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관악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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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 no image 췌장암 조기 발견의 새로운 길이 ~~ [2]
[레벨:20]박문수
84 2013-02-13
출처 : http://jayg.org/2013/02/15-year-old-prodigys-3-cents-on-pancreatic-cancer/ 15살 소년이 자기와 가까운 분이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것을 보고 혼자 연구하여 발견해 낸 성과라고 합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 15세 천재 소년이 췌장암의 조기발견을 가능케 했다. 1997년생 잭 안드라카(Jack Andraka)는 미국 동부 메릴랜드(Maryland) 주(州) 크라운스빌(Crownsville)에 사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 췌장암의 바이오마커(Biomarker)인 메소텔린(Mesothelin) 검출 방법을 발명했고, 지난해 5월 열린 세계 최대의 과학경진대회 인텔 ISEF (The Intel International Science and Engineering Fair)에서 상금 75,000 달러 (한화로 약 8천2백만 원)와 함께 최고상인 고든무어상(Gordon E. Moore Award)을 수상했다. 잭 안드라카는 메소텔린에 대한 항체(Antibodies)와 탄소 나노튜브(Carbon Nanotube)를 혼합하여 여과지(Filter Paper)를 코딩하고, 메소텔린이 항체에 반응할 때 일어나는 전기 전도도(Electric Conductivity)의 변화를 측정해 췌장암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발명했다. 메소텔린은 췌장암뿐 아니라 폐암 및 난소암이 발병할 때 과발현(Overexpression)되는 단백질이며, 이러한 질병들의 초기증상이 거의 없음을 고려할 때 그의 발명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잭 안드라카가 개발한 검사지(Paper Sensor)의 가격은 3 센트(한화로 약 35 원)에 불과하며, 홈디포(The Home Depot)에서 50 달러(한화로 약 5만5천 원)에 구입한 전기계측기(Electric Meter)를 사용해 검사를 수행할 수 있다. 이는 기존 방법과 비교해 26,000배 이상 저렴한 것이고, 검사에 걸리는 시간도 5분으로 기존보다 168배 빠르다. 이 방법은 특히 과거 800 달러(한화로 약 87만 원)에 시행되던 검사보다 400배 이상 높은 민감도(Sensitivity)를 보여 15% 정도에 불과한 췌장암의 조기발견율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에도 국제과학경진대회에서 수차례 수상한 바 있는 과학영재 잭 안드라카는 삼촌처럼 여기던 아버지의 친구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구글을 통해 췌장암의 조기발견율이 15%에 불과하며, 60년이 넘은 고가의 검사방법은 30%가 넘는 췌장암 환자를 정상으로 판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So then what happened is I thought there has to be a better way than this really crappy technique. 더 나은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잭 안드라카는 15살이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 인터넷을 이용해 췌장암의 바이오마커 메소텔린을 찾았다. 그리고 혁신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고등학교 생물 수업시간에 카본 나노튜브에 대한 논문을 몰래 읽으며 한쪽 귀로 생물 교사의 항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잭 안드라카의 머릿속에서 두 가지 개념이 합쳐져 하나의 아이디어가 되었다. 잭 안드라카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또다시 인터넷을 이용했다. 근처의 대학에서 췌장암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200명의 교수를 찾고 메일을 보냈다. 곧 그는 199통의 거절 메일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좌절하기 직전 존스홉킨스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의 아니르반 마이트라(Anirban Maitra) 교수는 그를 자신의 연구실로 초청한다. 몇 주 나오고 말 것이란 예상과 달리 잭 안드라카는 7개월을 연구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정확도 100%의 검사 방법을 발명했다. 잭 안드라카는 인터넷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이론은 공유되고, 아이디어를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교수가 될 필요도 없다고 한다. 그는 인터넷에서 중요한 것은 성별, 나이, 인종이 아니라 아이디어라고 강조한다. 잭 안드라카는 인터넷을 이용해 췌장암 진단 방법을 개발했다. 그는 이제 당신이 인터넷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I’ve learned a really important lesson over the course of my journey. What I’ve learned is that through the Internet, anything is possible. Theories can be shared and you don’t have to be a professor with multiple degrees in order to have your ideas valued. It’s your ideas that count on the Internet. And being brave and being fearless here, to me, is that you don’t need to use the Internet in conventional ways. We don’t need to see your duck face pictures on the Internet. Instead you could be changing the world with the stuff you do on the Internet. So if I had done all of my research on Google and Wikipedia, and I’m a 15-year-old. Imagine what you could do.
994 안요셉 선교사님 연희센타 선교보고 파일 [3]
[레벨:20]서진우
170 2013-02-05
“와보라!” “가서, 모든족속으로 제자삼아라!” (“COME AND SEE,” and “GO,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말씀: 요한 1:39a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보라 ….” 마태 28:19a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예수님이 이 어두운 땅에 오셔서 하신일이 많으십니다. 그것을 대중사역과 제자양성사역으로 볼수 있겠읍니다. 대중사역은 “Preaching and Healing” ministry 로 요약할수 있읍니다. 즉 무리들에게 “말씀가르치시고”, “각종병자” 고치시고, 배고픈 5,000 명을 먹이는” 사역이었읍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싶은 것은 “제자양성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대중사역도 사실 제자양성사역을 위해 모두 사용하셨읍니다. 제자 사역을 가만히 살펴보면 예수께서 하신 두마디로 요약할수 있겠읍니다. “와보라!” 즉 내게로 오라. 내게로 와서 보고 배우라. 내가 그리스도요, 세상의 구세주인것을 와서 보고 믿으라. “와보라! 참 내 제자가되라!” 한 예를 들면, 예수께서 안드레와 빌립을 갈릴리 해변에서 직접 핏싱하셨읍니다. 그들이 “어디계십니까?” 물었읍니다. 예수님은 “Jesus@gmail.com”하시면서 이 메일주소를 주시거나, “서대문구 대신동 32-1번지다” 나중에 보자 하시지 않았읍니다. “와보라!” 하셨읍니다. 바로 그즉석에서 직접 자신이 계신곳으로 초청하셨읍니다. 그들이 바로 가서보고 “우리가 메시아를만났다”고 했읍니다. 요즘 김연아의 10,000시간, 뭐든지 10,000 번을 하면 세계최정상에 이를수 있다란 말이있읍니다. 세계최고의 영적 목수이신 예수님께서 명품 제자를 빚어내시는데 하루 24시간, 일주 168시간 3년간 약 26,208 시간을 투자하셨읍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마침내 예수님은 구세주시다. 그의 죽으심은 모든 족속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다. 그의 부활하심은 우리로 영생을 얻게하려하심이다를 깨닫기 까지 되었읍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하시는 말씀이 “가라!”입니다. 아니, 언제는 “오라” 하시더니, 이제는 “가라?!” 그렇습니다. “와보라” 하신것은 세상에대해 “Good bye! 하고, 와서 보고 “참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초청이었읍니다. 이제 제자가 된 그들에게는, 도로 세상으로”가라” 하십니다. “가서, 뒤엉켜 또다시 죄를 짓는것이아니라, 그들로 제자를 삼으라!”입니다. “모든 족속에게 가서 모든족속을 제자삼으라!” 하십니다. 예수께서 명품제자를 만드셨듯 직접 일대일, baby sitting, 매일돌봄으로 예수님처럼 제자양성가가 되라는 것입니다. 바로 “와보라! 가서 제자삼으라!” 는 십자가와 부활 다음으로 예수께서 친히 하셨고,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심을 알수 있읍니다. 지난 50여년간 저희 유비에프는 “와보라!” 하시고, “가서제자삼아라!” 하신 예수님께 순종했읍니다. 그때 주께서 현재 95개국에 1,500 여명의 선교사가 나아가 제자삼는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그간 큰일을 해내었읍니다. 그러나 아직 150 여개국이 남아있읍니다. 이 남은 150 여개국 모든족속으로 제자삼기 까지 중단없는 전진을 해야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제가 제 자신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와보라”는 대학시절때나 가서 예수님배우고, 이제는 가서 제자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제일먼저 해야할것이, 일용할양식 , 기도등으로 예수님께 가서 시간을 보내는 일입니다. 거기서 예수님께로 부터 깊은 영생수를 들여마십니다. 제 영혼과 몸과 마음에 큰힘을 얻읍니다. 그리고 “가서 모든족속으로 제자삼아라” 하시는 말씀을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부르실때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이제 제 인생에 주님의 초청받았던 때, 제자훈련, 캠퍼스 목자, 선교사로서의 이제까지의 삶을 잠간 돌아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찌 짧은 시간에 다증거할수 있겠읍니까? 바다를 먹물로, 하늘을 두루마리로 해도 다 기록못할 주님의 은혜입니다. 다만 짧은 글을 통해 우리의부름받은 인생이,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모두에게 얼마나 축복되고 가장 보람된 천국생활인것을 조금이나마 나눌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Part one: 와보라 “Come and see!” 1. 태어나서 부터 대학까지 (1946-1965)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해방이듬해 저는 8남매 중 세째로 대구에서 태어났읍니다. 그러니 지금 6학년 7반입니다. 어머님은 시골 과수원 장노님의 따님으로 믿음이 좋았읍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처음 불신자로 술 주정이 심했읍니다. 아버님이 술취해서 밥상을 뒤엎고, 숫가락, 젓가락은 마치 UFO 처럼 저희 머리위를 날아다녔읍니다. 그때 어머님과 저희들이 늘 울며 지옥같이 불행했었읍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늘 새벽기도를 빠짐없이 다니며 울며기도했읍니다. 그러자 아버님이 믿게되었읍니다. 나중 장립집사가 되었읍니다. 저희집에 손님들이 늘 가득하고, 웃음과 찬송과 기도가 끊이지 않는 작은 천국으로 변했읍니다. 그러나 제가 고2인 16세때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읍니다. 저는 이때 인생은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지? 이렇게 죽으면 모든게 끝장인것을 왜 고생고생하며 살아야 하나하고 허무와절망가운데 삶의 의욕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방황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러나 이런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을 알수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읍니다. 제가 고민중에 있을때 어릴적부터 접했던 ‘성경’에 해답이 있겠다는 생각을 주셨읍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읍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 하게도, 제가 제일 좋아한 귀절은 “전도 서1장 말씀,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였읍니다. 그때 답답한저를 누나가 다니던 성경공부 모임으로 와보라며 초대해 주었읍니다. 거기서 성경말씀공부를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한 칼과 같아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우리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 (히브리4:12) 하셨듯 저의 모든 과거가 벌거벗은것 같이 들어나는 것이었읍니다. 저는 그때까지대구 칠성국민학교를 거쳐 잘나가는 소위 TK로 대구 경북, 중고등학교에서 우등생, 반장, 전교에서 제일 잘달리기, 제일 멀리뛰고, 높이뛰는 육상선수에, 교회 학생회장등 제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좋은 사람인줄 착각하고 살았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저의 어둡고 추한 내면을 비추었읍니다. 그때 한창 사춘기의 마음의 모든 정욕의 죄가 들어났읍니다. 저는 한번도 간음한적없는 제일순결한 고교생이라 생각했읍니다. 그때 음욕을 품고 여인을 보면 간음한것과 같다는 말에 쇼크를 받았읍니다. 그러고보니 어릴때부터 이쁜여인을 볼때마다 간음한 자였읍니다. 그리고 착한척했지만 속으로는 제가 일등을 함으로 나보다 못한자는 무시하고, 경쟁심, 시기심, 분통, 화냄, 욕심, 이기심등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마음으로 이미 살인한자 인것을 깨달았읍니다. 성경에 적힌 죄란죄는 제가 모두 속으로 다 짓고 있었읍니다. 그때 제일 제가 무서워 한것이 갑자기 죽거나 예수님이 갑자기 오시는 것이었읍니다. 왜냐면, 그때는 바로 제가 지옥행 일호로 떨어질것이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죄를 짓지않으려고, 온갖노력을 했읍니다. 일일삼성 즉 하루에 세번 반성하기, 죄와 싸우기, 모든방법을 동원했는데도, 모두 도로아미 타불이었읍니다. 선을 행하려는 나에게 악이있어 날마다 나를 사로잡아 죄를 짓게 하였읍니다. 마침내 저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골짜기에서 건져내랴?” 웨치게 되었읍니다. 어느저녁, 죄문제 해결없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기로 작정하고 거리를 하염없이 걷고 있을때, 밤12시경이 되어도 해답이 없었읍니다. 그때, 교회 주일학교에서 불렀던 노래들이 떠올랐읍니다. “예수사랑하심은거룩하신 말일세…..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이 예수밖에 없네… 예수!! 그가 찔림은 너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너의 죄를 인함이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 이말씀에 그때저는 크고작은 저의 일생의 모든죄를 다 생각나는대로 낱낱이 고백했읍니다. 그리고 잊어버린죄가 있으면 그것도 용서해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했읍니다. 그때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의 하는일 알지못하니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들려왔읍니다. 그밤 마침내 2000 년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바로 오늘의 내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영접하고,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씻음을 이미 받았음을 믿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너무 놀랍고 고마워 이 눈물과 감사로 이 주님의 사랑과 보혈의 공로를 찬송했읍니다. “내죄를 씻으신 주이름 찬송합시다.” 저는 너무기뻐도 눈물이 난다는 것을 그때 새롭게 체험했읍니다. 이렇게 새장에서 나온 새같이, 우리에서 해방된 사자같이 제 영혼이 기뻐뛰며, 자유를 얻자,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게되고, 짦은시간에 집중공부하여, 서울법대 65학번으로 입학하게 되었읍니다. 2. 대학생활과 UBF (1965-75) (제자 훈련) 그런데 서울법대 1년생활은 자유분방, 한일협정반대데모, 이대생들과 미팅주선등으로 바람과 같이 날라가 버렸읍니다. 1966년 봄 2학년이 되었읍니다. 허전한 마음으로 서울에 의미없이 올라와 땅만바라보며 걷는제게,“와서보라. 배사라” 란 조그만 광고쪽지가 눈에 들어왔읍니다. “와서보라, 배사라?” 그 다음에 “Come and see, Sarah Barry!” Free English Bible study! By native missionary 였읍니다. 방황하던 제 영혼을 이렇게 신기하게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로부터 일년간 거의 매일 성경공부를 했읍니다. 저는 2000년 전 예수님께서 마치 지금도 살아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수많이 체험했읍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때 제 인생을 맹물같은데서 맛있는 포도주와 같이 변화시키심을 체험했읍니다. 소경의 눈을 띄우실때, 저의 눈도 떳읍니다. 거라사 귀신들린자를 고치실때 저를 잡고있던 모든 귀신도 떠나갔읍니다. 광풍을 잠잠케하시고, 죽은자를 살리시고, 십자가의 용감하신 죽음, 다이루었다” 승리을 외치신 주님, 주의 말씀이 힘이있어 제 인생은 드디어 독수리가 날개침같이 비상하기 시작함을 느낄수 있었읍니다. 1967 제가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때 저는 안드레,빌립, 동네로 달려간 사마리아 여인과 꼭 같았읍니다. 저는 캠퍼스로 달려갔읍니다. 그리고,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와서 보라!”하고 외쳤읍니다. 이에 한꺼번에 약 50 여명의 법대 신입생들이 회관에 찾아오는 놀라운일이 있었읍니다. 또 매주 구룹바이블이 시작되었는데, 황우여 현 신민당대표도 제 GBS 멤버의 한사람이었읍니다. 지금은 모두 떠나갔지만 관악5부의 정 아브라함목자가 법대의 열매로 남아있읍니다. 유비에프의 귀납적 방법으로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성경공부방법은 그대로 캠퍼스에 나갔을 때 다른 학생들과 성경 공부하는데 써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는 대학생성경읽기가 말씀공부뿐 아니라 어떻게 말씀을 다른사람에게 나누는가도 동시에 가르친 결과가 됩니다. 이로보아 제가 오랫동안 교회생활에서 아무에게 한 말씀도 못 전한 소위 모태신앙 (아무것도 못하는못해신앙)이 된것은 바로 말씀이 내속에 차고 넘치지 못했고, 또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말씀을 전하는지 그 방법을 몰랐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목자생활이 시작되면서 갈등과 어려움도 생겼읍니다. 그당시는 개척초창기라 매일 말씀공부와 기도모임이 있었읍니다. 모두 고시공부에 몰입하는데 저많이 매일 오후 5시경 모두가 조용히 열을내어 공부하고 있는 도서관을 떠나 유비에프회관으로 향해갔읍니다. 사탄은 저에게, “야 보아라! 머리좋은 친구들이 매일 너보다 2-3시간씩 더 공부를 하니까 너는 그들에게 상대가 안되! 빨리 유비에프 말씀공부를 그만 청산하고 고시공부에 돌입하라고! 그때 저는 이러다간 정말 경쟁에서 낙오하고 제대로 직장도 못구하고, 제 인생이 망가질것같은 두려움이 생겼읍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에스더서를 통해 “죽으면 죽으리라! “ 아니 “죽으면 살리라!”하고 격려해 주셨읍니다. 그래서 부활신앙을 덧입고, “먼저그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자 외치며” 끝까지 주님역사편에 섰읍니다. 그때 놀라운 체험을 했읍니다. 전체 1,000 여명 외무고시 응시자중 17명이 합격했읍니다. 쟁쟁한 법대동기들중에서도 20 여명이 응시했는데, 2명이 합격했읍니다. 그 한명은 저희 구룹바이블스터디 멤버이고, 또한사람은 바로 저였읍니다. 또 이 외무고시 제3기에 현 유엔의 반 사무총장도 고시동기로 합격했읍니다. 이렇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때 주님은 저의인생을 크게 축복해 주셨읍니다. 와보라 해서 간 유비에프 성경공부는 이렇게 예수님과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세주시요, 나는 거룩하고 흠없이 살아가야할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해 주었읍니다. 대학4년과 곧이은 군대생활, 제대후의 생활은 참으로 주님의 제자로 훈련받는 좋은 시간이었읍니다 저는 그당시 버스비가 없어서 한시간넘게 걸리는 낙산을 넘어 보문동에서 법대까지 걸어다니고, 점심값이 없어서 하루 두끼만 먹으며 공부하던 때입니다. 저의 목자가 십일조에 대해 이야기할때, 저는 1,000 원도 안되는 돈을 십일조로 바치는게 부끄러워 나중 좋은 직장을 가지면 많이 바치겠다고 말했읍니다. 그러나 주의종은 과부의 옆전한잎의 귀함을 가르쳐주었읍니다. 그때부터 십일조가 시작되었고 스페인에 있을때는 십의 2조도 드리게 되었읍니다. 이 십일조 훈련을 받은뒤로 저는 한번도 물질문제가 없었고 이제까지 늘 풍성한 물질이 저의 뒤를 따라 다니게 되는 축복을 입었읍니다. 또 그당시 말씀공부, 곧 순종이라는 훈련이 심했읍니다. 창세기22장,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을 공부하며 모두가 자신의 가장좋아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우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한다고 배웠읍니다. 저는 그간 제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아끼고 있던 숨은 우상이 된 여학생에게 장문의 결별의 편지를 쓰며, 주님께 대한 저의 최고의 사랑을 먼저 드리는 결단을 했읍니다. 그러자 곧 하나님은 하나님을 저보다 더사랑하는 마리아 선교사를 일생동역자로 약혼을 허락해 주셨읍니다. 그뒤 군3년동안 대학때와 같이 목자의 생활을 하는 축복을 받았읍니다. 내무반 병력을 시골동네 주일예배때 데려가기도 하고, 군목이 없을때는 대대예배때 말씀도 전하고, 또 군 내무반에서 한 일대일을 통해 제대후 중앙센터의 초기 조상의 한명이 나오기도 했읍니다. 그리고 갓제대하고 일전한푼없는데 마리와 선교사와 결혼했읍니다. 그는 와세다대학 법대출신의 전직 서울고법 판사의 큰딸로, 마치 나뭇군과 선녀가 결혼하는것 같았읍니다. 이때 장인어른이 좋은집 한채를 결혼선물로 주었읍니다. 저는 일생가도 집을 살수 있을것같지않은 가난한생활만 했기에 wife 에 House 까지 주니까, 이게 웬 하나님의 축복이냐 하고 감사했읍니다. 그때 하나님의 종 저의 목자님은 창세기 14:22 로 제게 도전했읍니다. 즉 소돔왕에게 아브람이 “네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할까 하여“ 실오라기 하나라도 받지않겠다 했읍니다. 제게도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불신인 장인어른께 그 집을 돌려주도록 권고했읍니다. 저는 마리아선교사와 장인을 찾아가 절한뒤, 집을 돌려드린다고 말하니 장인어른이 화가나서 벌떡일어났읍니다. 저는그때 마리아선교사를 뒤로두고 막 달아났읍니다. 그러나 나중에 들으니 장인께서 “이시대에 보기더문 사위를 얻었다”며 동료변호사들에게 자랑했다는 소리를 들었읍니다. 이것은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좋은 제자 훈련이되었읍니다. 나중 하나님은 저에게 미국에서 큰 3층집을 허락해 주셨읍니다. Part two: 가서 모든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1975-현재) 당시 조그만 지구본을 포켓에 넣고 다니며 “세계는 우리의 밥이다” 어서 가서 잡아먹자! 하고 세계를 우리 손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들은 당시 소감대신, “메시지 받아쓰기”를 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매일 먹고 연말에 일용할 양식 노트 무게를 재었습니다. 그리고 여름 수양회 때, 태평양을 바라보는 동해안 해변에서 당시 전세계 150개국 나라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또 그중 한나라를 골라 장래에 선교사로 내보내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손을 잡고 “성서한국, 세계선교!”를 외쳤습니다. 국내적으로 대학생성경읽기가 광주에서, 전주, 제주, 대구, 대전을 이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세계선교로 즉각 이어졌습니다. 저희들은 그간 하나님의 죄용서하심, 제자삼으심을 두 눈으로 보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이제는 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하신 말씀을 접하게 된것입니다. 모든말씀을 순종해온 저희에게 이 지상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대학생이 여권도, 비행기표도, 선교지원금도 없이 어떻게 선교를 하겠읍니까? 그러나 그당시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나 강력하게 저희들을 움직였읍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너희의 5병2어를 주께 드리라. 주께서 5천을 먹이시리라! 하나님께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 하나님을 믿으라! 저희는 우리 밥이라! 그래서 세계선교가 시작되었읍니다. 그당시 처음듣는 용어,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 즉 신학교도 안나온 학생, 학사들이 자기직장통해 선교자금을 만들어 자비량으로 선교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2013년 초에는 95개국에 약 1550 명의 선교사가 나가게 되었읍니다. 1.외교관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생활 (75-2013) 1975년 외무부에서 스페인 어학연수 일년을 떠날때 아이 요셉이 갓태어나 혼자가야했읍니다. 그리고 1976 년 저는 주 과테마라부영사로 발령을 받았읍니다. 이때 마리아 선교사는 전요한 선교사가 이 사무엘 선교사후임으로 갓 취임하였기 자신이 섬기던 종로 2부 학사회스텝일을 계속하여야 한다며 저를 또 혼자가라고 했읍니다. 제 생각에 많은 여인들이 외교관 부인의 화려하고 이국적인 삶을 좋아할터인데 오직 마리아선교사는 세상즐거움은 아랑곳않고, 하나님만 고집하니 너무 한다 싶었읍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말든지, 했으면 남편따라 오든지, 결혼은 왜했느냐 하면서 구박했읍니다. 그래도 남편보다 주님을 더사랑하며, 저도 자기아내보다 하나님을 더사랑해야 한다고 말했읍니다. 이때 처음으로 제가 아기자기한 사람으로 하나님보다 아내, 가정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발견하였읍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혼자 가기로 했읍니다. 그렇지만 한 3개월이나 6개월뒤면 하나님께서 곧 보내주시겠지하고 기대하며 떠났읍니다. 이것이 총 합해서 약 10년간떨어져 있게될줄 처음부터 알았다면 절대로 혼자가지 않았을것입니다. 처음 낯선 이국 외교관 생활에 업무도 업무지만 매일 밥하고 빨래까지하고, 가는날 첫 주일예배부터 스페니쉬 메시지준비해서 전하고 또 일대일 양치는 생활까지 일인 3역 4역의 고된생활이 6개월이 되어도 아내는 오지않는 것이었읍니다. 저는 너무 외롭고 괴로워 달밝은 날이면 보름달같은 마리아 선교사를 생각하며 기타를 치면서 그리움을 달랬읍니다. 그래도 오지않자 저는 일년이 지나면서 이러면 못살겠다 싶어 공갈을 치기 시작했읍니다. 이제까지는 참았지만 이제 빨리 오지 않으면 큰일날줄 알라고! 사실 그때쯤 매일 혼자 외교관 멋진차를 타고 오가는 동양의 젊은 외교관을 과테마라의 젊은 아가씨들이 유혹해오기 시작했읍니다. 토요일 혼자 외롭게 지내는 저에게, 난데없이 전화가 걸려왔읍니다. 혼자있느냐고? 저는깜짝놀라 전화를 끊었읍니다. 그런데 그다음 토요일 오후 또 전화가 걸려왔읍니다. “나는 하나님믿는 크리스천이고, 또 선교사”다하고 말했읍니다. 그런데 아릿다운 여인의 목소리는”선교사면 어때요?”했읍니다. 그다음 토요일에 혼자있는 저의 아파트에 누가 노크를 했읍니다. 무심코 문을 열었는데 왠 아가씨가 밀고 들어왔읍니다. 저는 그때 두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읍니다. 하나는 오래동안 참았던 육체의 욕망의 소리였읍니다. 마리아 선교사가 오라고 해도 안왔고, 이것은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수 없다는 소리였읍니다. 그러자 그는 남편이 한 일주일 출장을 갔기에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읍니다. 이때 제맘에 또다른 소리가 들려왔읍니다. 잠언인것 같은데..“아내아닌 이방여인을 품에 안는것은 뜨거운 숯불을 가슴에 안는것과 같고, 또유혹하는 여인을 따라가는 것은 소가 죽으려고 푸줏간에 끌려가는것 같고, 그 나중은 슬픔과 번민뿐이라” 그리고 구약의 요셉이 “내가 어찌 이 큰악을 주앞에 행하리요하고 달아났던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집이라 제가 달아날수도 없었읍니다. 그때 또 사랑하는 마리아 선교사가 생각났읍니다. 제가 공갈은 쳤지만, 저만 믿고 있을 그에게 이런일을 몰래하면 하나님앞에서 그에게 결혼때 서약한 신뢰를 배반하는 나쁜일이라는 것이었읍니다. 이런 급박한상황중 주여 좀 도와주십시오 기도할때 주님께서 갑자기 하나의 지혜를 주셨읍니다. 그래서 그 여인에게 말했읍니다. “당신 남편에게 당신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하겠다”고…그랬더니 그는 후닥딱 놀라며 문을열고 나가서 다시는 오지않았읍니다. 휴--- 저는 가슴을 쓰다듬어 내리고 하나님께 감사했읍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술, 돈, 여자를 조심해야 된다더니… 이런일도 다 있구나 하고말입니다. 이것이외에 여인들의 문제가 또 있었지만 하나님은혜로 모두 극복하게 되었읍니다. 이제 여인문제는 이정도로 하고 다음제자훈련으로 넘어가겠읍니다. 그런가운데 실비아자매가 꾸준히 말씀공부하여 제가 떠날때쯤 1979년엔 한국의 강노아 선교사와 첫 중남미의 가정교회를 이루는 축복이 있었고 과테마라에는 15명 정도의 대학생모임으로 자라있었읍니다. 과테마라에서 한국에 돌아온 1979-82년사이의 일입니다. 종로 3부, 현재의 배봉센터개척이 있었읍니다. 학생시대, 군, 또 과테마라에서 하였던 것을 이제 어디가든지 하라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듣고 개척을 시작했읍니다. 돌아가신 복실할머니가 저희 둘째 갓태어난 마리아를 등에업고 저의 주일메시지를 유일하게 들어주는가운데 종로센터좁고 퀴퀴한 곰팡이냄새가 나는 지하실에서 시작했읍니다, 2년뒤 떠날때쯤에는 약 15-20명의 양떼들이 몰려왔고, 그중 거의모두가 나중 선교사로 나가고, 스텝이 되었읍니다. 그런저에게 난데없이 저를 가르친 목자님을 통해 외무부사표를 낼수 있느냐는 도전이 왔읍니다. 저는 이때 외교관생활이 너무 재미도 있고, 적성에도 맞고, 봉급도 국내보다 2-3배 정도 많아서, 무엇보다 평신도 자비량선교사 하기에 딱 좋다고 생각했읍니다. 그래서 “무슨말씀을 하시냐고? 외교관을 그만두라니!” 하고 반발했읍니다. 그런데 기도중에 혼자가만히 나를 살펴보니, 저도모르게 하나님보다 외교관을 더사랑하고 있는것을 발견하게 되었읍니다. “안보이시는 하나님은 이제 떠나도 되지만, 외교관은 못떠나, 이게 나를 밥먹여주고, 명예와 부귀와 권세도 줄터인데” 하고 외교관을 꽉붙잡고 절대로 놓지지 않으려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일생공부하여 성취한 것인데 사표를 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화를 내고있는 나를 보았읍니다. 바로 저의 우상이 되고만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사표를 내고 왔읍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기쁘고 홀가분했읍니다. 더디어 해냈다! 나는 이제 아내보다 자식들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또 직장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자가 증명되었다! 하며 즐거웠읍니다. 그런데 이소식을 들은 저의 훈련관 목자님은 “언제 사표내라고 했느냐, 너무 외교관을 사랑하는것같아서 한번 훈련을 해본건데 하면서” 빨리 사표를 취소시키고 외교관 선교사로 계속 살라고 했읍니다. 저는 너무나 황당했읍니다. 사표취소가 사표내는것 보다 몇배나 어려웠읍니다. 외무부는 체면으로 살아가는 집단인데 거기가서, 어린애 장난치듯 사표내고, 이제 또 사표취소를 하면 사내일언 중천금, 사나이 한마디는 천금보다 더무겁다는 경상도 사나이의 기개에 맞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화를 내고 있는데…또 혼자 조용히 기도해보니, 이것은 제가 하나님보다 저의 체면을 더사랑하고 있기에 화를내고 있음을 발견했읍니다. 그래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가서 사과하고 사표취소를 받아돌아왔읍니다.이로서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저의 체면따위는 무시할수 있고 믿음으로 못할것이 없는자로 승격시켜 주었읍니다. 그러자 82-85년 멕시코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겸 참사관으로 발령이 났읍니다. 이때도 마리아선교사는 아직 주의역사섬길것이 많아 저를 못따라 가겠다고 말했읍니다. 할수 없이 또다시 혼자떠났읍니다. 그때쯤 과테마라의 역사를 맡은 강노아 실비아가정이 교회로 감으로 유비에프 과테마라가 없어져 버렸읍니다. 저는 이에 큰 쇼크를 받고 제가 후속조치를 잘 하지 못한것을 깨달았읍니다. 그래서 멕시코에서는 주일메시지, 양치기도 열심히 했지만, 후계자를 잘세워야만 될것을 알고 한국에서 좋은 선교사들을 보내어 달라하여, 황아브라함 사라부부및 이디모데 선교사가 파송되어 왔읍니다. 이제 삼년이 되어 떠나려는데 아직 제대로 선 목자는 없고, 주의 역사는 어찌될찌 모르는 가운데 근심하는 저에게 창세기 말씀이 생각났읍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뭇별을 셀수있나 보라”하신 주의 명령대로 별을 세어 보았읍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새까만 밤하늘에 별이 한개도 안보이는 것이었읍니다, 그때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처럼 들렸읍니다. 저는 슬픔과 근심에 차서 방으로 돌아왔읍니다. 그러나 사실 멕시코는 그당시 공기오염이 심해서 구름과 먼지로 하늘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조금뒤 저는 다시 밖으로 나갔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되뇌이며… 그때 그 캄캄한 밤하늘 저 너머로 찬란한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기 시작했읍니다. 주께서 저의 영의 눈을 열어주사, 구름과 공해가 가린 저너머를 보게 하신것입니다. 저는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네 자손이 이와같으리라”하고 승리의 고함을 외쳤읍니다. 그리고 20여년이 손쌀같이 지난 2005년경 멕시코를 다시갈 기회가 있었읍니다. 그때 부활절 수양회말씀을 전하는 저의 눈앞에 800 개의 초롱초롱한 눈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읍니다. 저는 저의 기도도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주께서는 아브라함,사라, 디모데선교사님들의 피땀나는 제자사역의 결과로 벌써 400 여명의 멕시코 형제자매의 역사를 주께서 이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멕시코의 현지목자들이 자라 페루, 엘살바돌, 도미니칸 리프부릭, 미국 또 더나아가 라틴이 쇠퇴해가는 유럽을 먹이자하고 작년 지부장수양회를 스페인에서 갖기 까지 했읍니다. 그때 85년-87년 귀국하여 현재 종로7부인 외대요회, 호세요회를 개척했읍니다. 그리고 87년에는 유엔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에 발령을 받았읍니다. 그런데 유엔 주재 2년만인 89년에 스페인으로 발령을 받았읍니다. 이것은 전례없이 3년이 아닌 2년만에 발령이 나서 속으로 상당히 불만에 차있었읍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당시 어학연수를 온 빠블로 오 현재 대사부부의 기도때문이었읍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연휴때 유럽여행을 갔다가 오는길에 피레네산맥골자기로 떨어지는 자동차 사고를 당했읍니다. 그때 빠블로대사는 그간의 모든 죄를 고하고, 특히 외무부에 합격시켜주시면 주님을 열심히 믿겠다한 자신의 맹서를 지키지못한것을 용서해주시고 한번만다시 자신과 가족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다합니다. 그때 기도대로 차는 완전히 망가졌지만 온 가족은 살아남았읍니다. 그래서 100일간 하루한끼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좋은 성경선생을 보내주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니 빠블로 오 외무부 후배가 자기와 부인에게 성경을 좀 가르쳐달라고 했읍니다. 그러나 저는 세번이나 두고보자며 석달이 지났읍니다. 저는 스페인대학생들에게 말씀가르치려왔는데 난데없이 한국사람이 나서서기분이 언짢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번째는 자기집에서 저녁상을 크게 차려놓고 100일 기도얘기를 들려주었읍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인것을 깨닫고 즉시 그날 부터 매주 한번, 문제풀고, 소감쓰고, 또 혼자와있는저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한다는 조건으로 말씀공부에 들어갔읍니다. 처음한번, 한달뒤 일주두번, 두달뒤 일주 세번, 네번 그리고 거의매일공부하여, 6개월여만에 창세기, 요한복음을 다 끝내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캠퍼스 핏싱도 같이 나가고, 또 주일예배 멧시지도 가끔전하도록 훈련을 했읍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제가 외무부를 떠나야되기 직전 외무부 후계자를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그를통해 알젠틴, 칠레, 베네즈웰라, 엘살바돌그리고 지금의 스페인 개척에 외무부에서 크게 쓰임받는 종이 되게 하셨읍니다. 그해 1989 주님은 저를 UBF 시카고 세계본부의 요원으로 부르셨읍니다. 그래서 사표를 내어야 했는데 다만 저의 사표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제가 예수믿다가 역부족이되어 밀려났다는 불명예가 되지않게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읍니다. 12월 둘째주, 사표를 써서 대사관에 갔읍니다. 마침 대사님이 복도에서 걸어오시다가 저를 보며 반갑게 포옹하시며, “공사진급이 되어 축하한다고” 3배수추천의 어려움을 뚫고 진급했다며 본부인사발령소식을 알려주셨읍니다. 10분후 직원회의때 저는 사표를 대사님께 제출했읍니다. 사표절차에 따라 한국에 돌아왔을때 교회 장노이신 외무장관은 저에게 물었읍니다. 왜 무엇이 외무부를 떠나게 했냐고? 저는 마태복음을 인용했읍니다. “천국은 마치 한 사람이 밭에서 금광을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산 사람과 같으니.” 그리고 저가 그 금광을 발견한 자입니다라고 말했읍니다. “저는 한 때 외교관 보다 더 매력적이고 보람된 직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높고 귀하고 영원한 하늘나라 대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세상나라 대사를 팔기로 했습니다.” 이때 제 마음가운데는 “주예수보다더 귀한것은 없네, 이세상보화로 바꿀수 없네!” 하는 찬송이 울려퍼졌읍니다. 장관님은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부양해야할 가신들이 아직 많아 그렇게 못한다며, 부러운 결정을 축하해주고 장도를 빈다고 해 주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 해의 공관장 회의에서는 전두환대통령이 제시한 의제만큼 Mr. Ahn 의 사퇴에 관한 찬반의 논의가 비공개 주요 토의 의제가 되었다는 뒷말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미친 짓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대사보다 뭔가 더 좋고 영원한 하나님의 대사라는 것도 있구나! 수긍했습니다. 이제 외교관을 사퇴한지 23년이 되어 가는데 대사를 끝낸 친구나 또 후배들 중 많은 분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기도 이제는 하늘나라의 대사가 최고로 귀한 줄 알게 되었다고. 이제 외무고시 동기들은 모두 대사를 그만둔 지 한 10년은 됩니다. 그러나 아직 현직에 남아서 그 예전 어느 때보다 바쁘게 일하는 분이 두 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반 유엔 사무총장입니다. 그 분보다 자신과 대한민국에 더 영광된 일을 하시는 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은 바로 그 옛날 외교관 시 또 지난 40여년 UBF 선교사로 산 것보다 더 바쁘게 주님의 영원한 나라위해 이름도 없이 일하는 하늘나라 대사 호세 안 입니다. 이제 때가 되어 주의 호령으로 심판하러 오실 때,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도 그의 불꽃같은 눈으로 판단하사 누가 과연 가장 영광된 생활을 살았는지도 구분해 주실 것입니다. 1990년부터 지난 23년간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겠읍니다. 다만 짧세 한마디 한다면, 시카고에서 평신도 자비량선교사로 11년간 국민학교 교사생활한것과, 지난 7년간 아들 Dr. Joseph 과 딸 Dr. Maria 가정의 지원으로 자비량 Full Time staff 으로 UBF 시카고 국제본부에서 일하고 있읍니다. 시카고에서 배운것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11년간 계속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직접제자 훈련을 지독히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를통해 많은것을 배웠읍니다. 한때는 제가 큰나무가 되기위해 미국양들을 비료로 삼으려할때 아무리 애써도 양들이 모두 달아났는데, 회개하고 제가 비료가 되고, 미국학생들을 큰 나무로 키워야 되겠다 할때 역사가 많이 일어났읍니다. 이전에는 제가 주인공인 다윗이었고 제주변의 모든 사람은 저를 위해 죽어주어야할 요나단이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제 제가 제 주변의 모든 사람을 다윗으로 생각하고, 제 자신은 요나단으로 살도록 새 마음을 주셨읍니다. 그리고 60이 되었을때 아 이제 UBF 40년에 나의 인생을 온통 투자해서 하나님을 섬겼으니 이제는 쉬어야 겠구나 했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몇세에 불렀느냐물어, 75세요대답했읍니다. 모세는 몇살에 불렀느냐 물어, “80이요” 대답했읍니다. 그런데 너는 지금 몇살이냐? 물었읍니다. 대답을 못하는 저에게, UBF 40년은 간단히 준비운동한것이니 그리알고 이제 제대로 주님영광과 양들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라 방향을 주셨읍니다. 그래서 엊그제 브라질의 한 2세가 “선교사님 저는 16세인데 선교사님은 몇살이예요?”하고물어왔을때 대답했읍니다. “아! 나는 17세입니다. (그리고 주를 달았읍니다. 다만내나이에서 50을 던져버린것은 잊어주세요) 이렇게 우리주님은 저를 대학생때 “와보라” 초청해 주셨읍니다. 이초청은 이세상에서 그어떤 왕들의 초청보다 가장귀한 초청이었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참제자, 명품제자가 되도록 일대일로 친히 훈련하사 빚어주셨읍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하시며 내보내셨읍니다. 원래 시골 구석에서 자라 우물안개구리처럼 “아기자기” 곧 아기하고 자기만알며 살다가 죽어갔을 저의 인생을 그 웅대하시고, 세계적이시고, 역사적이시고 영원한 하늘나라대사로서 이제껏 세계 100여개 이상 나라를 돌며 기도하고, 말씀전하고, 제자삼는 역사가 있게 하셨읍니다. 그리고 이제 은퇴는 커녕, 2세, 3세 또 세계각처의 New Generation 현지 리더들을 내가요나단이 되고, 또 그들의 비료가 되어 큰 꿈나무 다윗들을 많이 길러내는데 남은 인생을 온통 쓰시겠다하십니다. 저는 참으로 여러분과 같이 이세상에서 가장 또 영원히 축복받은 주님의 제자요, 또 제자양성가인것을 인해 주님께 감사와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이제 찬송가하나로 마치겠읍니다. “내구주 예수를 더욱사랑, 간절히 비는말 들으소서. 내일생소원은 내구주 예수를 더욱사랑, 더욱사랑. 이전에 세상락 기뻤으나, 지금 내자랑은 오직예수! 내일생소원은 내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사랑!! 한마디 :”와보라!” “가서 모든족속으로 제자삼으라!”
993 no image 어떤 교수님이 젊은이게 주는 글 [2]
[레벨:20]정아브라함
92 2013-01-31
다음은 연세대교수님이 현실의 어려움에 직면한 젊은이들에게 주는 글입니다. 자기문제 인간문제의 해결책은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부분에 동감합니다. 또 맨 밑단의 "꿈을 꾼다"를 "소망(영생)을 갖는다"로 바꾸어 읽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시대입니다. 희망을 상실한 청년들의 삶에 대해 길을 묻는 당신의 편지를 읽으며 내내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취업 원서를 작성할 당신을 떠올리며 솔직히 고통스러웠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몽매하고 오만한 기성세대 모두에 대한 엄중한 비판인 동시에, 인간과 사회문제에 대해 해답을 모색해온 노력과 지식들에 대한 통렬한 분노였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무지와 탐욕에 대해 오늘의 세계현실보다 더 적나라한 고발장은 없다고 봅니다. 인간문제가 어느 한 시대인들 명쾌한 해답을 가진 적이 있었겠습니까만, 기술과 문명이 가장 발달하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최고 수준이라는 오늘날조차 이토록 심각할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저는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실업·불평등·빈부격차·특권고착·도덕해이·경제위기를 보며 인간문제에 대한 인간지혜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문제, 즉 나와 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정을 멈출 수도 없고, 멈춰서도 안 됩니다. 모든 인간문제는 보편적이며 일반적입니다. 즉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인간문제들은 모든 시대의 누구에게나 존재했었던 것들입니다. 동시에 모든 인간문제는 현재적이며 개별적입니다. 즉 오늘의 문제는 우리 시대, 특히 그 안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전체 개별문제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의 나 한 사람이 힘든 것입니다. 그 많은 ‘나’의 문제가 모여 ‘사회’문제가 되고 ‘전체’문제가 되고 ‘세계’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일반성과 보편성은 곧 전체적 개별성입니다. 즉 한 시대의 보편성은 곧 그 시대 전체 한 시민 한 시민의 개별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합니다. 반대 논리 역시 진실입니다. 나의 문제, 나의 아픔은 앞선 모든 인간들도 누구나 겪었던 고통이라는 점입니다. 그 때문에 나만의 개별문제로 여기고 낙망하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전자에서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후자에서 인간으로서의 위로를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자기문제와 인간문제의 희망을 찾아야 합니까? 저는 바로 당신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세계문제와 사회문제 해결의 출발을 이룰 것입니다. 오늘의 당신 문제야말로 세계문제이자 사회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인간문제의 총합이 곧 세계문제와 사회문제입니다. 개별 삶들은 시대적 보편성의 응축이며, 시대문제는 곧 그 시대 인간문제의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때문에 당신은 무엇보다 당신 자신 문제의 해결을 위해 좌절하고 낙망해 있을 틈이 없습니다. 당신이 당신 자신 문제를 버려둔다면 아무도 당신 문제를 위해 먼저 나서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일어선다면, 또 다른 당신도 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어설 것이고, 그 두 당신은 점점 퍼져나가 마침내 더 많은 당신들과 우리들로 확산되어 사회와 나라를 바꿀 것입니다. 세계인들로 확산되어 간다면 끝내는 세계를 바꿀 것입니다.  당신의 편지를 받은 이후 저는 수십 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는 파리에서 일부러 팡테옹을 찾았습니다. 그러고는 제가 좋아하는 볼테르, 루소, 빅토르 위고의 삶을 만났습니다. 거기에서 저는 자기 나라는 물론 전체 인류의 사상과 제도, 학문과 문학, 영혼과 역사, 교육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들의 궤적이 과연 조실부모, 방랑, 가난, 고독, 자녀사망, 배신, 금서조치, 수배, 탄압, 추방, 망명, 투옥, 은둔, 반정부투쟁, 살해 위협…과 같은 극한적인 개인적 고난과 시대적 상황에의 정면 맞섬 없이도 가능했었을지를 물었습니다. 그들의 삶·사상·영향은 개인적 고난과 사회적 부조리, 둘 모두와의 결연한 맞섬을 위한 자기결단과 투쟁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팡테옹에서 저는 당신과 저를 위한 위안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이 고통스럽기에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남을 위한 희망의 징표가 되기 위해, 그리고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내 영혼과 정신의 혁명이 필수적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어떤 것도 불가능합니다. 인간혁명과 사회혁명과 세계혁명에 앞선 정신혁명과 영혼혁명을 말합니다.  처음 우리는 자기문제의 해결을 위한 꿈을 꿉니다. 그것은 작은 밀알처럼 가슴속에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자라납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마침내 내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이 나를 이끌어갑니다. 정신과 영혼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지요. 저는 당신과 제가 자신과 사회와 세계문제의 해결을 향한 꿈, 그 뜨거운 불꽃을 갖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위로가 되었기를 소망하며 이만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수
992 no image (가볍게 볼만한) 태양계의 실제 움직임 [3]
[레벨:20]박문수
69 2013-01-29
991 no image [도서] 성경의 숲 단행본 판매 [5]
[레벨:20]강혜란
91 2013-01-16
990 no image [기사] '복지 천국' 제니퍼소프트의 비밀 [2]
[레벨:20]서진우
62 2013-01-16
최근 직장내 복지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제니퍼소프트 대표의 인터뷰입니다. 개인적으로 평가와 보상을 구분하는 급여시스템에서 배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승규의 매거진 플러스'로부터 퍼온 글입니다---- '수영장이 있는 꿈의 사옥'으로 유명해진 제니퍼소프트를 다시 찾았다. 대기업도 따라올 수없는 유럽수준의 복지를 실천하는 이 작은 소프트웨어 기업의 존재는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 ‘기업은 생존 공동체’…유럽 수준 복지 실험) 하지만 지난 취재 때 이원영 사장을 만나지 못했다. 오늘의 제니퍼를 설계한 주인공이다. 마침 미국 출장 중이라고 했다. 계속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 괴짜 CEO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 걸까. 그가 갖고 있을 혜안과 자신감이 못내 궁금했다. 수은주가 또 한번 치솟은 8월13일(월) 오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로 향했다. 제니퍼는 요즘 새 식구를 맞는 일로 분주했다. 여기저기 언론을 타면서 신입사원 모집에 300~400명이 몰렸다. 이날도 이 사장은 1층 카페에 입사 지원자 두 명과 마주앉아 면접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희가 찾는 프로그래머 상과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사장의 너무나 솔직한 말에 두 사람은 무척 놀란 눈치였다. 이 사장은 "수백명 지원자 중에서 5명을 뽑았다"며 "이들이 제니퍼의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전직원이 18명인데 5명은 너무 많지 않나. - 우리 규모로 보면 분명히 많다. 하지만 이들은 제니퍼의 미래다. 그동안 제니퍼가 해온 일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이들이 만들어 낼 거다. 생각만해도 벌써 신난다. 앞으로 1년은 아무 일도 맡기지 않고 책만 읽게 할거다. 아침에 오면 신문 보고. 해외 기업 탐방도 보내고.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스케치 능력, 프리젠테이션 기법, 브레인스토밍 방법 같은 공통 소양을 익히고, 거기에 더해 각 역할 별로 전문적인 교육도 한다. 7년 가까이 사업을 해보니 어떤 비즈니스 던지 기획, 마케팅, 프로그래밍, 리더십, 디자인 등 5가지 역량을 갖춰야 아귀가 맞는다. 이번에 뽑은 5명은 한명한명 각자 서로 다른 역량을 가진 분들이다. = 어떤 기준으로 뽑았나. - 사유의 능력을 봤다.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가 하는. 또한 생각의 방향성이 얼마나 진보적인 가도 중요하다. 개인적 성공이 아니라 이 사회를 온전하게 바꾸려는 건전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기획자로 지원한 어떤 분이 자신의 꿈은 적정기술을 아프리카에 적용하는 삶을 사는 것인데, 제니퍼라는 회사의 틀 내에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메일을 보냈더라. '너무 기쁘다, 제니퍼는 오히려 그런 걸 적극 권장한다'고 답을 보냈다. 리더십 쪽으로 뽑은 분은 나이가 정말 어린 데도 사회과학적인 측면이나, 철학적인 측면이 아주 뛰어나다. = 지원자가 많았다는데. - 가장 놀란 게 신입사원 모집 분야에 경력자들이 굉장히 많이 지원했다는 점이다. 하나같이 애잔하고 눈물 나는 사연을 갖고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는 직장, 행복할 수 있는 직장, 자기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직장, 자기 아이들과 가정을 꾸리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직장, 누구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직장. 이런 건강한 기업에 대한 절절한 고민과 갈구가 배어있다. 15년 경력자가 신입사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 급여 수준은 어떤가. - 급여는 비밀이다. 대안적 기업으로서 급여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한다. 최근에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기존의 급여 보상 시스템은 멤버들의 기여가 있으면, 그걸 평가하고, 거기에 비례해서 보상을 하는 방식이다. 새롭게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는 평가와 보상의 관계를 단절 하자는 것이다. 평가는 평가고 보상은 다른 걸로 하자는 거다. 그럼 뭐가 있나. 그 사람이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 보상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내적 동기, 열정, 꿈을 향한 전진, 소명의식, 실행력, 공감과 소통의 능력, 삶과 일의 균형이 잡힌 노력, 그런 문화를 만들려는 의지 등을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도 그 포션이 커서는 안 된다. 전통적인 방식은 인센티브를 높여서 자꾸 단기적 목표를 달성하도록 내몬다. 기본 임금을 충분히 높이고 보상은 작은 부분으로 하되, 정성적 평가를 통해 내적 동기를 유발하는 쪽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 해외 유학을 보낸 직원도 있다던데, 정말인가. - 1년 어학연수를 보냈다. 비용은 회사에서 전부 지원했다. 또 한 직원은 비행사 자격증을 따고 싶어해 지원했다. 지금은 김포에서 강릉까지 경비행기 몰고 왔다갔다한다. = 왜 그런 일을 하나. - 기업이라는 틀 속에서 구성원들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슨 비전이 가능할까. 직무에 대한 커리어 패스?. 소극적인 차원이다. 좀더 넓혀 보면 개개인의 꿈이 중요하다. 몇십년 지나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문제다. 그건 모두가 다 다르다. 그걸 인정하고 진정으로 지원해 주려고 한다. 때로는 금전적으로, 때로는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약속으로. 한 직원은 앞으로 아시아 지역 헤드쿼터를 설립하면 거기서 자기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정년없는 회사를 꿈꾸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들을 죽을때까지 노동자로, 노예로 가둬놓고 싶지는 않다. 작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지금은 단지 우리가 뜻이 같기 때문에 함께하는, 거쳐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 많은 투자를 했는데 그 사람이 이직하면 어떻게 하나. - 투자를 많이 하지만 그들이 지금과 같은 괄목할만한 성과도 만들어 내고 있다. = 대학 생활은 어땠나. 학생운동을 했나. - 경북대 수학과를 나왔다. 학생운동의 끝자락인 90학번이다. 1학년 때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이 진전돼 쌀 수입개방을 반대하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거기에 참여했다 3개월간 미결수 생활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 특사로 사면 복권됐다. 당시 학생들의 그런 노력이 지금까지 우리 농촌이나 사회에 여러 가지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믿고 싶다. = 그때 경험이 이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그때 사유하고 고민했던 것들이 직장생활 8년 동안 계속 눌려있다가 창업해 법인설립하고 어떤 회사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생각하면서 다시 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금은 그걸 하나씩 실천하는 과정이다. = 대학 졸업하고 어떤 일을 했나. - LG-EDS(현 LG-CNS)에 입사해 미들웨어 연구원 생활을 했다. 그후 한국IBM으로 옮겨 프리세일즈 엔지니어, 테크니컬 엔지니어 생활을 5년간 했다. = 직장 때도 개발자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보공유 운동을 했다고 하던데. - 자바서비스닷넷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1999년에 쓴 '모든 자바개발자에게 고함'이라는 글이 있다. '모든 정보는 공유되어야 하고, 인간의 편리를 위해 존재해야 할 당위성을 되찾아야 할 시점입니다. 모든 자바 개발자여 지식을 한 곳으로 모읍시다. 이곳은 당신의 이름 그 석자를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 지금 봐도 잘 썼지 않나.(웃음) 자바서비스닷넷은 지금도 운영된다. 내가 사회에 환원해야 할 봉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뽑은 5명 중에 이 커뮤니티를 담당할 사람도 있다. (사무실 바닥에 제니퍼의 철학을 자바 스크립트로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다. 위는 유토피아를 찾고 판타시아로 간다, 아래는 고정되있으면 유연성을 찾고 닫혀 있으며 열고 창의성을 실천하라는 의미) = 커뮤니티가 법인으로 전환된 건가. - 아니다. 처음에 회사 이름은 커뮤니티와 연관성을 나타내기 위해 자바서비스컨설팅으로 지었을 뿐이다. 이후 제니퍼라는 제품 브랜드가 중요해져 회사 이름을 제니퍼소프트로 바꿨다. = 창업을 함께한 동료들은 어떻게 됐나. - 뜻이 맞지 않아 설립 1년 지나 헤어졌다. 정체성이나 가치관은 쉽게 바꿀 수 없는 것 아닌가. 요즘도 진보성을 강조하는 게 사회적으로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다. = 그래도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게 좋지 않나. - 맞다. 요즘 젊은이들은 진보가 진부하다고 느낀다. 정치적인 싸움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사실 진보는 보다 온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다. 그게 진보의 정의다. 이걸 누가 반대하겠나. 진보는 가난하고 도덕적으로 완벽 해야만 하는 고지식한 게 아니라 멋있는 진보, 간지나는 진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걸 새로운 시대적 패러다임으로 만들어야 한다. = 외부 투자자는 없나. - 없다. 제니퍼는 비상장회사를 꿈꾼다. 미국 회사면서도 가장 미국적이 않은 회사인 SAS가 롤델이다. 이 회사는 아직도 비상장사로 남아있다. = 대기업 생활은 어땠나. -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기업은 제 2의 가정이자 구성원들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 틀이기 때문에 이제 이윤추구 이외의 것들을 고민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 기사 댓글 중에 재벌기업들이 제니퍼를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 많았는데. - 이러다 LG나 삼성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웃음) 지금 모든 사장님으로부터 제니퍼가 공공의 적이 되어가고 있다.(웃음) = 제니퍼 소프트웨어는 어떤 건가. - 성능관리 소프트웨어다. 인터넷 뱅킹을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데, 국내 은행 인터넷 뱅킹 시스템에 대부분 제니퍼가 탑재돼 있다. 추석이나 명절 때 사용자가 폭주하면 시스템 응답 속도가 늘려지고 성능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제니퍼가 탑재돼 있으면 사용자가 몇 명 들어왔고 응답 속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개별 서비스가 어떤 위치에서 병목이 발생하는지 비주얼한 그래픽을 통해 즉시적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시스템 담당자가 성능 장애 원인을 즉각 판단해 조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마치 의사가 단층 촬용을 통해 몸 안의 암 세포 위치와 전이 정도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제니퍼는 웹 미들웨어 시스템 내부를 단층 촬영해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제너퍼 소프트웨어에 대해 설명하는 이원영 사장) = 해외 시장 진출은 어떤가. - 제품을 개발 할 때 첫 버전부터 한국어와 영어, 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5개국어로 제품을 만들었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거다. 창업 1년만인 2006년 일본 법인을 설립했고, 곧이어 미국 사무소도 개설했다. 건강한 글로벌 기업이 제니퍼의 비전이다. 현재 일본과 미국, 오스트리아, 태국에 법인이 있다. 말레이시아, 폴란드, 영국, 브라질, 네덜란드, 독일은 협력사가 있다. = 성장 전망은 어떤가. - 많은 사람이 제니퍼의 성장을 궁금해 한다. 복지를 저렇게 시행하면서도 저렇게 잘 성장하는 기업이 있다니, 그런 시각이다. 하지만 그것 보다는 대안적 기업을 만들어가는 실험적인 모습을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정말 많은 근로자들이 건강한 노동을 통해 근사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 열망이 지금 극에 달해 있다. 그걸 충족하고 채워 줘야 할 기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걸 화두로 삼고 있다. = 지난번에도 느낀 거지만 일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 (웃음) 여기 쉬던 직원들도 방금 올라갔고 외근 중인 직원도 있다. 재택 근무나 외부 근무도 적극 권장한다. 요즘 시대는 자리에 꼭 앉아서 뭘 할 필요가 없다. 수영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된다고 한 건 몰입과 여유의 균형이 창의력을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몰입은 단기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효과적이고, 여유는 장기적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둘의 균형이 필요하다. = 어려움은 없나. - 비슷한 생각을 가진 기업가들과 모임을 만들고 싶다. 안철수 원장이 이윤추구는 결과이지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공감한다. 나는 이윤추구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윤추구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전부가 아니라면 그럼 나머지는 뭔가. 혼자 열심히 찾아가지만 한계가 있다. 대안적 기업의 틀을 함께 만들고 싶다. 인사보상 평가 시스템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고, 기업의 정년 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또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되는지 아이디어도 교환하는 거다. 그동안 자신도 제니퍼 같은 기업을 만들고 싶다며 몇 분이 찾아왔다. = 사옥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가 뭔가. - 공간은 사유를 압도한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 큰 영향을 받는다. 계속 스트레스 받고 답답한 곳에 있으면 건강한 마음을 갖기 힘들고 새로운 통찰력 있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반대로 자연적인 공간, 여유로운 공간, 아름다운 공간에 있으면 마음도 그런 쪽으로 가게 된다. 자율적인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사각형 박스 안에 넣어 놓으면 자율적이 되기 어렵다. 글로벌을 이야기하면서 정말 글로벌로 나가 생각하지 않으면 잘 되지 않는다. 각고의 고통 속에서 여기 있는 모든 걸 잊고 머릿속 사유만으로 미국을 생각하고 네덜란드를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거기에 가면 그 순간 한국은 잊어버리고 그곳에 집중하게 되는데 말이다. 공간은 사유를 압도한다. 그래서 공간에 대한 투자는 아깝지 않다. = 날씨가 마치 유럽 휴양지에 온 느낌이다. - 요즘 글로벌화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 자랄 때도 세계화가 화두였다. 지금은 글로벌 다음 단계를 고민 할 때다. 한때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그곳에 파라다이스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막상 가보니 그런 건 없다. 한국과 다른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그곳이 꿈꿔왔던 파라다이스는 아니더라. 그곳에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고, 개선해야 할 것들이 있다.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을 벗어나는 게 답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처한 환경 속에서 필요하면 만들어 가는 거다. 헤이리 사옥을 짓고 내가 꿈꿨던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서 생활하면 이곳이 바로 파라다이스다. 한국을 버리고 외국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한국을 품은 탈영통화, 탈세계화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삶에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이 누군가. - 아버지다. 태백산맥 꼭대기 오지마을인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태어나셨다. 국민학교만 있던 그곳에 중등과정 학교인 고등공민학교 설립을 주도하셨다. 정년 퇴직할때까지 월급 받으면 학비 못내는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빈 봉투만 어머니한테 가져왔다. '자연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가 가훈이었다. 어릴 때는 그게 잘 이해도 안되고 조금 부끄러웠다. 학교에서 가훈 적어 내라면 친구들은 성실하게 살자 이런 수준인데 우리집은 자연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니. 선생님도 의아하게 생각하셨다. 그런데 20~30대 지나면서 그 말이 정말 삶의 나침반으로 작용했다. 지금도 정정하시고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신다. 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들라, 직원들에게 최선의 선의와 복지를 베풀라는 말씀이다. 요즘도 한겨레, 경향신문 등 신문 4개 보시고, 월간지도 2~3개 보신고, 책도 한 달에 2~3권씩 보신다.
989 no image 연요절을 준비하면서 읽은 말씀이에요(눅4:16-20) [3]
[레벨:5]방수빈
88 2013-01-07
988 no image 2012년을 보내며... [2]
[레벨:20]인금철
34 2012-12-29
987 no image 소포를 잘 받았습니다. [6]
[레벨:14]최선휘
99 2012-12-27
986 no image 시 한편 [2]
[레벨:20]정아브라함
66 2012-12-26
985 no image 윈터스터디 시간, 강사 연락처와 신청자 명단 [3]
[레벨:15]정종현
56 2012-12-21
984 no image 쉬어가는 코너(약간의 착시효과) [6]
[레벨:20]박문수
87 2012-12-14
983 no image 성탄시 [5]
[레벨:20]정아브라함
158 2012-12-14
982 no image [음악] 2012년 성탄 합창 파일
[레벨:20]강혜란
48 2012-12-13
981 no image [펌] 연아의 사명과 영광 [1]
[레벨:20]서진우
75 2012-12-12
980 마인드 세팅 이퀄라이저 파일 [2]
[레벨:20]서진우
55 2012-12-10
979 no image 주기도문 기도할 때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3]
[레벨:20]정아브라함
82 2012-12-07
978 no image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4]
[레벨:14]최선휘
85 2012-12-06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 물음에 대하여 질문해왔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성취하려고 한 모든 것을 이루었지만 왜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는지 의아해 합니다. 한 운동선수가 최고 정점에 오르게 되었을 때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누군가가 해주었으면 좋았을 말은 무엇이었냐고 말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해줬다면 좋았을거에요.” 목표들은 이루고 나면 시간이 지난 후에는 공허한 결과를 가져오곤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업의 성공, 부, 인간관계, 성관계, 오락, 그리고 선행 등 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 부, 인간관계, 그리고 쾌락을 얻고 나서도 그들 깊은 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이 있다고 증언합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이 느낌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측량할 수 없는 부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지혜를 지녔으며, 많은 부인을 거느리고, 다른 왕국들이 부러워할 만한 궁전과 정원, 가장 좋은 음식과 술, 모든 종류의 오락물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 때 원하고 추구했던 것들을 언급하고 나서 결국 “해 아래 있는 삶” 즉 우리가 보고 느끼는 삶은 헛되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런 허전함이 생길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하여 지금 여기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 이상의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왕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으셨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여기 (here-and-now)”에서 경험하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님을 압니다. 창세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말씀합니다 . 여기서 우리는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하나님을 닮은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이 죄로인해 타락하기 전 그리고 땅이 저주받기 전에는 인간은 다음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을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셨다 (2) 하나님은 사람에게 일을 주셨다 (3) 하나님은 사람과 교제하셨다 (4)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 사실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인간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위의 네 가지가 필요하고 하나님이 인간을 위와 같이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특히 인간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인간의 죄와 저주받은 땅으로 인해 변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제 하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 하셨으나 인간은 죄로 그 관계를 파괴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분리된 삶은 무엇을 성취하고 소유하였어도 허무한 것일 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삶의 의미는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하면서 잃게 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발견됩니다. 오늘날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직 그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당신이 크리스챤이 아니라면 “별로 그렇게 기쁠 것 같지 않은데!” 라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라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태복음 11:28-3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하반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24-25). 이 말씀들은 우리가 선택권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내 삶을 계속해서 스스로 인도해, 허무한 결과를 맞이하거나,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 충만하고 소망이 가득차며 자족하는 삶을 살거나 오늘 당신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
977 [기사] UBF, 기독교 교육 브랜드 대상 수상 파일 [1]
[레벨:20]서정수
70 2012-11-29
아래는 국민일보 기사입니다. ======================================= "“참된 기독가치관이 세상 바꾸는 기적 이룰 것”" 국민일보 주최 ‘제1회 기독교교육브랜드대상’ 시상식 바람직한 기독교 교육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선명하게 제시하기 위해 국민일보가 공모한 ‘제1회 기독교교육브랜드대상’ 시상식이 28일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기독교 정신으로 교육하고 양육하는 18곳의 교육기관 업체 단체가 기독교교육브랜드대상 인증패를 받았다. 국민일보 김성기 사장은 인사말에서 “이 땅에 온 선교사들은 선교초기부터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그 결과 한국교회는 사회교육을 주도해 올 수 있었다”며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교회교육이 일반교육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역전현상이 일어나면서 교회 성장의 둔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한국교회의 미래는 교육의 성패에 달려있다”며 “국민일보는 기독교 교육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겠다”고 언급했다. 이번 대상의 심사를 맡은 선정위원장 김종욱(연동중앙성결교회 담임·전 기성총회 교육위원장) 목사는 “기독교교육이 방향감각을 잃어버려 자라나는 새싹들이 나아가야 할 목적과 가치를 찾지 못할 때 한국교회는 정체성을 상실한다”며 “국민일보가 기독교교육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제시해준 데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수상한 18곳의 교육기관 및 업체, 기관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사막과 같은 기독교교육 현장에서 묵묵히 일해 온 노고가 높이 평가됐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기관의 하나인 ㈔한국미디어선교회 대표 원광기 목사는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묵묵히 하는 분들을 국민일보가 기억해줘 고맙다”며 “선교회가 개발한 신구약 66권의 동영상을 통해 풍성한 열매가 맺어지기를 바란다”고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노량진교회 림인식 원로목사는 “국민일보가 앞으로도 이 세상을 바꾸는 일에 크게 기여하길 소망한다”며 “기독교교육을 통해 세상이 바뀌어지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날 시상식장에는 수상단체의 임직원 및 친지를 비롯해 이충선 림형천 김다윗 이형로 설동주 유윤종 성동관 목사, 김병삼 장로, 안주영 박사, 노경남 원장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 기사 원문 링크: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0001&sCode=0000&arcid=0006670623&code=23111111
976 no image [Daily Bread]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1]
[레벨:20]임여진
46 2012-11-28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누가복음 24:6) 한 가지 근심되는 일이 있어서 슬픔과 두려움 가운데 깊이 잠들었다가, 새벽기도에 나오게 되어 이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인들은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가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누가 우리를 위해 돌을 굴려줄 것인가 근심하였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슬픔이 내면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체는 무덤에 있지 않았습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음을 알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부활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을 때, 무덤에서 돌아가 사도들에게 이 부활의 메세지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제 내면에 두려움과 근심이 있는 것은 살아계셔서 지금도 저와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이 내면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성령으로 저와 동행하시고, 저의 모든 생각을 아시며 모든 능력이 있으신 부활의 주님을 바라볼 때 내면의 어두움이 걷히고, 사명을 감당할 힘과 기쁨이 생겨나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주님 앞에 나아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뢸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저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심을 더욱 깊이 체험하며 주님 주시는 생명력을 충만히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 . . 목자님들~형제자매님들~ 일용할 양식 말씀의 은혜를 나누어 주세요:) 글이 많아지면 일용할 양식 게시판도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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