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관악5부

관악5부에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821 2023 JBF 졸업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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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24-02-05
820 2023 송년감사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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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024-02-05
819 2023 성탄축하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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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2024-01-06
818 2023 성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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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024-01-06
817 선교지 심방보고 (일본, 베네수엘라, 파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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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2023-03-04
지난 1월 인요한 은혜 목자님이 일본, 베네수엘라, 파나마를 심방하고 오셨습니다. 일전에 주일 예배 때 들려주셨던 선교보고와 올려주셨던 사진을 포스팅합니다. 감사합니다. ======== 2023 년 선교지 심방보고(일본,베네수엘라,파나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처음 선교지 심방을 계획할 때 적잖은 부담이 있었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 나라를 다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항에서 사도행전 1 장 8 절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 사도 바울이 생각났습니다. 비행기도 없던 시절,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 복음을 전하러 맨발로 산과 강을 건넜을 바울의 모습을 생각하니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다만 저희는 하나님이 선교 여행길을 열어 주셔서 선교지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새 일을 보고, 선교지의 기도제목을 알고, 기회가 되면 다니엘서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기도제목을 잡고 출국하였습니다. 지난 2 주 넘에 저희의 선교여행을 위해 기도해 주신 동역자님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선교지에서 하나님이 보게 하신 일들과 기도제목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해뜨는 나라 일본에서 2 월 4 일, 저희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동경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조바울, 폴린 선교사님이 저희를 영접하러 멀리 센다이에서 네다섯 시간 걸리는 길을 차를 몰고 오셨습니다. 두 분은 초기 유학생 시절 한국에서 두 달에 한 번 스탭 목자님이 말씀을 가르치러 동경에 오면, 말씀에 갈급하여 눈 길을 헤치고 이렇게 차를 몰고 동경에 오곤 했다고 하였습니다. 집에 가보니 관악 5 부에서 보내 온 사진들이 정성스럽게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조강은 자매님의 방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1 시간 일찍 해가 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참 늦잠을 잔 것 같은데 시계는 6 시 40 분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기분도 아주 상쾌했습니다. 저희는 폴린 사모님이 요리해 준 일본식 정통 오뎅요리를 먹고, 역사적인 가정 예배를 드렸습니다. 조바울 선교사님이 마태복음 8장 귀신들린 거라사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 말씀을 전했는데, 귀신 들린 사람이 왜 그렇게 사나울 수밖에 없었는지 그의 내면을 아주 섬세하고도 깊이 이해하는 메세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좀처럼 내면세계를 열지 않는 일본 양들을 깊이 이해하는 메세지 같았습니다.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8번 <특송 영상> https://youtube.com/shorts/ugFB-bHWuCY 두 분이 일본에 온 지는 30 년 가까이 되어가고, 센다이 개척은 25 년 째였습니다. 현재 첫째 딸 아야꼬는 동경에서 직장생활 하고, 셋째딸 강은 자매님은 여기 있고, 예배에는 둘째 에스더와 막내 예지가 참여하였습니다. 복음의 불모지인 일본 땅에서 두 분과 자녀들이 이렇게 25 년 동안 예배를 드렸습니다7 . 에스더 자매님은 정신적인 문제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치료되지는 않아 바깥에 나오는 걸 힘들어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예배 시간에에는 저희로부터 두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다소곳이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저희들에게도 이런 저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저희는 에스더가 이런 어려움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돕는 목자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소망을 보았습니다. 저녁에 동경으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서 동북대학과 8 폴린 선교사님이 강의하는 시라유리 여자대학을 심방하였습니다9 . 폴린 선교사님의 한국어 강의는 인기가 있어서 학생들이 몰립니다. 학교에서 직접 복음을 전할 수는 없지만, 졸업 이후에라도 관계성을 맺거나 혹은 한국에 유학 가는 학생들이 한국에 가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시라유리’는 ‘샤론’ 즉 흰백합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백합과 같은 아름다운 믿음의 자매님들이 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9번 10번 11번 12번 13번 짧은 센다이 일정을 마치고 신칸센 타고 동경역에 도착하니, 아야꼬가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영접해 주었습니다. 아야꼬는 집에서 맏딸로 자랐고, 직장에서는 고아와 같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으며, 동경 UBF 에서는 2 세들의 언니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역자가 자녀들을 키우면서 겪었던 아픔을 얘기하자 깊이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한참 대화한 후, 아야꼬의 직장생활과 동경UBF에서 2 세들의 좋은 목자가 되도록 기도해 주었습니다. 14번 일본의 기도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11 . 해뜨는 나라 일본에 예수님이 돋는 해로 임하게 기도해 주십시오. 동북대와 시라유리 대학에서 성경공부 할 수 있는 양들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자녀들이 영적으로 잘 자라서 일본 영혼들의 목자들이 되게 기도해 주십시오. 동북대 조상과 같은 오자와 후미꼬 자매님이 영적으로 회복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15번 둘째, 무너진 성을 재건하는 베네수엘라에서 저희는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24 시간 정도 걸려서 베네수엘라 까라까스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백후안, 수산나 선교사님과 까라까스 UBF 책임목자인 우고 목자님과 장막생활 하는 사무엘 형제님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낡은 공항건물과 나오자마자 공항 주위의 산 중턱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난한 집들에서 이 나라의 형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6번 베네수엘라 심방은 세 가지로 보고하겠습니다. 첫째, 까라까스 UBF 까라까스 UBF 는 한국 선교사로부터 현지 목자로 리더쉽이 이양되고나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 대 1 역사가 멈추다시피 했습니다. 많은 리더들이 떠나고 주일예배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예배에 학생들이 별로 없고 지역주민들이 보였습니다. 이처럼 매우 어려운 시기에 우고 목자님이 책임목자 직분을 계승하였습니다. 그는 마치 동네 아저씨 같았습니다. 과거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은 경력도 있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연약함을 알아서인지 그는 겸손하게 후안 선교사님의 방향을 잘 따르면서 1대 1 역사와 캠퍼스 제자양성 사역을 회복하고자 하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소망스러운 동역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셋째날 백후안 선교사님 집에서 결혼한 네 가정과 결혼 안한 몇몇 형제, 자매들을 초청하여 식사교제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시몬 볼리바르 대학 출신이고, 후안 선교사님 가정과 신뢰 관계가 잘 맺혀져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Broken family, 성적 학대, 대학이 문을 닫고 돈이 없어서 졸업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던 문제 등을 이야기 할 때 대부분 눈물을 흘렸습니다. Broken family 는 중남미 양들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같은 부모를 가진 자녀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공통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을 때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저마다 인격적으로 받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굉장히 소망스러웠습니다. 이들이 견고하게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17번 18번 19번 <식사중에 함께 합창 영상> https://youtube.com/shorts/kw1WMtvtFn0 주일에 제가 다니엘 1 장 “믿음의 순결을 지킨 다니엘” 제목으로 메시지를 섬기고, 은혜 사모님이 간단하게 인생소감을 발표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느부갓네살 왕을 붙이셔서 그들을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연단하신 것처럼, 베네수엘라 백성들을 고난을 통해 연단하고 계십니다. (참고로,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과거 금요일이 되면 미국 마이애미로 쇼핑 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오는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후안 선교사님이 한국에 올 때마다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겸손하게 하신다고 강조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깊이 동감이 되었습니다. 고난이 그들에게 축복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예배 후 광고 때 후안 선교사님은 한국 UBF 에서 일주일에 세 번 베네수엘라 UBF 를 위해 기도한다고 몇 번이고 얘기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며 영적 전쟁의 최전방에서 동역자 없이 싸우는 선교사님들 위한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느꼈습니다. 20번 21번 22번 23번 둘째, 캠퍼스와 지부 심방 저희는 책임 목자인 우고 목자님 가정과 베네수엘라에서 제일 명문인 까라까스 중앙대학을 심방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건물들이 낡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습니다21 . 우리는 대학생들의 형편을 알고자 그곳에서 John이라고 하는 한 학생을 피싱했습니다. 이름이 저와 같은 John이었는데, 법대생이면서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 최고 대학 그것도 법대에 다니면 교만할 법도 한데, 순수하고 겸손하게 보였습니다. 우고 목자님과 조밀라르 사모님이 연락처를 받고 열심히 그를 모임에 초대하였습니다. 다음 날 백후안, 수산나 선교사님이 개척했던 시몬 볼리바르 대학을 심방했습니다. 이곳 공대는 과거 중남미에서 두 번째 가는 명문이었습니다. 수산나 선교사님은 멀미로 고생하고 학교에 오면 사람들로부터 오래를 받으면서도 죽을 각오로 1 주일에 한 번 캠퍼스를 심방하고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대학 출신 목자들이 지금 까라까스 UBF 의 훌륭한 동역자들이 되었습니다. 캠퍼스는 까라까스에서 차로 40 분 되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먼 곳에 와서 개척역사를 섬겼다니 새삼 감동이 되었습니다. 캠퍼스에 와보니 온갖 종류의 아름다운 꽃이 심겨져 있던 넓은 정원에는 잡초가 무성하였습니다. 학교에서 기념품을 살까 해서 학교 기념품점을 찾아갔는데, 문을 닫은지 오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여전히 순수해 보였습니다. 저희는 건물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한 학생을 피싱해 보았습니다. 이름이 ‘쟝 까를로스’였고, 신입생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거부감 없이 대화에 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호세 후안 목자님과 수산나 선교사님의 말을 귀기울여 들었고, 성경공부도 해보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우리는 과거 시몬 볼리바르에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가 전설로 남지 않고 다시 불길이 일어나도록 합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24번 25번 26번 27번 28번 29번 30번 31번 32번 33번 34번 35번 베네수엘라에는 까라까스 UBF 외에 네 개척의 개척지부가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경제위기와 팬데믹으로 대학이 닫히면서 복음역사가 힘들고 경제자립도 어려워서 전세계로부터 물질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토요일에 그 중 하나인 오쿠마레 UBF 를 심방했습니다. 전에 많은 문제가 있어서 백후안 선교사님 가정이 두 주에 한 번씩 와서 메세지를 전하며 섬겼습니다. 센타는 자동차 정비소와 붙어 있는 허름한 공간이었습니다. 저희가 심방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들이 찬양예배를 섬겨 주었습니다. 다른 가사는 알아 듣지 못했지만,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는 한 가지 소리만큼은 분명하게 들렸습니다. 식사교제를 하는 데, 한국에서 온 목자들에게 궁금하다며 여기저기서 손을 들어 질문하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8,90 년대 영적으로 갈급했던 한국의 대학생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UNEFE 대학은 한국의 고등학교 건물 같았습니다. 강의실 의자는 우리나라에서 과거 초등학교에서 사용하던 그런 나무의자입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할 곳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매 주 열다섯 명 정도의 학생들이 와서 성경공부를 할 정도로 캠퍼스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난한 갈릴리 젊은이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영적인 지도자로 키우신 예수님이 생각나 눈물이 났습니다. 36번 37번 38번 39번 40번 41번 셋째, 백후안, 수산나 선교사님 후안 선교사님과 수산나 선교사님은 그동안 아무 권한도 없이 묵묵히 베네수엘라 UBF 를 섬겼습니다. 가라고 하는 곳으로 가서 캠퍼스를 개척하고, 센터에 필요한 물질을 헌신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이번에 가보니 회사에 열 다섯 명 정도의 센타 형제, 자매들을 취업 시켜서 물질자립 하도록 돕고 있었습니다. 베네수엘라 보통 직장 월급이 3-400 불인데, 이곳 형제, 자매들은 1000 불에서 1500 불을 받습니다. 후안 선교사님은 지난 2 월 중남미 지부장 수양회에서 공식적으로 베네수엘라 코디네이터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제 실질적으로 책임 지고 섬겨야 할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동시에 LG 가 베네수엘라를 세계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전략국가로 지정하는 바람에 판매실적을 올려야 하는 큰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저희와 합심기도 하는 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가운데 있는 자신을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소리를 들을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수산나 선교사님은 후안 선교사님을 옆에서 아주 섬세하게 동역하는 걸 보았습니다. 중남미는 가족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센타에 나오면 거의 전 가족이 다 나옵니다. 그래서 양들이 이리저리 혈연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수산나 선교사님은 이런 관계를 다 꿰고 있었습니다. 가정을 오픈해서 양들이 거의 자기 집처럼 들락거립니다. 몇 번이고 본인의 집은 자기 집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주일예배 때는 70 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걸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힘에 지나도록 베네수엘라 역사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42번 43번 44번 현재 까라까스 UBF 에 세 명의 메신저가 있습니다. 책임목자인 우고 목자님과 라파엘, 호세 후안이 그들입니다. 백후안 선교사님은 먼저 이 세 분들과 그룹 성경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모임 안에 소감과 일용할 양식 쓰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45번 46번 베네수엘라의 기도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베네수엘라에 1 대 1 말씀공부가 회복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캠퍼스에 올라가 대학생들을 제자양성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남미의 브로큰 패밀리 문화를 극복하고 거룩한 가정교회가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랫동안 전세계적으로 물질 지원을 받았는데, 재정 자립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셋째, ‘땅이 나뉘고 세계가 하나가 된’(the land divided, the world united)37 나라 파나마에서 월요일 새벽 2시에 후안 선교사님 가정과 까라까스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비행기 출발은 6시였지만, 어디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일찍 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지만, 수하물 검색 과정에서 쵸코렛 한 개를 빼앗겼습니다. 파나마 공항은 베네수엘라 공항과 천지 차이였습니다. 파나마는 최근 10 년 동안 팬데믹 기간을 빼고 경제성장률이 10% 아래로 내려가지 않을 정도록 성장하는 나라였습니다. 파나마 UBF 책임목자인 호수에 선교사님은 베네수엘라 UBF 에서 파송되었습니다. 그는 까라까스 UBF 에서는 똑똑한 목자들에게 가려서 인정을 못받는 2 선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똑똑하던 목자들은 다 떠났지만, 그는 남은 자가 되어 파나마 UBF 의 책임목자가 되었고, 북남미 코디네이터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후안 선교사님은 베네수엘라 역사를 섬기면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의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47번 호수에 선교사님은 하루를 휴가 내어 풀로 저희를 섬겨주었습니다.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데, 옆차가 끼어 들자 ‘아이 쉬’라는 말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많이 듣는 말이어서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더니, 자기의 1 대 1 목자인 서요한 선교사님에게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에서 한국 선교사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아홉 형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진짜 동생은 두 명입니다. 전에 페이스북을 하다가 어떤 사람의 성이 자기와 같아서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는데, 자기 아버지와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호수에 선교사님의 어머니 외에 다섯 명의 아내들 사이에서 다른 일곱 명의 자녀들을 또 낳은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그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반항심으로 아무렇게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수양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용서의 사랑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는 책임 있는 파나마 UBF 의 목자가 되었고, 작년 여름수양회에는 스물 다섯 명이 참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48번 호수에 선교사님의 안내로 국립 파나마 대학을 심방하였고 거기서 한 학생을 만나 대화했습니다. 이름이 '잣니엘'이고,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고 호수에 선교사님과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호수에 선교사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학생과 대화를 잘 하였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다시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저녁에 파나마 센터를 심방하고, 동역자들과 교제했습니다. 호수에 선교사님의 동역자인 마리아 사모님이 파나마 정통 음식으로 열심히 섬겼습니다. 파나마 기도제목은, 호수에 선교사님이 매 주 권세 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특히 이번 ISBC 에서 누가복음 6 장 “세리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동역자인 마리아 사모님이 호수에 선교사님을 잘 동역하도록, 캠퍼스 역사를 동역할 House-church 들을 세워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파나마 일정까지 마치고 저희는 파나마에 있는 후안 선교사님의 아파트에서 맛있는 라면을 끓여 먹고 마지막 합심기도를 하고 파나마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49번 50번 51번 52번 53번 54번 호수에 목자님 랩 영상 https://youtu.be/zMxp172QcIA 보고를 마치며 이번에 베네수엘라와 파나마를 심방하면서 중남미에서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반응이 좋습니다. K 팝, 한류드라마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고, 삼성, LG 광고판이나 현대, 기아차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선교인프라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안 선교사님이 LG 에서 일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광고판이 하나 설 때까지, 차 한 대가 거리를 누빌 때까지 기업들이 얼마나 치열한 전쟁을 치렀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건 아니지만,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은 그들을 쓰셔서 선교 인프라를 아주 좋게 깔아놓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나니, 하나님이 마치 “내가 이렇게 선교하기 좋게 다 만들어 놓았는데, 왜 너희들은 안오는 거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안에 세계선교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한마디 : 주의 얼굴을 일본과 베네수엘라와 파나마에 비추어 주옵소서.
816 no image 베네수엘라와 파나마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벨:6]백수산나
36 2023-03-01
815 no image 일본,베네수엘라,파나마 선교지 심방 비공식 기록~ [1]
[레벨:20]인은혜
77 2023-02-21
2023년 2월 4일~16일까지의 일본, 베네수엘라, 파나마 심방 기록 베네수엘라 선교지 심방에 대해 요한 목자님이 같이 가야 할 것 같다고, 선교사님들이 같이 오기를 바란다고 할 때 먼저 부담스러운 마음이 컸습니다. 날씨, 시차가 정반대의 어려움을 감당하고 싶지 않고, 둘째로 선교사님의 선교보고 듣고 그곳 리더들에 대해 목자를 피눈물 나게 하는 사람들로 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별로 섬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주 양식 말씀과 주일 말씀 등을 통해 결국 저의 이기심과 안일과 심정 없는 내면이 문제이고 하나님께서 이런 저를 도우시고자 하시는 손길임을 영접하고 가기로 정하고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선물 준비가 신경이 쓰여서 물어보니, 챙겨야 할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피와 무게와 선교사님이 알려주신 팁을 고려하여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어 선물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또 황열 예방접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1월 20일에 중대병원에 예약하여 갔다가 요한 목자님의 여권이 작년에 만료된 것을 알게 되어 그날 바로 접수하게 되었는데, 여권이 나오기까지 10일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철저하지 못한 목자님를 판단하고 불평하였는데 목자님은 기도로 준비하기 원하시는 것 같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며 여행을 준비하고 오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로 듣고 기도부탁을 하고 기도하며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또 여러 모임과 하던 일을 분담하여 맡기는 일을 했습니다. 일처리를 빨리빨리 하며 계획적으로 하는 목표지향적인 저와 달리, 요한 목자님은 느릿느릿하고 사람 마음을 배려하고 과정을 중요하게 여겨서 서로 안 맞아 부딪치는 부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여권도 출발전 2월 2일 목요일에 나오게 하여 주시고 선물도 풍성하게 준비하여 출발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아이들도 친정어머니를 기꺼이 섬기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앤나도 한주 올라와 도와주기로 하였습니다. 우리의 기도제목은, 행1:8절 말씀 붙들고 1) 선교지에서 지금도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2) 선교지의 형편과 기도제목을 잘 알고 3) 다니엘서 말씀으로 교제 나누고 올 수 있도록 이었습니다. 2/4일 9시 센타 출발하였고, 정아브라함, 김이삭, 이찬양 목자님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공항 수속이 금방 되어서 공차카페에서 차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11시 다 되어 기도하고 힘 받아 들어갔습니다. 일본 나리타 공항까지, 차가 없는 선교사님들이 차를 렌트하여 나와 픽업 해주셨습니다. 월요일 오전 9시 45분에 베네수엘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주일 오후에 미리 동경으로 와 있어야 해서 아야꼬의 인도로 동경에 가서 하루 자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나리타 공항의 특색은, 70대 할아버지들이 공항에서 알바를 하며 환승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차를 타면서 선교사님이 먼저 요한목자님의 누님이 아키다에 살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하셨고, 센다이까지 가는 길에 아키다가 있으니 한번 들렀다 가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누님이 계신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목자님도 선교지 심방이므로 누님 만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선교사님의 제안으로 급하게 누나에게 연락하였고, 3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가서 만나 저녁 7시즘 누님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 도착하였습니다. 누님이 센다이 특산물인 소혀 고기와 소갈비살과 자체 개발한 스지양념고기를 내놓으셨고 모두 맛있게 먹었습니다. 배불리 먹고 2시간 반 정도 다시 차를 타고 센다이 집에 10시반 정도에 도착했습니다. 같이 차를 타고 오면서 아이들 이야기, 선교사님들 이야기, 양들 이야기, 가족 이야기 등 여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폴린 선교사님은 일본에 온지 올해 31년째라고 하시고 센다이에서만 25년이 되었다고 하셨다. 폴린 선교사님은 현재 시라유리 대학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고 계시고 그 외 전문대 2곳에서도 강의를 하신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직접 종교적인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관계성을 맺고 있고 한국으로 유학하는 학생들도 한국 목자님들에게 연결시키려고 성경공부 제안도 하고 있는데 소원있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오자와 후미꼬 자매님은 결혼이 빨리 안 된 것으로 마음이 상해서 지금은 선교사님들에게 연락하지 않고 있지만, 선교사님들은 계속 기도하고 있고 다시 연락하고 심방 가고자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오자와 자매님은 고향이 센다이가 아니지만, 폴린 선교사님과 창세기와 마가복음을 공부하며 말씀이 너무 좋아서 일부러 센다이에서 공무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자와 후미꼬 자매님이 잘 회복되고 믿음의 결혼을 하고 동역자가 되도록 계속 기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리리 자매님 소식도 들었는데, 지금은 성경공부를 하지 않고 있고, 교회에도 나가지 않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미치오 사모님은 폴린 선교사님과 지금도 매주 줌으로 만나 합심기도하고 말씀을 나누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미치오사모님은 딸 리리 자매님을 일본으로 오도록 한 것에 대해 지금은 후회하고 있고, 한국 목자님들의 조언을 들었어야 했는데, 딸 편에서만 생각하고 오게 하여 상태가 나빠졌다고 여기고 딸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리리 자매님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기회가 되면 한번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선교사님 집은 2층으로 되어 있고 1층은 부엌과 거실이 있고, 2층은 침실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시간이 늦어서 모두들 정리하고 잤습니다. 지진으로 인해 건축 자체가 나무로 되어 있어 한국처럼 온돌이 아니고 다다미라고 합니다. 그래서 집이 많이 추웠고 방마다 석유를 넣어 때는 스토브가 있었습니다. 밤새 스토브를 켜고 잤는데 여름처럼 따뜻하였습니다. 신기한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은 점이었습니다. 둘 다 그랬습니다. 일본은 한국보다 더 동쪽에 있어서 아침에 해가 더 일찍 뜨고 밝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9시즘 된 줄 알았는데 7시도 안되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아이들도 9시즘 자고 선교사님들도 10시즘 주무시고 대신 6시,7시부터 다 일어나서 활동한다고 하셨습니다. 강은 자매님도 일본에서는 8시에 자고 일찍 일어나서 활동했다고 하였습니다. 아침은 폴린 선교사님이 직접 만드신 일본식 오뎅국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고다리?라는 전통식 자리에 앉아 이런 오뎅국을 끓여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뎅국에 모찌, 두부, 계란, 오뎅, 무, 버섯, 유부 등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싱거웠고 선교사님이 담은 익은 김치와 단호박과 같이 먹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날마다 샤워를 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싱겁고 자극적이지 않게 먹고 소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생활습관을 들으니 일본 사람들이 장수하는 이유가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은 자매님이 일찍 일어나서 늘 센타에 와서 양식을 먹고 공부하는 것이 일본에서 늘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오전 10시에 폴린 선교사님 안내로 집 근처 산책을 했습니다. 집들은 거의 단층이었고 담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답답하지 않고 확 트인 기분이었습니다. 이웃집이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차들이 길에 주차되어 있지 않고, 집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고, 길에 지나가는 차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정말 여유가 있고 공기가 맑았습니다. 세웅 목자님은 일본에 가면 아주 기분 좋게 사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가게들도 대대로 계승하여 이어온 집들이라 아주 소박했고 각자 직업에 대한 비교가 없고 장인정신이 있어서 서로의 직업에 대해 존중하고 자부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일 예배는 11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예배 말씀은 마태복음 8:28-34절 거라사 광인 말씀이었습니다. 조바울 선교사님이 일본어로 전하시고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미리 나누어 주셨습니다. 찬송가 4곡을 부르고 사도신경을 암송하고 돌아가며 말씀을 읽고 폴린 선교사님이 특송을 하고 바울 선교사님이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끝나고 폴린선교사님, 에스더, 예지가 같이 특송을 한번 더 했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으로 마쳤습니다. 저희를 환영하는 박수를 쳐 주었고 저희에게 한마디씩 하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바울 선교사님은 메시지에서, 거라사 광인이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해 무시 받는 것에 반발하고 공격하였지만 예수님이 돼지 2천 마리를 희생 하실만큼 그를 귀하게 여기신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메시지 뒤에는 본인이 최근 겪었던 일을 소감으로 적용하셨습니다. 직장 상사가 왜 일찍 와서 눈을 치우지 않았느냐고 요구하였을 때 내가 눈 치우기 위해 직장을 다니나 하며 마음에 반발심이 들었는데 왜 내가 이렇게 반발하는가 가만히 자기 내면을 돌아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시 받는다고 여겼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가 기억하고 회개하셨습니다. 에스더가 두 걸음 정도 떨어져서 예배를 같이 드렸습니다. 이후 집에서 간단히 과일과 모찌와 란이라는 과자를 먹고 차를 마신 후 동북대 심방을 갔습니다. 두 분은 우리에게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서라도 일본 온천에 데리고 가서 피곤을 풀어주고 근처 좋은 곳을 구경시켜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동북대와 시라유리대학을 심방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동북대는 일요일이지만 공부하러 오는 몇몇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지나가는 한 학생에게 부탁하였고 대화를 해 보니 동북대 수학과 22학번이었습니다. 그는 일요일임에도 공부를 하러 학교에 나올 정도로 공부파 형제같아 보였습니다. 정제임스 목자님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친절하게 대하던 학생이 우리가 크리스찬이라고 하자 갑자기 얼굴표정이 굳어지며 경계하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선교사님들은 그와 좀 더 대화를 하고 보내었습니다. 폴린 선교사님은 우리가 계속 캠퍼스에 올라가 피싱하여 양을 얻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우리가 피싱은 계속하지만 팬데믹으로 대면으로 가까이 가는 게 좀 어려움이 있었고, 피싱하다 보면 폴리스가 돌아다니며 제재를 한다고 하니 거기도 비슷하군요 하셨습니다. 일본에서도 경비 아저씨가 돌아다니며 전도하지 말도록 계속 제재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학생들도 기독교에 대해 꺼리는 마음이 있는데, 특별히 아베 총리가 총격을 당해 사망한 일로 인해 통일교가 정치세력과 연결되어 불법을 행한 뉴스를 들으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본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불법을 행하는 종교인 것처럼 인식이 되어 더욱 부정적이고 이상한 종교라는 인식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공부 할 수 있는 양들을 만나 섬길 수 있도록, 또 동북대 조상과 같은 오자와 후미꼬 자매님이 다시 회복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이후 폴린 선교사님이 강의하고 있는 시라유리 대학에 갔습니다. 한참 차를 타고 시라유리 대학에 도착했는데, 마침 그날이 입학시험이 있는 날이라 교문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차 안에서 시라유리 대학을 위해 합심기도 하였습니다. 폴린 선교사님이 강의를 잘 섬기시고 이곳에 영적 소원 있는 자매님들을 만나 한 사람 제자를 세울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시라유리 대학은 카톨릭 재단으로 글로벌학과 중에 한국어 전공이 있는데 폴린 선교사님이 1학년과 3학년 수업을 맡고 계셨습니다. 폴린 선교사님은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 중에 한국 성심여대로 교환학생이나 석사과정을 가는 학생들에게 성경공부의 소원이 있는지 알아보고 한국 목자들에게 연결시켜보고자 애를 쓰셨습니다. 시라유리의 뜻은 흰백합이라는 뜻입니다. 샤론의 꽃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김초밥과 과일을 사서 집에서 같이 먹으며 대화를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가까이 와서 질문을 하였고 난로 옆에 서서 함께 하였습니다. 저희는 다니엘서 말씀을 같이 나누며 서로 질문하고 답하며 또 현재 일본 선교지에서 깨닫게 된 것들을 나누었습니다. 바울 선교사님은 하나님께서 에스더 자매님에게 병을 겪는 과정을 통해 크게 쓰시고자 한다고 하셨고, 하나님이 친히 일하고 계심을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본인이 이것저것 하려고 한 것은 다 안되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친히 하심을 믿고 맡기는 것을 배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매주 주일 메시지를 잘 섬기고자 한다고 하셨습니다. 폴린 선교사님은 바울 선교사님과 성격이 정반대여서 힘들었지만, 중요한 일들은 바울 선교사님이 다 하였다며, 바울 선교사님을 남편으로 주셔서, 자기가 앞서길 잘하는 자신을 많이 막아주시고 도와주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도 함께 5명이 합심기도를 하고 마쳤습니다. 저는, 토요일 밤늦게 센다이 선교사님 집에 도착하고 소박하게 가정 주일예배를 드리고 동북대와 시라유리대학에 가서 기도하고 돌아와 같이 다니엘서 말씀을 나누며 대화한 거 외에 다른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없지만, 마치 수양회에 온 것처럼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이 소박한 예배를 멈추지 않고 25년간 센다이에서 올린 것이 큰 은혜가 되었고, 자녀들이 어려움이 있을 텐데도 이 예배의 동역자들이 되어 함께한 것이 너무도 귀하게 여겨져 눈물이 났습니다. 다니엘서를 나누며 대화하면서도 은혜가 되어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같이 센다이역으로 와서 일본 고속열차인 신칸센 열차를 타고 아야꼬가 있는 우에노로 갔습니다. 일본 선교사님들은 끝까지 저희를 마음과 힘을 다해 섬겨주셨고, 또 베네수엘라 선교사님들에게 드리라고 일본 과자까지 사 주시고 경비도 주머니에 넣어주셨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사명을 섬기는 두 분이 오히려 저희를 이처럼 섬겨주시는 것으로 인해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밤 9시에 우에노에서 아야꼬를 만나 아야꼬가 예약해준 역 근처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같이 대화를 하였습니다. 10시 30분 매장문을 닫을 때까지 직장 상황, 동경 센타 2세들 이야기 등을 하였고, 저희 첫째아들 이야기도 하니 아야꼬는 첫째아들의 반응과 말이 공감이 간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하였을 때 아이가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본인도 그런 말 들으면 울 것 같다고 하였고, 제가 앞으로는 고마웠다고 아들에게 말하겠다 하였더니 자신은 그 말을 들어도 울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아야꼬의 말을 통해 아야꼬가 겪었을 마음고생에 대해 짐작할 수 있었고 예수님 안에서 다 해결되고 귀한 목자로 쓰임 받도록 축복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야꼬를 위해 기도해주고 숙소로 돌아와 자고 다음날 아침 6시 20분에 숙소 앞에서 아야꼬를 다시 만나 나리타공항까지 가는 열차를 타러 갔습니다. 일본 열차는(전철 같은데) 주택가 바로 옆에서 다녀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야꼬의 도움으로 무사히 출국절차를 마치고 비행기에 탔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요한목자님은 옆자리에 앉았던 일본 청년과 구글 번역기를 통해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나는 DUNE라는 영화를 한편 보았습니다. 구원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구원자가 나타나 인도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구원자의 삶은 가시밭길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3시간 정도의 걸려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했습니다. 요한목자님은 계속 다니엘서 말씀 준비를 하였습니다. 10시간 정도 머물다가 베네수엘라를 향한 비행기를 타고 총 12시간 비행기를 다시 탔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인셉션이라는 영화를 두 번 보았습니다. 사람 안에 한 생각의 씨앗을 심어 자랄 때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게 되고 좋게 되기도 하고 파멸하기도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생각은 무척 단순한 것인데 그것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심거나 제거하고자 하는 필사의 노력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참으로 인상적이었고, 우리도 말씀이 천국을 위한 씨앗이라고 하였고 그것이 한 사람 마음에 심겨 자라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는데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네수엘라 현지 시간 화요일 오전 10시가 다 되어 카라카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인천공항이나 이스탄불공항과 비교하면 아주 작고 허름한 공항이었습니다. 입국심사 할 때 혹시 문제가 생기거나 짐을 도둑맞을까 걱정을 하였는데, 아무 문제 없이 입국하였습니다. 입국심사 하는 곳에 삼성제품 홍보하는 현수막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먼 이곳 공항을 도배하고 있는 삼성 홍보물을 보니 갑자기 애국심이 발동하고 뿌듯함이 몰려왔습니다. 우리는 백후안,수산나 선교사님들과 우고 목자님, 사무엘 형제님의 정성 어린 환대를 받았고 곧바로 차를 타고 후안 선교사님 숙소로 향하였습니다. 베네수엘라의 날씨는 생각보다 선선하였습니다. 원래는 더운 나라인데 기후 이상변화로 한국의 늦봄 날씨같이 되었다고 하고 추위를 잘 타는 수산나 선교사님은 패딩 조끼를 입고 춥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반팔만 준비했는데, 긴팔을 입어야 할 날씨였습니다. 인상 깊은 것은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산꼭대기까지 집들로 가득가득 차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달동네 같은 그런 광경이었습니다. 건물들은 많이 허름하였고, 우리나라 70년대 정도의 분위기였습니다. 후안 선교사님 집은, 현재 사업하는 중국 기업에서 관리겸 쓸 수 있도록 준 곳이었고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짐도 다 풀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중국인들이 도박하던 곳으로 썼던 곳이어서 아직 도박기계 하나와 큰 금고가 거실 한구석에 남아 있었습니다. 집은 아주 넓었고, 깨끗하였습니다. 도시 한 복판의 큰 아파트 같은 건물이었고 보안이 철저하였습니다. 후안 선교사님은 중요한 지방 출장이 있어서 곧바로 가셨고, 우리는 수산나 선교사님이 준비한 풍성한 음식으로 같이 식사를 하였습니다. 수산나 선교사님이 김치도 담그고 수육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후 여독을 푸는 날로 잡고 있었는데, 저희는 크게 피곤하지 않고 졸리지 않아서 바로 수산나 선교사님과 함께 후안 선교사님이 일하는 LG 회사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직원들이 일하는데 그중 15명 정도의 센타 목자들과 형제자매들이 같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파견된 두 사람의 한국 직원도 있었습니다. 이 사무실을 빌리고 회사운영에 맞게 가구며 환경을 준비하는데 후안 선교사님이 많은 애를 썼다고 합니다. 후안 선교사님은 이 회사의 지점장이었고, 수산나 선교사님은 대표 자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네수엘라가 남미 중에 LG에서 집중하는 전략국가여서 본사로부터 집중적인 관심과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실적문제 때문에 후안 선교사님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한 후 후안 선교사님 개인 방에서 수산나 선교사님과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후 카라카스 UBF 센타를 들렀습니다. 센타는 2층 건물이었습니다. 1층은 예배드리는 큰 홀이 있고 홀 강단에는 찬양을 위한 신디사이저, 드럼과 기타들이 있었습니다. 또 부엌과 방송실이 있었습니다. 2층은 JBF용 방과 CBF용 방이 있었고, 형제 장막이 있었습니다. 2층 침대가 두 개 있었고 3사람의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날 공항에서 우고 목자님으로부터 센타 가스통이 고장이 나서 가스 공급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고 수산나 선교사님이 말해주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물과 전기와 병원이 모두 무료로 공급되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경제 위기가 오고 팬데믹이 겹치면서 나라가 돈이 없으니 물 공급은 하루 2번만 공급되고 음식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달러 유통이 허용되면서 다시 경제가 돌아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전히 물 공급이 제한이 있지만, 후안 선교사님이 사는 건물은 지하수를 파고 쓰고 있기에 물 공급은 잘 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경제문제와 무료공급으로 인해 센타 목자들과 형제자매들도 제 1순위의 관심이 돈이라고 하였습니다. 형제장막이나 자매장막원들도 결혼해서 나가야 하는데, 결혼은 미루고 무료로 살 수 있는 장막에서 계속 거하면서 돈을 모으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센타 가스통이 고장나면 직장에 다니는 장막형제들이 주로 본인들이 쓰고 있으니 돈을 좀 모아서 가스통을 교체하면 되는데 센타에서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팬데믹이 풀리고 대학도 작년부터 대면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캠퍼스에 나가 피싱하는 목자들이 거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 수산나 선교사님과 후안 선교사님은 안타까워하고 있었고 마음고생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후 센타 근처 빵가게에서 막 나온 바게트 빵과 바나나 등을 사고 먹으면서 마지막으로 근처 높은 언덕길 꼭대기로 가서 카라카스 야경을 보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같이 먹고 8시즘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오전 8시즘 우고목자님과 졸리마르 사모님이 오셔서 같이 식사하면서 대화를 하였습니다. 수산나 선교사님이 통역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풀타임 스텝 목자로 산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가정생활 목자생활에 대해 겪은 일, 깨닫게 된 일 등을 나누었습니다. 풀타임 스텝의 전통이 없었던 곳에서 풀타임 스텝으로 살고있는 이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잡고 사는 것이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이 두 분의 인도로 먼저 근처에 있는 베네수엘라 중앙 대학을 심방하였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랭킹 1위인 대학이라고 하였고 특히 공대가 유명하다고 하였습니다. 과거 세계 랭킹은 38위 정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건물은 아주 낡았습니다. 학생들은 많이 다녔습니다. 우리는 건물들을 둘러보다가 공대 건물 안에 들어가 수업하는 모습들도 보았습니다. 복도 계단 근처에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도 보였습니다. 요한 목자님은 학생들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하여서 우고 목자님이 혼자 앉아 있는 한 학생에게 같이 대화를 해도 되는지 물었고 그가 응하여 같이 둘러앉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법학과 5학년이라고 하였습니다.(법대는 5학년까지 있었습니다.) 그는 오쿠말에서부터 통학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졸업후에는 석사과정을 밟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어딘지 동양사람같은 얼굴이었고 눈은 우수에 차 있었고 많은 고민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언어에 한계가 있어서 깊이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신앙은 없었지만 하나님은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기타치며 노래도 하고 있다고 하였고 본인이 직접 기타치며 부른 노래를 녹음한 것을 들려 주었습니다. 마침 그의 이름도 John이라고 하였습니다. 대화를 마친 후에 우고 목자님과 졸리마르 사모님은 그를 센타 예배에 초청하였습니다. 캠퍼스에 심방하여 양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행복했습니다. 역시 목자들은 양을 만나 돕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같이 캠퍼스에서 합심기도하고 우고 목자님의 두 아들을 학교에서 픽업해야 해서 같이 가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는 이사야로 15살이고 고1이었습니다. 둘째는 마티아스로 8살로서 초등 3학년이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계절이 여름과 겨울만 있고 겨울은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방학이 여름 7월 중순부터 8월까지만 있고 따로 방학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지금도 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시내 쇼핑몰에 있는 식당으로 갔고 같이 식사하였습니다. 아이들은 프라이드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하여서 치킨도 있고 샐러드나 파스타를 먹을 수 있는 곳에서 식사하였습니다. 졸리마르 사모님은 두 번의 유산 후에 첫째 아들 이사야를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마티아스는 태어날 때 앉은뱅이처럼 안짱 다리로 태어나서 걷지 못했다고 합니다. 4년 후에 수술을 여러 번 받고 지금은 걷고 뛰어다니며 정상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두 분이 자녀들로 인해 많은 아픔이 있었구나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밤에 수산나 선교사님에게 들어보니, 이사야의 아버지는 우고 목자님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졸리마르 사모님이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고 이후 우고 목자님을 만나 결혼하여 마티아스를 낳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저희에게 충격이었는데, 우고 목자님도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하였고 베네수엘라는 대부분 그런 브로큰 패밀리라고 하였습니다. 센타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정상 가정에서 자란 수산나 선교사님은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아이들을 집에 두고 우리는 시몬 볼리바르 대학을 심방하기로 하였습니다. 40분정도 차를 타고 갔으나 대학 학생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를 받아서 입구에서 사진 찍고 차 안에서 합심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우고 목자님 가정과 우리는 서로 언어 문제가 있어서 서로 짧은 영어와 남다른 센스로 대화하였습니다. 이후 선교사님 집에 도착하여 쉬게 되었고 밤에 후안 선교사님이 오셔서 같이 대화를 하였습니다. 수산나 선교사님으로부터 우고 목자님 가정과 센타 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상황을 좀 더 알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은 캠퍼스 피싱과 역사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후안 선교사님이 2월 초에 베네수엘라 지부장 이취임식을 했다는 것을 첫날 저녁에 듣게 되었습니다. 저희도 처음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직장이며 센타며 두 분 선교사님이 맡은 직분과 사명이 막중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셋째 날과 넷째 날은 특별한 낮 일정은 없고 저녁때 23가정을 집으로 초청하여 같이 인사 나누고 식사하는 것이고, 넷째날 저녁에는 선교사님 가정과만 식사하고 대화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인요한 목자님은 일본에서 출발하는 날 후안 선교사님으로부터 베네수엘라에 와서 주일 메시지를 섬겨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 1장으로 메시지를 섬기고자 준비하였고, 후안 선교사님이 스페인어로 번역을 해야 해서 미리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셋째 날은 오전에 시몬 볼리바르 대학 출신인 호세후안 목자님과 수산나 선교사님과 다시 시몬 볼리바르 대학 안에 들어가고자 시도했습니다. 되도록 그곳의 기념품을 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념품 가게는 닫혀 있었고 옆의 다른 분에게 물어보니 팬데믹 이전에 닫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호세 후안 목자님이 다녔던 기계공학 건물에 갔습니다. 가는 길에 혼자 바닥에 앉아 있던 한 형제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우리를 소개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지 물었고, 우리도 바닥에 같이 둘러앉았습니다. 호세 후안 목자님이 성경 한 구절을 같이 읽어도 되냐고 물었고 핸드폰으로 말씀을 찾아 요3:16절을 읽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 유창하게 복음에 대해 쭉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죽었다는 것과 이 세상의 것들은 결국 다 사라지기에 거기에 소망을 둘 수 없고 마지막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우리는 옆에서 기도하며 같이 하였습니다. 수산나 선교사님이 스페인어로 동역하여 도왔고 그 양은 이 말씀과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우리 모임을 소개하고 연락처를 받고 일대일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는 다행히 카라카스에 살고 있고 시몬 볼리바르 대학까지 버스로 통학하는 형제였습니다. 재료공학과 22학번 장 카를로스 형제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역시 목자는 캠퍼스에서 양을 만나고 말씀을 나누는 것이 가장 행복함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계공학과 건물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고 바로 옆에 과거 바이블 아카데미를 하며 많은 학생 역사가 있었던 교실에 들어가 기념 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건물 뒤편에 있는 작은 매점에서 빵을 사서 맛을 보았습니다. 그 매점의 주인은 호세 후안 목자와 수산나 선교사님을 보고 반가워하였고 다시 돌아와서 반갑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알고보니 시몬 볼리바르 대학에서 바이블 아카데미를 하고 모임을 할 때 이곳 매점에서 대량으로 빵을 많이 사서 서빙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과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한국 동역자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자 한국의 안국동과 같이 베네수엘라 기념물을 파는 동네의 한 매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베네수엘라 색채가 느껴지면서 실용적인 바구니를 사게 되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산나 선교사님이 가격 딜 하는 것은 본인이 전문이라며 몇 마디 하며 가격을 계속 깎더니 결국 주인을 불러서 딜을 하여 만족스러운 값에 물건을 사게 되었습니다. 이후 다시 후안 선교사님 직장에 들러서 후안 선교사님과 한참동안 대화를 하였습니다. 후안 선교사님은 마침 카라카스가 아닌 다른 지부에 홀로 가정만 있는 하이네 목자의 장래 방향을 두고 고민하며 저희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지부 상황들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도록 합심기도를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오는 길에 수산나 선교사님이 베네수엘라에서 자신들은 아무것도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장군이나 대통령까지 동원하여 보호하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보호하심을 느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카라카스 동역자들과 양들로부터 재판받듯이 무시와 정죄를 받았을 때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의 아들이고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빌라도와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죄인 취급 받으며 재판을 받으시고 모욕 받으신 것이 생각났다고 하였습니다. 당장이라도 천군천사를 불러 다 쓸어버릴 수도 있으신데 그처럼 정죄와 모욕을 받으신 예수님의 크신 겸손과 사랑과 은혜가 크게 느껴져서 오히려 감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매 선교사로 잠비아에서 지낼 때도 너무 외로웠는데 본인 생일에 갑자기 대사님이 중국 식당으로 데리고 가셔서 300가지 요리를 조금씩 맛보게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큰 사랑으로 위로하시고 베푸시는 것을 느꼈던 때를 말씀하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늘 선교사님의 인생의 어려운 시기에 함께 하고 계심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보호하고 도와주고 계심을 나타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에서도 너무도 무서운 일이 많은데도 하나님이 보호하신 일을 증거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은 두 분을 베네수엘라 대통령보다 더 중요하고 귀한 분으로 여기시고 철저하게 보호하고 돕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 수산나 선교사님이 준비한 파스타와 한국 부침개와 큰 소세지와 파파야 쥬스와 함께 카라카스 동역자들을 불러 식사 교제를 하였습니다. 초청한 분들이 사정이 있어서 못오기도 하였지만, 우고 목자님 가정을 비롯하여 윌리암,엘바 목자 가정,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젊은 리더 목자 가정과 형제자매들 11명과 자녀 3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우리는 맛있게 식사하며 짧은 영어로 서로에 대해 소개하였고 우고 목자님이 찬송가를 부르고 또 인요한 목자님과 후안 선교사님과 제가 답가를 불렀습니다. 이후 요한 목자님의 제안으로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요한 목자님이 먼저 이야기를 했고 이후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이야기하였습니다. 각자 가정문제, 대학에서의 어려움 등이 있었고, 그 중 어떤 분은 의붓아버지의 성적 학대나 물질적 지원이 없어 어릴 때부터 학업을 감당할 수 없었던 일도 있었고, 가족이 감옥에 가거나 자살을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슬펐던 일을 말하며 눈물을 글썽글썽 하였습니다. 가장 행복했던 일은 공통적으로 모두 예수님을 만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마치 수양회에서 소감을 나누는 것과 같은 은혜가 충만하였습니다. 베네수엘라 양들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0시 30분즘 되어서 모임을 마쳤습니다. 모두 가고 정리를 마친 후에 후안 선교사님은 우리와 더 대화를 나누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UBF의 여러 어려운 상황들, 2월에 있었던 중남미 지부장 수양회에서 공식적으로 베네수엘라 코디네이터, 한국식으로는 지부장이 되신 이후 모임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 것인가 고민이 많고 기도를 하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문제가 많고 바뀌기 어려운 베네수엘라 모임의 코디네이터를 맡는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았지만, 자신도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또 더 편한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 가지 질문 앞에 직면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결국 책임을 맡고자 정하게 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잠히 기도만 하고 있다고 하셨고, 은주 사모님이 일대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연락을 하셨다는 말을 듣고 한가지 방향을 잡았다고 하셨습니다. 카라카스 센타 책임목자인 우고 목자님과 다른 지부 책임목자들과 같이 일대일 공부를 하고자 기도하고 제안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시간을 가지고 한 가지 한 가지씩 느리지만 자연스럽게 정착이 되도록 하고자 한다고 하셨습니다. 먼저는 일대일, 다음은 소감, 그 다음은 양식 먹는 일 등입니다. 무엇보다 팬데믹과 전 스텝목자 문제로 인해 리더들도 더 이상 캠퍼스에 나가지 않고, 많은 사람이 떠나거나 마음이 냉랭해지고 불신이 있는 분위기여서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고민하고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먼저 우고 목자님 가정을 잘 세우고자 하는 방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새벽 2시가 다 되기까지 대화하고 합심기도 하였습니다. 우고 목자님이 깊이 있는 말씀의 종이 되도록, 젊은 목자 가정이 캠퍼스 역사를 섬기는 견고한 리더들이 되도록, 센타의 물질 자립을 이루도록, 지부의 어려운 지부장 가정들의 앞으로의 방향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후안 선교사님이 저희를 보내사 외롭지 않게 하신 것을 감사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기도제목을 들으며 두 분이 이방 땅에서 여러 어려움과 오해와 배척을 받으며 외로움이 크셨구나 하는 것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주님 역사와 회사에서 막중한 책임과 많은 할 일로 인해 얼마나 무거우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족 중심의 문화인 베네수엘라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 가족들을 모두 센타로 데려오는 분위기와 가족 구원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곳에서, 정작 선교사님들은 자신들의 가족은 한국에 남기고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이방 땅에서 피 한방울 섞이지 않고 아무 연고도 없는 그 나라 대학생들과 그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일할 때 남겨진 가족들로 인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무거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분의 모든 아픔과 수고와 마음의 짐을 아시오니 은혜를 베푸시고 한국에 남기고 온 가족들의 구원을 친히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금요일 오전 11시부터 후안 선교사님이 바쁜 회사일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어 예전 독일 망명자들이 이주해 와서 산속에 들어가 살았던 외곽지역으로 데려가 주셨습니다. 후안 선교사님은 회사의 중요한 일들이 있어서 차 안에서도 자주 회사일로 전화를 하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에서 LG사업이 왜 어려운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LG와 여러 기업들의 생존전략과 트렌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후안 선교사님이 정말 전문가가 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센타에 있는 가난하고 잘 모르는 양들과 리더들의 자립을 위해 LG에 취업하게 해 주시고 그들에게 일일이 일을 가르치며 도왔던 일, 회사에서 상사로서 대하는 모습으로 인해 리더들이 센타에서 악덕 사장처럼 말하고 다녀서 겪은 오해와 어려움도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경제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하는 선한 의도로 한 일들이지만 결국 이들에게 영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하여 후안 선교사님은 다시 직장으로 가셨고 밤 늦게 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고 있는 동안 요한 목자님과 컵라면을 먹으면서 오쿠말 지부 상황에 대해 새벽 1시 반까지 대화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섬겨야 할 많은 영적 일이 있고 특별히 어렵고 말씀 공급이 끊어져 있는 각 지부의 리더들과 일대일하며 말씀을 공급하고 돕는 일이 시급한데, 직장 일도 너무 많고 바빠서 실제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후안 선교사님은 LG 일을 그만두고 철강사업 부분만 하고자 방향잡고 그만 둘 시기를 보고 계셨습니다. 전날에도 거의 새벽 2시까지 대화하시고 다음날도 새벽 시반까지 대화하신 것을 보며 베네수엘라 코디네이터로서, 많은 어려움을 가진 센타를 돕고자 얼마나 마음의 눌림이 크신지 알 수 있었습니다. 날씨는 작년 8월부터 이상기온으로 추워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20-24도 사이이고 계속 흐리고 비가 조금 뿌리고 지나가기도 하였습니다. 계속 긴팔을 입고 있어야 했고 춥지도 덥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모기도 별로 없었습니다. 방에 한 마리씩 들어와 있는데 베네수엘라 모기는 한국 모기보다 움직임이 느려서 잡기도 편했습니다. 모기도 그 나라 특성을 닮아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요일에 우리는 오쿠말 지부를 심방하기로 했습니다. 토요일 오전 9시반즘 오쿠말 선물보따리와 음식보따리를 싸서 후안 선교사님 가정과 같이 차에 올랐습니다. 가면서 베네수엘라 정치경제 사정이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그 역사를 쭉 들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즘 갔을 때 출발할 때 해야 하는 기도를 못했다고 수산나 선교사님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후안 선교사님은 운전을 하고 수산나 선교사님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수산나 선교사님은 오쿠말뿐 아니라 카라카스 지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가 필요한 부분들을 기도하셨습니다. 심지어 우리 집 아이들과 친정어머니를 위해서까지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는 끝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오쿠말 가까이 오게 되었고 갑자기 차를 멈추어서 무슨 일인가 하였더니 오쿠말 학생리더가 오쿠말 센타로 가야 하는데 버스가 없어서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었던 것을 후안 선교사님이 발견하고 차를 멈춘 것이었습니다. 그 형제는 메르빈이라는 형제고 오쿠말에 있는 우나파 대학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들을 맞이하기 위해 센타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오쿠말은 카라카스의 위성도시 중 하나인데, 버스운행이 자주 없어서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학교에 갈 때도 지각할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센타는 소크라테스 목자님이 운영하는 차 정비소 안에 있었습니다. 센타는 소박하였지만, 싱얼롱을 위한 악기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노트북도 있고 인터넷도 되었습니다. 현재 물이 나오지 않아서 소크라테스 목자님이 물을 얻어와 생수통 2개 정도를 준비해 놓으셔서 그것으로 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 목자님은 70대이시고 부인인 도리스 사모님 두 분 모두 페루 사람인데 베네수엘라로 이민오셨다고 했습니다. 원래 그의 아들 요벨 목자가 파블로 오 스타 선교사님의 첫 양이라고 합니다. 요벨 목자가 그의 부모와 여동생을 인도해서 같이 역사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학생리더들이 싱얼롱을 준비하여 우리를 환영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나와서 자신을 소개하였습니다. 대부분 우나파 대학 출신들이었습니다. 학생조상이며 리더는 스마이커 목자였고 그의 아내는 빈센 사모님이었는데 22살이었습니다. 요벨 목자는 40대후반인데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였습니다. 그는 아주 열정있고 용감하여서 모든 대학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수학공부나 프로그램 공부, 요즘은 로봇 공부를 시켜준다고 모아서 2시간 정도 먼저 성경공부를 하고 이후 실제적인 공부를 가르쳐 준다고 했습니다. 교수들보다 더 잘 가르쳐서 학생들이 많이 온다고 했습니다. 오쿠말 동역자들은 아주 가난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열악한 가운데서도 음식을 준비해서 저희를 섬겨주고 같이 교제하였습니다. 학생들도 저희에게 질문을 했고 둘러앉아 대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는 새 센타를 들러서 보고 기도하고, 이후 우나파 대학을 심방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곳은 대학이라기보다 작은 시골학교 같았습니다. 2층 건물이었습니다. 오쿠말 센타는 카라카스 센타에 비해 아주 험블하였는데, 학생들은 더욱 겸손하고 순수해 보였습니다. 계속 학생들을 초청하고 돕는다고 하였습니다. 학생들은 센타에 인터넷이 되기 때문에 숙제를 하기 위해서도 센타에 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축복하실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쿠말은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였습니다. 후안 선교사님은 계속 운전하고 섬기느라 피곤하실텐데 우리가 선물을 살 수 있도록 마켓을 두 군데나 들러 주시고 배가 부르다고 해도 굳이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식당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후 저녁에 저는 너무 피곤하여 곯아 떨어지고 요한목자님은 주일 메시지를 준비하였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어 저는 예배 때 나와서 인사하라고 할 것 같아 인사말을 준비하는데, 가족 중심이고 가족이 우선인 문화에서 캠퍼스 미션이 약해진 상황을 들었기에 저의 작은 체험 하나를 같이 나누기 위해 소감식으로 인사말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구글 번역기로 돌려 스페인어로 바꾸고 수산나 선교사님과 같이 보았습니다. 예배가 오전 10시 시작이어서 수산나 선교사님은 70인분 정도의 식사를 준비하시고 9시까지 센타에 가야 한다고 일찍 서두르셨습니다. 이곳은 가난해도 사람들이 옷과 꾸미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저의 옷과 요한 목자님의 옷도 챙겨 주셨습니다. 다림질도 꼭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배는 우리와 분위기는 좀 달랐고 순서도 좀 차이가 있었습니다. 요한 목자님이 다니엘서 1장으로 메시지를 전했고 후안 선교사님이 통역하셨습니다. 수산나 선교사님은 오랜만에 한국어 메시지를 들으면서 연신 아멘 아멘 하시며 좋아하셨습니다. 다니엘서 말씀은 분명한 방향이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예자나 사모님의 도움과 통역으로 인사말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예배 멤버들 중 학생이 별로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들이 많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캠퍼스 미션이 멈추고 가족과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을 데리고 와서 그렇게 되었다고 선교사님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예배 후에 요회별로 모임이 있어서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일일이 나누어 주고 수산나 선교사님이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주고 요회별로 식사하였습니다. 여기서도 마스크를 벗고 예배를 본지 3주 정도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몇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사진을 찍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다니엘서 1강 말씀에 기초해서 베네수엘라 UBF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자 하는 한 가지 뜻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베네수엘라 UBF를 맡아서 풀어야 할 많은 문제를 않고 계신 백후안,수산나 선교사님들 위해 기도 지원을 많이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선교지 현장에 와서 보니 그런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후안 선교사님과 요한 목자님은 따로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내고 수산나 선교사님은 1주일 정도 집을 비울 것을 생각하고 이것저것 정리를 하셨습니다. 저도 정리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후안 선교사님이 바닷가재 집으로 데리고 가셔서 같이 식사한 후 새벽 2시에 출발해야 해서 잠을 청했습니다. 새벽 2시에 사무엘 형제님과 같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군인들이 최종 짐 검사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4시간 전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저의 짐이 걸렸고 아주 젊은 두 군인이 따로 부르더니 짐을 열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언어가 안되어서 저 대신 수산나 선교사님이 그들을 대하였습니다. 한 사람만 남아야 한다고 해서 저는 밖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후에 들어보니 그들이 마약이 있을 수 있다고 초코렛을 다 뜯으려고 하면서 제가 선물로 주려고 샀던 초코렛의 포장을 뜯어 보겠다고 했습니다. 수산나 선교사님이 제게 와서 포장을 뜯고자 하는데 괜찮겠냐고 물어서 그러라고 했고, 그들이 초코렛을 먹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 하나 주자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짐 검사를 끝내고 짐을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어이없는 불법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선교사님들이 많이 당하셨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다음 단계 한번 더 짐 검사를 하였는데 무사히 통과되어 2시간 일찍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파나마행 비행기에서 두 분은 피곤하여 계속 주무셨습니다. 2시간 정도 비행 후 호수에 목자님의 환대로 같이 파나마에 있는 후안 선교사님 아파트로 향하였습니다. 짐을 풀고 곧바로 후안 선교사님은 직장으로 가시고, 호수에 목자님의 인도로 파나마 운하를 먼저 보기로 했습니다. 이후 차로 파나마 시티를 쭉 둘러본 후 국립 파나마 대학을 심방하였습니다. 차로 캠퍼스를 돌아보게 되었고, 도서관 앞에 파킹한 후 도서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면서 한 형제에게 말을 건네게 되었습니다. 쟌니엘 형제님. 그 형제는 산업공학 2학년이었고 모태신앙으로 신실하게 영적 모임에 담기고 있었습니다. 그와 호수에 마이클 목자님의 통역으로 대화를 한 후 성경공부에 초대하고 연락처를 받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이후 파나마 센타에서 7시에 저녁 식사 모임이 있다고 하여 향하게 되었습니다. 센타는 작지만 아주 깨끗하고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마리아 선교사님과 그 딸, 또 다리오, 카렌 가정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아우디와 그의 대학생 아들 느헤미야, 리카르도와 나탈리 부부와 돌된 아기 제이콥과 리카르도의 친구가 같이 왔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와 카렌 사모님들이 준비한 저녁을 먹으면서 교제하였습니다. 백후안 선교사님도 직장에서 아주 어려운 일로 인해 고생하다가 식사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셔서 모임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호수에 목자님은 아버지가 어머니 외에도 5명의 다른 아내들과 만나며 배다른 자녀들을 9명이나 더 낳았습니다. 이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고 본인도 정욕적인 삶을 살았는데 그 이면에는 아버지의 절대적인 사랑을 찾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수양회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만나고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를 용서하고자 결단하였는데, 마침 집에 갔을 때 아버지가 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결단한 것이 생각이 나서 아무 말 없이 아버지에게 다가가 꽉 껴안았다고 합니다. 이후 자신의 믿음이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하였습니다. 호수에 마이클 선교사님은 센타가 거의 가정 교회 수준이었지만, 바쁜 직장 생활에도 불구하고, 또한 마리아 사모님이 사역에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매주 주일 메시지 준비와 그룹 바이블과 일대일을 섬기며 바쁘게 지내셨습니다. 후안 선교사님과 마리아 선교사님은 오랜만에 공항에서 그를 보고 살이 많이 빠져서 운동을 해서 빠진 줄 알았는데, 너무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빠졌다고 했습니다. 호수에 목자님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 하루를 휴가내었고 저녁 모임도 잘 섬기셨습니다. 한국말도 조금씩 하셨습니다. 이 분이 얼마나 겸손하고 사명에 충성된 사람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가정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호수에 목자님도 따로 누가 일대일을 해주거나 서포트를 해 주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혼자 개인적으로 질문지를 만들고 메시지를 준비한다고 했습니다. 베네수엘라도 그렇고 파나마도 그렇고 오랫동안 리더들이 말씀 공급이 되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고 무엇보다 일대일이나 그룹으로 말씀 공급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팬데믹과 리더십 문제로 각개 전투를 하게 된 상황에서 서로 영적 유대가 필요함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관악5부에서 매주 선교지를 위해 꾸준히 기도를 해 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또 앞으로 더 선교지 상황을 수시로 업데이트하여 간절히 기도해 주어야 함을 더욱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임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오게 되었습니다. 후안 선교사님은 직장일이 너무 바빠서 이후 시간을 내기 어려우셨습니다. 마지막 날 수산나 선교사님 집에서 마지막 떡라면 만찬을 하고 공항으로 향하였습니다. 두 분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 많은 수고와 헌신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베네수엘라 코디네이터로서, 그 동안 베네수엘라와 파나마 역사를 동역하고 지켜보면서 깨닫게 되고 져야 할 많은 짐들로 인해 무거웠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회복하고 도와야 할지 고민하고 방향을 잡아가고 계셨습니다. 두 분은 우리가 베네수엘라와 파나마의 상황을 더 자세히, 깊이 알고 공유하며 기도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두 분이 많은 일을 하고 계셔서 절대적인 시간과 체력이 필요한 가운데 있는데 이 종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저희 선교지 모든 일정을 인도해 주시고 보고 알아야 할 것들을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건강하게 무사히 모든 일정을 마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뜻을 정한 대로 계속 일본과 베네수엘라와 파나마를 위해 매일 기도를 드리며 선교 역사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제자양성뿐 아니라 선교사 파송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적극적으로 섬길 수 있도록 기도제목을 가지게 되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2041년까지 10만명 선교사 파송 역사에 관악5부를 귀하게 써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814 백후안 수산나 선교사님 파일
[레벨:17]서정수_
69 2022-12-28
813 [사진] 나요한 주니어 군대 휴가
[레벨:20]서정수
97 2022-12-04
812 목요 다니엘 기도 모임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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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2022-11-25
811 2022년 추수감사절 파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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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2022-11-22
810 [사진] 새봄맞이 수양회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행19:20) (2.26-7)
[레벨:20]서진우
170 2022-03-13
809 다윗요회 요회목자 계승 - 서진우 목자님 파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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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2022-01-26
808 하우스처치 - 한승대 김예인 [7]
[레벨:19]정지란
296 2022-01-12
807 2021 성탄축하의 밤 시 모음 [1]
[레벨:20]서진우
95 2022-01-10
806 한베드로 선교사님 파송 파일
[레벨:20]김기중
143 2021-07-08
805 [영상] 60주년 세계선교보고대회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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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2021-06-17
804 [영상] 60주년 선교사수양회 파일
[레벨:17]서정수_
37 2021-06-17
803 [사진] 군입대 - 이진솔 형제님 파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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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2021-06-17
802 no image 2021년 신년 일용할 양식 수양회 파일
[레벨:20]인요한
140 2021-01-01
메세지와 사례발표 자료입니다. ----------------------------------------------------------------------------------------------------------------------------------------------- 2020년 신년 일용할 양식 수양회 말씀 출 16:1-36 요절 출 16:4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얼마 전 ‘GRIT’ 이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근성, 집념, 끈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인데요.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연구해 본 결과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해내는 힘’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타고난 재능보다도 2배 정도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죠. 그러면서 이 힘을 기르기 위한 방법으로 ‘높은 목적의식’, ‘실패를 이기는 회복력’과 함께 ‘일상에서 반복되는 훈련’을 제시했습니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인내하는 습관이 몸에 길러 지면, 결국 이것이 끝까지 견디는 힘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수천 년 전 시작하신 일용할 양식 훈련이 얼마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탁월한 훈련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말세를 사는 신자에게도 끝까지 견디는 힘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위해 주시는 것이 바로 일용할 양식 훈련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일용할 양식 훈련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고 실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신 광야는 시나이 반도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열 두개의 물 샘이 있는 엘림과는 약 3일 거리가 됩니다. 이 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떠난 지 한 달 보름이 되던 시점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39절을 보면 그들이 애굽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양식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는 직선거리로 300km가 조금 넘습니다. 하루에 10km씩 가면 한 달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 정도면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양식으로도 충분한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나안으로 직진하시지 않고 그들을 광야 남쪽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여정은 예기치 않게 길어 졌고, 식량은 떨어져 갔습니다. 마침내 광야 한 복판에서 그들의 식량이 바닥났습니다. 그러자 그 동안 쌓였던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우리는 이 원망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 마음 깊이 자리 잡은 노예 근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노예 근성이란 무엇입니까? 자유를 위해 기꺼이 어려움을 감수하기 보다 그것을 회피하고 차라리 노예 상태로 머무르려 하는 것이 바로 노예 근성입니다. 과거 애굽 생활을 그리워하는 그들의 말만 들으면 그곳이 마치 모든 복지와 주거 문제가 해결된 지상 낙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그곳은 애굽의 압제 아래 원치 않는 노동을 강요 받고 미래를 꿈꿀 수 없는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곳이었습니다. 하루 하루 반복되는 괴로움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밖에 없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단지 그곳에 먹을 것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애굽 땅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인간 조건은 자유롭게 되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아직도 노예 상태 그대로였던 것입니다. 배고픔은 분명 사람에게 절박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과 한 달 전 세계 최 강대국 애굽의 지배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광야의 쓴 물을 단 물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원망하기 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인내하는 길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원망하는 손 쉬운 길을 택했습니다. 한마디로 상황이 좋아지면 찬송이 흘러 넘치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원망하는 신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뿌리가 없는 신앙입니다. 그들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노예 근성이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믿음이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첫째로 그들의 양식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다 함께 4절 전반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이스라엘이 지금 있는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양식은 커녕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도 찾아보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야말로 desert 입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도저히 양식을 찾을 수 없는 이곳에,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양식을 내려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것도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비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성인 남자만 60만이었습니다(민11:21). 모두 합하면 약 200만으로 추산됩니다. 하루에 쌀은 대략 25000가마, 고기는 40만 키로가 필요합니다. 10톤 트럭으로 90대 분량입니다. 군대에서 보급을 해보신 분은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양인지 감이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이 모두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6절을 보면 여기에는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잘하는 연약한 이스라엘을 도우셔서, 다시 한 번 구원의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뜻이 있었습니다. 또 12절을 보면 하나님이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닌 바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 하시는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도 광야에서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와 연약함과 필요를 모두 아시고 하늘 창고를 열어 그것을 채워 주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들을 훈련하셨습니다. 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근본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배부르고 등 따신 백성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19:6).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동역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그들이 먼저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 말씀을 준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이스라엘이 매일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용할 양식 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주용할 양식이나, 월용할 양식이 아닌 일용할 양식 훈련을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육의 양식을 매일 먹는 것이 사람의 생명에 꼭 필요한 일이듯,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듣는 것이 사람의 생명에 꼭 필요한 일임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8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들은 육의 양식을 제 때 먹는 일은 신경 쓰지만, 영의 양식을 제 때 먹는 것에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에 바로 우리의 영적 생명이 달려 있다고 말씀 하십니다. 양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광야의 극한 환경에서 일용할 양식 훈련을 주신 것도, 그들의 영적 생명이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듣는데 달려 있음을 온 몸으로 배우도록 하신 것입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속성 트레이닝 교육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 받을 때는 뭔가 달라진 것 같지만 다녀오고 나서는 그대로 일 때가 많습니다. 일상에서 자기 것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마음 깊이 뿌리내린 노예 근성과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매일의 훈련, 일상의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이 훈련을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받게 하셔서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 되고 삶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의 연약하고 병든 내면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합당한 제사장 나라의 내면이 되게 하셨습니다. 13절부터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과 함께 만나를 내리셨습니다. 하늘에서 양식을 비처럼 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16절부터 21절은 일용할 양식 훈련의 성격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6절부터 18절을 보면 하나님은 각 사람에 한 오멜씩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더러 많이 거두고 적게 거둔 사람이 있어도 오멜로 되어 보면 서로 똑같은 양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으로 살 때 서로 다투거나 경쟁할 필요가 없음을 배우게 해주셨습니다. 또 20절을 보면 거둔 것을 내일 아침까지 남겨 두면 상하게 하셨습니다. 하루 양식 잘 거두고 내일까지 버티면 되지,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1절을 보면 아침에 그것을 거두어야지, 해가 뜨고 나면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루의 우선 순위를 말씀에의 순종에 두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훈련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내면을 가진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우리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곳곳에 육의 양식이 풍족하게 쌓여 있는 것을 봅니다. 학생 시절 저는 서빙을 먹는 맛에 모임을 찾아 왔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을 좀처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영의 양식을 먹지 못해 죽어 가는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저희 요회에는 두려움과 열등의식으로 사람들을 피하고 병원을 찾는 양들이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 깊은 외로움으로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며 게임과 커뮤니티, 이성 관계로 도피하는 양들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영의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 45절에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영의 양식을 어떻게 거두고 또 어떻게 나눠 줄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필요로 하는 때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용할 양식 훈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좋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 아닌 격일제 양식이나 주용할 양식을 하는 근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우리 생명이 달려 있다고 하십니다. 생명이 달려 있다고 하면, 거르겠습니까? 우리가 하루만 밥을 먹지 않아도 육신이 신호를 보내지만 우리 영혼은 이것보다 사실 훨씬 예민합니다. 영적인 양식을 하루라도 공급받지 않으면 금새 부정적인 생각, 원망, 슬픔, 자기 연민으로 마음이 어두워 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그 때가 좋았는데..’ 혹은 ‘나한테 왜 그랬어요..’ 하며 애 늙은이 소리를 냅니다. 잠시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열렬하다가도, 어려움이 닥치면 불평 원망을 반복하는 감정 중심적인 신앙 생활을 합니다. 이로 인해 믿음이 뿌리 내리지 못합니다. 성장이 없는 자신을 보며 나는 왜 항상 이럴까? 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생명을 잃어 가는 증상들입니다. 만약 이런 증상이 있다면 먼저 필요한 것은 일어나 밥부터 챙겨 먹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훈련을 하여 영의 양식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영혼이 말씀의 생명력으로 채워져 강건해 집니다. 이처럼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말씀의 힘으로 하루 하루 살아갈 때 진정한 천국 곳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양식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역사를 섬기는 것이 광야를 지나는 것처럼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준비한 양식은 얼마 되지 않는데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 가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의 코로나와 갈수록 어려워지는 캠퍼스 환경은 목자들의 발을 원하지 않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번 요회 목자 연요절 발표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와 어려운 캠퍼스 상황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더욱 인격적이고 진실된 신앙을 요구하게 한다는 점에서 광야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광야는 우리가 진실된 마음으로 일용할 양식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입니다. 우리가 광야로 가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 문만 열려 있으면 됩니다. 하늘 문만 열려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곳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려 주십니다. 올 한해 자격이 없는 죄인에게 일용할 양식 훈련의 방향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돌아 볼 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도 양식을 통한 말씀의 은혜를 주시고, 제가 영적인 생명을 잃지 않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말씀도 잘 듣지 않고, 목자님들의 말씀도 듣지 않으며 원망 불평을 반복하던 저에게 2009년 이사야서 64장을 양식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양식 말씀을 먹을 때 영적인 눈이 열리고 자신의 문제와 인간 조건에 얽매인데서 벗어나 자신의 오래 된 죄 문제를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통해 저의 영이 살아나는 체험을 한 후 꾸준히 양식을 먹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양식을 먹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자 양식 횟수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양식을 꾸준히 먹을 때 먼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저의 내면이었습니다. 저는 본래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 비교의식으로 얼굴이 늘 어둡고 입에서는 부정적인 말이 주로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서울대 출신으로 특별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특권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양식 말씀을 통해 인격적으로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받을 때 세상에서 특별 취급을 받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충분하다는 것을 조금씩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양식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되새길 때 세상에서 싸우고 경쟁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부족하지만 예수님을 배우고자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양들을 섬기고 직장의 선 후배들을 이해해 갈 수 있었습니다. 또 연구소에 영적인 어려움이 있는 다른 센터 학사 목자님과 함께 양식 셰어링을 하며 돕기도 했습니다. 제 동역자는 제가 영적으로 양식을 잘 먹을 때와 안 먹을 때 차이가 많이 나서 꼭 영적인 기본 생활을 잘 하도록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결정적으로 잘 안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양식을 매일 반복되는 훈련으로 영접하는 것이었습니다. 양식 생활의 유익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에게 있어서 양식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에 가까웠습니다. 양식 생활을 하지 않으면 나의 영혼이 죽어 갈수도 있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올해부터 서울 아산 출퇴근을 시작하면서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직장이 아산에 있어 10년 동안 회사 앞에서 기숙사 생활을 해 왔습니다. 기숙사에 있으면 아침 저녁으로 여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양식을 먹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올해 팀장님이 서울 근무를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랫동안 서울 근무를 기도해 왔던 저희 가정을 위해 주시는 선물이라 생각되어 기쁜 마음으로 기숙사 짐을 모두 정리하고 저의 방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근무가 확정될 때까지만이라고 생각하며 서울에서 아산으로 출퇴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계속 미뤄 지더니 결국은 취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업무상으론 서울 근무가 맞는데, 아산에서 근무하는 이상한 형태가 계속되기로 확정되면서 자신의 장래에 대한 불안한 생각에 마음이 어두웠습니다. 다시 기숙사에 들어갈 수도 없어 서울 근무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서울과 아산 사이의 출퇴근을 계속했습니다. 출퇴근 하는 버스 안에서 저는 마치 패잔병처럼 멍하게 있거나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어두운 셔틀 버스 조명 만큼이나 제 마음도 어두웠습니다. 저는 이처럼 마음이 어두운 것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어려운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하고 싶어도 출퇴근하느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 말씀을 섬기는 주에는 평소보다 잠을 더 못 잠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조금도 무겁지 않고 힘이 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문제는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을 필수가 아닌 옵션으로 여겨왔던 자신의 태도의 문제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일용할 양식에 힘쓰게 될 때 출퇴근 시간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직장의 상황이나 코로나로 인해 양들을 만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더 이상 마음이 무겁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는 좋은 훈련의 기회로 영접되었습니다. 저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해외 파견으로 인해 불안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인도로 가면 언어는 수월하지만 가족은 데려가기 어렵고, 중국은 가족은 데려갈 수 있지만 언어가 안되고, 베트남은 선교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인해 여기로 가야 할지 저기로 가야 할지 모르는 채 갈팡질팡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식부 부장이신 김승식 목자님의 초청으로 일용할 양식 대회에 온라인 참석하여 양식 365일을 하신 목자님들의 소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양식 365을 하며 그 열매로 베트남 선교에 도전한 목자님도 있었습니다. 저는 베트남에 선교사로 가는 것도, 40대에 선교사로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양식 365일로 자신을 준비하셨던 그 선교사님에게는, 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전혀 불가능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선교사님의 소감을 들으며 하나님 역사를 섬기기에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훈련에 소홀한 자신의 모습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연요절을 디모데전서 4:7절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로 잡았습니다. 제가 이 연요절을 붙드는 가운데 올 한 해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양식 훈련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코로나 시대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세계 선교를 준비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우리를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소망 가운데 부르셨습니다. 이 소망을 위해 우리에게 날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일용할 양식 훈련을 받게 하십니다. 우리가 코로나와 변화되는 캠퍼스 환경의 도전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 훈련을 힘써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영적인 광야와 같은 이 시대를 먹이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사례 발표> #1 안녕하십니까? 저는 상록수요회 정지란입니다. 제가 발표할 사례의 주제는 양식을 먹게 된 계기입니다. 저의 사례 발표의 요절은 마태복음 4장 4절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저는 대학에 입학하고 1,2학년 때에는 어려운 전공 공부와 강의마다 있던 팀 프로젝트로 인해 기도는 커녕 시간을 내어 말씀을 묵상하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몇가지 사건을 계기로 일용할 양식을 먹지 않았던 제 모습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하시며 양식을 시작하게 하시고, 또 꾸준히 먹을 수 있도록 훈련해주셨습니다. 첫번째 계기는 1학년 2학기 때 친구인 혜미 자매님을 섬기면서였습니다. 혜미 자매님은 저와 같은 학과이고 저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입니다. 혜미는 말씀에 대한 소원이 있어서 말씀을 듣고 싶어 하지만 과거의 상처가 있어 쉽게 어느 교회에 갈지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친구를 서울대 UBF 바이블아카데미에 초대를 하였고, 이후 가천대 UBF 목자님과의 성경공부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혜미자매님은 몇 주간 성경공부를 한 뒤에, 목자님으로부터 일용할 양식을 시작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일용할 양식을 어떤 식으로 해야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 혜미의 질문에 저는 저의 현주소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답을 해주고 싶어도 양식을 잘 먹지도 않는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본이 되기는 커녕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니 혜미 앞에서 참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일용할 양식을 먹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계기는 바쁜 학과 일정과 발표 그리고 어머니가 영육간에 힘들어하시는 상황들 앞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기보다 힘든 상황 안에 갇혀있기를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입니다. 저는 학교와 가정에서 힘든 문제와 상황 속에 있었지만, 이를 투쟁하기 위해 어떻게 말씀을 붙들어야 할지, 또 어떤 말씀을 붙들어야할지 잘 알지 못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과 선하심을 믿는 믿음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말씀 뿐이라고 하셨기에 저는 그런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양식을 먹어야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2016년, 2017년 2년 동안 사도행전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말씀을 연요절로 잡고 양식을 꾸준히 먹어보겠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과는 다르게 양식을 꾸준히 먹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세번째 계기는 2018년 초 겨울방학 때 호주로 2달간 인턴을 간 것을 계기로 저의 죄 문제를 깨닫고 변화와 성장을 위해 영적 투쟁을 하고자 하는 소원을 갖게 된 것입니다. 생각처럼 양식 생활을 잘 하지 못하고 있던 저는 호주 멜버른에 있는 모나시 대학으로 두 달간 인턴을 가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은 혼자 해외에 있는 제가 주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양식을 매일 먹는 방향을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양식을 매일 먹고 사모님께 보내드렸지만, 점점 양식을 매일 먹기가 힘이 들고 부담으로 느껴지자 사모님과의 연락을 끊어버리고 한 달 넘게 숨어버렸습니다. 귀국 후 저는 호주에서의 저의 모습을 돌아보며, 저의 힘으로 통제하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결국 외면하고 피해버리고 숨어버리는 것이 저의 고질적인 문제이고, 예수님의 구원이 필요한 죄ㅜ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혼자 힘으로는 영적인 투쟁을 잘 할 수 없는 저를 도와주시고자 환경을 예비하셨습니다. 저는 가천대 UBF에 학생리더가 없는 문제로 대학 2학년 때부터 가천대 UBF 동아리 회장을 맡아 섬기며 목자님들을 동역하고 있었습니다. 호주에서 돌아와 4학년을 시작할 때, 가천대 목자님은 제게 캠퍼스 양식모임을 함께하자고 제안해주셨습니다. 저는 시간이 뺏기는 것 같아 처음엔 주저했지만 생각하면 할 수록 저를 위해 예비하신 영적인 기회라는 생각이 들게 되어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 양식 모임에 참가하면서 양식을 한번이라도 더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또 소감을 나누는 은혜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과친구들이 휴학을 하여 혼자 있던 공강 시간에는 양식 먹는 훈련을 하게 되었고, 또 매주 요회모임에서 양식 소감을 나누며 꾸준히 주 3회 양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양식을 먹으며 말씀을 볼 때 잘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니 제게 적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은 내용을 찾아보기도 하고, 전날 양식 말씀을 보며 묵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깊이 먹지 못할때도 있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말씀을 더 알아가게 되었고, 또 그 중에 한 말씀을 받으며 하루 하루를 감당할 힘을 얻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양식을 먹기 시작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졸업작품 준비로 인해 정신없고, 엄마의 문제도 점점 심각해져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으로 불평하는 제 마음에 평안을 주셨고, 저를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을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도록 때마다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졸업작품 마무리와 발표도 끝까지 감당할 믿음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발적으로 주 5회 양식을 먹게 된 계기는 취업 문제였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영적인 기본생활을 잘 하지 못하면 직장생활을 하게 되어도 결국 대학생 때와 같이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믿음 없는 문제가 반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말씀을 졸업한 해인 2019년 연요절로 잡고 주 5회 양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신앙생활에 도전하고자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전공 공부와 프로젝트, 가천대 UBF 동아리 회장직을 감당하며 바쁘던 때와는 달리 아무 일이 없으니 양식을 더 잘 먹을 수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휴학 없이 대학 4년을 마치고 지쳐있었던 저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었고 반 년 정도는 편하게 휴식을 갖고자 하니, 영적인 간절함도 잘 갖기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자 취업 문제가 눈 앞에 크게 다가오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걱정과 염려,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상황에 놓이자 저는 자발적으로 말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때마다 양식 말씀을 통하여 믿음과 힘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로마서 6장 19절 양식 말씀을 통해 두려움과 걱정에 자신을 내어주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야함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일단 현재 저에게 맡겨주신 센터 역사를 적극적으로 순종하며 감당하고자 하게 하셨습니다. 또 계속되는 취업 실패가운데 낙심이 될 때에 8월 14일 양식이었던 학개서 1:8”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말씀을 주시고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다시 취업준비를 할 힘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 사모님은 서울대에 취업원서를 내도록 하셨지만 저는 모르는 분야를 잘 할 자신이 없어서 계속 주저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11월 6일 느헤미야 4:17 말씀을 주시고 저를 가장 합당한 곳으로 인도하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서울대에 지원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당장 취업이 되지는 않았지만 믿음으로 계속 도전하며 말씀으로 살고자하였을 때 2020년 3월 주님의 놀라우신 방법으로 저의 전공을 살려서 일을 할 수 있는 서울대 농생명과학공동기기원에 선임분석원으로 취직을 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여러 계기를 통해서 저를 말씀 앞으로 나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의 체험을 통하여 저는 양식 말씀으로 날마다 주님을 만나고 또 하루하루 감당할 힘을 얻게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어려운 상황을 도피하지 않고 제가 감당해야 할 영육간의 십자가를 감당하며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지게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저의 직장업무가 늘어나고 힘들었던 개인적인 상황들은 어느정도 안정이 되자 양식 먹는 것이 우선순위에서 밀려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이번 소감을 쓰게 하시며 저의 안일한 모습을 돌아보며 회개하게 하시고 새롭게 더욱 말씀 앞으로 나아가고자 방향을 얻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계속하여서 양식생활을 절대적으로 감당하며 날마다 주님을 새롭게 만나고 말씀의 인도함을 받는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마디 : 일용할 양식으로 훈련하신 하나님 #2 안녕하십니까. 저는 두란노 요회 정세웅입니다. 제가 일용할양식 사례 발표를 하겠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일용할 양식을 맨 처음 시작한 계기는 대부분의 목자님들과 유사하게 1:1 목자님의 권면을 통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2011년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딤전 2:2) 말씀 통해 매일 하루 하루 양식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성장하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그리할 때 제 안에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일주일에 한, 두 번 양식 말씀을 먹었지만, 꾸준히 또 깊이 먹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가끔 양식 말씀을 먹고 주일 소감은 형식적으로 쓰다 보니 저는 영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저의 여러 가지 죄악 된 내면 문제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꾸준히 먹게 되었는가?‘ 그러던 가운데, 2017년도에는 군 대체복무를 위한 텝스 시험에 도전하였으나 계속 실패하였고 이 가운데 저는 수없이 원망, 불평의 마음에 휩싸이며 내 마음을 내가 다스릴 수 없구나라는 한계에 많이 직면하며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목자님의 권면을 통해 양식 말씀 투쟁을 절대적으로 하며 성화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양식 말씀을 먹기를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017년도에는 일용할 양식을 350일 가량 먹었으나, 마지막 달 12월 첫째 주에, 일용할 양식 365일 달성 양식 왕 수상을 받고자, 2주 치를 하루 만에 몰아서 양식을 먹고 있는 저의 세상적인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저의 세상적인 모습을 돌이키고 저는 일부러 남은 2주간의 양식을 안 먹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양식 3등 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자기 영광을 붙들다 절망하던 저를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셨구나 하였습니다. 그런데 양식을 형식적으로 먹지 말고 자주 먹지 않더라도 깊이 있게 보자고 결단하였더니 2018년 양식은 이제는 극단적으로 너무도 가난하게 한 달에 한 번 양식을 먹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또 다시 저는 영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며 장막에서 여러 형제 목자님들과 부딪히며 자기 마음 가는 데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저의 장막장 직분을 박탈하시고 제 삶에 제동을 걸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목자님께서는 형식적이어도 좋으니 다시 꾸준히 양식 말씀 앞에 나아가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이후 2019년부터는 다시 은혜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매일 양식을 먹고자 투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지난 2017년처럼 주 7회 양식은 못하였지만, 그래도 2주 치를 하루에 몰아먹는 일은 적어도 없었습니다. 매일 하루 주신 말씀을 그 때 먹지 못하면 썩어 없어질 만나로 생각을 하며 가급적 당일에 먹고자 투쟁하였습니다. 그러다 2019년 말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우스 처치를 이루고 함께 천성으로 가며 함께 투쟁할 배우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정의 평화가 하루 하루 일용할 양식에 있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먹게 되었습니다. ☆'바쁜 가운데 어떻게 양식을 먹을 수 있는가?‘ 2020년 올 한 해는 회사 일과 박사 졸업을 위한 연구와 논문 작성을 병행하는 가운데 눈코 뜰 새 없이 일 년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양식을 꾸준히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침에 눈 뜨고 출근 시간인 8시 30분 보다 30분 정도 이른 시간인 8시에 출근하여, 회사 자리에 앉으면 사라 목자님이 챙겨준 도시락을 아침으로 먹으며 양식 말씀을 보면서 영의 양식도 함께 먹었습니다. 오전에 조금 늦거나 주간업무보고 등 바쁜 일로 양식을 먹지 못할 때는 코로나로 인해 챙겨온 도시락을 점심으로 먹으며 입은 씹으며 눈과 손으로는 일용할 양식을 먹고 쓰며 점심시간 1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점심도 외근이나 다른 바쁜 일로 먹지 못할 때는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양식 말씀을 보고 양식을 쓸 때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는 인스턴트 식으로 먹게 될 때가 많았지만 그렇게라도 순종하고 하루 주신 말씀을 먹고자 투쟁했을 때 새롭게 다가왔던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2021년을 앞두고 2020년 말에 목자님께서 명년 새벽기도 인도를 맡아보겠냐는 제안을 해주셨을 때, 저는 심중으로 어떤 말로 거절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제가 거절하고자 하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쉬고 싶은 죄악된 저의 소원이 있음을 돌아보게 되었고, 또 목자님의 방향이 하나님의 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자의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임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자님의 방향이 하나님의 방향이 맞는지 일용할 양식 말씀을 통해 주시도록 기도하며 당일 일용할 양식 말씀을 읽었습니다. 말씀은 역대하 29:20 말씀 “히스기야 왕이 일찍이 일어나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양식 말씀 첫 구절 “히스기야 왕이 일찍이 일어나”를 보자마자 저는 몸에 전율이 흘렀고 하나님께서 제가 새벽기도 인도하기 원하심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체험이 저로 하여금 그 날 하루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통로가 바로 일용할 양식 말씀임을 영접하고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양식을 어떻게 하면 깊이 먹을 수 있는가’ 평소에 매일 1 page 일용할 양식을 먹는 제 자신이 양식을 깊이 먹는다고 할 수 없어서 공유하기가 많이 부끄럽습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분명히 때마다 제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주는 말씀이 분명히 있었고 그럴 때는 조금 더 깊이 쓰고자 하는 소원을 하나님께서 주셨던 것 같습니다. 또한 비교적 시간을 여유롭게 확보하고 새벽이나 이른 아침 출근하여 조용한 장소를 확보하여 말씀 앞에 앉게 되면 비교적 더 깊은 울림이 있을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양식생활을 통해 받은 은혜와 유익은?’ 하나님께서는 지난 양식생활을 통해 저의 마음을 다스려주셨습니다. 제가 아침에 양식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회사 업무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더욱 기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쁜 업무가운데에서도 일에 치이지 않고 말씀을 통해 얻은 힘과 심정으로 같은 팀 지완 형제를 불쌍히 여기고 기회가 될 때마다 제가 만난 하나님을 전할 수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순종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그 날의 양식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을 깨달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또 양식을 매일 동역자와 나누면서 하루 일과의 감사와 기도제목을 함께 나누고, 말씀으로 하루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그 진리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본성대로 살 자인데 이런 저를 구원하여 주시고 매일 매일 생명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며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깨달아 가게 하신 은혜 깊이 감사드립니다. 죄인이 다가온 새해에도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꾸준히 주님꼐서 주시는 생명의 만나, 일용할 양식 말씀을 아침 일찍부터 꼭꼭 씹어먹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제게 두신 뜻을 분명히 분별하고 10년 전 저와 같이 진리의 말씀을 필요로 하는 주님의 양을 찾아 때를 따라 꼴을 먹이는 귀한 일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한 마디: 하루 하루 주님이 주신 생명의 만나를 꼭꼭 씹어 먹기를 기도합니다. #3 일용할 양식 생활의 유익 바울요회 임폴린 저는 양식을 얼마간 꾸준히는 먹기는 했지만, 깊이 있게 먹었다고는 자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목자님께서 깊이 있는 일용할 양식생활의 유익에 대해 발표하도록 권면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면으로 느껴졌습니다. 양식생활의 유익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저 자신이 조금 더 깊이 있는 양식생활로 들어가도록 도우시는 음성으로 들려졌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생활을 통해 주신 은혜들을 나누기를 기도드립니다. 대학 1학년 때 처음으로 일용할 양식을 먹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마음의 고민이 있을 때 일기를 쓰는 때가 많았는데, 일기는 제 좁은 경험과 생각에 갇혀 제가 가진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기초하여 글을 쓸 때면 문제를 딛고 나아갈 방향을 얻을 수 있는 때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새벽기도를 나와 메신저가 풀어주는 말씀을 듣고 양식을 먹는 것도 좋았고,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맨 먼저 양식을 먹으며 마음을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안한 마음과 집중력을 주셔서 학업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대학 2학년 때부터는 일용할 양식부 실무를 맡아 섬기게 되었고, 이후 양식부 전체의 방향을 따라 매일 양식을 먹고자 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초 참석하게 된 일용할 양식부 부장, 실무자 대회에서는 양식생활을 잘 하시는 분들이 나와 양식생활의 유익과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윤모세 목자님께서 매일 한 포인트를 잡고 짧게라도 매일 쓰는 것에서 시작하라고 조언해 주셔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 날 아침 주신 말씀을 적어도 하루가 마무리 되는 시점까지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휴대폰 바탕화면에 요절말씀을 쓰기도 하고 암송하는 시도들을 해 보았습니다. 일용할 양식말씀이 5년에 한 번씩 성경전체를 다루기 때문에 5년 동안 매일 양식을 먹으면 성경전체에 대한 소감을 쓰게 됨을 알게 된 것도 양식을 빼 먹지 않고 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양식생활을 꾸준히 하며 저는 일용할 양식말씀이 그 날 하나님이 저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확신해 가게 되었습니다. 그 날 닥치게 될 상황들에 대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매일 아침 저에게 주시는 인격적인 조언으로 다른 무엇보다 꼭 듣고 기억해야 하는 말씀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양식을 먼저 보지 못 하고 분주하게 여러 일들을 하며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가 되었고, 하루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야 조용히 말씀 앞에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때 하루 종일 저를 괴롭히던 문제로부터의 답이 되고 방향이 되는 말씀이 양식에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내게 주고자 하셨는데 내가 귀를 막고 놓쳐버리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로 당장 앉아서 쓸 시간이 없더라도 어떤 말씀을 주시는가 먼저 양식책을 펼쳐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어떤 날은 한 가지 문제를 안고 하나님께서 어떤 답을 얻게 하실까 기대하며 아침 일찍 양식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지금 제 문제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고 어플리케이션을 깊이 써 나갈 때 신기하게도 저의 문제와 이 말씀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음이 나타나고 양식을 다 먹고 났을 때 저를 힘들게 한 문제로부터 놓여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날은 간절히 해답을 얻고자 하는 소원 가운데, 어떤 날은 습관을 따라 매일 말씀 앞에 나가는 생활이 자리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임신기간에 한동안 침대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 지내야만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앉아서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양식책자를 누워서 읽고 휴대폰으로 양식소감을 녹음하기도 하였습니다. 양식생활이 삐그덕 거리면서 제 영적인 건강도 함께 소진되면서, 건강을 잃었을 때 그 소중함을 알 듯 일용할 양식이 제 영혼에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부족한 가운데서도 말씀 앞에 나아갈 때 저의 마음을 깊이 이해해주시고 위로해주시는 말씀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출산 후 하루는 습관을 따라 아침 일찍 양식을 먹고, 요절말씀을 암송하려 반복해서 상기시키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말씀이었습니다. 그 날 저는 어렵게 얻은 딸에게 나타난 발달지연의 원인을 찾고자 어린이 병원에 아이를 입원시키게 되었습니다. 여러 검사들이 이어졌고,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지금도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미리 이 말씀을 주심으로 저의 마음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돌아볼 때,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매일 신실하게 내려주신 영적인 만나였습니다. 이를 먹을 때 그 날을 살아갈 힘을 덧입었을 뿐 아니라, 제 삶을 섬세히 돌보고 관여하고 계시는, 살아계신 나의 주님을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일용할 양식 말씀을 통해서 매일 제 삶의 걸음을 인도해 주시고 저의 깊은 마음의 고민들을 이미 아시고, 인격적인 조언을 주시는 주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하루 첫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 먼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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