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관악5부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175 no image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 [3]
[레벨:2]관리자
77 2003-06-16
1174 no image 신기한 시력 테스트^^ [7]
[레벨:2]관리자
117 2003-07-30
1173 no image [동행]주님은 어디 계시는가 2 (원제:거리)
[레벨:2]관리자
61 2003-08-11
1172 가을맞이 홈페이지 새얼굴을 먼저 소개합니다. 파일 [4]
[레벨:2]관리자
44 2003-08-21
1171 no image 가을학기 새홈페이지를 오픈 합니다.
[레벨:2]관리자
34 2003-08-24
뭐 크게 달라진건 없습니다. 디자인만 좀 바뀌고 너저분한 게시판을 통합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색배합이나 이미지를 적절히 섞어 넣어서 보기 좋게 해보려고 애많이 썼습니다. 휴~ 디자이너가 아니라서... 앞으로는 정수목자님 동생이 웹디자이너라고 하는데 이분의 도움을 좀 빌려볼려구 그럽니다. 그러면 훨 나아질 겁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계속 기도부탁합니다. 혹시 홈페이지를 통해서 나누고 싶은 컨텐츠가 있다거나 아니면 홈페이지에 있었으면 하는 컨텐츠가 있으시면 주저없이 게시판 [건의]란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또는 개선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기 바랍니다. 홈피를 자주 애용해주시는 고마우신(?) 몇몇 SUPER USER 분들(말안해도 아시죠? 누군지..) 에게 한가지 부탁드립니다. 혹시 이용하다가 발견되는 오류사항이나 버그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혼자만 알고 계시지 말고 필히 관리자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첨부한 자료가 다운로드가 안된다라든가 글을 올려도 안올라 간다든가 같은 일이 있으면 즉시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모르고 그냥 있기 일쑤거든요..^^ 참 오늘 되게 말이 많았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구요. 그럼 이만 줄이지요...
1170 no image 무우로 생선비늘 벗기는 방법 [1]
[레벨:2]관리자
34 2003-09-19
1169 no image 관악산을 다녀와서 [5]
[레벨:20]김기중
176 2005-09-19
오늘 인금철목자님의 인도하에 왕신수목자님(성함이 맞지요? 제가 아직 센터 목자님들의 성함을 다 외우지 못합니다. ㅠ.ㅠ Faith 목자님 인건 아는데 ^^)과 임성택목자님 그리고 저 이렇게 넷이서 관악산 정상을 밟았습니다. 관악산에 살면서도 오늘 관악산을 두 번째로 올라갔습니다. 오늘이 두번째인 이유도 지리산에 올라가기 일주일전에 목자님들과 갔다왔기 때문입니다 ^^ 저번에 올라갔던 코스와 오늘 갔던 코스 모두 태극기가 있었지만 그 난이도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번에 갔던 코스는 지리산 등반하듯이 열심히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지만 오늘 갔던 코스는 곡예를 넘듯이 경사가 급한 바위를 타고 넘는 난코스였습니다. 301동 뒷길로 올라갔는데요 이 길이 좀 험하다는 이야기를 전에 들은적이 있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근데 막상 올라가보니 그 길을 오르내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정말 대단하시더라구요 저와 인금철 목자님은 새로 산 등산화를 신고 등산화의 장점을 확실히 느끼며 다녀왔지만 왕신수 목자님은 미끄러운 신발로 인해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임성택 목자님은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능숙하게 산을 탔습니다. 제가 감탄을 하다가 나중에 임성택 목자님의 신발을 확인해보았는데요 바닥은 요철이 거의 없이 매끈 하던데요 관악산 날다람쥐의 전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 이번 등반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왕신수 목자님께 들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지리산을 다녀오면서 느꼈던건 주님께서 보호해주시고 계신다는 느낌이었는데요 (지리산에서 하산길에 위험한 고비를 많이 넘겼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역시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다만 지리산에서 한번 경험했기 때문에 주님이 보호해주실거라는 것을 더 확신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편안한 산행길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총 6시간이 걸린 등반길이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길을 잘못들었고, 길을 개척하며 내려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다만 가끔씩 보이는 쓰레기를 보며 이곳이 사람이 다녔던 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많아 번잡한 길보다 오히려 좋은 점도 있더라구요 ^^ 다만 계곡길을 따라 내려오느라 매우 바위가 미끄러웠고 인금철 목자님께서 뒤로 넘어지셔서 하마터면 위험할 뻔 했습니다. 정상에 올라가니 사람들이 각자 싸온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고 내려오면서도 식사하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삼겹살을 가져갔으므로 구워먹을 곳을 찾고 있었지만 아무도 고기를 굽는 사람이 없어서 좀 걱정이 되었습니다. 내려오면서 적당한 곳을 찾아 고기를 구워먹었는데, 성택 목자님이 심히 불안해 하셨습니다. 아마도 산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등의 취사는 금지되어있지요? ^^ 그리고 산에서 술을 마시며 크게 웃고 떠드는 한 무리의 아저씨와 아줌마를 보았는데요 그들에게 복음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인금철 목자님의 글처럼 '이 시대는 누구를 필요로 하는가' 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정상에서 기도드린 바 처럼 하나님이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어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잘 감당하고 자신의 앞에 놓인 문제들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인도해 주시고 섬겨주신 인금철 목자님과 오늘 동고동락했던 임성택 목자님, 왕신수 목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오늘의 등반을 잘 감당했듯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읻음의 경주를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168 no image 은혜로운 수양회.. [5]
[레벨:20]김기중
116 2005-10-31
이번이 여름수양회 담으로 간 두 번째 수양회었는데요 역시 수양회는 참 은혜로운 것 같습니다 말씀공부하고 말씀듣고 찬양만 하면 되는 시간들... 정말 천국잔치라는게 실감이 나요~ (근데 밤에 뜨거워서 잠을 잘 못잤어요.. 지옥불이 연상되더군요 ㅡㅡ;) 믿음목자님의 말씀처럼 일년에 4번 수양회를 가니 한 학기를 2번에 걸쳐 나눠서 사용하고 때마다 영적 충전을 하게 되니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또한 동역자분들과 함께 교제하는 시간도 더 없이 좋구요~ 저는 기드온이 어떤 분이었는지 잘 몰랐고 유기드온목자님의 기드온은 어떤 뜻일까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합당한 내면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논문을 쓰기위해 idea 를 주시옵소서~ 라고 매일 기도하면서도 마치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처럼, 하나님이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 저에게 idea 를 주시기만을 기다렸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스펄전강사님의 메시지 중에 '잘 거 다자고 먹을거 다 먹으면서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써주시옵소서라고 해서는 안된다' 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뜨끔하더군요. 석사논문이 한달여 남은 상황에서 꼬박꼬박 7시간 이상을 다 자는 것이 안그래도 계속 맘에 남아 꺼림직했었는데.. 게으르고 나태한 내면을 주님께서 기드온과 300용사와 같은 내면으로 빚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마 지금의 논문감당도 그런 훈련의 일환이겠지요? 저와 여러분 모두 충만한 spirit 으로 남은 학기에서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1167 no image 두 가지의 양식 [2]
[레벨:20]김기중
87 2005-11-01
1166 no image 문자 많이 보내기~~ [2]
[레벨:20]김기중
75 2006-02-20
1165 no image 이번 2월 UBF 소식지에..
[레벨:20]김기중
63 2006-02-22
1164 no image 성령에 대한 관점..
[레벨:20]김기중
47 2006-03-13
ubf.or.kr 에서 이사무엘목자님의 특강 '성령론'을 읽다가 아래와 같은 글이 와닿아서 올려봅니다. ..............생략 우리가 만일 성령님을 감화력이나 능력 정도로 생각한다면, 앞 강의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령을 붙들어서 내가 목적한 바를 이루는데 일하게 하실 수 있을까?” 이런 비슷한 태도를 갖게 됩니다. 내가 무엇인가 주님을 위해서 하고자 하는데, 예를 들어 제자를 열매 맺는다든지, 말씀을 잘 전하여 전도를 한다든지, 혹은 해결되지 않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성령께서 도와 주십시오”하고 간절히 구합니다. 이것이 잘 못되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의 무의식 세계 속에서, “성령님을 나를 도우시는 조력자”로서 모시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삼위의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신, 전지 전능하신 성령님을 의식한다면 태도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성령님을 붙들어서 원하는 바를, 혹은 기도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물론 그 이루고자 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모두 주님을 위한 고상한 것일 수 있습니다”하는 이런 태도와, “성령님께 어떻게 하면 내가 완전히 붙잡혀서 성령님이 나를 이용하실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구가 될까?” 하는 태도는 굉장히 다른 것입니다. 연약하고 허물 많은 인간이 성령님을 통해서 태산이라도 한 번 옮겨 보겠다는 생각과, 성령 하나님께서 이 연약하고 허물진 죄인이라도 이용하셔서 태산을 옮기시기를 바라는 것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분명하게 인식을 할 때는 성령님을 통해서 뭔가를 해보고자 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 앞에 내가 어찌하면 복종할 것인가, 성령님이 나의 존재와 삶에 주인이 되심을 인정하고 성령님에게 모든 주권을 이양하는 자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마음가짐, 의식 무의식 세계에서 이런 자세를 갖게 되는데,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성령님을 구하고, 성령님과 동행하길 원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고,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고자 하는데, 또한 성령님이 우리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며 도우시고자 하시는데 왜 무기력 가운데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무능력 가운데서 주저앉을 때가 많은가? 그것은 깊이 생각해 보면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자기가 주(主)가 되기 때문에, 자기가 자신의 인생의 Lord가 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성령님께서 내 인생의 Lord가 되심을 인정하고, 믿고, 정말 신뢰한다면, 절망 할 일도 없습니다. 전능하신 성령께서 못 하실 일이 없고, 성령님께서 모르는 곳이 없고, 성령님이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에게 우리 자신을 100% 의탁하고 정말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구가 되어서,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아서, 그리고 성령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가면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성령님이 예배의 대상이심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이여 오소서, 하나님 아버지 성령님을 부어 주소서!” 라고 기도하는데, 이때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성령님을 어떤 능력의 소스, 감화력, 파워로 인식하고 이런 것을 나에게 달라 하는 무의식세계의 생각을 가지고 내가 기도하는가, 아니면 정말 “나의 창조주요 나의 구원자요 나의 영원한 경배의 왕이신 성령 하나님이시여 저에게 오시옵소서! 제가 무릎 꿇고 성령 하나님께 경배 드리겠습니다. 예배드리겠습니다.” 라고 구하는가, 성령님을 구할 때 능력을 생각하는가 아니면 예배를 생각 하는가, 순종과 복종을 생각 하는가 우리 자신을 체크해 봐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전자, 곧 성령님을 하나의 수단, 도구, 능력의 원천으로 생각하는데, 우리가 무지해서 그렇게 의식화 되어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불러서 우리의 뜻을 이루는데 조력자로 삼을 정도의 그런 분이 아니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 자신의 온전한 헌신을 받으셔야 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제 삼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자세는 성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 절대적인 신뢰, 자기 자신을 드리는 헌신. 그리고 찬송, 이것이 우리가 성령님을 향하여 가져야 될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우리 찬송가 2장에 보면, “성부 성자 성령께 찬송과 영광 돌려 보내세. 태초로 지금까지 또 영원토록 무궁토록 성삼위께 영광! 영광!“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성령님께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당연한 말을 왜 이렇게 길게 하느냐?” 하시는 분도 있겠으나, 실제 삶이나 우리의 무의식 세계를 진실되이 돌아보면, 성령님이 삼위 하나님의 반열에 같이 계시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정말 섬세하게 자기 자신의 영성, 성 삼위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점검을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령님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지게 되고, 그 때 우리는 성령님께서 정말 우리를 통해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성령을 통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서 성령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섬기는, 정말 자유로우신 성령님께서 일하시는데 쓰임 받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생략
1163 no image B.A. 소감의 큰 은혜 - 오직 기도로만 [6]
[레벨:20]김기중
118 2006-03-19
이번 B.A. 가운데 많은 양들을 보내주시고 관계성을 맺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B.A. 소감을 통하여 정말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에 하니님게서 소감을 작성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면서 목자님들이 기도가 많이 쌓여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소감을 작성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마가복음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말씀처럼 모든 일에는 기도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하루는 라이프를 작성하며 하루 종일 열심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노력했지만 열매가 없었습니다. 목자님은 '이것은 머리로 작성한 것' 이라고 바로 알아보셨고 다음 날 다시 작성했을 때는 간절히 때마다 기도하고 작성함으로써 부족하나마 열매를 맺고 라이프를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저녁 11시 정도만 넘어가면 정신을 못차립니다. 그래서 사실 석사논문을 작성하면서도 한번도 밤을 샌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소감을 작성하면서 전혀 피곤하지도 않게 밤을 새었습니다. 근데 더 신기한 것은 소감을 준비하기 전 몇 일간 매우 몸이 피곤한 상태가 지속되었었는데 소감을 작성하며 밤을 새면서 오히려 몸이 건강해졌습니다. 이를 통해 아무리 선한 의도로 하나님의 역사를 열정을 다해 헌신하더라도 그 이상의 간절한 기도를 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모든 것은 기도로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 자체도 정말 큰 십자가이기 때문에 사실 기도를 하는 것도 참 어렶습니다. 아마 다들 아시겠지만 그냥 제가 요즘 많이 깨닫게 된 것은 기도를 하지 못하겠으면 간절한 기도의 영을 주시기를 기도하면 기도의 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되면 그 다음은 실제 문제를 들고 나아가면 되겠죠? 저는 요즘 정말 안되는 것이 새벽기도 인데.. 사실 새벽기도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정작 마음에는 '정말 새벽기도를 하고 싶다'라는 간절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게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제 깨닫게 된 것이 '그러면 새벽기도를 나가게 해달라고 습관적으로 기도하지 말고 새벽기도를 나가고자 하는 간절한 심령을 주시도록 기도하자'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나가고자 하는 소원이 생기면 이번에는 진짜로 새벽기도를 나갈 수 있게 해주십사 기도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번주에 한번 도전해 보려 합니다. 먼저 간절히 새벽기도를 나가고자 하는 소원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그 다음에 소원이 생기면 새벽기도를 실제로 나가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뭐든지 그 가장 바닥부터 기도해서 거기부터 쌓아나가면 무엇이든지 기도로 해결 할 수 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를 해야해서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기도는 하지만 사실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 '공부를 열심히 하고자 하는 심령부터 주시도록' 기도하면 열심히 하고자 하는 심령을 주시고 그러면 그 다음에는 '열심히 하도록' 하는 기도를 하면 되겠죠? 이건 모 형제님의 이야기 인데요 모 형제님이 '소감과 양식의 필요성을 도무지 몰라서 못쓰겠다' 라고 느끼는 가운데도 소감투쟁을 하였지만 그럼에도 도무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는데.. 얼마 전 정말 간절히 그 필요성을 구하는 기도를 때마다 하면서 양식을 먹다가 하나님께서 그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소감투쟁을 몇시간을 하더라도 기도를 간절히 하지 않으면 절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소감을 쓰기전에 기도도 해야하지만 소감쓰면서도 계속 중간중간에 기도를 해야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목자님들은 다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저같은 입장에서는 이런 걸 누가 좀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글로 올려봅니다. 피싱을 할때도 피싱을 하면서 중간중간 계속 기도를 해야하고 양에게 전화 한통을 하기 전에도 간절히 기도를 해야하며 심방을 갈 때도 가기 전에 뿐만 아니라 가면서도 계속 기도를 해야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헌신해도 간절한 기도가 없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근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각자 개인기도를 아마 간절히 하시겠지만 전체적인 기도의 역사가 그다지 뜨겁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실 기도를 정말 열정적으로 하게되면 그 근처에만 있어도 그 스피릿이 느껴질텐데, 합심기도 시간에는 저는 그 스피릿이 잘 안느껴져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간절하고 열정적인 기도의 영과 양을 향한 간절한 상한 목자의 심정을 위해 기도하면 정말 그 심정과 스피릿으로 기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센터가 열정적인 기도로 인해 홀활 타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양들의 영혼을 위해 울부짖는 상한 목자의 심령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얼마전 한 신앙서적을 읽었는데 '인간은 스스로의 결단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흔히 결단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이렇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제가 Abe 소감모임 초기에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난 이 말씀처럼 살아야지'라고 많이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그 말씀에 비추어 살 수 있도록 성령께서 제게 임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는 게임을 끊으려 해도, 티비를 안보려 해도, 정욕의 마음에서 자유하려 해도 자신의 결단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게임을 끊고자 하는 소원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게임을 끊게 해주십사 기도해도 해결은 되지 않습니다. 먼저 게임을 끊고 싶은 소원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난 뒤에 정말로 게임을 끊고 싶은 소원이 생기면 이번엔 게임을 진짜 끊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절대 결단하려고 하지 마세요. 절대 불가능입니다. 결단을 할 수 있는 간절한 심령을 주시도록 기도하고 난 뒤에 심령을 주시면 결단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 됩니다. 차마 기도조차 못하겠으면 간절한 기도의 심령을 주시도록 기도하면 주십니다. 사랑할 수 없으면 사랑하는 맘을 주시도록 기도하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결단하고 투쟁하면 열매가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기도가 부족한 사람이지만 때마다 주님께 간절한 기도의 영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해서 기도로 하나님께서 제게 임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육사에서도 많은 정신적, 육체적 한계가 있지만 오직 기도를 통해 이를 감당하고 오히려 여기서 영적인 성숙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기도조차 하기 어려운 때가 많겠지만 간절한 기도의 영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양들을 향한 정말 간절한 상한 마음을 주셔서 양들의 불쌍한 영혼때문에 밤새서 울부짖는 상한 심정을 주시고 예수님께서 한 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양들과 동역자들을 사랑하기까지 사랑을 알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사랑을 덧입고 사랑이 흘러넘쳐 온 캠퍼스를 적시기까지 사랑을 품도록 제게 친히 임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기도!!! 간절한 상한 심정의 기도로 관악 5부가 타오르고 불타버릴 정도까지 타올랐으면 좋겠습니다.
1162 no image 연구강의를 마치고 [2]
[레벨:20]김기중
78 2006-09-11
1161 no image 정원 목사의 간증 [1]
[레벨:20]김기중
56 2007-03-07
너무 은혜로운 글이라서 긴 분량임에도 퍼왔습니다 게다가 중간에 여호수아 장군의 고별 메시지도 나오네요 ^ㅡ^ 정원목사의 간증 나는 어릴 적부터 주님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따라 각종 부흥회라든지 산상 집회와 기도원에 많이 따라 다녔습니다. 평소의 교회 예배에서는 주님의 실상을 도저히 감지할 수가 없어서 주님을 개인적으로 가까이 알고 만나기를 몹시 사모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주님은 너무나 멀리 계신 분으로 느껴졌고 다른 이들이 주님의 은총을 경험하여 그분의 음성도 듣고 가까이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부럽고 부러웠습니다. 나는 몸도 약하고 공부도 그리 시원치 않고 가난하였지만 그러한 어떤 것들도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고 아무도 부럽지 않았으나 주님을 가까이 경험하였다고 하는 이들은 너무나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러한 은사자라고 알려진 이들을 많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들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워낙 악하고 못되어서 그런지 아무리 기도하고 금식을 해도 주님은 아주 멀리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군대 영장을 받았습니다. 한달 후에 군에 가야한다는 영장을 받자 나의 결심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한달, 군대에 가기 전에 나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님을 경험하고 그분의 체취를 맛보리라.. 나는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는 산 속에 있는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아주 영이 맑은 누님 뻘 되는 기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 위였는데 주님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전에도 그러한 갈등이 더러 있었지만, 대체로 은사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잘 듣는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삶에서 거룩과 아름다움과 사랑의 분위기를 느끼기가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성질을 잘 컨트롤하지 못하고 거칠은 면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주님의 은혜는 거칠어야 받을 수가 있는가? 하고 갈등을 하곤 했습니다. 이 누님도 그리 삶이나 성품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누나가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달랐습니다. 이 누나는 학문이 거의 없었고 평소에는 전혀 눈치가 없는 사람인데 그녀에게 기도를 받으면 나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그들의 영적인 상태나 수준, 어디에서 균형이 무너져있는지 등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저 의문만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누나가 옆에서 기도를 같이 해준다는 말에 용기가 백배해서 금식에 들어갔습니다. 나도 그 누나가 경험한 주님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나는 아무런 소득이 없이 기도를 마쳤을 뿐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안 되나봐..' 하는 결론을 얻었을 뿐이지요.. 이 때 기도하면서 있었던 해프닝들을 언젠가 다시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낙심해있는 나에게 누나는 대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나는 너와 항상 같이 있다. 네가 지금 나를 몹시 원망하는 구나.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라.>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내용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납니다. 아니, 토씨뿐이 아니라 그 누나의 목소리의 크기, 억양.. 등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순간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었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그것은 참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왜 그런 이야기를 남을 통해서 들어야 하는지.. 나는 그게 너무나 억울하고 속이 상했습니다. 물론 그 누나 앞에서는 울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했었으니까요.. 나는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아서 사고가 나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을 때도 그저 조용히 있는 스타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나는 조용히 감사를 표했지요.. 그러나 내 방에 돌아가서는 정말 서럽게 울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시냐고.. 내가 당신의 이름을 이렇게 간절하게 부르는데 왜 나에게 대답하시지 않느냐고.. 나는 한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영장이 나와서 나는 군대에 갔습니다. 나는 하나의 희망을 가졌습니다. 사람은 어려움이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기 쉽다던데 그렇다면 내가 군대에서 하나님을 만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군대에서는 힘든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훈련은 고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쓰러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 힘들게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동작이 굼뜨고 민첩하지 않아서 피도 많이 흘렸고 다치기도 많이 다쳤지만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평소에 삶에 대한 의욕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지 않으니 별로 걱정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유격 훈련을 받게 되었을 때 외줄 타기 코스가 있었습니다. 낭떠러지 사이를 연결한 외줄을 타고 건너는 것이지요. 나는 안전 장치를 하지 않고 건너려고 했습니다. 조교가 놀래서 물었지요. 사회에서 이런 것을 한 경험이 있느냐 고요.. 없다고 대답했더니 그는 억지로 안전대를 매어주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내가 겁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겁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별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내가 그렇게 죽고 싶은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즉 주님이 나를 가까이 만나주시지 않는데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는 군대에서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훈련소에서만 신약을 두 번 읽기도 했습니다. 훈련 중에 잠시 진흙탕에서 쉬는 동안 나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잠을 자는 시간에 나는 희미한 불빛 아래서 밤을 새워 성경을 읽었습니다. 나는 줄곧 울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너무나 아름답고 달콤하다고 나는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나에게 만족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더 깊은 주님, 가까운 주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주를 찾는 동안 주님이 나의 기도에 전혀 응답을 하시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여러 위기의 순간에 응답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연대 알씨티 훈련을 나갔을 때 각 소대 별로, 분대 별로 텐트를 쳐야 하는데 우리 분대에서 텐트를 칠 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줄을 구해오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물론 칡넝쿨을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 철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나를 평소에 벼르고 있던 고참이 모처럼 날을 잡아서 나를 때리기 위해서 시비거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나는 참 많이 맞았습니다. 맞아서 이빨도 부러지고 얼굴도 피투성이가 된 적이 많았습니다. 기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 혼자만의 세계에 몰두해있었고 그저 진리를 알고 싶었고 바깥의 내 육신은 어떻게 되든지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몹시 몸이 힘들고 안 좋은 상태라서 나는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오늘은 맞고 싶지 않습니다. 어디서 줄을 구할 수 없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무모한 기도였습니다. 우리 부대는 산 속의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칡넝쿨은 발견할 수 없었고 이렇게 깊은 산골에 사람이 사는 집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굵은 나무를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밧줄이 필요합니다. 밧줄을 주십시오.. 한참을 기도하고 나는 혹시나 하고 산 속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갑자기 눈 앞에 집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집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는 젊은 아가씨가 한 사람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주 착하게 생긴 아가씨였는데 이런 산골에 젊은 아가씨가 혼자 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내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광을 열었는데 거기에 아주 튼튼하고 새것인 밧줄이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듯이 들고 가기 좋게 묶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녀는 돈도 받지 않고 나에게 그것을 주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과연 그 집이 원래 있었는지.. 아니면 그녀가 천사였는지 갸우뚱해집니다. 내가 그 줄을 들고 가자 모두가 다 탄성을 질렀습니다. 나에게 그것을 시킨 고참은 나를 노려보았지만 그러나 나를 때릴 수 없었습니다. 모두들 다 좋아했고 그 때문에 우리 분대가 전체 성적에서 일등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야간 행군 중에 나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야간 행군 중에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얼굴에도 먹칠을 합니다. 총기도 번쩍거려서 보이게 되지 않도록 잘 닦아냅니다. 심사관들이 숨어서 따라다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지적되어 점수가 나쁘게 되면 그 날 밤은 잠은 다 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밤 눈이 어두워서 그만 내 위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래 전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훈련을 나가는 날 근처에 고참에게 맞다가 안경이 깨어졌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듬다가 나혼자 대열을 이탈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난감했습니다. 그렇다고 소리를 쳐서 다른 이들을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온힘을 다해서 숲을 뒤지며 전우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그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캄캄한 밤, 그 산 속에 오직 나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이대로라면 무사할 리가 없었습니다. 아니 맞는 것은 둘째치고 부대에 무사히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 방법이 없어서 나는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주님께 호소했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를 도와주세요...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요.. 나는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눈 앞에서 번쩍이는 인식표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분별하기 위하여 철모의 뒤에 붙이는 인식표였습니다. 기도하고 있는데 내 근처로 사람들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나는 살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랄 일이 있었습니다. 내 앞에 번쩍이는 인식표의 주인공은 바로 대열의 내 앞에 있었던 병사이었습니다. 나는 기가 막혔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뒤에서 번쩍이는 인식표를 찾았습니다. 그도 바로 내 뒤의 병사였습니다. 나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습니다. 내가 대열에서 이탈했으나 몇 시간이 흐른 후 모든 대열이 나를 중심으로 정확하게 제 자리로 왔던 것입니다. 나는 정말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왔을 때 나는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내가 내 위치에서 이탈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주님의 개입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면 이제 주님의 사랑과 살아계심에 대하여 만족이 되고 기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나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나는 그러한 기도의 응답을 이미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 자신에 대한 접촉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응답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선물이었지 주님 자신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 이후도 주님을 꾸준히 구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옷자락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한번은 중대장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나를 교육과 훈련에서 40 일동안 빼달라고.. 그리고 빈방을 달라고.. 그 동안 나와 부대를 위해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겠다고.. 아마 군대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중대장은 무섭고 사납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소대장들도 그 앞에서는 그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소대의 소대장은 우리에게 중대장은 호랑이와 같고 한번 걸리면 죽는 날이니 그 앞에서는 행동을 아주 조심하라고 많이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으니 무섭고 말고 할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부대는 소위 FM이라고 할까요. 철저하게 교육과 훈련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한명이라도 훈련에서 빠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대장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를 묻더니 상부에 보고를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며칠 후에 중대장은 나를 불렀습니다. 대대장에게 보고를 했는데 자기만 미친 놈이 되었다고 한참 혼이 났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한명 정도는 열외로 할 수 있다고 한참 설득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이거 완전히 미친 놈이라고.. 너 예수 장이냐? 하고 핀잔만 받았다고 나 때문에 졸지에 예수장이가 되었다고 껄껄 웃었습니다. 나는 그가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아마 다른 이들도 그가 웃는 것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허락은 받지 못했지만 그는 이상하게 그 이후로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습니다. 훈련 중에 찾아와서 말을 걸기도 했고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부대 전체가 며칠 걸리는 힘든 훈련에 나가는 출정식 때는 그는 나를 불러서 단 위에서 부대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시키곤 했습니다. 아마 그는 나를 참 신자로 생각했었던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나는 주님을 만날 길이 없어서 그저 죽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나는 밤에 초소에서 보초 근무를 설 때 기도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와 고단한 몸을 눕힐 때도 기도했습니다. 기도 제목은 한결 같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나는 당시에 워치만니의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것은 흥미롭기는 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지쳐버린 어느 날 나는 이제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였습니다. 주님이 내게 나타나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방법을 어떻게 해야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나는 훈련 중에 큰 돌을 가지고 한쪽 손을 쳐서 엉망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하니 이러한 방법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손목의 동맥을 끊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예리하지 않은 칼이 어설프게 피만 흐를 뿐 잘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러한 방법이 너무 무식하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쉬운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식사 시간에 식당에서 군용 쥐약을 훔친 것입니다. 그것은 양도 많았고 아주 간단하게 해결이 될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내 시체를 처리할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때까지 써왔던 일기와 모든 메모들을 다 없앴습니다. 나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남긴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었습니다. 그 날 밤 나는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입니다. 당신이 너무나 멀리 계십니다. 나는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옥에 가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한번이라도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기도였고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쥐약을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이 삶이 끝이 나고 지옥에 가더라도 잠시라도 주님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기뻤습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다음날 아무 일없이 기상나팔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의아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이 세상을 떠난 줄 알았는데.. 나는 계속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죽기는커녕 손톱만큼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나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나는 이 몸을 떠나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비로소 사람의 목숨이 자기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갈급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참이 되어 군대생활이 어느 정도 편해졌을 때 나는 어느 날 군대 안의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나의 갈급함을 이야기하였으나 그는 납득이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내가 다 알고 있는 성경의 여러 이야기들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교리와 이론이라면 나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주님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방언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주님이 필요하다면 주실 텐데 뭐 구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나의 고민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제대를 한 이후에도 여러 목사님들에게 나의 갈망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목회자들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몸부림 끝에 나는 군대에서 제대하기 직전에 주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오직 목숨을 걸고 추구했던 한 가지 소망이었습니다. 그 주님의 경험은 참으로 극적이었습니다. 부대에서 권총 도난사건이 있었고 주범으로 몰려 어처구니없는 취조와 고통을 겪었으며 탈영을 하고 마지막으로 기도원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걸고 금식하며 기도했던.. 그러한 와중에 나는 주님을 경험하고 방언도 받았습니다. 오랜 세월의 눈물과 갈망이 드디어 해결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집회에서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는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해결이 아니었고 하나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주님을 알아갈수록 더 많은 갈망과 사모함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기독교는 이러한 주님의 실제에 대하여 거의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나는 나의 주님을 찾기 위해서 계속 몸부림치고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영적으로 아주 예민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나는 너무나 둔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남들이 쉽게 받는 방언에도 십년이 더 넘도록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남들이 쉽게 경험하는 것을 나는 몇 십배나 노력하고 추구하고 눈물과 사모함으로 주님께 나아갔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아주 조금씩 하나씩 영적인 실제와 원리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선물인 은사나 방언을 아주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나의 목숨을 담보로 하여 받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나의 목숨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방언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서 나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었습니다. 주님.. 만일 저에게 방언을 주신다면 저는 일생동안 하루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일생동안 오직 주님만을 추구하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방언을 받은 후 나는 내 기억으로는 주님을 기억하고 의식하지 않고 산 날은 없었습니다. 나는 밤에 잠이 들기 전에 항상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잠이 들었습니다. 남들은 아주 쉽게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어렵고 힘들게 그것을 얻었기에 결코 잊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나는 젊은이들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다가 금방 은혜를 체험하고 아주 좋아하다가 어려움이 오면 쉽게 그 열정을 잃어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듯이 사모하는 것 같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열정이 식어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결혼 전에는 청년들이 열심히 주를 찾는 듯 하다가 결혼을 하고 현실적인 삶에 부딪치게 되면 그 열정을 잃어버리고 타협을 하고 주님에 대하여는 관심을 잃어버리는 모습들을 많이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그리 많은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영혼과 기질은 모두 다양합니다. 열심히 꾸준히 주를 부르는 이는 주의 가까이함을 입을 것이며 갈망을 잃어버린 자들은 주님도 그들을 멀리 하실 것입니다. 찾는 자는 찾을 것이고 관심이 없는 이는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법칙이며 누가 대신하여 찾아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수아의 말을 이해합니다. 오늘날 너희는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 그 말에는 그의 심령의 간절함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저는 고별 설교를 하겠습니다. 다시는 저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실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주님은 너무나 좋은 분이십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주님만을 좇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저는 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아니.. 온 세계가 이 주님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집은..오직 주님을 추구할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강력한 메시지에 놀랬을까요.. 그 모든 청중들은 다같이 외칩니다. 우리도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고.. 물론 그들은 그러한 감동과 결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심령과 목숨으로 우리 인격의 가장 깊은 곳에서 믿는 것이지 순간적인 감동이나 기분, 희열에 의해서 믿을 수 있는 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새벽 시간에, 밤의 기도 시간에 처녀들의 외치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오.. 주님.. 내 평생에.. 주님을 좇겠습니다..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그녀들이 타협하고 주를 버리는 것을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주님에게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그녀들의 마음을 빼앗기고 결혼들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감정의 달콤함은 그리 오래가는 것이 아니며 주를 찾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많이 아팠었습니다. 나는 이제 주님의 달콤한 임재와 꿀같이 흐르는 주의 사랑을 구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 감동과 희열에 빠지기 원하는 이들은 많지만 꾸준하게 인내하고 주를 구하며 주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나는 이제 그리 많은 기대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지 않지만 오직 주를 구하며 그의 소유가 되고 그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기 원하는 이들이 일어나기를 여전히 소원합니다. 이제 나는 주를 구하며 그분을 가까이 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은혜가 빨리 오지 않는 다고 속상해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권면을 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급하게 가지지 말라고.. 인내하며 기다리라고.. 주님의 때가 올 때까지 순종하며 당신을 그 발 앞에 복종시키라고.. 내가 수 많은 시간동안 좌절하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었지만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당신도 포기하지 말라고.. 나는 이제 주님의 임재에 대하여 어느 정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영성의 흐름과 원리에 대하여 조금이마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평생의 씨름과 사모함의 결과였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고전 13장의 말씀과 같이 우리가 어릴 때는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모든 것이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장성하게 되면 우리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벗게 됩니다. 그처럼 우리가 어리고 육성으로 살 때에는 많은 계획과 소원과 꿈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좋아하고 저것을 사랑하며 여기 저기에 우리의 마음을 쏟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조금씩 열리게 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많은 꿈과 열망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오직 한가지 소원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입니다. 주님을 아는 것 주님을 소유하는 것 주님께 소유되는 것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오직 주님의 뜻과 그 품을 그리워하는 것.. 오직 그 한 가지 소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이성의 사랑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서 가족이나 배우자의 사랑에서 여러 가지에서 만족을 얻으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그림자요 헛것에 지나지 않으며 오직 영원한 것, 참된 것은 주님 뿐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간절하게 주를 구하였으나 주님의 프로그램에 의해서 어느 시점에 그분이 임하셨듯이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프로그램이 있으며 그분의 은혜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때가 올 때까지 우리는 오직 주님을 사모하고 사모하고 또 사모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은 오직 주님과의 만남. 그 정점을 위하여 달려가고 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데에 그리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주의 이름을 불러도 주의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임재가 가까운 곳에서 임하는 것을 나는 느낍니다. 그것을 너무나 오랜 세월 구하고 구하고 사모했던 것이기에 그것은 나를 너무나 행복하게 합니다. 그 주의 임재가 나에게 너무나 만족과 행복을 주었기에 나는 이것들을 주를 사모하는 많은 이들과 같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나의 마지막 사는 날까지 그 주의 사랑과 임재를 전하고 싶습니다. 수 많은 몸부림의 결과 주님이 은총의 문을 조금 여셨기에 아직도 너무나 많이 굶주리기는 하지만.. 이제 조금씩 그의 임재를 여는 문을 같이 열고 싶은 것입니다. 예전에는 무엇이 그분의 임재를 소멸하게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주님이 임하시는 통로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세월들은 나에게 그것들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할 수 있는 한 그 원리와 방법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줌으로써 다른 이들도 그 주의 사랑과 영광을 많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사랑의 주님을 구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일시적인 행복이나 만족이 아닌 주님 자신과 주의 뜻을 구하고 또 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께 순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디 주를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그것이 곧 행복이며 천국입니다. 자신이 주를 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인내와 꾸준함과 사모함으로 겸손한 자세로 대가를 지불하며 꾸준하게 그 길을 걸어가십시오. 주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주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160 no image 육사에서의 교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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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김기중
37 2008-03-06
“나는 가끔씩 밧줄을 목에 두른 채 사다리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1660년대를 싸늘 한 감방에 앉아 보내던 존 번연이 자신이 교수형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기억을 후에 다시 떠 올리며 했던 말이다. 번연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전도자와 설교자로서의 소명을 포기할 것을 거절한 연고로 투옥되어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수감자 신세로 보낸다. 다음 세기 복음전도자의 선두에 섰던 존 뉴톤은 그의 생애를 생각하며 ‘주께서 유능한 설교자의 입을 다물 게 하시면서 넓은 문을 여시는 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유들이 있다. 만약 존 번연이 베드포드 감옥 에 갇혀 있지 않고 설교를 계속했었다면 그는 자신의 했던 일의 절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가 그곳에서 쓴 ‘천로역정’은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노인들이 마치 이곳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이생의 일들을 추구하는 것을 보았을 때였고 두 번째는 믿는다고 하는 사 람들이 남편, 아내, 자녀의 죽음 등과 같은 손실들을 겪을 때 너무 번민하고 낙담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 다.” 이 말을 그가 하늘나라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 유명한 설교자로서 일하다가 60세에 그가 쓴 천로역경처럼 ‘멸망의 도시’를 떠나 오 랫동안 소망해왔던 ‘새 예루살렘’을 향해 떠났다. - 넘치는 은혜/존 번연 한 카페에서 온 메일에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보다 정말 크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존 번연이 정말 하늘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156 no image 육군사관학교 교수사관 모집 [1]
[레벨:20]김기중
50 2008-10-29
현재 육사에서 교수사관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센터 내에 대상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ㅡㅡ; 홍보차원에서 올려봅니다. 1. 육사 교수사관이란? - 육군사관학교에서 3년간 장교로 복무하며(소위 임관, 중위제대), 교수로서 강의 및 연구활동을 하는 제도입니다. - 장교로서의 복무경험과 동시에 강단에서의 강의경험은 매우 귀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 논문을 발표하여 전임강사로 승진시 국립대학교 전임강사 경력이 인정됩니다. (공무원의 길을 가는 사람은 호봉에 반영됩니다.) 2. 대상 군필이거나 여성이어도 가능합니다. 장교를 모집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미필자만 대상은 아닙니다. 3. 모집 분야 - 분야는 매년 바뀝니다. - 올해는 영어, 경제학, 수학/통계학, 전자공학, 산업공학, 사학, 체육학 이며 위 분야에서 미달인원이 발생시 전산학, 토목공학 분야로 T.O가 옮겨갑니다. - 참고로 예년에 신체검사에서 결격사유가 생기거나, 체력검정에서 탈락되어 T.O가 옯겨간 경우가 있습니다. 4. 지원서 접수 기간 11. 3(월) 부터 11. 14(금)까지입니다. 5. 기타 교수사관 선발은 육사 뿐 아니라 육군3사관학교, 공사, 해사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kma.ac.kr/kma_board/k_view/gongji.html?Board_Name=board_notice&iNo=341 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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