국 UBF홈페이지에서 본 글입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과 깊이 교제하며 기쁘게 수양회 역사를 섬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222 no image God with us ^^ [5]
[레벨:20]하여진
135 2006-12-15
Matt.1:23 "BEHOLD, THE VIRGIN SHALL BE WITH CHILD, AND SHALL BEAR A SON, AND THEY SHALL CALL HIS NAME IMMANUEL," which translated means, "GOD WITH US."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半呂)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 "GOD WITH US." ^^
1221 no image 목자의 믿음과 심정 [3]
[레벨:20]하여진
89 2008-02-14
우리가 복음 역사를 섬기려면 길을 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양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려고 하면 반드시 장애물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장애물로 인해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장애물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장애물에 도전하여 극복해 나갈 때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믿음의 용사로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새 역사 창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역사 창조는 결코 순리적인 방법으로 되지않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최초로 북극을 탐험한 Robert E.Peary 는 다섯번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는 동상으로 인해 발가락이 8개나 짤리고 병상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이때 벽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길을 찾고야 말겠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만들겠다. 그는 결국 믿음으로 도전하여 여섯번만에 성공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계 복음화를 위해 여러번 로마에 가고자 했으나 그 때마다 길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치 않고 계속해서 쉬지않고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쇠고랑을 차고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서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했습니다. 사람들은 복음 역사를 이루고자 할 때 환경이 어렵고 양들이 소원이 없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환경이나 양들 문제가 아니라 목자의 믿음과 심정 문제입니다. 목자에게 믿음과 심정이 있을 때 불가능이 없습니다. ============ 이번 주 EBF 말씀공부자료를 찾으며 메세지를 읽는데 이 부분이 은혜로웠어요. 바로 어제 식사교제 나누고 관계성을 잘 맺었다고 생각한 양이 OT이 후 연락이 되지 않아서 속이 상하고 낙심이 되었는데 메세지를 읽으며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기도하고 도전해야 겠다고 생각해 보게 돼요..
1220 no image 일용할 양식부에서 알려드립니다^^ [1]
[레벨:20]하여진
37 2008-09-07
1219 no image 일용할 양식부에서 알려드립니다. [9]
[레벨:20]하여진
112 2008-11-30
1218 no image 일용할 양식부에서 알려드립니다. [1]
[레벨:20]하여진
46 2009-02-26
1217 no image [펌] 인생의 무게 [2]
[레벨:20]하여진
78 2009-03-02
그냥 공부만 했다. 인생이 뭔지에 대한 성찰 따위는 내 나이때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고등학교때, 좋아하는 공부만 했다. 아마도 그렇게 사춘기는 오려다 말아버렸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 여러가지 동아리도 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역시 내 밥벌이는 공부라는 생각에 아무래도 공부가 1순위였다. 대학신문에서 서울대생들을 사춘기를 미루고 대학때 사춘기를 맞이한다는 기사도 읽었지만, 나에게, 나의 인생에서 그런 질풍 노도의 시기는 없었다. 착실히 나에게 주어진 일을, 우선순위를 매겨가며 해나갔을 뿐. 몇 해 전, 졸업을 하고 직장을 갖게된 나는 최근에 갑자기 멍해져버렸다. 사실 난 지금까지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 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 따윈 없었다. 그냥 너무나 평탄하게... 수학잘해서 자연계를 선택했고 과학 잘해서 공대갔고 전공공부 잘해서 그에 꼭 맞는 회사에 들어갔다. (어쩌면 그리 잘하지 않았는 지도..) 그리고 회사생활을 하던 중, 그 옛날 듀스가 불렀던 노랫말처럼.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하는 고민들... 웃길진 모르겠지만 정말 문득 그런생각들이 들어왔다. 난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또 그렇지 않다면 그러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웠는지... 물론 아니오. 나이도 적지않게 먹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 나는 내가 진정하고 싶은게 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당연하겠지만 결론은... 이건 아닌 것 같다...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고 싶은게 그다지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 대안책을 찾지 못해서 였을 지 모른다. 자우림의 오렌지마멀레이드 가사속의 주인공 처럼. 강렬히 나를 이끄는 그런 것을 나는 모르겠다. 이제 곧 여자친구와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며 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에 대한, 아니 내 스스로에 대한 허무감을 채울 길이 없다. 나는 내가 풀어야할 숙제들을 너무나 오래 뒤로 미뤄버렸다. 왜 선생님은 답도 다 채우지 않은 탐구생활 책에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주셨을까. 풀지않은 문제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니 갑갑하다. 내가 읽었던 그 많은 책들은 모두다 제3자의 이야기였을 뿐, 문학적 가치로만 느껴졌을 뿐. 난 내 스스로에게 투영시켜보거나 비교따위는 타부시 했다. 그게 내가 어쩌면 지금까지 이렇게 얕은 자기합리화로 별 문제 없이 살아온 이유일지 모르겠다. 여기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글을 쓰는 이유는, 그래도 나같은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내가 이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했을 때, 모두들 강도는 달라도 다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고 공감해왔다. 돈을 쫓아, 명예를 쫓아 열심히 뛰어다니던 친구들 마져도, 사실 우리가 인생에서 얻어야할 나 자신에 대한 고민, 혹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한 성찰에 대한 답은 외부에서 찾아버렸다고 한다. 내가 강렬히 원하는게 없어서 다른 이들이 좋다고 하는 거, 해보라고 하는 것에 집착해온 삶들... 허무하다. 내 인생의 무게는 정말 1g도 안될지도... 아무리 거울을 봐도 내가 보이지 않는다... -------------------------------------------------------- 서울대 커뮤니티 포털 snulife 에서 한 학생이 익명으로 쓴 글이예요 :)
1216 no image 두둥~ 3,4월 일용할 양식 시상^^ [3]
[레벨:20]하여진
67 200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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